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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오길의 각성/ 진정한 혁명의 시작
누가복음 24:13-27
17. 예수께서 그들에게 "길을 걸으면서 무슨 이야기들을 그렇게 하고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러자 그들은 침통한 표정인 채 걸음을 멈추었다.
18. 그리고 글레오파라는 사람이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던 사람으로서 요새 며칠 동안에 거기에서 일어난 일을 모르다니, 그런 사람이 당신말고 어디 또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19. 예수께서 "무슨 일이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은 이렇게 설명하였다. "나자렛 사람 예수에 관한 일이오. 그분은 하느님과 모든 백성들 앞에서 그 하신 일과 말씀에 큰 능력을 보이신 예언자였습니다.
20. 그런데 대사제들과 우리 백성의 지도자들이 그분을 관헌에게 넘겨 사형 선고를 받아 십자가형을 당하게 하였습니다.
21. 우리는 그분이야말로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실 분이라고 희망을 걸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이미 처형을 당하셨고, 더구나 그 일이 있은 지도 벌써 사흘째나 됩니다.
22. 그런데 우리 가운데 몇몇 여인이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였습니다. 그들이 새벽에 무덤을 찾아가 보았더니
23. 그분의 시체가 없어졌더랍니다. 그뿐만 아니라 천사들이 나타나 그분은 살아 계시다고 일러주더라는 것이었습니다.
24. 그래서 우리 동료 몇 사람이 무덤에 가보았으나 과연 그 여자들의 말대로였고 그분은 보지 못했습니다."
25. 그 때에 예수께서 "너희는 어리석기도 하다!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그렇게도 믿기가 어려우냐?
26. 그리스도는 영광을 차지하기 전에 그런 고난을 겪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
27. 하시며 모세의 율법서와 모든 예언서를 비롯하여 성서 전체에서 당신에 관한 기사를 들어 설명해 주셨다.
<예수의 십자가 처형으로 예루살렘은 공포와 분노에 휩싸였습니다. 당시 유대 땅은 100년도 넘게 로마 제국의 식민지로 고통을 당하고 있었죠. 무거운 세금과 로마 하수인들의 핍박 속에서 백성들의 처지는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빛을 못 갚은 사람들은 노예로 팔려가기도 했고, 살기 위해 광야로 도망쳐 원치 않는 도둑이 되기도 하였죠.
이런 절망적인 상황이 되자 백성의 마음속에는 그 옛날 선지자들이 약속한 '메시아'에 대한 기대가 더욱 간절해졌습니다. 그들은 로마의 압제에서 구원할 강력한 왕을 기다렸고 세례 요한과 예수에게 기대를 걸었습니다. 그러나 요한의 억울한 죽음과 나사렛 예수에 대한 십자가 처형은 그 기대를 송두리째 앗아갔죠. 성전과 식민지 권력의 무자비한 폭력 앞에 하느님 나라를 꿈꾸었던 사람들은 공포에 휩싸인 채 흩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와중애 십자가에 달린 예수는 두 명의 반체제 인사들과 함께 골고다 언덕에서 의연히 최후를 맞이하였죠.
예수가 십자가에 달린지 사흘 뒤 마리아 막달레나와 요안나,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는 새벽 안개 속에서 예수의 무덤을 찾았습니다. 여인들이 사람들의 눈을 피해 예수의 시신에 향유를 바르려고 했지만, 무덤을 막았던 돌문이 열려 있었고 시신은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두 남자가 번갯불 같은 옷을 입고 나타나서 말합니다.
"어찌하여 살아 계신 이를 죽은 자 가운데 찾느냐? 그분은 여기 계시지 않다. 일어나셨다!"(눅 24:5-6).
여인들은 놀라움과 기쁨, 혼란이 뒤섞인 마음으로 예루살렘으로 달려갔습니다. 제자들에게 그 이야기를 전하자, 그들 대부분은 믿지 않았죠. 유대 남성 사회에서 여성의 말은 쉽게 무시되곤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다만 베드로만이 반신반의하며 무덤으로 달려갔고, 세마포만 남긴 빈 무덤을 확인하였을 뿐입니다.
같은 날 오후, 예루살렘에서 서쪽으로 11km 떨어진 엠마오 마을로 향하는 길에 두 사람이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예수의 제자였던 클레오파와 그의 동반자(전승에 따르면 그의 아내 마리아일 가능성도 있음)가 수심에 가득차 예루살렘을 벗어나고 있었던 것이죠. 절망에 가득한 목소리로 그들은 "그분이야말로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실 분이라고 희망을 걸고 있었는데…"(눅 24:21)라며 중얼거렸습니다.
그때 한 낯선 이가 다가와 말을 걸었습니다. “지금 무슨 애기를 하고 있나요‘
클레오파라는 놀라며 낮선 이에게 되물었습니다. “예루살렘에 있으면서도 요즘 거기서 일어난 일을 모르십니까?”
그들은 예수의 죽음과 여인들이 전한 이상한 소문, 즉 예수가 살아났다는 이야기까지를 상세히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낯선 이는 그들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이렇게 말하였죠. "너희는 어리석기도 하다!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그렇게도 믿기가 어려우냐? 그리스도가 영광을 차지하기 전에 그런 고난을 겪어야 한다 하지 않았느냐?”
그는 모세와 선지자들의 글을 인용해가며, 메시아가 고난받고 부활해야 함을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의 말을 들으며 두 제자의 마음은 또다시 불타오르기 시작했죠.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앞에 있는 예수를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낮선이에게 로마의 가혹한 통치, 산헤드린(의회)의 배신, 예수의 죽음이 초래한 혼란을 토로했습니다.
엠마오에 이르자 날이 저물었고, 그들은 자신들이 묵는 곳에 낯선 이를 초대했습니다. 그들이 식탁에 앉았을 때, 낯선 이는 빵을 들고 감사기도를 드린 후 떼어 나눠주었죠. 그 순간, 그들의 눈이 열렸습니다. 그들은 “아! 주님이시다!”며 동시에 외쳤습니다.
그 고백의 순간 예수는 사라졌고, 두 사람은 서로 마주 보며 말합니다.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 우리 마음이 뜨겁지 않았던가?"(눅 24:32)라고~.
두 제자는 그대로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밤길을 뚫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다른 제자들에게 이 놀라운 일을 전했습니다.
“주께서 정말 살아나셨습니다! 우리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
엠마오에서의 두 제자가 체험한 예수 부활의 이야기는 예루살렘의 제자들에게 새로운 확신을 주었습니다.>
오늘은 부활절입니다. 십자가의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한 예수를 통해 새로은 종교, 문명이 시작되었습니다. 생명존중, 자유와 정의, 평등과 평화의 세상이 열린 것이죠. 드디어 하느님의 창조 질서가 다시 회복되기 시작한 겁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 부활절 날 일어난 사건 중의 하나입니다. 그날을 시간대별로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이른 새벽에 여인들이 무덤 방문했을 때 돌이 옮겨지고, 시신은 없었으며, 천사가 나타나 예수의 부활을 고지하였습니다(마 28:1-7, 막 16:1-8, 눅 24:1-8, 요 20:1). ▲아침 무렵에 막달라 마리아에게 예수님이 처음 나타나셨죠(요 20:11-18, 막 16:9). ▲오전 중요안나와 마리아 등 다른 여인들에게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마 28:9-10). ▲같은 날 오전~오후 중 베드로가 무덤을 직접 확인하였고(눅 24:12, 요 20:3-10). ▲오후에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눅 24:13-35). ▲저녁에 예루살렘에서 제자들(도마 제외)에게 나타나 평강을 빌어주었습니다(눅 24:36-43, 요 20:19-23).
이중 엠마오로 가는 길의 두 제자에게 예수가 나타난 사건은 부활이 가져다주는 의미를 다시 한번 새겨보게 하는 대목입니다. 이 사건을 음미하면서 저는 두 제자가 부활에 대해 어떤 깨달음을 얻었을 것인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엠마오길의 두 제자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자 매우 실망했고 혼란스러웠을 것입니다. 길에서 만난 낮선 이에게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일을 설명해 주는 대목에서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두 제자들의 설명을 요약해 보면 이렇습니다(19-24).
▲나자렛 사람 예수는 하느님과 모든 백성들 앞에서 그 하신 일과 말씀에 큰 능력을 보이신 예언자였다 ▲대사제들과 유다의 지도자들이 그분을 관헌에게 넘겨 십자가형을 당하게 하였다 ▲우리는 그분이야말로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실 분이라고 희망을 걸고 있었다. 하지만 그분은 이미 처형을 당하셨고, 더구나 그 일이 있은 지도 벌써 사흘째나 된다 ▲그런데 몇몇 여인이 새벽에 무덤을 찾아가 보았더니 그분의 시체가 없어졌고, 천사들이 나타나 그분은 살아 계시다고 일러주었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베드로가 무덤에 가보았으나 그 여자들의 말대로였고 그분은 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 속에서 두 제자는 절망과 두려움에 처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의 죽음은 그들의 기대를 완전히 무너뜨렸고, 예수님의 시신이 사라졌다는 소문, 여인들의 증언, 천사의 말 등은 그들을 혼란에 빠뜨렸을 것입니다. 게다가 예루살렘은 로마와 유대 지도자들의 핍박이 계속되는 위험한 공간이었기에, 작금의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사람들은 그곳을 떠나 안전한 곳으로 도피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일부 학자들은 두 제자의 고향이 엠마오였을 거라고 추정하며, 이제 모든 희망이 사라지고 다 끝났으니 현실로 돌아가자는 심리가 컸을 거라고 주장합니다.
당시 상황을 유추해 보면 앰마오 길의 두 제자는 당시 예수의 죽음에 실망하여 예수 공동체를 이탈한 사람들의 일반적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두 제자가 엠마오 가는 길에서 부활한 예수를 만납니다. 엠마오 길은 도망의 길, 낙심의 길이었지만, 예수님이 그들과 함께하셨습니다. 그분이 부활한 예수임을 깨달은 두 제자는 “마음이 뜨거워지는 경험”을 하며,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남은 제자들에게 자신들이 만난 예수에 대해 증언하고 하느님 나라의 전사가 됩니다. 진정한 혁명이 시작된 것이죠.
지난주는 우리 현대사에서 가장 굵직한 두 개의 사건이 있는 주간이었습니다. 4,19혁명과 4,16세월호참사입니다.
4.19 혁명(1960년)은 이승만 정권의 독재와 3·15 부정선거에 항의하며 전국의 고등학생, 대학생, 시민들이 쟁취한 혁명입니다. 대한민국 최초의 민주 혁명으로 분단과 친일, 종신독재를 꿈꾸던 권위주의 정권을 무너뜨린 것이죠.
제가 신학교 3학년 때(1979년) 전체 학생이 참여하는 퇴수회의 기억이 떠오릅니다. 당시 주제가 4.19혁명에 대한 평가였는데 교수 대표로 구약학을 가르쳤던 민영진 교수님이, 학생대표로는 제가 발제를 했고, 당시 혼란했던 유신 정권하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토론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4.16세월호참사는 2014년에 일어난 대규모 선박 침몰 사고입니다. 인천에서 제주도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과적, 불법 개조, 무리한 항로 변경 등으로 전라남도 진도 인근 해상에서 침몰한 사고죠. 탑승자 총 476명 가운데 304명이 하늘의 별이 되었습니다. 그 대부분은 수학여행을 떠났던 단원고 2학년 학생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구조과정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선장이 승객들에게 "가만히 있으라"는 잘못된 지시를 내렸고, 해경과 정부의 초기 대응도 실패하였습니다. 선장과 선원들은 승객을 배에 방치한 채 서둘러 탈출했습니다. 구조 가능한 시간임에도 정부와 해경은 적극적으로 구조 하지 않았습니다. 대통령은 7시간 동안 행방이 묘연했고, 사고 대책 콘롤 타워는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이 사건은 국가책임의 부재, 안전불감증, 관료주의 문화의 일대 개혁을 요구하는 시민운동으로 이어졌습니다.
4.16참사 11주기가 되었지만 아직까지도 그 진실 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유가족들과 시민사회는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을 통해 재난 대응 시스템을 개선하고, 피해자 지원과 안전사회 구축을 위한 법적 기반을 마련할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아직도 정부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이 두 가지 사건은 모두가 국가 폭력에 뿌리를 둔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부정선거와 독재에 대항하여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며 정권 교체를 이룬 4.19혁명과 국가 권력의 책임 부재, 안전시스템 붕괴로 발생한 사회적 재난에 대한 생명존중의 사회를 만들라는 4.16참사 대응 시민운동은 사회대개혁이라는 맥을 같이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최초의 시민혁명인 4,19와 6.10항쟁으로 절차적 민주주의를 획득하고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창출했지만 극우 정권에서의 국가 권력이 얼마나 국민들에게 무책임했나를 알려준 4.16은 시대는 다르지만 결국 더 나은 사회를 향한 집단적인 각성과 실천의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깊은 공통점을 갖습니다.
우리 현대사의 변곡점을 이룬 이 두 사건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화두는 대략 5가지로 말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라는 점입니다. 독재와 부정선거에 대한 국민의 저항, 국민의 생명을 지키지 못한 국가 권력에 대해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를 요구할 국민의 권리 행사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국민주권이 관철되는 나라를 만들자는 겁니다,
둘째는 국가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라는 물음입니다. 가진 자의 편에선 국가, 재난에 대응하지 못하는 무능한 관료주의의 폐해를 여실히 보여주고 그에 대한 책임을 물음으로 국가의 존재 이유를 물었죠,
셋째는 진실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통한 정의의 실현입니다. 유전무죄, 유검무죄, 유권무죄의 귀족 엘리트 사회에서 국민의 세상으로 바꿔야 하는 것입니다.
넷째는 시민의식의 각성과 연대를 촉구한다는 것입니다. 연대하는 시민사회야 말로 민주주의를 지키는 보루임을 알게 해 주었죠.
다섯째는 기억과 교육의 중요성을 우리 국민에게 알게 해주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현대사 질곡의 가장 큰 책임은 교육에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승만 정권은 친미로 갈아탄 친일 기독교 세력, 귀국을 포기한 신분세탁 일본인들에게 사학 재단을 설립하도록 하였습니다. 통계에 따르면, 1953년부터 1960년까지 약 300~400개의 사학 재단이 설립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승만 정권은 정치적 지지 기반을 확보하고, 이념적 통제를 강화하는 수단으로 이들을 통해 반공주의와 기독교적 가치관을 심어주려 했던 것입니다.
4.16참사 이후 우리 시민사회는 기억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며 아카이브(기록 보존) 운동을 벌여왔습니다. 기억을 잃어버린 민족은 미래가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한 것입니다.
지닌 4월 4일 11시 22분 제20대 대통령 윤석열이 파면되고 6월 3일 제21대 대통령 선거일이 지정되었습니다. 조기 대선 국면으로 들어서면서 내란 종식과 재판에 대한 관심이 줄어드는 것 같습니다. 내란 세력들은 우리 안에 그 기억이 약화 되길 원합니다. 그래서 대선과 동시에 개헌을 해야 한다는 둥, 우리 국민들의 관심을 돌려 보려는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내란 공범인 한덕수를 대선 주자로 픽업해 제2의 6.29를 꿈꾸고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시도들은 다 무위로 그칠 것입니다. 윤석열의 내란과 탈옥, 그의 행보가 우리 국민들을 더욱 단단하게 묶어 놓고 있으니까요.
엠미오 가는 길, 패배와 절망의 길에서 부활한 예수를 만난 두 제자들의 변화가 우리 사회 전반에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십자가는 더이상 수치가 아니었습니다. 절망할 일도 패배감에 빠질 일도 아니었죠.
그들에게 십자가는 예수의 민중에 대한 가이없는 사랑과 하느님 구원의 징표였던 것입니다. 이제 그들과 그들의 증언을 들은 제자들은 하느님 나라를 펼치기 위한 힘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생명을 내어놓고 예수의 길을 따랐죠.
우리 국민들은 현대사의 질곡을 잘 해쳐 나왔습니다. 해방과 분단, 6.25전쟁, 5.16군사쿠데타, 12.12군사쿠데타, 517비상계엄과 광주학살, 4.16세월호참사, 10.29이태원참사, 12.3비상계엄과 내란 등 국민의 생존과 민족의 미래를 위협하는 극우 독재 권력의 역사 왜곡을 바로잡으며 민주주의를 지켜왔습니다.
이번 윤석열 내란 극복을 통해 우리는 세계의 모범 국가로 우뚝 설 것입니다. 그들이 망가뜨린 민주주의와 선진 경제, 문화를 더욱 성숙시킬 것입니다.
6.3 대통령선거는 그래서 중요합니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부탁한 하느님 나라의 실현을 위한 중요한 과정이 될 것입니다. 4월 11일 국회에서 지속가능미래포럼(준)을 발족하고, 지난 금요일 1차 집행위원회를 소통공간 한울림에서 열었습니다. 열기가 대단했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새 하늘 새 땅을 만들어가는 초석이 되자고 결의를 높였습니다.
이 땅에 하느님 나라가 꽃피우길 염원하며 애쓰는 모든 이들에게 하느님의 능력이 함께 하시길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