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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 우리에게 유익이 되려면..
요14:21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려면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복종해야 한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운전자가 안전하려면
길가에 세워진 도로표지판을 읽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는 도로표지판의 지시에 순종하여 운전해야 한다.
성경도 마찬가지이다.
성경이 우리에게 유익이 되려면 우리는 성경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나는 진짜인가, 가짜인가?」
핵심 가치를 놓치지 말라! (2023년 8월 10일 목요일)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명기 6:4-5).
존 오트버그의 『평범 이상의 삶』에 보면 예수님 당시 1세기에 활동한 랍비들이 쓴 많은 글들이 할례, 음식에 대한 규례, 안식일 준수와 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그런데 이런 주제들은 율법의 핵심이 아닙니다. 율법의 핵심은 바로 신명기 6장에 나오는 쉐마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온 세상의 창조주이시고 유일신이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바로 율법의 핵심입니다.
왜 1세기 유대교에서는 이렇게 율법의 핵심을 비껴간 문제들을 주로 다루었을까요? 배타적 성향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유대인의 정체성, 자신들의 경계, 그들이 세운 울타리의 높이에 관심이 많았던 것입니다. 자신들을 외부인들과 구별하고 싶어서 그들은 그렇게 경계 표시를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와 기독교도 그렇습니다. 술 담배, 동성애와 같은 성적 일탈의 금기와 더불어 시대에 따라서 기타를 치면 안 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늘 사람들의 중심에 초점을 맞추셨습니다. 그런 주변적인 문제들이 신앙의 핵심이 아니라 ‘새로운 피조물’로 변화되고 싶은 인간의 깊은 갈망에 호소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택함 받은 자녀들은 삶에서 사랑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요 15:16). 그리스도인의 가장 중요한 미덕이 바로 사랑의 삶임을 가르치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고 세상을 유익하게 합니다. 우리도 이런 기독교의 본질에 충실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 일하는 제자의 기도
성경에서 강조하는 핵심이 무엇인지, 우리가 추구해야 할 핵심 가치가 무엇인지 잊지 않게 하소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랑의 실천자가 되게 인도해 주소서. (by 원용일 목사)
생각하기를 멈추어라
시27:14
어떤 옛 시인은
“고민하는 그리스도인이여, 생각하기를 멈추어라”라고 말했다.
그렇다! 우리가 살 길은 문제의 해결책을 찾기 위해 고심하는 것을
중단하고 문제 자체를 완전히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다.
「홀리스피리트」
오늘
잠30:8
오늘을 열심히 사는 사람이
가장 번성하고 성공한다.
내일 필요한 것을 구하지 않고
오늘 필요한 것을 구하는 사람이
기도를 잘하는 것이다. 《기도의 심장》
직장선교회의 정체성 (2023년 8월 9일 수요일)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베드로전서 2:9-10).
일터에서 크리스천들이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리고 교제를 나누는 모습은 세계에서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현상입니다. 일터에서 주 안의 형제자매가 모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크나큰 복이고 직장 생활 속의 활력소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모습이 믿지 않는 동료들에게는 ‘끼리끼리’ 모여 노는 모습으로 비칠 수 있으며 심하면 폐쇄적인 종교 집단으로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직장선교회는 모일 때마다 왜 모여야 하며, 무엇을 위해서 모임을 갖는지 항상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직장 속의 신우회에 모인 사람들은 일터에서 크리스천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일을 가장 중요한 목적으로 삼아야 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한 제사장이라고 강조한 베드로는 이어서 나그네와 같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12절). 신우회원들이 일터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야 할지 보여주는 권면입니다. 우리는 선한 행동을 직장 동료들에게 보여야 합니다. 그래서 그것을 본 믿지 않는 동료들이 결국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 일하는 제자의 기도
일터에서 빛을 비추는 삶으로 우리의 착한 행실을 보고 동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게 인도해 주소서. (by 방선기 목사)
생각을 통제하는 가장 좋은 방법
롬8:7
우리의 생각을 통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온전히 순종하는 마음으로 우리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그러면 성령님이 우리의 마음을 받으시고
즉시 그것을 통제하기 시작하실 것이다.
이렇게 될 때 영적인 것들에 정신을 집중하기가 쉬워진다.
「홀리스피리트」
이름
요14:13-14
모든 놀라운 일들은 놀라운 기도에서 나오며,
모든 기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드려진다.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놀라운 교훈은
바로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도의 심장》
‘혼자’보다 중요한 ‘함께’의 미덕 (2023년 8월 8일 화요일)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 같이 사람이 그의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느니라(잠언 27:17).
새로운 시대상을 표현하는 단어들 중 ‘혼밥’, ‘혼술’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과 함께 밥을 먹거나 술을 먹는 풍속도가 사라지고 혼자 먹고 즐기는 오늘 우리 시대를 표현해줍니다. 가정에서 형제가 없거나 적게 자란 환경 탓도 있겠고 나와 다른 누군가와 함께 무엇을 해 본 경험이 없기 때문인지 혼자 하는 것이 대세가 되어갑니다. 이러다보니 독신과 비혼에 대한 선호도 점점 늘어갑니다.
이런 세태를 자연스러운 시대 변화로 볼 수도 있겠지만 우려가 적지 않습니다. 나 혼자의 욕구와 필요만 채우는 것에 익숙해지면서 공동체성이 점점 희석되고 있습니다. 내 생각이나 주장을 굽히고 상대의 입장을 배려하고 수용하는 모습이 점점 희미해집니다. 공동체는 사라지고 나만 남게 됩니다. 잠언 기자는 철이 철을 날카롭게 만든다고 합니다. 사람들과 맺는 관계를 통해 우리 삶의 날카로움이 유지됩니다. 새번역 성경은 이 구절을 “사람도 친구와 부대껴야 지혜가 예리해진다.”고 번역합니다. 우리 삶의 지혜가 서로 함께 하고 부대끼는 것을 통해 예리해진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자로 사람 인(人)은 한 사람과 한 사람이 서로 의지하는 상형문자라고 합니다. 사람이 사람이기 위해서는 혼자가 아닌 둘 이상의 공동체여야 합니다.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서는 서로의 다른 점을 인정하며 맞춰가는 과정을 필연적으로 거쳐야 합니다. 일터에서는 함께 일하는 동료로 인해 일터가 더욱 성숙해지고 시너지를 낼 수 있습니다. 이런 성숙을 위해서는 혼자 외따로 떨어져 사는 것을 거절하고 불편하고 어색하지만 함께 하는 과정을 추구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 일하는 제자의 기도
일터에서 동료들과 부대끼며 예리한 지혜를 얻을 수 있게 도와주소서.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by 정병한 목사)
기도와 인내
롬5:3-4
응답이 미뤄지는 시간은
믿음을 시험하고 강하게 만드는 때이다.
이 같은 시험의 때가 오면
얼마나 굳건한 믿음이 필요하겠는가!
그러나 믿음은 기도와 인내로써 힘을 얻는다. 《기도의 심장》
기도는 단지 하나님께 나아가 무엇을 구하는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과 교제하고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사랑의 능력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그러면 그분은 우리를 붙드시고 우리의 본성에
그리스도의 겸손이 충만하게 하신다.
그리스도처럼 겸손해지는 것이 진정한 섬김의 뿌리이다.
깨닫고 고치도록 만드시는 분
요7:17
높은 영적 수준에 오른 사람이라도
부분적이지만 자신도 모르게 자기 자신이 주인으로 살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면 충격과 울분에 휩싸일 수 있다.
왜냐하면 그는 이제까지 자기가 모든 것을
하나님께 내어드렸다고 믿어왔기 때문이다.
그런 그를 깨닫고 고치도록 만드시는 분이 성령님이시다.
「홀리스피리트」
크리스천다운 라이프스타일 (2023년 8월 7일 월요일)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로마서 12:1).
아이들이 장난감을 사달라고 할 때 장난감 자체에 대한 관심 때문이 아니라 주변 친구들이 다 가지고 놀기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청소년들이 특정한 패션에 관심을 갖는 것도 그 이유가 비슷합니다. 친구들과 비슷하지 않으면 왕따가 되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친구들과 동일시하려는 욕구 때문입니다.
어른들은 그렇지 않을까요? 지인의 집에 가서 좋은 물건을 보거나 가지고 싶었던 무엇을 보게 되면 자기도 가지고 싶어서 어떻게 해서든지 그것을 사려고 합니다. 심지어는 자녀들을 양육하는 과정에서 자녀를 위해서라기보다는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뒤떨어지기 싫어서 특기 교육이나 과외 교육을 시키는 경우도 많습니다. 아마도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이런 욕구가 본능적으로 있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런 우리에게 이 세대의 풍조를 따르지 말라고 하십니다. 물론 이것은 세상과 격리되어 살라는 말이 아닙니다. 단지 세상에서 한다고 무작정 따라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주변의 분위기나 유행을 무작정 따라갈지 모르지만 그리스도인들은 먼저 그것을 하나님의 뜻에 비추어 볼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다면 왕따를 감수하면서 포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신앙인의 멋입니다. 크리스천다운 독특한 개성을 당신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나타내 보시기 바랍니다.
* 일하는 제자의 기도
세상 사람들을 부러워하지 말게 하시고 제가 그리스도인인 것을 제 삶의 라이프스타일로 표현할 수 있는 믿음을 주소서. (by 방선기 목사)
기도365
크게
강력한 기도를 할 수 있는 믿음은
강력한 분께 집중하는 데에서 나온다.
큰일을 행하실 수 있는
그리스도의 능력을 믿는 믿음은
크게 기도하는 믿음이다. 《기도의 심장》
성령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
성령님은 이 땅에 오셨고, 아직도 여기에 계신다.
성령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모든 것은 우리의 뜻을 굽히고 순종하고
우리의 마음을 여는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할 때 성령님이 즉시 우리를 충만케 하실 것이고,
우리의 삶은 변할 것이다. 「보혜사」
삶에서 드러나는 성령의 열매 (2023년 8월 6일 주일)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갈라디아서 5:22-24).
많은 성도들에게 있어서 성령 충만, 성령의 역사, 성령의 능력 등은 다분히 신비적인 느낌을 줍니다. 물론 성령님은 성도들의 삶에서 신비한 역사도 일으키고 초자연적인 능력도 행하시는 것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성령님의 역사는 일상생활 속에서 훨씬 구체적이고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성령의 열매가 그것입니다.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 있어서 사랑처럼 중요한 것이 없지만 우리의 사랑은 항상 부족합니다. 그런데 성령이 충만한 사람에게는 사랑이 넘쳐납니다. 인간적인 정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리스도인은 성령의 역사로 인해 사랑이 흘러나옵니다.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하면서 사람들에게 사랑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아직 성령이 충만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성령 충만은 공중에 붕 떠 있는 것 같은 신비적인 경험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이나 다른 여러 성령의 열매가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나타나야 정상입니다. 사랑뿐만 아니라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등의 열매들입니다. 때때로 성령을 받았다면서 일상의 삶이 전혀 성령 충만하지 못한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성령 충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성령의 열매를 보임으로서 진정 성령 충만을 받은 것인지 입증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 일하는 제자의 기도
제가 성령 충만하게 하소서. 성령 충만이 삶의 열매로 나타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소서. (by 방선기 목사)
성령:그분이 정하신 순서
눅11:13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지 않아도
우리에게 성령 충만을 허락하시는 방법을 택하실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분은 우리가 구할 때 성령 충만을 허락하시는 방법을 택하셨다.
우리가 먼저 구하고 그 다음에 그분이 주시는 것이
그분이 정하신 순서이다. 「홀리스피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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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진정한 경건
살후3:5
우리는 믿음과 기도의 영역에서
똑같이 진실하고 꾸준하게 인내함으로써
진정한 경건을 쌓아나간다.
그러나 기도를 중단한 믿음은
더 이상 살아 있는 믿음이 아니다.
《기도의 심장》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 (2023년 8월 5일 토요일)
바로가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찾을 수 있으리요 하고 요셉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 있는 자가 없도다(창세기 41:38-39).
애굽 왕 바로가 꾸었던 고민스러운 꿈을 해석하면서 ‘7풍7흉 대비 이집트 서바이벌 프로젝트’에 대해 상세한 기획안을 제시한 요셉을 보고 애굽 궁궐의 사람들은 다 놀랐습니다. 바로는 탄식하듯이 이런 말을 내뱉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찾을 수 있으리요?”
아마도 바로는 부러웠을 것입니다. 당시 세계최강 제국인 애굽의 수많은 신하들 중에는 자신의 꿈을 해몽하는 사람이 없었는데 요셉은 꿈을 해몽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앞으로 닥쳐올 국가적 위기에 대한 해결책도 분명하게 제시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바로의 감탄에는 요셉의 직업적 능력을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것, 즉 성령의 충만함과 연결시킨 점이 이채롭습니다. 그의 눈에는 그렇게 보인 것입니다. 요셉의 이력서를 바로가 봤을 텐데, 종살이와 옥살이를 거친 서른 살의 젊은이에게서는 찾아보기 힘든 지혜를 보았던 것입니다. 그러니 신으로 추앙받는 자신 앞에서도 요셉이 겁도 없이 여러 번 언급한 바로 그 ‘하나님’의 영이 요셉을 감동한 것으로밖에 볼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 크리스천들의 직업적 능력도 이렇게 성령의 충만함의 결과여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일하는 사람으로서, 우리의 “명철”과 “지혜”가 우리 일터의 상사와 동료들에게 분명하게 드러나 보일 때 멋진 크리스천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영이 충만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 일하는 제자의 기도
하나님이 주신 능력을 통해 진정한 직업인으로 인정받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성령의 기름 부으심으로 늘 충만하게 하소서. (by 원용일 목사)
그 사람의 인격인 리더십! (2023년 8월 4일 금요일)
내가 누구의 소를 빼앗았느냐 누구의 나귀를 빼앗았느냐 누구를 속였느냐 누구를 압제하였느냐 내 눈을 흐리게 하는 뇌물을 누구의 손에서 받았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그것을 너희에게 갚으리라 하니(사무엘상 12:3하).
참다운 리더십은 권력이나 지위로 나타나는 것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사람의 삶에서 나타나는 인격이 리더십의 본질에 더욱 가깝다고 하겠습니다. 리더십의 유형 중에 카리스마적 스타일이 물론 있습니다. 결단에 있어서 주저하지 않고 화려하고 찬란한 결과를 기대하는 리더십 유형입니다. 그런 리더십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참다운 리더십은 오히려 리더의 삶의 특질(Quality)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무엘의 삶이 바로 그런 리더십 유형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나이가 많이 들어 은퇴할 때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을 섬기면서 지도자로서 어떤 부정한 행동도 하지 않았음을 백성들도 인정하였습니다(4절). 비록 그의 아들들은 문제가 있어서 아버지를 닮지 않은 옥의 티가 있지만 백성들이 사무엘 선지자를 향해 가지고 있는 신뢰는 무한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사무엘은 백성들을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않을 것이며 계속하여 말씀으로 그들을 가르치겠다고 말합니다(23-25절). 이런 영적이고 인격적인 감화가 사무엘이 이스라엘을 다스린 리더십의 특징이었습니다. 전혀 힘이 없어보였지만 이러한 리더십이야말로 사람들이 감동하면서 따를 수 있게 하는 리더십입니다. “나의 인생을 살펴보십시오. 본받을 만하면 나를 따르십시오.”라고 말하는 리더야말로 이 시대의 진정한 리더일 수 있지 않겠습니까?
* 일하는 제자의 기도
사람들에게 나를 본받으라고 말할 수 있을 만한 리더십을 가질 수 있도록 인도해주소서. (by 원용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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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와 함께 승리해야..
암5:15
우리는 복음에 순종하는 순간 성령을 받는다.
그러나 우리가 악과의 싸움에서 온전히 시험을 받고
그리스도와 함께 승리해야 비로소 성령의 능력을 충만히 받을 수 있다.
「홀리스피리트」
치명타
마10:29
전능하신 섭리의 하나님을
우리의 삶에서 제외시키는 것은
기도와 그 능력에치명타를 가하는 것과 같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 가운데
하나님의 승낙 없이 일어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기도에 네 인생이 달렸다》
순종할 수 있는 용기
행4:31
하나님이시여!
이 비극적인 위험과 위기의 시대에
하나님의 진리에 순종할 수 있는 용기를 주소서. 「홀리스피리트」
전념
시141:2
오늘의 교회가 주님이 주시는 힘 안에서
전진하기를 원한다면,
하나님께서 약속으로 주신 귀한 유산인
놀랍고도 기이한 일들을 이루기 원한다면
마음과 영혼을 다해 기도에 전념해야 할 것이다. 《기도에 네 인생이 달렸다》
기도를 안 할 수 없게 만드는
종교성 대신 참된 영성으로! (2023년 8월 3일 목요일)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보이지 말라 그들은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마태복음 6:16).
오늘 우리 시대에 기독교가 세상 사람들에게 우습게 보이기도 하고 비난 받으면서 더욱 고민되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간 우리가 너무나 종교적인 티만 내면서 세상 속 그리스도인의 참된 사명을 망각한 것이 아닌가 하는 점입니다. 예수님이 당시의 종교인들을 향해 그런 지적을 하셨습니다.
금식이라는 행위는 하나님께 무언가 특별하게 부탁드릴 것이 있고 간절한 기도의 제목이 있다는 강한 의사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음식을 먹고 살아가도록 창조하셨으니, 금식은 목숨을 거는 것입니다. 금식의 이런 의미는 하나님께만 드러내야 합니다. 그것을 주변 사람들에게 드러내면 안 됩니다. 오늘날에도 금식을 한다고 하면서 금식하는 티를 내는 사람을 보면 정말 딱해 보입니다. 그렇게도 자신의 경건을 다른 사람에게 과시하고 싶을까 생각하니 한심한 것입니다.
그렇게 티 내면서 종교성을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사람은 이미 자기 상을 다 받았다고 하셨습니다. 목공소를 운영하며 비즈니스 경험을 쌓으셨던 예수님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다”는 표현이 거래에서 영수증까지 다 끊어준 상태라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렇게 사람에게 보이려는 종교성은 이미 보상을 다 받았기에 더 이상 받을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천국상급을 기대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도 종교성 대신 참된 영성을 드러내어 크리스천다움을 삶으로 보여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 일하는 제자의 기도
종교성 대신 참된 영성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사람들에게 칭찬받는 삶을 살게 하소서. (by 방선기 목사)
내 자유가 아닌 남의 양심을 먼저! (2023년 8월 2일 수요일)
내가 말한 양심은 너희의 것이 아니요 남의 것이니 어찌하여 내 자유가 남의 양심으로 말미암아 판단을 받으리요 만일 내가 감사함으로 참여하면 어찌하여 내가 감사하는 것에 대하여 비방을 받으리요(고린도전서 10:29-30).
고린도 교인들이 겪는 다양한 삶의 문제들을 지적하던 바울은 시장에서 파는 고기, 즉 이방 신에게 제사를 드린 후 싸게 내놓은 제물(祭物)을 사먹는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바울은 이 문제를 판단하는 원칙을 이야기하면서 이런 문제를 대할 때 우리 크리스천들의 양심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 남의 것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풀기 쉽지 않은 이 문제를 해결하는 기준으로 자신의 자유가 아닌 남의 양심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이것이 성숙한 신앙을 가진 자의 거룩한 의무입니다. 불신자가 청해서 차려놓은 음식은 그들의 양심을 위해서 묻지 말고 먹으라고 합니다(27절). 그런데 누가 그것이 우상에게 바친 제물이라고 말을 해주면 그들의 양심을 위해서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 양심에는 거리낌이 없다고 하여 제물로 바쳤던 고기를 먹으면 그 이야기를 하면서 지켜보며 시험하는 불신자나 믿음이 연약한 형제의 마음이 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31절) 하는 자세입니다. 나의 유익이 아니라 많은 사람의 유익(33절), 나아가 하나님의 유익을 구하는 것입니다. 이런 자세로 우리 일터에서 겪는 풀기 힘들고 복잡한 문제들을 풀 수 있습니다. 일터 문화의 문제, 일터 윤리에 관한 갈등, 대인관계의 쉽지 않은 고충들을 이런 원칙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풀어봅시다.
* 일하는 제자의 기도 내 자유가 아닌 동료들의 자유, 내 양심이 아닌 동료들의 양심을 고려하며 선한 행실을 보일 수 있도록 인도해주소서. (by 원용일 목사)
위로부터 오는 충동
벧전4:11.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 아멘
우리는 영적 전쟁에서, 자신을 담대히 희생할 준비가 된 사람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이 세상의 갖은 유혹에 대해 이미 죽었기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나타나기를 고대한다.
이런 사람들은 상황의 압박에 못 이겨 부득불 행동하지 않는다.
오직 내부로부터 위로부터 오는 충동에 따라 행동한다. 「홀리스피리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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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결
시104:34.나의 묵상을 가상히 여기시기를 바라나니 나는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리로다
기도와 하나님의 섭리는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그 둘은 매우 가까운 친구 사이이다. 그 둘을 떼어놓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둘은너무 가까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를 부정하면 다른 하나 역시 무효가 된다.
《기도에 네 인생이 달렸다》
해 아래만 보지 말고 해 위를 보라! (2023년 8월 1일 화요일)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에는 새것이 없나니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가 있기 오래 전 세대들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이전 세대들이 기억됨이 없으니 장래 세대도 그 후 세대들과 함께 기억됨이 없으리라(전도서 1:9-11).
나름대로 성실한 삶을 산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문득 현재 나의 삶이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던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거의 매일 똑같은 시간에 같은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직장으로 향합니다. 사무실이나 작업 현장에 들어가서 하는 일도 어제 했던 것과 거의 비슷한 일을 합니다. 그리고 퇴근 때가 되면 일이 잘 안되어 짜증이 날 때도 있고 잘 풀려서 기분이 좀 좋을 때가 있지만 그저 또 하루가 지나간다는 느낌을 지우지 못하면서 퇴근을 합니다.
이런 느낌이 들 때 해 아래에는 새것이 없다는 전도자의 탄식에 공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내가 매일 수고했지만 시간이 지나가면 아무도 그것을 기억해주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면 갑자기 삶 자체가 허무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해 아래서 이루어지는 것이 전부라면 전도자처럼 모든 것이 헛되다고 탄식해도 됩니다.
그러나 해 위에 계신 분이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일들을 다 돌아보고 계신다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만약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면 똑같은 행동이나 일도 얼마든지 즐거울 수 있습니다.
지금 당신을 바라보고 있는 주님으로 인해 지루한 일도 얼마든지 즐거워질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해 아래에서 일어나는 일을 내가 당장 맘대로 바꿀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해 위를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을 가질 수 있다면 지금 우리가 일하는 자세를 바꿀 수는 있습니다.
* 일하는 제자의 기도
저의 삶과 일을 바라보는 새로운 안목을 주소서. 하나님의 관점으로 바르게 볼 수 있는 믿음을 주소서. (by 방선기 목사)
그리스도와의 연합
골1:27.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어떻게 풍성한 것을 알게 하려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그리스도를 영접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와 연합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지적인 측면, 의지적 측면
그리고 감정적 측면을 포괄한다.
지적인 면에서 예수님이 주(主)요, 그리스도라고 확신하고,
의지적인 면에서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리스도를 따르겠다고 결심하며,
감정적인 면에서 그리스도와의 교제에서 오는 큰 기쁨을 누리는 것이다.
「나는 진짜인가, 가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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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리
눅12:6. 참새 다섯이 앗사리온 둘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그 하나라도 잊어버리시는바 되지 아니하는도다
하나님의 섭리는
우리가 기도하는 모든 것과 관련되어 있다.
우리가 기도하는 것가운데
하나님의 눈에 지나치게 하찮게 보이는 것도 없으며,
하나님께서 주시하지 않고 돌보시지 않을 만큼
시시한 것도 없다. 《기도에 네 인생이 달렸다》
7월31일
내 안에서 구원을 찾을 수 있다
그리스도는 인류에게 “너희는 스스로 파멸의 구렁텅이에 빠져들었지만
내 안에서 구원을 찾을 수 있다”라고 말씀하신다.
기독교는 초자연적인 종교이다.
살아 계신 하나님이 인간 속에 거하시는 종교이다. 「이것이 성령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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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기도
약5: 14.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찌니라
기도하지않는 교회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참혹한 패배뿐이다.
힘써 기도하는 교회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완벽한 승리뿐이다.
교회의 승리의 요건은 초자연적인 요소들이다.
그리고 그것들은오직 기도를통해온다.
《기도에 네 인생이 달렸다》
바울의 하프타임 (2023년 7월 31일 월요일)
왕이여 정오나 되어 길에서 보니 하늘로부터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나와 내 동행들을 둘러 비추는지라, 일어나 너의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종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사도행전 26:13, 16).
어려서부터 교회에 계속 다녔지만 그저 교회 생활을 하는 것에 만족하고 헌신적인 제자의 삶을 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울이 겪었던 인생의 하프타임이 도움이 됩니다. 바울은 인생의 목표를 강력한 추진력으로 추구하는 유형의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그리스도인들을 잡아 가두며 기독교를 박해하는 일을 열심히 했습니다. 그는 그 일을 통해서 자기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그러다가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에는 자기가 그토록 핍박하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인생의 모든 것을 바쳤습니다.
바울은 바로 이 일을 통해서 삶의 진정한 목적과 의미를 찾은 것입니다. 그를 잘 모르는 사람이 얼핏 평가한다면 바울의 삶은 예수님을 만나기 전이나 그 이후나 비슷해 보입니다. 바쁘게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사람들을 향해서 자신의 의지를 드러내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주님을 만난 후 그 인생의 방향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의 인생은 완전히 전환되었습니다.
바울의 하프타임을 생각해 봅시다.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만났던 그의 삶을 묵상해 보십시오. 사도 바울처럼 인생의 참된 의미가 무엇인가 발견하여 헌신적인 삶을 사는 계기를 만들면 남은 생애를 멋진 후반전으로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을 만나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는 것이 가장 멋진 하프타임의 의미입니다.
* 일하는 제자의 기도
바울의 열정을 기억합니다. 하나님이 그의 인생에 개입하신 그 놀라운 역사를 바라봅니다. 제게도 하나님께 헌신하는 기회를 주소서. (by 방선기 목사)
예수 그리스도는 한 분이시다
고후5:14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예수 그리스도는 두 분이 아니고 한 분이시다.
그리고 그분은 그분이 통제할 수 없는 사람을 구원하실 수는 없다.
그분의 직무는 분리되지 않는다.
즉, 그분의 ‘구세주 되심’과 ‘주 되심’은 분리될 수 없다.
당신이 그분을 주(主)로 영접하지 않는다면,
그분을 구세주(救世主)로도 영접할 수 없다. 「세상과 충돌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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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결과
욥17:8. 정직자는 이를 인하여 놀라고 무죄자는 사곡한 자를 인하여 분을 내나니
기도의 놀라운 결과들,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으로 이뤄진 기도의
놀라운 결과들이 참으로 많다.
우리는 기도가 성취한 것들에 대한 증거 앞에서
그저 놀랄 뿐이다. 《기도에 네 인생이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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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성공을 꿈꾸는가? (2023년 7월 30일 주일)
이사야가 이르되 그들이 왕궁에서 무엇을 보았나이까 하니 히스기야가 대답하되 내 궁에 있는 것을 그들이 다 보았나니 나의 창고에서 하나도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나이다 하더라(열왕기하 20:15).
죽을병에 걸렸으나 하나님의 은혜로 15년의 생명을 연장했던 히스기야 왕의 말년은 그야말로 멋진 삶이었을 것입니다. 그는 놀라운 하나님의 이적을 체험한 후 꿈 같은 나날을 보냈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벨론 왕이 보낸 위로 편지와 예물을 본 후 그 사신들에게 자기의 예물과 모든 보물들을 다 보여주면서 자신의 영화를 과시했습니다. 선지자 이사야가 왕에게 와서 바벨론에서 온 사람들이 왕궁에서 무엇을 보았는지 질문했습니다.
그러자 히스기야는 거리낌 없이 대답했습니다. “내 궁에 있는 것을 그들이 다 보았나니 나의 창고에서 하나도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나이다.” 하나님의 큰 은혜를 체험한 히스기야 왕은 이렇게 금방 교만해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도 나약한 인간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이런 모습은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겸손하던 사람이 성공한 후 권력이나 돈에 취해 안하무인의 태도를 보이고 초심을 잃어버리는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무엇을 보여주었느냐고 질책하는 선지자의 목소리에 담긴 꾸지람의 어조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딱한 히스기야 왕을 보십시오. 마음껏 자랑한 것이 뭐가 문제냐고 반문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도 우리의 자세를 생각해볼 수 있어야 합니다. 성공을 축하받을 때, 승진을 축하받을 때, 어떤 자세를 보입니까?
* 일하는 제자의 기도
저 자신만을 위한 성공을 꿈꾸지 않겠습니다. 하나님나라를 세워 세상이 복 받게 하는 성공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겠습니다. (by 원용일 목사)
정직한 실패의 가치 (2023년 7월 29일 토요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네 몫이요 내가 헤아려 정하여 네게 준 분깃이니 네가 나를 잊어버리고 거짓을 신뢰하는 까닭이라(예레미야 13:25).
크리스천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공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정직한 실패가 거짓된 성공보다 낫습니다. 오래 전에 열린 올림픽경기에서 펜싱 결승전이 열릴 때였습니다. 전자감응장치가 없이 심판들이 득점을 판단하는 때였던 것 같습니다. 선심들 중 한 명이 경기를 중단시켰습니다. 프랑스 선수의 몸에 칼끝이 닿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만약 찔린 것이 사실이라면 경기가 끝나는 것이었습니다. 심판과 선심들이 모여 의견을 나누었지만 찌르지 못했다고 판정했습니다. 심판이 경기의 계속을 선언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프랑스 선수가 마스크를 벗고 말했습니다. “칼끝이 제 몸에 닿았습니다.” 그 프랑스 선수는 진실을 잠시 숨기면 금메달을 딸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금메달보다 진실을 밝히는 일이 더 소중했습니다. 그는 결승에서 금메달을 놓친 사람이었지만 ‘진실한 패자’였습니다. 그의 패배는 진실했기에 승리자의 영광만큼이나 가치 있었던 것입니다.
불의하면서도 승자인양 호기를 부리는 사람들이 아무리 많은 시대라도 진실함만큼 값진 성공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나 거짓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크리스천들은 진실한 자세로 살아서 참다운 성공을 추구해야 합니다. 물론 그 과정이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진실을 포기하면 성공하게 해준다고 하는 사탄의 속삭임에 단호하게 대응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 일하는 제자의 기도
세상에 휘둘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정직의 가치를 포기하지 않도록 주님이 제 마음을 지켜주소서. (by 원용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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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님의 조명
롬8:17.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에 의해..
누군가의 논리적 설득에 의해 당신이 기독교를 받아들였다면,
어떤 지혜로운 사람이 나타나 역시 논리적 설득에 의해
당신으로 하여금 기독교를 버리게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님의 조명에 의해 당신이 그리스도를 만나고
당신이 하나님의 자녀임을 직관으로 알게 되었다면,
그 누구도 논리적 설득을 통해 당신의 신앙을 허물 수 없다. 「보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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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권세
슥10:1.봄비 때에 여호와 곧 번개를 내는 여호와께 비를 구하라
무리에게 소낙비를 내려서 밭의 채소를 각 사람에게 주리라
구름을 막고, 비를 봉인하고,
이슬을 억제할 수 있는 이런 강력한 힘이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그런놀라운 권세로 말하는 이 사람은 누구일까?
땅에이런일을일으킬 수 있는 힘이과연있는것일까?
오직 하나 있다. 그 힘은 바로 기도이다.
《기도에 네 인생이 달렸다》
실패라는 하프타임 (2023년 7월 28일 금요일)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전도서 7:14). /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니라(야고보서 5:13).
인생을 살다보면 매사가 잘 풀리는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때는 일마다 꼬여서 잘 안 되는 때도 있습니다. 일이 잘 안 풀릴 때 그것을 운명이라 생각해서 탄식하는 사람도 있고 자책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의 책임을 다하면서도 결국은 인간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인정해야 합니다.
일이 잘 될 때는 물론 기쁠 수밖에 없습니다. 그 때는 기뻐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반대로 실직이나 질병 등 갑작스러운 어려움을 당할 때에는 누구나 당황하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누군가를 향해 원망을 터뜨리거나 비난하고 싶기도 합니다. 때로는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합니다. 이런 고통이 있을 때 성경은 조용히 생각하거나 기도하라고 합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내가 무슨 실수를 하지는 않았는가?, 나의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지적은 아닌가?’ 등등 여러 생각들을 해보아야 합니다. 실패의 시기를 하프타임의 기회로 삼아 보십시오.
구기 종목에서 지고 있다가 하프타임 이후 후반전에 역전승을 하는 경기를 보면 짜릿함을 느낍니다. 위기 앞에서 깊이 생각하는 기회는 영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고난으로 인해 하나님과 더욱 가까워지게 해달라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확인하는 하프타임의 시간을 확보해봅시다.
* 일하는 제자의 기도
성공했을 때 감사하고 주님을 찬양하게 하소서. 실패하고 고통에 빠졌을 때 생각하며 주님께 기도하게 하소서. (by 방선기 목사)
기도
강력한 천사 계8::3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 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들과 합하여 보좌 앞 금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강력한 능력을 가진 천사 하나,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조바심을 내는 천사 하나가
하늘의 하나님의 보좌 주변에서 대기한다.
천사는 이 땅에서 하나님의 일을 진척시키고
하나님의 대의의 움직임을 추진하기 위해
모든 시대 모든 성도의 기도를 모은다.
《기도에 네 인생이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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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님:온전히 의지하라 빌3: 3.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당이라
그리스도께서 맡기신 일을 감당하겠다는 사람들조차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에 의지하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그러나 성령님을 온전히 의지하지 않으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우리 힘으로 그리스도의 일을 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다면
결코 그리스도의 일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다. 「홀리스피리트」
미래를 알기보다 더 중요한 사명! (2023년 7월 27일 목요일
바울이 대답하되 여러분이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였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사도행전 21:13).
사도 바울이 3차 전도여행 중 전도자 빌립의 집에 묵었습니다. 아가보 선지자가 유대에서 내려와 바울의 띠로 손발을 묶으면서 그 띠의 임자가 예루살렘에 가면 그렇게 결박당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바울의 예루살렘 행을 말리자 바울은 울음으로 자기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바울도 아가보가 예언한 사실을 모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루살렘에 가면 구속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설령 그렇게 되고 심지어 예루살렘에서 순교를 하더라도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야 하겠다는 각오를 했습니다. 이 사건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미래를 보여주시는 것이 언제나 분명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아가보 선지자가 바울의 장래 모습을 보긴 보았지만 그 뜻은 분명하게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점쟁이들도 일부 미래를 알더라도 그 미래를 바꾸거나 자신의 의도대로 주관하는 것은 전혀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미래도 정확하게 다 아시지만 언제나 우리에게 미래를 알려주시지 않습니다. 가끔 그런 이적을 보여주시기도 하지만 보통은 분명하게 알려주시지 않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명심하면서 어떤 앞날의 어려움도 이겨내겠다는 결심을 하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미래를 알려고 헛된 노력을 하지 맙시다.
* 일하는 제자의 기도
미래의 모습을 확실히 아는 것보다 하나님이 제게 주신 비전을 숙지하고 사명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게 하소서. (by 원용일 목사)
성령님 능력있는 신앙? 사42:16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 을 마음속에 완벽하게 상상하여
우리의 불완전한 마음을 만족시키는 능력이 신앙이라고 착각하지 말라.
신앙은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는 도덕적 능력이다.
아버지와 함께 여행을 떠나는 아이가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다가올 일들을 마음속에 그릴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아니다.
그는 단지 아버지를 믿고 의지하면 되는 것이다.
「나는 진짜인가, 가짜인가?」
기도:구하는 것 눅11:13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시느냐하는 것은
우리가 모든 것을 구하느냐에 따라 정해진다.
하나님이 그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성령을 주시느냐 하는 것은
그 자녀들이 성령을 구하느냐에 좌우된다.
《기도에 네 인생이 달렸다》
오네시모의 하프타임 (2023년 7월 26일 수요일)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위하여 네게 간구하노라 그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므로 네게 그를 돌려보내노니 저는 내 심복이라(빌레몬서 1:10-12).
빌레몬서에 나오는 오네시모라는 사람은 참으로 딱한 사람이었습니다. 주인의 돈을 훔쳐 도망갔다가 잡힌 노예였습니다. 오네시모가 갇혀 있던 감옥에 바울이 투옥되었고 바울의 전도를 통해 오네시모는 주님을 만났습니다. 오네시모의 주인인 빌레몬에게 보내는 편지가 바로 빌레몬서인데 마침 오네시모의 주인인 빌레몬은 그리스도인이었고 그의 집을 교회당으로 제공했던 바울의 동역자였습니다.
바울은 오네시모가 전에는 무익했겠지만 이제 유익한 사람으로 변하게 되었다고 강조합니다. 아마도 예전에 오네시모는 주인인 빌레몬에게 골칫거리였던 모양입니다. 그런 사람이 주님을 만나니 인생이 달라졌습니다. 바울이 오네시모의 변화된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오네시모는 감옥에 갇혔을 때 인생의 하프타임을 겪은 것입니다. 오네시모에게 있어 감옥은 정말 유익한 곳이었습니다. 죄에 대한 벌을 받음과 아울러 새로운 인생을 설계하는 하프타임의 장소였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가 현재 직장 생활을 하면서 고통과 절망을 겪고 있다면 그것이 오히려 하프타임의 기회가 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을 만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기회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는 하프타임입니다. 휴가의 계절에 오네시모의 의미 있는 하프타임을 보면서 우리 인생의 하프타임을 생각해 봅시다.
* 일하는 제자의 기도
고통과 어려움이 있더라도 낙심하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찾을 수 있는 믿음을 주소서. (by 방선기 목사)
성령님을 의지할 때
몸을 가지신 예수님은 전능하신 성부 하나님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중보기도를 하고 계신다.
그분은 재림 때까지 하나님의 우편에 계실 것이다.
그러나 그분은 또 다른 보혜사,
즉 성령님, 다시 말해 자신의 영을 보내겠다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을 믿고 성령님을 의지할 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마땅히 되어야 할 존재로 변할 수 있다.
「보혜사」
효험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면,
기도가 하나님께 영향을 끼친다는 것,
매우 강력한 영향을 끼친다는 것,
기도가 효험을 나타낸다는 것,
매우 강력한 효험을 나타낸다는 것도
믿어야 할 것이다. 《기도에 네 인생이 달렸다》
너희가 무엇을 저희와 변론하느냐? (2023년 7월 25일 화요일)
예수께서 물으시되 너희가 무엇을 그들과 변론하느냐 무리 중의 하나가 대답하되 선생님 말 못하게 귀신 들린 내 아들을 선생님께 데려 왔나이다(마가복음 9:16-17).
예수님이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만을 데리고 변화산에 올라가셨던 때에 산 아래에 있던 아홉 제자들은 큰 곤경을 겪었습니다. 한 아버지가 말 못하게 귀신들린 아들을 데리고 찾아왔다가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아마도 그들의 주장은 이랬을 것입니다. ‘스승인 예수는 하는데 왜 너희는 못하냐? 비슷하게라도 해야 할 것 아니냐?’ 산에서 내려오신 예수님이 질문하셨습니다. “무엇을 그들과 변론하느냐?”
그러자 무리 중에서 한 사람이 자초지종을 예수님께 말씀드렸습니다. 그들이 다투고 있는 문제의 핵심을 아신 예수님은 제자들이 못 했지만 자신은 할 수 있음을 보여주셨습니다. 그 아이를 데려오게 하여 귀신을 쫒아내어 깨끗하게 고쳐주셨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아이 아버지가 의심하는 것도 고쳐주셨습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23절).
오늘 우리에게도 예수님이 물으십니다. “너희가 무엇을 세상 사람들과 변론하느냐?” 요즘 기독교에 대한 세상의 지탄이 극에 달한 때인데 이런 때 우리는 논쟁만 하고 있다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하는 것만이 해결책임을 예수님은 나중에 알려주셨습니다.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29절). 우리도 세상에서 세상 사람들과 논쟁해서 이길 수 있는 능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논쟁 그 자체에 매달리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만이 변론에서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 일하는 제자의 기도
기도하겠습니다. 변론하며 변명하기보다 기도하는 일을 더욱 힘쓰겠습니다. 세상을 치유하여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허락해주소서. (by 원용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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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우리는 어떤 것을 위해서도 기도할 수 있고
모든 것을 위해 기도할 수 있다.
우리가 구할 때에 하나님을 제한하면
하나님께서는 주실 때에 제한을 받으실 것이다.
《기도에 네 인생이 달렸다》
요16:23.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24.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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셩령님
이 땅은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속(救贖)받은 살아 있는 영혼이
살기에는 좋은 곳이 못 된다.
이 땅은 성령으로 거듭난 구속받은 자들이 영원히 거하기에
적당하지도 않고 충분히 좋지도 않다.
거듭난 사람은 누구나 높아진 자들이다.
그들은 본래 타락한 아담에게 속한 인류의 수준에서 타락을 모르는
승리하신 그리스도의 수준까지 높아진 자들이다. 「홀리스피리트」
엡2: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엡1:3, 엡3:10
7.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
일터에서 불만을 처리하는 방법 (2023년 7월 24일 월요일)
백성이 모세에게 원망하여 이르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출애굽기 15:24-25).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지나다가 마라에 이르러 쓴 물밖에 없는 것을 보고 불평불만을 터뜨렸을 때 지도자인 모세는 화가 났을 것입니다. 하지만 모세는 다른 방법으로 사람들의 불평불만을 처리했습니다. 모세는 그들의 불평을 받아 기도하는 방법으로 불평을 전환했습니다.
사실 우리 직장생활에서도 불만을 말할 수 있는 분위기라면 그 곳은 참 좋은 일터입니다. 불만에 대해서 화를 내게 되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사람 관계만 어려워지고 일터 분위기도 나빠집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불만을 해결하는 방법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모세는 백성들의 불만을 듣고 그것을 그대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물을 변화시켜서 마실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그 결과로 백성들과 지도자 모세가 다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일터에서 사람들이 불만을 터뜨리는 문제에 대해서 내가 풀 수 있으면 풀어주면 됩니다. 경우에 따라 당장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라면 기도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해결해주기도 하십니다. 우리의 일터에서도 여전히 존재하는 불평불만을 이렇게 해결하는 방법도 있음을 꼭 기억합시다.
* 일하는 제자의 기도
사람들의 불만이 있을 때 피하지 말고 인내하면서 기도로 풀어내겠습니다. 기도로 문제를 해결하는 멋진 방법을 보여주소서. (by 방선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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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바라보는 동안 우리는 우리 자신을 보지 않는다.
이것은 아주 복된 일이다.
우리는 자기의 영혼을 고치려는 어설픈 수고를 중단하고
‘완전한 분’을 바라볼 때 진정한 평안을 얻을 수 있다.
그리스도를 바라본다면, 그가 그토록 오랫동안 이루려고 발버둥친 것들이
그의 안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의 안에서 의지를 갖고 행하시기 때문이다.
「이것이 성공이다」
창16:13. 하갈이 자기에게 이르신 여호와의 이름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이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어떻게 여기서 나를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뵈었는고 함이라
훈련 없는 크리스천의 삶? 공허하다! (2023년 7월 23일 주일)
또 산에 오르사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마가복음 3:13-15).
교회 생활을 수십 년 했으면서 주님께 헌신하는 생활을 하지 못하는 교우들이 많이 있습니다. 믿음이 없는 것은 아닌데 헌신된 제자의 삶에 대해서 배울 기회가 없어서 그런 경우도 간혹 봅니다. 그런 사람들은 특별한 마음을 먹고 신앙의 훈련을 받는 기회를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시던 때에도 따르는 사람들은 많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무리 중에서 열두 제자들을 선택하여 그들과 늘 함께 생활하면서 훈련을 시키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모든 사람들이 다 가정을 떠나서 공동생활을 한 것은 아니지만 열두 제자들은 공동생활을 하면서 전적으로 주님을 따르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렇게 주님께 헌신하는 삶을 살았을 때 제자들이 사역의 열매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속해 있는 지역 교회에서 그렇게 훈련하는 프로그램이 있다면 시간을 내어 참여하도록 합시다. 혹시 지역 교회에 그런 프로그램이 없다면 그런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곳을 찾아서 자신을 향한 주님의 훈련에 참여합시다. ‘내가 교회를 얼마나 오래 다녔는데!’, 혹은 ‘내가 그래도 우리 교회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데!’와 같은 생각으로 훈련의 필요성을 부인한다면 그것은 예수님 당시에 전혀 예수님을 따를 생각을 하지 않고도 충분히 종교적으로 산다고 생각했던 바리새인들과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 신앙인이라기보다는 그저 종교인에 불과한 것입니다.
* 일하는 제자의 기도
주님의 제자로 살게 하소서. 제자로 살기 위해 훈련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를 주소서. (by 방선기 목사)
여름휴가는 1년의 하프타임! (2023년 7월 22일 토요일)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창세기 2:2-3).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후 안식하면서 인간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쉬셔야 할 필요가 있어 쉬신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를 위해 안식의 제도를 마련하셨습니다. 하지만 아담의 범죄로 안식의 복을 빼앗겼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안식의 회복을 위해 안식의 계명을 십계명에 넣고 율법에도 자세히 규정하셨습니다.
안식에 관한 율법 규정은 일주일에 하루를 안식의 날로 지키고 유월절과 같은 일 년 중의 여러 절기에도 일하지 말라고 규정합니다. 그리고 매 7년마다 안식년을 두어 농사를 짓지 않고 땅을 안식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안식의 명령은 모든 시대 모든 사람들이 들어야 할 명령입니다.
따라서 크리스천 직장인들이 누리는 모든 휴가는 선택 사항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특히 우리나라 직장의 현실에서 여름휴가는 1년의 절반을 돌아보면서 후반부에 더욱더 분발하여 열심히 섬기기 위한 하프 타임의 기회입니다. 휴가 기간에 가족들과 휴식의 시간을 보내든지, 기도원에 가든지, 수련회에 참석하거나 봉사의 시간을 보내든지, 낮잠을 실컷 자며 쉬든지, 일을 떠난 여가의 시간을 통해서 지나온 반년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한 해의 남은 나날들에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하나님을 섬길까 고민하며 결심하는 기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일하는 제자의 기도
하나님이 복되게 하신 안식의 의미를 잘 새겨서 복된 여름휴가를 계획하고 보낼 수 있도록 인도해 주소서. (by 원용일 목사)
다윗 같은 리더가 되게 하소서! (2023년 7월 21일 금요일)
다윗 왕이 오르난에게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다 내가 반드시 상당한 값으로 사리라 내가 여호와께 드리려고 네 물건을 빼앗지 아니하겠고 값 없이는 번제를 드리지도 아니하리라 하니라 그리하여 다윗은 그 자리에서 금 육백 세겔을 달아 오르난에게 주므로(역대상 21:24-25).
어느 사회든 권력이 있으면 예외적인 대우를 받기 쉽습니다. 아랫사람들이 그렇게 대접하고 본인도 시간이 지나면 그것에 익숙해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니 권력을 가지고도 그것을 절제하거나 유보하는 것은 정말 아름답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 시대에도 이런 사람들이 많아져야 하겠는데, 성경 속에서 그 예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 지은 죄를 회개하기 위해서 오르난의 타작마당에서 제사를 드리려고 했습니다. 이때 오르난은 장소뿐 아니라 번제물까지도 무상으로 드리겠다고 왕에게 제안을 했습니다. 이럴 때 다윗은 못 이기는 척하면서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여호와께 드리는 번제이므로 자기의 돈으로 사서 사용하겠다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그때 오르난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이 많이 감동을 받았을 것 같습니다.
크리스천들이 직위가 높아지면서 항상 조심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한답시고 자기의 권력을 마구 사용한다든가 회사의 물건을 함부로 사용하는 것은 덕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 자신이 혹 권력을 갖게 되더라도 항상 겸손하고 자기희생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다윗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 자신을 돌아봅시다. 우리 일터와 사회에도 이런 멋진 리더들이 많아지도록 기도합시다.
* 일하는 제자의 기도
다윗과 같은 리더들이 우리나라에, 우리 일터에 많아지게 하소서. 저도 다윗과 같은 리더가 될 수 있도록 인도해주소서. (by 방선기 목사)
실용적이고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라! (2023년 7월 20일 목요일)
이제 바로께서는 명철하고 지혜 있는 사람을 택하여 애굽 땅을 다스리게 하시고 바로께서는 또 이같이 행하사 나라 안에 감독관들을 두어 그 일곱 해 풍년에 애굽 땅의 오분의 일을 거두되 그들로 장차 올 풍년의 모든 곡물을 거두고 그 곡물을 바로의 손에 돌려 양식을 위하여 각 성읍에 쌓아 두게 하소서(창세기 41:33-35).
요셉의 성공 요인에 대해서 창세기 기자가 중요하게 제시하고 있는 것 한 가지는 바로 요셉의 일처리 방식에서 드러납니다. 요셉은 확실한 대안 제시로 인정받았고 자신의 일을 성공할 기회를 잡았습니다. 요셉에게 주어진 요구사항은 바로의 꿈을 해석하는 것이었습니다. 앞으로 애굽 땅에 일곱 해 풍년이 있겠고 그 후에 일곱 해 흉년이 있을 것인데, 흉년이 너무 심해서 앞의 풍년을 다 잊어버리게 될 것이고 그 기근으로 결국 애굽이 망하게 될 것이라는 해석이었습니다(25-31절).
요셉은 여기까지만 하면 되었는데 요셉은 거기서 더 나아갔습니다. 요구받지는 않았지만 대안을 제시했습니다. “이제 바로께서는”이라고 하면서 흉년을 어떻게 극복하고 망하지 않을 수 있는지 바로 왕에게 대안을 제시했습니다. “칠풍칠흉 대비 애굽 제국 서바이벌 국가 프로젝트 14년 계획”이라는 멋진 기획서였습니다. 풍년과 흉년을 관리할 인적 자원에 관한 제안과 곡식의 5분의 1을 거두어서 각 지역별로 잘 저장해야 한다는 저장 시스템에 관한 제안이었습니다.
성공하기 위해서 우리는 오늘도 일을 하면서 상대방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구체적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어진 일만 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진정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 무엇인가 고민하며 실제로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에게 그 대안을 실천할 기회가 주어집니다. 요셉이 애굽 제국, 당대 세계 최대 최강 제국의 총리대신이 되었습니다.
* 일하는 제자의 기도
대안까지 제시할 수 있는 탁월한 능력을 제게 주시기 원합니다. (by 원용일 목사)
두 방향으로 관계 유지에 힘쓰라! (2023년 7월 19일 수요일)
요셉이 바로에게 아뢰되 바로의 꿈은 하나라 하나님이 그가 하실 일을 바로에게 보이심이니이다(창세기 41장 25).
요셉은 바로 왕의 꿈을 해석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감옥 안에 있던 요셉은 그 사실을 알 길이 없었습니다. 알았더라도 요셉의 처지로는 꿈을 해석할 기회를 얻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술 맡은 관원장이 과거를 회상하면서 요셉을 기억했고 요셉은 그 인맥 덕분에 기회를 얻었습니다. 요셉은 감옥 안에서도 얼굴 표정도 놓치지 않고 사람들을 섬기기 위해 노력했습니다(창 40:7). 이런 노력이 결실을 맺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요셉이 애쓴 관계의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이 자신의 인생을 인도하시고 감옥 안에서도 이끄신 분임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 증거가 바로 왕 앞에서 꿈을 해석하면서 하나님의 존재를 드러내고 하나님이 그 모든 일의 궁극적 해결자이심을 간증하는 것입니다. 요셉은 바로 왕 앞에서 해몽하면서 하나님이 바로에게 꿈을 꾸게 하시고 역사를 주관하게 하신다는 이야기를 분명하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반복적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25-36절).
요셉의 성공비결은 이 두 가지, 하나님과 관계, 사람과 관계를 잘 갖춘 것이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이 나의 인생을 인도하시는 분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서 사람들과 관계를 잘 유지할 때 하나님이 역사해 주십니다. 이런 관계를 잘 유지하는 훈련을 해야 하겠습니다. 관계 훈련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님과 친밀함을 유지하는 훈련입니다. 그리고 사람들과도 친밀하고 충직한 우정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 일하는 제자의 기도
하나님과 관계 유지를 잘하는 제가 되게 도와주소서. 또한 사람들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제게 되게 인도해주소서. (by 원용일 목사)
성실하게 준비하면 기회는 온다! (2023년 7월 18일 화요일)
이에 바로가 사람을 보내어 요셉을 부르매 그들이 급히 그를 옥에서 내 놓은지라 요셉이 곧 수염을 깎고 그의 옷을 갈아입고 바로에게 들어가니 바로가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한 꿈을 꾸었으나 그것을 해석하는 가가 없더니 들은즉 너는 꿈을 들으면 능히 푼다 하더라(창세기 41:14-15).
요셉은 성경에서 대표적으로 성공한 사람으로 인정받습니다. 물론 여기서 우리가 다루는 성공이 세상에서 흔히 말하는 통속적인 개념과는 다르다는 것을 우리가 짐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기준의 성공이고 이런 성공은 직장생활 하는 우리 모두에게 다 해당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요셉이 성공했던 요인 중 하나는 ‘기회’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기회는 믿지 않는 사람들은 운(運)이라고 말하는데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와 인도하심이라고 표현합니다.
요셉은 기본적으로 성실했던 사람입니다. 소년 시절 아버지 집에서 목동으로 일할 때 왕복 2백 킬로미터에 이르는 심부름을 잘 감당했습니다. 또한 감옥에서 성실하게 사람들의 얼굴 표정을 살피면서 사람들에게 집중했습니다. 그리고 요셉은 하나님이 주신 해몽의 재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재능이 있어도 발휘할 기회가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런데 드디어 요셉에게 기회가 왔습니다. 애굽의 왕 바로가 꿈을 꾸었는데 아무도 그 꿈을 해석하지 못했습니다. 바로는 답답하고 속상했겠습니다. 하지만 요셉에게는 그 상황이 자기의 재능을 발휘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내가 원하는 때에 기회가 오지 않아서 답답할 수 있지만 우리는 기도하며 준비해야 합니다. 노력해서 잘 준비하면 우리에게도 기회가 옵니다. 성실하게 준비하고 있으면 하나님의 기회가 우리에게도 다가올 것입니다.
* 일하는 제자의 기도
하나님이 주신 기회를 기다리며 성실하게 준비하게 하소서. (by 원용일 목사)
윗사람의 불의에 공모하지 말라! (2023년 7월 17일 월요일)
혹시 왕이 노하여 네게 말씀하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성에 그처럼 가까이 가서 싸웠느냐 … 아비멜렉을 쳐죽인 자가 누구냐 여인 하나가 성에서 맷돌 위짝을 그 위에 던지매 그가 데벳스에서 죽지 아니하였느냐 …하시거든 네가 말하기를 왕의 종 헷 사람 우리아도 죽었나이다 하라(사무엘하 11:20-21).
우리아 장군의 충성심으로 인해 자신의 간음을 감추려는 의도가 실패한 후 다윗은 우리아의 손에 밀서를 들려 군대장관 요압에게 보냈습니다. 우리아를 위험지역에 배치해 죽게 하는 밀명을 수행한 요압이 왕에게 전령을 보내 그 소식을 알렸습니다. 요압은 다윗 왕이 할 만한 가상의 질문에, 전사(戰史)를 동원해가며 대답할 말을 일러줍니다.
한편의 완벽한 시나리오였습니다. 요압은 윗사람 다윗의 범죄를 뻔히 알고 있으면서 불의한 공모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아는 자신의 부하 장수이기도 한데, 충성스러운 자기 부하를 죽이라는 밀명을 받았다면 요압은 갈등해야 마땅했습니다. 부하의 안타까운 죽음에 가슴 아파하기는커녕 왕의 질문을 예상하면서 그 변명마저 친절하게 알려주는 악한 동조와 모의를 감행하는 요압의 위선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도 일하면서 이렇게 요압처럼 윗사람과 그렇고 그런 밀약과 암묵적 관행을 처리하지는 않습니까? 직장생활이 그렇지 않느냐고 합리화하면서 체념하지는 않습니까? 윗사람의 악한 의중을 예리하게 알아채고 한술 더 떠서 불의한 일에 동조해서는 안 됩니다. 충신 우리아 장군의 안타까운 죽음을 보면서, 다윗 왕과 요압 장군의 치졸하게 악한 모의를 성토합시다. 그리고 우리도 경계를 삼읍시다.
* 일하는 제자의 기도
악한 일에 대한 의분이 일터에서 건전하게 티내는 크리스천의 정체성이 되게 해 주소서. 대안을 실천하는 용기를 주소서. (by 원용일 목사)
사람들을 이해하고 분별하는 지혜 (2023년 7월 16일 주일)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열왕기상 3:9).
오늘 우리의 시대를 살며 지식의 중요성을 공감하지만 그 지식도 정보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결국 지혜를 의미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을 제대로 이해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솔로몬이 젊은 시절에 왕이 되어 하나님 앞에 나아가 간구했던 지혜가 바로 이런 것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이 결국 사람들을 제대로 파악하고 섬겨야 하는 것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솔로몬은 기브온 산당에서 천 마리의 양으로 번제를 드리면서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자신은 아버지를 뒤이어 왕이 되었지만 너무나 연약하기에 하나님이 지혜를 주시기를 간구했습니다. 아무리 전문 지식이 많은 사람도 함께 일하는 사람들, 그가 만드는 물건이나 서비스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면 제대로 일할 수 없습니다. 사람을 아는 지혜가 모든 지식의 기초가 됩니다.
이렇게 솔로몬이 하나님이 맡겨주신 이스라엘 백성들을 잘 이끌겠다고 큰 결심을 하고 기도했을 때 하나님은 기뻐하셨습니다. 그 기도가 하나님의 마음에 맞았다고 합니다(왕상 3:10). 장수나 부유함이나 원수의 멸망을 구하지 않고 재판에서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한 솔로몬을 보고 하나님은 크게 칭찬하셨습니다. “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네 앞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네 뒤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왕상 3:12). 우리도 우리가 하는 일과 관련하여 특히 사람에게 집중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지식이고 지혜입니다.
* 일하는 제자의 기도
사람들을 이해하고 분별할 수 있도록 제게 지혜를 주소서.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로 일하게 하소서. (by 방선기 목사)
우상이 될 수도 있는 성공을 경계하라! (2023년 7월 15일 토요일)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태복음 6:24).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은 때때로 우상이 될 수 있는 것을 아십니까? 성공이 목표는 될지언정 크리스천들의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이루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인생의 목적을 추구하는 수단으로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공 자체가 인생의 목적은 결코 아닙니다. 이 사실을 이해하지 못할 때 성공은 우리에게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대표적으로 하나님 대신 사람들이 추구하는 성공의 우상이 ‘재물’임을 간파하셨습니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또한 이 말씀 속에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대신해서 맘몬우상만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도 주인으로 모시고 또한 재물도 역시 주인으로 모시려는 양다리 신앙에 대한 경계가 담겨 있습니다.
성공은 우리 크리스천들도 추구할 수 있는 인생의 목표들 중 하나이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이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돈 외에도 명예나 권력 등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성공의 우상들을 하나님보다 사랑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이냐, 성공이냐 선택하라고 하면 어떻게 답하시겠습니까? 예수님의 결론적 가르침을 다시 한 번 명심합시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 일하는 제자의 기도
우선순위 설정이 참 중요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세상적 필요가 아닌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추구할 수 있게 도와주소서. (by 원용일 목사)
때때로 푹 쉬십시오! (2023년 7월 14일 금요일)
이르시되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어라 하시니 이는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아 음식 먹을 겨를도 없음이라 이에 배를 타고 따로 한적한 곳에 갈새(마가복음 6:31-32).
일 속에 파묻혀 살다보면 일터를 떠나 조용한 곳에 가서 며칠만이라도 쉬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혹시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내가 무슨 그런 호사를 즐기냐?’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지는 않았습니까?
예수님도 자신과 제자들이 너무 바쁘게 일하느라고 쉬지 못한 것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쉬자고 하며 배를 타고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가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모습을 보면서 제대로 일을 잘하기 위해서는 쉬는 것이 필요함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제대로 쉬기 위해서는 일단 시간을 내서 한적한 곳으로 가야 할 필요가 있음도 잘 보여줍니다. 물론 일하는 장소에서도 조금씩 쉴 수 있겠으나 잠시 일과 뚝 떨어져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 자신이 그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제자 된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쉬어야 할지는 자명합니다. 자주 충분하게 쉬는 시간을 가지되 적어도 일 년에 한두 번 정도는 일터를 떠나서 본격적으로 쉬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은 사치가 아니라 일하는 사람들의 필수적인 의무이기도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는 주님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번 여름휴가를 잘 계획하십시오. 치밀하게 ‘기획’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주님과 함께 한적한 곳으로 가서 푹 쉬고 오시기 바랍니다.
* 일하는 제자의 기도
때로 푹 쉴 수 있는 기회를 주소서. 휴식할 수 있는 좋은 여건을 허락하여 주시기 원합니다. (by 방선기 목사)
링컨의 직업관 (2023년 7월 13일 목요일)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고린도전서 9:19).
미국의 16대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이 대통령 재직 중에 있었던 일입니다. 대통령 집무실로 들어가던 한 비서관이 복도 끝에서 구두를 닦는 링컨 대통령을 보았습니다. 비서관은 깜짝 놀라서 이런 일이 사람들에게 알려지면 좋지 않을 것이라고 조언을 했습니다. 사실 링컨 대통령은 정적들이나 기자들에게 촌스럽다는 평을 자주 받고 있던 터라 비서관은 용기를 내어 말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링컨이 대답했습니다.
“아니, 구두를 닦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란 말인가? 대통령은 국민들을 섬기면서 일하는 공무원에 지나지 않는단 말일세. 천한 직업이라는 것은 없네. 다만 천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을 뿐이지.”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은 성경적으로도 옳습니다. 바람직하지 못하고 잘못된 직업은 있어도, 천한 직업은 없습니다. 모든 직업이 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사람들을 섬기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유를 가지고 있지만 모든 사람들에게 종이 되어 섬긴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유대인들에게는 유대인과 같이 되고 율법 없는 자에게는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되고 약한 자에게는 약한 자와 같이 된 이유는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바로 복음을 위한 행동으로 복음에 참여하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고전 9:20-23). 바울이 복음을 위해 사람들을 섬긴 것같이 링컨도 직업의 참된 가치는 과연 그 일을 통해서 사람들을 제대로 섬기고 있는가에 달려 있다고 본 것입니다. 당신은 당신의 일을 통해 사람들을 제대로 섬기고 있습니까?
* 일하는 제자의 기도
저의 일을 통해 사람들을 제대로 섬길 수 있게 인도해 주소서. 천한 직업이라는 세상의 편견에 크리스천답게 대처할 수 있는 믿음을 주소서. (by 원용일 목사)
크리스천이라는 이유로 미움 받을 때… (2023년 7월 12일 수요일)
다니엘은 마음이 민첩하여 총리들과 고관들 위에 뛰어나므로 왕이 그를 세워 전국을 다스리게 하고자 한지라 이에 총리들과 고관들이 국사에 대하여 다니엘을 고발할 근거를 찾고자 하였으나 ··· 이 다니엘은 그 하나님의 율법에서 근거를 찾지 못하면 그를 고발할 수 없으리라 하고(다니엘 6:3-5).
직장생활을 잘하려면 업무에서 뛰어나고 정직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직장생활이 그리 단순하지는 않습니다. 너무 뛰어나거나 너무 깨끗하다보면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어서 자칫 잘못하면 질투와 왕따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다니엘이 바로 그런 처지에 있었습니다. 다니엘은 하마터면 그들의 모함에 빠져서 사자굴 속에서 죽을 뻔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너무 튀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물론 별일 아닌데 잘난 척하거나 거룩한 척해서 주위 사람들의 눈 밖에 날 필요는 없습니다. 종종 크리스천들이 신앙인이라면서 스스로 왕따를 자초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것은 의를 위해서 핍박을 받는 것이 아니라 지혜가 부족해서 겪는 고생일 뿐입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살면서 크리스천이라는 이유만으로 미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런 미움은 감수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 하지 않고 너무 튄다고 미움 받을 수도 있습니다. 다니엘이 바로 그런 경우였습니다. 그럴 때는 주님이 받으신 고난을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주님도 이 세상을 사시면서 모든 사람들과 무작정 좋은 관계를 가지지는 않으셨음을 기억하십시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요 15:18).
* 일하는 제자의 기도
크리스천이라는 정체성 때문에 미움받을 때도 의연하게 하소서. 능히 그 시험을 이겨낼 믿음을 주시기 원합니다. (by 방선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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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 해결의 기준 (2023년 7월 11일 화요일)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친족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창세기 13:8).
아브람과 롯은 본의 아니게 갈등관계가 되었습니다. 이때 이 갈등을 풀려고 했던 사람은 삼촌인 아브람이었습니다. 아브람이 갈등을 풀려고 제안한 이야기는 오늘 우리 시대의 직장인들에게도 갈등 해결의 좋은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아브람은 한 핏줄이기 때문에 싸우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현실적으로 돈 앞에서는 혈육도 없는 것을 우리는 종종 뉴스로 접합니다. 아브람은 갈등이 있을 때 갈등의 당사자가 한 몸인 것을 먼저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우리는 한 친족이라.” 이 원리를 확대해서 우리도 갈등 해결의 기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우리는 한 회사라는 일터 공동체의 구성원이라고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아브람은 갈등 해결을 위해 서로 떠나는 방법을 제안합니다.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9절). 갈등이 있을 때 빨리 갈등을 봉합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함께 있으면서 해결책을 찾는 노력을 최대한 해야 하지만 당장 방법이 없을 수 있습니다. 그때는 헤어짐을 차선책으로 활용해도 좋습니다.
다음으로 갈등 해결을 위해 헤어질 때 아브람은 조카 롯에게 선택권을 먼저 주었습니다. 한 마디로 양보했습니다. 이것은 아브람의 기질일 수도 있지만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나오는 포용력이고 큰 믿음일 수도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렇게 양보하지 않았다면 갈등이 쉽게 풀리지 않았을 겁니다. 공동체 의식, 헤어짐, 선택권 양보. 이런 갈등 해결의 기준은 하나님의 기준이 틀림없습니다. 아브라함이 보여주는 갈등 해결의 기준을 우리도 배웁시다.
* 일하는 제자의 기도
갈등을 피하지 않습니다.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방법으로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제가 되게 도와주소서. (by 원용일 목사)
결정적 위기의 순간에 누구를 의지합니까? (2023년 7월 10일 월요일)
그 때에 선견자 하나니가 유다 왕 아사에게 나와서 그에게 이르되 왕이 아람 왕을 의지하고 왕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아람 왕의 군대가 왕의 손에서 벗어났나이다 구스 사람과 룹 사람의 군대가 크지 아니하며 말과 병거가 심히 많지 아니하더이까 그러나 왕이 여호와를 의지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왕의 손에 넘기셨나이다(역대하 16:7-8).
유다 왕국의 아사 왕이 하나님을 의지할 때 하나님은 대적을 물리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상황이 바뀌어서 아사 왕이 하나님 대신 이웃의 아람 나라 군대의 힘을 의지하여 적을 물리치려고 할 때 하나님은 진노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진정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에게만 능력을 베풀어 주십니다.
우리가 질병으로 고통 받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의사를 통해서 우리의 연약함과 고통을 치료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의사를 의지하고 하나님께 매달리지 않으면 하나님을 섭섭하게 하는 것입니다. 직장에서도 누군가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필요로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우리는 질문해 보아야 합니다. 내가 과연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인지, 하나님보다는 사람을 의지하는 것인지 분별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에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할 때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도움을 청할 때 그 대상을 의지하는 자세가 문제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대상이 누구인가 말입니다. 하나님은 얼마든지 우리가 도움을 청하는 그 사람을 통해서 도움을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런 도움을 받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사람을 의지하면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 일하는 제자의 기도
저의 믿음을 돌아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제게 실제적 도움을 줄 사람들만 의지하는 불신앙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by 방선기 목사)
일하면서 하나님의 자비를 드러내라! (2023년 7월 9일 주일)
그것이 유일한 옷이라 그것이 그의 알몸을 가릴 옷인즉 그가 무엇을 입고 자겠느냐 그가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들으리니 나는 자비로운 자임이니라(출애굽기 22:27).
율법에서 하나님은 이웃의 옷을 저당 잡으면 해가 지기 전에 그에게 돌려보내라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겉옷이 추위를 막는 이불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진 율법이 얼마나 자비의 정신을 담고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람을 생각하는 법 정신이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법의 기본 정신은 법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복지를 위한 것인데 이 법이 그것을 잘 보여줍니다.
본문의 바로 앞에 있는 말씀에는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돈을 꾸어주면 그들에게 이자를 받지 말라는 교훈이 있습니다(25절). 이런 법이 획일적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외국인이 돈을 빌리면 당연히 이자를 받아야 한다고 하지만 내국인이 돈을 빌린다면 이자를 받지 말라고 합니다. 외국인은 투자 목적으로 빌리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은 양식이 없어서 빌리는 것이었습니다. 이자를 받지 말라는 법은 자비의 법입니다.
이런 법정신은 오늘 우리가 일터에서 일하면서 실천해야 할 직업윤리의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기업 운영에 있어서는 수익이 꼭 필요한 가치이지만 사람을 생각하지 않는 기업은 10년 후를 보장받을 수 없습니다. 경영계에서 지속적으로 강조해 온 ‘윤리경영’도 바로 이런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수익보다 더 우선적인 것이 사람이고 온전함과 정직함(integrity)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성경 속에서 경영윤리와 직업윤리의 원리를 발견해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일하는 제자의 기도
일을 할 때 목표도 중요하지만 일하는 방법에 대해서 고민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며 일하겠습니다. (by 원용일 목사)
당신의 인생 목적은 무엇입니까? (2023년 7월 8일 토요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태복음 6:33).
미국의 하버드 대학교에 들어간 한국 학생들 중에 졸업을 못하고 중간에 포기하는 학생들이 많다고 합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 아이들의 인생의 목적이 하버드 대학교에 ‘입학’하는 것이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 목적을 이루었기에 공부할 의욕이 없어져서 그럴 것입니다. 원하던 직장에 힘들게 들어간 직장인들이 얼마 안 있어 퇴직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돈이 인생의 목적이 되면 돈을 벌기 위해서 인생을 다 써버립니다. 돈을 벌지 못하면 목적을 이루지 못한 것이 되고 돈을 벌고 나면 인생의 목적을 이루었기 때문에 삶의 의미를 잃게 됩니다. 부동산으로 떼돈을 번 졸부들이 그런 경향을 보입니다. 직장인들은 아무래도 직장에서 인정받고 잘 나가는 것을 목적으로 삼기 쉽습니다. 필요한 일이지만 그것은 인생의 과정에서 단기적으로 가질 수 있는 목표가 될 수는 있지만 인생의 참된 목적이 될 수는 없습니다. 최고에 도달하면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할 것입니까?
바람직한 인생의 목적에 대해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사람들이 추구하는 걱정거리들(의식주 등의 “이 모든 것”)보다 우선순위에 하나님의 나라를 두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우리가 가져야할 인생의 목적이 바로 이것입니다. 당신의 인생 목적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점검해 보십시오.
* 일하는 제자의 기도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세우는 인생의 목적을 제대로 이해하여 분명한 비전을 가지고 살아가게 하소서. (by 방선기 목사)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 (2023년 7월 7일 금요일)
내가 자녀에게 말하듯 하노니 보답하는 것으로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고린도후서 6:13).
현대 사회의 특징 중 하나는 익명성입니다. 사람들은 점점 자신을 감추려 하고 마음을 닫고 삽니다. 그런데 요즘에 SNS가 발달하고 정보가 빠른 시간 안에 많이 전달되는 사회가 되었어도 여전히 사람들은 그 익명성 속에 빠져 있습니다. 인터넷 댓글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자기 이름을 드러내지 않고 무언가 많은 말을 하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숨어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정보가 많아도 사람들의 마음은 좁아져있고 다양성을 인정하지는 못한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사도 바울은 문제 많았던 고린도 교인들을 향하여 마음을 열라고 부탁합니다. 그들을 향해 부모와 같은 심정을 가지고 자기가 마음을 넓혔으니 제발 마음을 열라고 부탁했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자신들만의 문제에 집중했기에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까지 바라볼 수 있는 아량을 갖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고린도 교인들이 바울을 향해 마음을 넓히지 못한 이유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고 신뢰하는 마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사람들의 마음이 점점 닫혀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복음 전해야 할 사람들도 마음 문을 닫고서 마음을 넓히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제 축호 전도를 하거나 전도지를 나누어주는 일도 효과적이지 못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때에 우리들이 사람들을 향해서 마음을 넓히는 일이 필요합니다. 직장에서나 사회생활 가운데서 만나는 사람들이 ‘이럴 것이다’라고 지레짐작하는 편견을 버리고 그들을 알기 위해 노력하고 신뢰해야 그들의 마음도 넓힐 수 있을 것입니다.
* 일하는 제자의 기도
제가 먼저 넓은 마음을 가지기를 원합니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마음도 넓어질 수 있게 도와주소서. (by 원용일 목사)
오늘도 하나님께서만 일하십니다! (2023년 7월 6일 목요일)
주께서 주의 종 내 아버지 다윗에게 허락하신 말씀을 지키시되 주의 입으로 말씀하신 것을 손으로 이루심이 오늘과 같으니이다(역대하 6:15).
하나님을 위해서 열심히 일하다보면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일하는 것으로 착각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누구나 한두 번은 경험해보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으면 억울하고 삐치기도 합니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되면 하나님이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분이 되고 맙니다. 만약에 이런 마음을 가진다면 아무리 열심히 하나님을 위해 일해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모든 일은 하나님이 주관하시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한 후에 하나님께 보고하면서 자기가 한 일을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약속하신 말씀대로 하나님의 손이 이루신 것이라고 간단하게 보고했습니다. 우리에게는 바로 이런 솔로몬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솔로몬이 이렇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하나님과 깊은 교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전을 짓게 된 그 모든 과정을 돌아보니 하나님 앞에서 자기가 무언가 했다고 말할 수가 전혀 없었던 것입니다.
물론 어떤 일이 이루어졌을 때 우리도 힘쓰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책임을 가지고 열심히 일해야 하고 부지런해야 합니다. 그러나 모든 일은 하나님이 시작하시고 하나님이 이루신다는 근본적인 전제에 대한 인식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그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목도하는 사람이며 그 과정에서 작은 도구가 될 뿐임을 인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성전을 지어놓고 이렇게 기도한 솔로몬의 신앙, 그가 하나님 중심으로 생각했던 위대한 모범을 우리도 배웁시다.
* 일하는 제자의 기도
주님이 주시는 힘으로 일하게 하시고 주님이 의도하신 목적대로 일할 수 있게 도와주소서. 저를 자랑하지 못하게 하소서. (by 방선기 목사)
당장 보상받지 못하더라도… (2023년 7월 5일 수요일)
그 속에 기록하기를 문을 지키던 왕의 두 내시 빅다나와 데레스가 아하수에로 왕을 암살하려는 음모를 모르드개가 고발하였다 하였는지라 왕이 이르되 이 일에 대하여 무슨 존귀와 관작을 모르드개에게 베풀었느냐 하니 측근 신하들이 대답하되 아무것도 베풀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니라(에스더 6:2-3).
일을 하다 보면 일한 만큼 보상받지 못한다는 일종의 피해의식이 마음을 괴롭히는 때가 있습니다. 전에 모르드개가 궁궐 문을 지키면서 빅다나와 데레스라는 사람의 왕 암살 모의를 고발하여 반역을 막은 적이 있었습니다. 웬일인지 그에 대한 적절한 포상이 없었습니다. 어느 날 밤 왕이 잠이 오지 않아 궁정일지를 낭독하게 하여 듣고 있다고 바로 그 부분에 대해 이렇게 묻습니다. “이 일에 대하여 무슨 존귀와 관작을 모르드개에게 베풀었느냐?”
모르드개의 입장에서 얼마나 억울했을까요? 왕의 목숨을 구해준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감사패’ 하나 받지 못했다면 억울했을 것이지만 모르드개는 잘 참았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른 어느 날 왕이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왜 하필 그 날, 하만이 모르드개를 자기 집에 세워놓은 기둥에 달 수 있도록 왕에게 요구하려고 하던 날에 왕이 잠이 오지 않았겠습니까? 하나님이 역사하신 것이 분명합니다.
결국 모르드개는 자신의 공에 대해 뒤늦은 보상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유다 민족을 멸망시키려고 계획했던 하만을 대신해 총리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우리도 일한만큼 보상받지 못한다는 서운한 마음이 들 수 있으나, 천국상급을 고대하듯이, 아직 남겨둔 보상을 유보하면 훨씬 마음 편하게 일할 수 있습니다. 물론 정당하게 요구할 것도 다 포기하라는 나약함을 칭송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 일하는 제자의 기도
사람들은 연봉이 자신에 대한 모든 평가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그러나 일에 대한 보상보다 더 중요한 천국 상급을 기대하며 일하게 하소서. (by 원용일 목사)
세상과 일터에서 거룩한 사람 (2023년 7월 4일 화요일)
그의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들을 존대하며 그의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하지 아니하며 이자를 받으려고 돈을 꾸어주지 아니하며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하지 아니하는 자이니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이다(시편 15:4-5).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는 하나님 보시기에 거룩한 사람이라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거룩한 사람’이라고 하면 무언가 종교적인 이미지를 풍기는 사람을 연상하게 됩니다. 하지만 거룩이란 교회 안에서 의식을 통해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죄와 구별된 모습으로 사는 것을 뜻합니다. 시편 기자가 지적하는 대로 세상 한복판에서 정직하게 살며 이웃에게 해를 입히지 않고 약속을 잘 지키며 더러운 뇌물을 받지 않는 사람들이 바로 거룩한 사람입니다. 한마디로 비즈니스 현장에서 깨끗한 삶을 사는 것이 시편 기자가 묘사한 거룩의 모습입니다.
사람들을 속이거나 약속을 어겨서라도 이익을 더 얻으려고 하는 이 세상에서 깨끗하게 사는 사람은 확실히 구별됩니다. 그것이 바로 성도의 거룩한 삶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틀림없이 어리석다고 말할 것입니다. 남들처럼 거짓말 하지 않고, 약속한 것을 그대로 지키고, 부정한 돈을 거절하다보면 손해를 보게 되고 때로는 생각지 않은 희생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런 손해의 걸림돌, 희생의 걸림돌을 넘어서야 정직한 삶을 살 수 있고 영원히 흔들리지 않습니다.
우리 주변에 스스로는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지만 여전히 거룩한 산 아래를 헤매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결단의 용기가 필요합니다. 이 땅의 기업들이 정직을 회복하게 하기 위해서는 크리스천들이 먼저 결단해야 합니다. 손해를 보더라도 정직하게 살기로 결심하고 실천합시다.
* 일하는 제자의 기도
세상 속에서 거룩하게 살게 하소서. 일터 현장에서 정직한 크리스천 직업인으로 살 수 있게 용기와 지혜를 허락해주소서. (by 방선기 목사)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는 직업인 (2023년 7월 3일 월요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곧 그물을 버려두고 따르니라 … 곧 부르시니 그 아버지 세베대를 품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두고 예수를 따라가니라(마가복음 1:17-20).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던 갈릴리의 어부들은 그물과 배를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었습니다. 첫 제자들의 결단은 그 이후에 주님을 믿고 따르려는 모든 사람들에게 본이 됩니다. 하지만 동시에 부담으로 다가옵니다. 과연 주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첫 번 제자들처럼 현재 자신이 가진 직업을 버려야 할까요?
제자들의 행동은 오늘날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기본적인 자세가 무엇인지 가르쳐줍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 예수님을 자기들의 생계 도구인 그물이나 배보다 더 사랑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라면 이런 자세로 이 세상을 살아야 합니다. 주일에 예배를 드릴 때는 지난 주간 중에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 무엇인가 확인해 보고 주님을 따르는 제자의 심정으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제자훈련의 가장 기본은 바로 이런 제자의 자세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들이 실직자나 무직자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을 따른 어부들은 베드로와 야고보 등 네 사람만이 아니라 훨씬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어부들은 자신의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서 주님을 따르는 제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오늘날의 제자들도 비슷합니다. 주님이 간혹 우리를 전임사역자로 부르기도 하시지만 대부분의 경우 우리가 하는 일의 현장에서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라고 권하십니다.
* 일하는 제자의 기도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게 하소서. 제자의 심정을 잃지 않게 하시고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힘을 주소서. (by 방선기 목사)
피곤해도 말씀을 들으면… (2023년 7월 2일 주일)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누가복음 5:4-6).
지독한 불황을 겪고 있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에게 예수님이 심방을 가셨습니다. 그는 밤새도록 고기잡이를 하고 돌아온 이후여서 그물을 씻고 나면 이내 잠자리에 들어야 했습니다. 피곤했으나 마음대로 쉴 수가 없었습니다. 수많은 무리들이 해변을 메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필 그 사람, 베드로의 배에 오르셨습니다. 그리고 배를 육지에서 조금 띄기를 요구하셨습니다.
그러니 배 주인인 베드로가 배가 물 위에서 움직이지 않도록 붙들고 있어야했습니다. 밤새 일했고 고기를 잡지 못해 더 피곤했던 베드로지만 꼼짝 없이 긴장하면서 예수님의 곁에 있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예수님이 미리 계획하고 준비하신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그렇게 말씀에 집중할 수 있도록 의도된 상황을 만드셨습니다.
말씀을 마치신 후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져 고기를 잡으라고 하셨습니다. 갈릴리 호수는 낮에 깊은 곳에 고기가 없는 것을 잘 아는 베드로였지만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깊은 곳으로 배를 몰아가서 그물을 내린 베드로는 두 배에 가득 차게 고기를 잡는 이적을 체험했습니다. 우리도 힘들고 피곤해도 억지로라도 주님의 말씀을 듣는 기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도 베드로처럼 놀라운 열매를 거둘 수 있을 것입니다.
* 일하는 제자의 기도
환경이 좋지 않아도 말씀을 듣겠습니다. 주님이 말씀해주소서. 순종하겠습니다. 그래서 이적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하소서. (by 원용일 목사)
모세의 하프타임 (2023년 7월 1일 토요일)
모세가 그의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 떼를 치더니 그 떼를 광야 서쪽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출애굽기 3:1, 4).
별 다른 삶의 변화가 없이 날마다 반복되는 생활을 계속하다보면 삶이 무료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상반기를 접고 올해의 하반기로 접어드는 7월의 첫 날에 우리는 모세를 생각해 보면서 ‘권태’에 대해 생각해보기를 원합니다.
모세는 40년 동안 미디안 광야에서 목자로 살면서 양을 치는 생활에 익숙해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가 알지 못하던 하나님의 계획이 있었습니다. 모세의 일터에 나타나신 하나님은 두려워하는 그에게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라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결국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이후 그의 인생은 달라져 양을 치던 목자에서 하루아침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는 지도자로 변신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모세와 같이 무료한 생활을 하는 우리들에게 모세와 같은 체험을 하게 해주실 수도 있습니다. 매일의 생활에서 주님을 만나다보면 새로운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일상적인 걸음이 우리를 호렙 산으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한해의 하프타임을 보내는 이 시기에 우리의 ‘호렙 산’을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사명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고 정리하는 기회를 가져보시기 바랍니다.
* 일하는 제자의 기도
반복되는 삶에 권태를 느끼지 말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집중하게 하소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그 사명을 위해 매진하게 도와주소서. (by 방선기 목사)
행복의 기준은 무엇인가? (2023년 6월 30일 금요일)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친족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창세기 13:8-9).
무엇이 행복을 가져다줍니까? 돈이 과연 행복을 가져다줄까요? 아브람과 롯의 경우를 보면 돈이 그들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했습니다. 아브람과 롯이 다 부자가 되니 함께 한 지역에서 공존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6절). 그러다가 결국에는 둘 사이에 갈등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두 사람의 종들이 목초지 문제로 다투면서 결국은 그것이 아브람과 롯 두 사람 사이의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6-7절).
아무리 경제적으로 풍요해져도 사람 사이에 갈등이 지속된다면 그 사람은 결코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노후 문제에 대해서도 이 원리는 적용됩니다. 보험설계사들은 노후를 위해 몇 억 원이 있어야 하는데 준비됐느냐고 보채지만 돈 준비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관계입니다. 가족들, 사람들과의 관계가 제대로 유지되어야 노후가 행복할 수 있습니다. 또한 믿음도 중요하고 건강도 중요합니다. 돈보다 중요한 것이 더 많습니다. 그래서 아브람은 조가 롯에게 좋은 땅을 양보하면서 행복해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9절).
진정한 행복의 기준에 대해서 잠언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가산이 적어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크게 부하고 번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잠 15:16-17). 당신은 행복에 대해 어떤 가치 기준을 가지고 있습니까? 잠언 저자처럼 하나님 경외와 사랑, 화목입니까? 아니면 어떤 다른 행복의 기준을 가지고 있습니까?
* 일하는 제자의 기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가 잘 판단하게 하소서. 행복의 기준을 바르게 설정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수 있게 인도하소서. (by 방선기 목사)
형통과 곤고를 병행하게 하시니… (2023년 6월 29일 목요일)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전도서 7:14).
전도서의 이 유명한 말씀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미래에 대해 알려고 하는 일에 대해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 말씀은 비전과 꿈을 포기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다만 미래가 하나님의 섭리 아래 있음을 인정하라고 강조합니다.
그러므로 미래를 점쳐서 자신에게 이롭게 하려는 시도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미래에 어떻게 전개될지 확인하는 일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앞날의 일에 대해 바른 결정을 하여 실천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분명하게 찾아야 합니다. 그러니 고통스럽고 힘든 날에도 우리는 생각해야 합니다. 물론 미래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찾는다고 하여 미래에 대해 걱정하고 불안해 할 필요는 없습니다. 먹고 마실 것을 염려하지 말라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마 6:31).
인공지능이 인간의 직업 세계를 위협하는 4차산업혁명의 시대입니다. 이런 때에 우리가 우리의 미래를 설계할 경우 꼭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모든 결과를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기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성공의 길을 걸을 때 곤고한 날이 있을 것을 기억하며 마냥 기뻐하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고통 중에 있을 때도 형통한 날이 있을 것을 기억하면서 하나님이 허락해주실 기쁜 날을 머리에 떠올리면서 고통을 견디어 냅시다. 골짜기가 깊으면 산봉우리를 향해 올라갈 날이 있음을 기대합시다.
* 일하는 제자의 기도
미래를 속단하지도 말고 걱정하지도 말고 저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깨달아 알 수 있게 인도해주소서. (by 방선기 목사)
사도행전 4:23 – 4:37 기도와 사랑으로 하나 되는 공동체
돈 지갑이 회개해야 진정한 회개
“무리가 물어 가로되 그러하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대답하여 가로되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 하고 세리들도 세례를 받고자 하여 와서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가로되 정한 세 외에는 늑징치 말라 하고”(누가복음 3:10-13).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서 회개할 때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일차적인 반응은 주로 감정적 변화입니다. 자신의 죄악에 대해서 아파하면서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물론 자신의 죄를 깨닫는 지적 반응이 더욱 선행되어야 정서적 반응이 나오긴 합니다. 이런 감정적 반응이 회개의 한 부분이지만 회개의 전부는 아닙니다. 회개는 생활 속에서 구체적인 열매로 나타나는 의지적 반응을 통해 완성됩니다.
우리나라 성도들의 가장 일반적인 회개의 열매는 교회 생활을 열심히 하거나 술 담배를 끊는 것으로 나타나곤 했습니다. 그것들이 모두 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입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은 회개하는 사람들의 돈 지갑이 반응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옷이 두 벌 있는 사람은 옷 없는 사람에게 한 벌을 주라고 합니다. 자신에게 필요한 것 이상의 것으로는 자기보다 어려운 사람을 도우라는 것입니다. 돈을 버는 과정에 대해서는 돈의 많고 적음보다는 돈을 버는 방법에 대해 변화를 요구합니다. 세리나 군인(14절)이라는 직업 자체는 문제시하지 않으면서 그들이 일하면서 자주 저지르는 잘못된 관행을 고치라고 요구했습니다.
혹시 관행이라면서 부정한 돈을 받아 왔다면 바로 그것을 고치는 것이 회개에 합당한 열매라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우리의 돈지갑이 회개해야 진정한 회개라는 뜻입니다. 세례 요한의 말은 맘몬(mammon) 우상이 횡행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적절한 촉구가 아닐까요? 우리의 회개와 변화된 삶은 과연 재정적인 측면에서도 제대로 반영되고 있습니까?
*일터의 기도 : 마르틴 루터의 말대로 저의 돈 지갑이 회개하게 해주시옵소서. 돈 문제를 하나님께 온전히 맡길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
https://namu.wiki/w/%EC%B2%99%20%ED%94%BC%EB%8B%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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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조4000억 평생 기부 마칩니다” 억만장자의 마지막 서명
입력 2020.09.16. 22:25업데이트 2020.09.16.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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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 피니 Chuck Feeney워런 버핏의 롤 모델이자 기부 천사
2018년 10월 1일
0 3 minutes read
‘돈만 밝히는 사람’에서 ‘기부 영웅’으로
1997년 세계적인 면세점 체인 DFS의 매각 문제로 공동 창업자인 척 피니는 법정 분쟁에 휘말려 조사를 받게 된다. 그의 사무실은 압수수색을 당했고 이로 인해 그만의 은밀한 ‘비밀 장부’가 발각되기에 이른다. ‘뉴욕컨설팅’이란 이름의 회사 명의로 15년간 수억 달러를 횡령한 듯 추정되던 비밀 장부의 정체는 얼마 뒤 반전의 결과를 내놓는다.
횡령을 위한 비밀 장부가 아니라 세상을 감쪽같이 속이고 자신의 재산을 기부해온 그만의 ‘비밀 기부 장부’였던 것. 척 피니는 15년 동안 남몰래 약 2900회에 걸쳐 수십억 달러를 기부했으며 1982년 비밀리에 애틀랜틱 필랜트로피즈 기부 재단(이하 애틀랜틱 재단)을 설립해 미국은 물론 베트남, 필리핀, 쿠바 등 도움이 필요한 나라의 의료 · 교육 분야를 지원했다는 것이 만천하에 알려지며 단숨에 ‘기부 영웅’으로 떠올랐다.
사실 그의 비밀 기부 장부가 알려지기 전까지 그는 돈밖에 모르는 사람으로 악명 높았다. 소송에 휘말렸을 때 변호사 수임료마저 깎으려 했으며 경제인 모임에서도 계산을 하지 않으려고 일찍 자리를 뜨는 것으로 알려져 비난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비밀 기부 장부가 발각(?)되면서 그는 ‘영웅’으로 떠올랐다. 자신의 기부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면 기부를 포기한다 했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2000년 중반 이후부터는 하루에 100만 달러(약 11억 원)를 매일 기부해 2017년까지 그가 기부한 총액은 우리 돈으로 약 9조5000억 원에 이른다. 그는 총자산 중 99%를 기부했으며 2020년까지 자신의 모든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밝혔다.
크리스마스카드 판매로 시작해 DFS 공동 창업자가 된 ‘샌드위치 맨’
척 피니는 세계 대공황 시기인 1931년 미국 뉴저지에서 아일랜드계 미국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보험사에서 일했고, 어머니는 간호사로 가정 형편이 넉넉한 것은 아니었지만 성실한 부모 덕분에 세계 대공황을 잘 견뎌냈다. 그의 어머니는 적십자에서 간호사로 자원봉사를 하기도 했고 아무도 모르게 선행을 베푸는 사려 깊은 사람이었다. 어려서부터 타인을 돕는 것에 익숙한 가풍 속에서 자란 피니가 돈 버는 일에 재능을 나타낸 건 열 살 때였다.
피니는 친구 아버지에게서 받은 크리스마스카드를 집집마다 다니며 파는 것으로 생애 첫 사업을 시작했다. 이후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집배원을 도와 편지 부치는 일을 도우며 돈을 벌었다. 청소할 집을 찾아다니며 청소를 해주는 등 끊임없이 돈 벌 궁리를 했다. 이후 피니는 재학 시절에도 골프장 캐디로 일하거나 파라솔 대여 등을 하며 쉬지 않고 용돈을 벌었다.
피니는 미 공군에 입대해 일본에서 근무하며 일본어를 익혔다. 한국전쟁에도 참전했다. 1952년 7월 제대하면서 수당으로 634달러 33센트를 받은 피니는 그 돈을 보태 코넬대학에 지원, 진학했다. 그곳에서 피니는 기업가의 자질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학생들이 밤에 배가 출출해도 마땅히 사 먹을 것이 없다는 점을 간파하고 샌드위치를 만들어 남학생 기숙사와 여학생 기숙사 주변에서 팔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대학 시절 내내 피니에겐 ‘샌드위치 맨’이란 별명이 따라붙었다. 샌드위치를 판 돈을 장학금에 보태 학비와 생활비를 스스로 해결했다. 그렇게 남다른 대학 시절을 보낸 피니는 대학 졸업 후 프랑스 그르노블대학 정치학과 석사 과정에 입학했다. 여덟 달의 석사 과정 후 피니는 지중해 해안에서 미 해군장교들의 자녀를 가르치는 미국 사람을 만났다. 피니는 해군장교들의 자녀들이 빈둥거리며 시간을 보내는 것을 보고 새로운 사업을 고안해냈다.
요즘 말로 치자면 ‘여름캠프’였다. 이 여름캠프에 약 70명이 등록했고, 피니는 직원까지 고용하며 사업을 확장했다. 프랑스 그르노블에 있는 동안 피니는 지중해 주변 항구에서 미 해군들을 상대로 면세주류사업을 시작하려던 에드먼드와 훗날 DFS의 공동 창업자인 코넬 대학 동문 로버트 워런 밀러를 만난다. 주류사업의 가능성을 타진한 피니와 밀러는 미국 해병들에게서 술 주문을 받아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1958년엔 경쟁이 치열했던 주류사업에 이어 향수, 옷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물건을 팔며 피니는 밀러와 함께 사업의 기반을 다졌다. 이후 1960년대 유례없는 경기호황을 맞은 일본 관광객을 집중 겨냥하며 하와이와 괌을 시작으로 유럽 등지로 사업을 확장해나갔다. 그는 잠시도 쉬지 않았으며 새로운 사업을 끊임없이 모색했다. 역설적이게도 그는 검소하게 생활하면 할수록 면세사업을 세계적으로 키우기 위해 열심히 일했고 경영서와 성공한 기업인들의 전기를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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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정한 시대도 그를 부호로 키우는 데 한몫했다. 1968년부터 1974년까지 월스트리트의 평균 주식은 70% 하락한 반면 같은 기간 DFS의 배당금은 1년에 몇백 퍼센트씩 올라갔다. 1977년에 이르러 연간 배당금은 3400만 달러. 피니와 밀러는 이때 각각 1200만 달러씩 가져갔다.
모두 현금으로.경영에서 한 발 떨어져 기부 재단 설립 후 ‘살아 있는 기부 천사’ 등극
피니는 1971년 새로운 장소를 찾거나 전체적인 전략을 마련하는 일 등 회사의 굵직한 결정에만 관여하기로 하고 임원회의에서 최고 경영자 자리를 물려주며 직접 경영에서 한 걸음 떨어진다.
“수의(壽衣)에는 주머니가 없다”는 아일랜드의 금언을 자주 인용했던 그는
이후 기부를 위한 재단을 설립하기 위해 오랜 시간 공을 들인다.
1982년 드디어 500만 달러의 자금으로 자선단체 애틀랜틱 필랜트로피즈를 창립하기에 이른다.
훗날 ‘비밀 기부 장부’ 사건으로 그의 기부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기 전까지
그는 ‘기부계의 제임스 본드’처럼 살았다. 미국의 기업가이자 자선사업가 앤드루 카네기를 존경했던 피니는 재단에 관련된 모든 사람에게 카네기의 에세이를 선물했다고 한다.
“부자란 과시나 허영을 멀리하며 소박한 삶의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카네기의 가르침을 실천했다.
그는 평소 부를 표시하는 여러 가지 장식품과 값비싼 물건들에 불편한 기색을 여과 없이 드러냈으며 의식적으로 검소한 생활을 해온 것으로 유명하다.
중고 자동차를 탔고 사회 부유층과 어울리는 사교모임도 싫어했다.
모두의 관심에서 멀어져 익명으로 살고 싶어 가족들과 조용한 곳에서 지낸 적도 있다.
사업이 한창 번창했을 때도 빛바랜 셔츠에 무명 작업복을 입고 다니기 일쑤였다.
우연히 선행이 알려진 후에도 여전히 애틀랜틱 필랜트로피즈 의장으로 지내며
‘억만장자 아닌 억만장자’로 불리는 척 피니는 1996년 루이뷔통 모엣 헤네시 그룹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DFS의 지분을 모두 넘기고 여기서 발생한 수익을 자신이 설립한 재단에 기부해 사회사업을 위해 쓰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채우기보다 비우기가, 화려한 삶보다 소박한 삶이 유행하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통장 잔고와 명품 시계가 행복의 척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향해 척 피니는 말한다. “부(富)는 다른 사람을 돕는 데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죽을 때 부자인 것은 불명예”라고.
일과 삶의 균형을 유지하라
척 피니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불고 있는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의 준말)을 일찍부터 강조해왔다. 일만 생각하는 사람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지론. 일에도 균형점이 있어야 하며 일과 가족, 배우고 가르칠 수 있는 모든 것이 균형을 이뤄야 한다고 했다.
스스로도 일에 심취해 있었으나 아이들의 학교를 위해 이사하거나 내려놓는 것을 어려워하지 않았다.
다만 휴가를 즐기되 끊임없이 배울 수 있는 것을 찾거나 시간을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돈 벌기 위해 일하지 않았다.
부는 그 과정(일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따라온 것일 뿐
유년과 학창 시절 피니는 스스로 학비와 생활비를 해결하기 위해 돈을 벌었다.
하지만 사업을 시작한 이후엔 돈보다는 사업의 성공을 통해 자신의 노력과 존재 의의를 찾으려 했다.
그의 말대로 부는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따라온 것일 뿐. 재산을 유지하고 불리는 데 힘을 쏟는 대신 기부를 선택한 건 어쩌면 그로선 당연한 결과다.
자랑하지 마라. 받은 이의 부담을 덜어주고 싶다면 절대 자랑하지 마라
피니는 부자가 되어갈수록 주변인들을 세심하게 살폈다. 동료들에게 너그러웠고 직원이나 직원의 자녀들의 치료비를 지불하는 일도 잦았다. 늘 ‘왼손이 한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했다. 기부 사실을 철저하게 비밀에 부친 것도 기부자와 수혜자 모두를 배려한 마음이었다. 그의 어머니처럼 도움을 받는 사람이 절대 눈치채지 못하게 도와주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마음이라고 생각했다.
돈은 매력적이다. 그러나 신발 두 켤레를 한 번에 신을 순 없다
피니는 돈의 힘과 매력을 인정하되 한 인간이 소비할 수 있는 재화의 한계에 비추어 욕심을 내려놓길 바랐다. 부는 다른 사람을 위해 사용해야 하며 그게 부자들의 도덕적 의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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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억만장자 찰스 척 피니가 자신의 전 재산을 기부하겠다는 목표를 마쳤다. 그가 지난 40년 동안 기부한 금액은 80억달러(약 9조4000억원)에 달한다고 포브스지가 15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찰스 척 피니(왼쪽)가 크리스토퍼 외츠질 애틀랜틱 필랜스로피 최고경영자(CEO)와 인터뷰하고 있다. /애틀랜틱 필랜스로피
피니는 전 세계에 매장을 둔 면세점 그룹 ‘DFS’(Duty Free Shoppers)의 창립자다. 1960년 면세점 창립 이후 큰 돈을 번 그는 평생 ‘살아있을 때 기부하자’는 좌우명을 갖고 살아왔다고 한다.
피니는 이 좌우명에 따라 자신의 자선 재단 ‘애틀랜틱 필랜스로피(Atlantic Philanthropies)’를 통해 전 세계 자선단체, 대학, 재단 등에 그간 80억달러를 기부했다. 그는 자신과 아내의 노후를 위해 재산 중 200만달러(약 23억5000만원)만 남겨뒀다.
‘평생의 사업’을 마친 피니는 14일 애틀랜틱 필랜스로피의 해체 문서에 서명했다. 그는 “나는 매우 만족스럽다. 내가 살아서 이 일(기부)을 마칠 수 있게 돼 아주 좋다”고 포브스지에 말했다. '줌'을 통해 진행된 재단의 해체식에는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과 마이크로소프트 창립자 빌 게이츠 등이 축전을 보냈다.
피니는 특히 많은 예산이 들지만 그만큼 영향력이 큰 사업에 큰 돈을 쾌척했다. 그는 베트남의 보건 체계를 현대화하는 사업, 뉴욕의 방치된 루즈벨트 섬을 과학기술의 허브로 바꾸는 사업 등에 수억달러를 기부했다.
피니는 애초 대부분의 기부 활동을 익명으로 해왔다. 하지만 그의 선행이 알려지며 빌 게이츠와 ‘투자의 귀재’라 불리는 워런 버핏에게도 영감을 줬다고 포브스지는 전했다. 버핏은 “피니는 우리 모두에게 귀감이 됐다. 그가 평생 동안 한 일을 따라잡으려면 내가 죽은 뒤로도 12년이 더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피니는 한국과도 인연이 있다. 그는 코넬대에서 호텔경영학을 공부하기 전 공군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마음의 소리를 들어주세요! (2023년 6월 28일 수요일)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한복음 4:14).
200여 년 전 오스트리아의 의사 아우엔브르거가 소리로 병을 진단하는 타진법(打診法)이라는 진단법을 알아낸 후 프랑스 의사 라에네크는 타진법보다 좀 더 정확하게 환자의 병을 진단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시소의 원통에 귀를 대고 소리를 듣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거기서 힌트를 얻어 1816년에 나무통으로 소리를 듣는 기구를 만들었습니다. 그것이 오늘날에도 의사들이 진단할 때 필수품으로 활용하는 청진기의 시초였습니다.
질병을 치료하는 의사들뿐만 아니라 우리도 살아가면서 사람들의 소리를 듣는 일을 잘해야 합니다. 특히 마음의 소리를 잘 들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유대 지방에 왔다가 주된 활동무대인 갈릴리로 돌아가실 때 사마리아 지방을 관통하면서 수가라는 동네에 이르셨습니다. 우물가에 앉아 있다가 한낮인 12시 무렵에 물을 길러 나온 한 여인을 만나셨습니다. 예수님이 그 여인과 대화하며 마음의 소리를 잘 들으셨습니다.
전에 남편이 다섯 명이나 있었고 지금도 남편 아닌 남자와 살고 있는(16-18절) 여인의 공허한 마음을 예수님이 놓치지 않으셨습니다. 물 길으러 오는 일이 힘들었던 여인의 상황으로 시작해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에 대해 말씀하시며 결국 하나님께 참된 예배를 드리는 일이 대화의 주제가 되었습니다. 메시야를 떠올린 여인에게 바로 자신이 메시야라고 밝히셨습니다(25-26절).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신 예수님이 수가 성의 한 사마리아 여인의 마음의 질병을 치료하셨습니다.
* 일하는 제자의 기도
저도 마음의 소리에 집중하겠습니다. 어떤 불편하고 고민스러운 점이 있는지 잘 파악해서 사람들의 마음을 치료하신 예수님을 배우게 하소서. (by 원용일 목사)
삶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기 위하여! (2023년 6월 27일 화요일)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찾았사오니 주의 계명에서 떠나지 말게 하소서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시편 119:9-11).
말씀 사랑을 주제로 한 176절에 달하는 긴 시가 시편 119편입니다. 이 시를 쓴 저자는 둘째 문단을 시작하면서 특히 청년에게 주목합니다.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이 질문에 대해서 시편 기자는 스스로 답을 말하면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크리스천 직업인들에게 적합한 대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현대 사회는 크리스천들이 깨끗함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을 정도로 죄악에 오염되어 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는 시편 기자가 제시하는 말씀에서 답을 찾아야 합니다.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 주의 계명에서 떠나지 않고 주의 말씀을 마음에 두면 범죄의 현장에 있어도 용기 있고 단호하게 죄악을 뿌리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는 방법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죄의 유혹을 이길 수 있는 경우는 없습니다. 다른 방법이 있다고 생각하며 장담하는 사람들은 십중팔구 죄의 유혹에 넘어지기 쉽습니다. 우리는 죄의 유혹을 이기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꼭 붙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삶 속에서 유혹받을 때 말씀이 작용하여 유혹을 이겨내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할 일이 있습니다. 평소에 말씀을 읽고 듣고 공부하고 암송해서 말씀의 원리와 내용을 알아야 합니다. 지식이 없이 유혹받는 순간에 말씀을 기억해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말씀 생활을 다시 한 번 점검합시다.
* 일하는 제자의 기도
하나님의 말씀만을 붙들어서 세상에서 당하는 여러 가지 죄의 유혹들을 이겨낼 수 있도록 성령님이 함께 해주소서. (by 원용일 목사)
남녀의 차이가 무엇이 중요한가? (2023년 6월 26일 월요일)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 그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이르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며 머물게 하니라(사도행전 16:14-15).
바울의 전도팀이 유럽에 첫 발을 내디딘 후 가장 먼저 만나서 복음을 전했던 사람은 루디아라는 여성 기업인이었습니다. 역사적인 의의가 있는 유럽 전도의 시작 무렵에 특히 여성이 회심했고 그 여성이 유럽의 첫 교회인 빌립보 교회의 중심인물이 되었다는 것은 놀랍습니다. 이렇듯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역을 이루어가는 과정에서 필요한 인물을 택하실 때 남자냐 여자냐 성 구별을 따지지 않고 정말 필요한 은사가 그에게 있는가 보시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루디아는 자주옷감 장사로서 부가가치가 높은 큰 규모의 사업을 했기에 복음 사역에 많은 기여를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당시 자주옷감은 매우 비싸서 귀족이나 고관들이 입는 옷을 만들었기에 여러 곳을 옮겨 다니면서 일했을 것입니다. 이런 루디아의 직업적 특성과 은사가 하나님께 유용하게 활용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남자인가 여자인가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쓰이도록 준비되었느냐 하는 점이 중요합니다. 물론 교회적이거나 사회적 편견이 장애가 될 수가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여성에게 특정한 직분을 주지 않기도 하며, 직장에서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특수한 역할은 맡기지 않는 불평등한 인사 조치를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제약들이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쓰임을 받는 것을 막지는 못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꼭 필요한 준비를 갖추고 있다면 루디아처럼 하나님께 사용될 기회를 얻을 날이 틀림없이 있을 것입니다.
* 일하는 제자의 기도
하나님께 유익하게 쓰임받기 위해 준비할 수 있도록 주님이 도와주소서. (by 방선기 목사)
고정관념을 깨뜨리라! (2023년 6월 24일 토요일)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이 이르기 전에 게바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그들이 오매 그가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매 남은 유대인들도 그와 같이 외식하므로 바나바도 그들의 외식에 유혹되었느니라(갈라디아서 2:12-13).
전 세계 가구업계 1위 기업인 이케아(IKEA)는 ‘저가격’을 핵심경영전략으로 삼아 고정관념을 깨뜨렸습니다. 부품의 소포장과 표준화로 가격을 낮추었고 운송과 조립을 고객이 하게 하는 발상의 전환으로 비용을 절감했습니다. 가격이 저렴해도 싸구려로 보이지 않는 세련된 디자인으로 차별화를 추구했습니다.
복음 전파에도 고정관념을 깨는 일이 필요했습니다. 사도 베드로가 이방 교회인 안디옥 교회를 방문하여 이방인 성도들과 교제하며 함께 식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무 문제없이 진행되던 식사 교제가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의 방문으로 문제가 되었습니다. 이방인과 식사하는 것은 유대인의 정결예법에 어긋나는 행동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예루살렘에서 온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제기할 수 있는 문제가 마음에 걸려 식사 자리를 벗어났습니다. 초대교회의 수장이며 그리스도의 복음에 가장 가까이에 있던 사도였던 베드로도 고정관념의 벽을 넘기가 쉽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우리 삶에 자리 잡은 고정관념들이 우리를 옥죄고 있습니다. 그러나 본질에 충실할 때 우리는 고정관념을 뛰어 넘을 수 있습니다. 싸고, 멋있으며, 튼튼한 제품을 원하는 고객들의 본질적 요구에 충실했기에 이케아는 세계 최대의 가구업체가 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신(엡 2:14) 복음의 본질에 집중한다면 유대인의 정결예식은 문제될 것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 삶을 감싸고 있는 고정관념을 뛰어넘기 위해 우리도 본질로 돌아갈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 일하는 제자의 기도
고정관념에 매몰되지 않고 말씀과 복음의 본질에 충실케 하소서. (by 정병한 목사)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2023년 6월 23일 금요일)
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이르되 주여 우리 눈 뜨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그들의 눈을 만지시니 곧 보게 되어 그들이 예수를 따르니라(마태복음 20:33-34).
예수님이 십자가 형벌을 감당하시기 위해 마지막으로 예루살렘 여행을 하시던 길이었습니다. 여리고를 거쳐 예루살렘으로 향하실 때 큰 무리가 예수님을 따르고 있었는데 난데없이 시각장애인 두 사람이 예수님을 향해 소리를 질렀습니다.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30절). 그 때 사람들이 조용히 하라고 꾸짖었지만 그들은 계속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머물러 서서 그들에게 질문하셨습니다.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예수님께 불쌍히 여겨 달라고 소리를 질렀다면 눈 뜨기를 원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주님은 물으셨습니다. 대답을 기대하셨습니다. “우리 눈 뜨기를 원하나이다.”라는 대답을 듣기 원하셨습니다. 그들이 소리 지르는 그 목소리에서 이미 믿음을 보신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을 확인하고 싶으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질문하셨습니다.
두 시각장애인들의 입장에서는 예수님께 소리를 지르는데 예수님이 “머물러 서”(32절)실 때까지만 소리를 지르면 되었습니다. 보통 우리는 주님께 우리의 안타까운 사정을 아뢰면서도 계속 간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까? 언제까지 소리 지르면 됩니까? 주님의 응답이 있을 때까지 소리 지르면 됩니다. 그 지속과 인내의 시험을 통과해야 아름다운 응답의 열매를 맛볼 수 있습니다.
* 일하는 제자의 기도
주님이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고 물으신다면 간절한 소원을 아뢰겠습니다. 저도 영적 눈을 떠서 하나님의 나라를 보게 하소서. (by 원용일 목사)
공동체적 자기 계발, 함께 자라감! (2023년 6월 22일 목요일)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에베소서 4:15-16).
현대 사회의 많은 직장인들은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고 자기 계발한다는 것을 으레 남보다 나아야 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나친 경쟁심에 시달리기 쉽습니다. 심지어는 교회들끼리도 성장을 위해서는 서로 경쟁을 해야 하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영적인 성장에서도 묘한 경쟁 심리가 작용할 때가 있습니다. 물론 자기 발전을 위해서 경쟁하는 것 자체는 필요합니다. 그러나 누군가를 넘어뜨려야만 자신이 발전할 수 있다는 생각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진정한 성장은 공동체 안에서 함께 성장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거나 독서를 하고 싶지만 혼자서는 안 될 때 함께 모여서 서로에게 힘을 주면서 동기 유발을 하여 목적을 달성할 수 있습니다. 이 때 책을 읽지 않으면 벌금을 내게 한다든가 여러 가지 방법으로 동기를 부여하는 지혜를 발휘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남이 하지 않아야 내가 많이 할 수 있다는 ‘승-패’의 전략이 아니라 모두 다 잘할 수 있는 ‘승-승’의 전략입니다.
이런 경쟁이야말로 공동체를 참되게 성장시키는 요인입니다. 직장 속에서도 동료들 간이나 부서들 간에, 혹은 동종 경쟁 업체 간에도 모두 승리할 수 있는 전략을 세워 일해 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성장이고 함께 승리하는 비결입니다.
* 일하는 제자의 기도
우리의 일터에 혼자 살아남기 위한 치열함이 아니라 함께 살기 위한 협력의 분위기가 넘치게 도와주소서. (by 방선기 목사)
먼저 사과합시다! (2023년 6월 21일 수요일)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태복음 5:23-24).
아무리 좋은 관계를 가지고 있더라도 직장 생활이나 인간관계 속에서 갈등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사람들 간에 꼬인 관계의 문제가 풀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처음에 문제가 생긴 것을 알았을 때 바로 깨닫고 간단히 사과했으면 생기지도 않았을 경우가 많습니다.
금방 사과하면 문제없이 해결될 수 있을 일인데도 왜 사과하지 못할까요? 아마도 자존심 때문인 경우가 많을 것입니다. 자존심 때문에 사과하려고 하지 않고 또 사과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을 알고 있어도 사과를 미루곤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도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생각나면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또한 사람들이 사과를 하기 힘들어 하는 이유는 사과하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과의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사람들은 어려워합니다. 그러나 비록 힘들지라도 한 번 꾹 참고 사과하면 잃은 자존심보다 훨씬 큰 기쁨을 얻을 수 있습니다. 잘못을 인정하면 사람들이 자신을 무능력하다고 볼 것을 염려하기도 합니다만 꼭 그런 것도 아닙니다. 먼저 사과하는 사람을 오히려 용기 있다고 평가해줄 것입니다. 오늘 우리 시대에 그렇게 사과하는 사람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용기 있게 사과하여 큰 기쁨을 얻는 사람이 되지 않으시겠습니까? 아직 사과하지 못한 사람이 있습니까? 더 늦지 않도록 사과합시다!
* 일하는 제자의 기도
힘들어진 관계 문제의 원인을 잘 파악하여 제가 먼저 사과할 수 있는 용기를 주소서. 진정한 사과로 화목한 관계가 되도록 인도해 주소서. (by 원용일 목사)
리더의 참된 권위 (2023년 6월 20일 화요일)
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이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역대상 29:11-12).
아이들이 자라는데 부모의 사랑과 함께 꼭 필요한 것이 부모의 권위입니다. 흔히 권위를 부정적으로 보기 쉬운데 사람들에게 해가 되는 것은 ‘권위주의’이지 권위 그 자체가 아닙니다. 권위는 가정이나 교회나 직장 등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나 조직체를 유지하기 위해서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그런데 그런 권위가 종종 권위주의로 변질이 되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 원인은 권위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거나 종종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한 나라의 통치자로서 자기에게 주어진 권위를 가지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통치하는데 사용했지만 그 권위가 전적으로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임을 철저하게 고백했습니다. 다윗은 자기에게 주어진 권력이나 영광, 그로 인해 얻게 된 각종 부와 영향력들이 다 하나님께 나왔음을 고백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이런 찬양을 마음속으로부터 진정으로 드릴 수 있는 지도자가 참으로 권위 있는 지도자입니다. 그런 지도자들만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외적인 힘이나 위협으로 사람을 움직이는 리더십과는 확연히 구별됩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는 절대 주권을 이해하고 믿을 때 현재의 지위에 관계없이 이런 참다운 권위를 가질 수 있습니다.
* 일하는 제자의 기도
참된 권위를 가진 리더가 되게 하소서. 우리의 리더들이 다윗과 같은 리더십을 가질 수 있게 인도해주소서. (by 방선기 목사)
부조도 미션이 될 수 있다면… (2023년 6월 19일 월요일)
바나바와 사울이 부조하는 일을 마치고 마가라 하는 요한을 데리고 예루살렘에서 돌아오니라(사도행전 12:25).
신실한 크리스천일수록 하나님의 일을 하고자 하는 열망이 강합니다. 그
러나 아쉽게도 뿌리 깊은 이원론의 영향으로 하나님의 일을 ‘종교적인 일’
혹은 ‘교회 일’로 국한시키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러다보니 세상일이라 치부되는 직장 일은 소홀히 하는 것입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신실한 크리스천들은 교회에서는 견고한 입지를 다지게 되지만
일터에서의 입지는 좁아지거나 사라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바나바와 사울(바울)이 기근으로 어려움을 당하고 있던
예루살렘 교회에 부조금을 전달하고 안디옥 교회로 돌아가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주로 이방인들로 구성된 안디옥 교회는 큰 흉년으로 어려움에 처한 예루살렘 교회를 돕기로 결정했습니다(행 11:29-30). 그리스도의 형제애가 부조(扶助)로 발휘된 것입니다. 이때 영어 성경들은 부조금을 전달한 일을 “mission”(NIV) 혹은 “ministry”(KJV)라고 표현합니다. 부조금 전달이 ‘사역’이었다는 것입니다.
이 장면을 일터 그리스도인들은 일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생계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상 통치를 대리하는 사명으로 인식해야 합니다. 부조금 전달이 사명이 될 수 있다면 우리가 수행하고 있는 업무도 사명이요 하나님의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직업인으로서 우리가 하는 일에 하나님을 예배하는 가치와 열심을 부여한다면 그 일은 미션과 봉사와 하나님의 일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오늘도 그 하나님의 일을 실천해 보십시오.
* 일하는 제자의 기도
지금 하는 일에 가치와 의미를 부여한다면 그 일이 하나님의 일임을 깨닫게 도와주소서. 그 일을 주님께 하듯이 감당하게 하소서. (by 정병한 목사)
“당신을 보고 하나님을 느꼈소! (2023년 6월 18일 주일)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라 내 나라 관할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다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할지니 그는 살아 계시는 하나님이시요 영원히 변하지 않으실 이시며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그의 권세는 무궁할 것이며 그는 구원도 하시며 건져내기도 하시며 하늘에서든지 땅에서든지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 는 이로서 다니엘을 구원하여 사자의 입에서 벗어나게 하셨음이라 하였더라(단 6:25-27).
직장에서 고사에 참석하라는 윗사람의 지시를 어기고 신앙을 지켰던 직장인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그를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그 윗사람이 나중에 종교에 관심을 갖게 되었을 때 지시를 어기고 신앙을 지켰던 그 사람의 신앙을 귀하게 생각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결국 그 윗사람은 자기의 지시를 거부한 부하직원을 통해서 교회에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다니엘이 하나님이 보여주신 놀라운 역사를 조서에 담아 발표한 다리오 왕에게 미친 영적 영향력과 견줄 만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우상을 섬기던 대제국의 왕 다리오에게 여호와 하나님은 낯선 존재였습니다. 다니엘을 통해서 그분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리오 왕에게 있어 아직은 ‘자기의 하나님’이 아니라 ‘다니엘의 하나님’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하나님이야말로 참된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다니엘이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사자 굴에 들어가기를 감수했던 사건이 다리오 왕에게 이런 변화를 가져다주었습니다. 직장에서 신앙 때문에 어려움을 당할 때 정말 힘이 드시지요? 그런데 언젠가 당신이 겪는 그 일로 인해 다리오 왕 같은 사람이 나타날 것을 기대해보십시오. 복음의 열매에 대한 기대가 직장에서 더욱 용기 있는 생활을 할 수 있게 합니다.
* 일하는 제자의 기도
제가 일하는 일터에서 누군가 나중에 저의 이름을 넣어 “000의 하나님”을 찬양한다고 고백하게 하소서. 저를 보고 하나님을 느끼기를 원합니다. (by 방선기 목사)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라 내 나라 관할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다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할지니 그는 살아 계시는 하나님이시요 영원히 변하지 않으실 이시며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그의 권세는 무궁할 것이며 그는 구원도 하시며 건져내기도 하시며 하늘에서든지 땅에서든지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 는 이로서 다니엘을 구원하여 사자의 입에서 벗어나게 하셨음이라 하였더라(단 6:25-27).
직장에서 고사에 참석하라는 윗사람의 지시를 어기고 신앙을 지켰던 직장인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그를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그 윗사람이 나중에 종교에 관심을 갖게 되었을 때 지시를 어기고 신앙을 지켰던 그 사람의 신앙을 귀하게 생각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결국 그 윗사람은 자기의 지시를 거부한 부하직원을 통해서 교회에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다니엘이 하나님이 보여주신 놀라운 역사를 조서에 담아 발표한 다리오 왕에게 미친 영적 영향력과 견줄 만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우상을 섬기던 대제국의 왕 다리오에게 여호와 하나님은 낯선 존재였습니다. 다니엘을 통해서 그분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리오 왕에게 있어 아직은 ‘자기의 하나님’이 아니라 ‘다니엘의 하나님’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하나님이야말로 참된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다니엘이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사자 굴에 들어가기를 감수했던 사건이 다리오 왕에게 이런 변화를 가져다주었습니다. 직장에서 신앙 때문에 어려움을 당할 때 정말 힘이 드시지요? 그런데 언젠가 당신이 겪는 그 일로 인해 다리오 왕 같은 사람이 나타날 것을 기대해보십시오. 복음의 열매에 대한 기대가 직장에서 더욱 용기 있는 생활을 할 수 있게 합니다.
* 일하는 제자의 기도
제가 일하는 일터에서 누군가 나중에 저의 이름을 넣어 “000의 하나님”을 찬양한다고 고백하게 하소서. 저를 보고 하나님을 느끼기를 원합니다. (by 방선기 목사)
광야 길 40년의 목적 (2023년 6월 17일 토요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신명기 8:2).
이스라엘 백성은 출애굽에는 성공했으나 가데스 바네아에서 있었던 가나안 정탐 보고 대회에서 불신앙을 드러내었습니다. 그래서 광야를 40년 동안 헤매는 징계를 받게 됩니다(민 14:33-34). 그러나 광야 40년은 징계의 시간뿐 아니라 이스라엘을 위한 훈련의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신명기 말씀은 광야 40년의 시간이 이스라엘 백성을 낮추시어 겸손을 배우고 익히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또한 그들을 시험하여 그들 마음속에 하나님이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지 이방 신들이 차지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신앙 성숙의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극한의 고통과 외로움의 시간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을 준수하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한마디로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40년은 이스라엘 백성의 성숙을 위한 시간이었던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여정을 광야 40년으로 비유하여 말합니다.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골 1:13)겨 가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걸어가는 인생 여정의 목적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경험했던 광야 40년과 같습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기 위해 그리스도인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흔들리지 않아야 하고 겸손하게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훈련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이 훈련의 시간은 이제 더 이상 눈물과 고통의 시간이 아닙니다. 우리를 성숙시키려고 하나님이 준비하신 사랑의 시간입니다.
* 일하는 제자의 기도
지금 경험하는 고통과 고난에 무릎 꿇지 않고 우리를 성숙으로 이끄시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나아가게 인도하소서. (by 정병한 목사)
생각지 않은 곳에 가서도 전도! (2023년 6월 16일 금요일)
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말하여 이르되 일어나서 남쪽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사도행전 8:26-28).
일터에서 동료들과 한참 친해져서 교회로 인도할 수 있을 때쯤 되었는데 느닷없이 다른 근무지로 옮겨가거나 아예 퇴사해 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당황하게 됩니다. 그때 초대 교회의 전도자 빌립 집사의 심정을 이해해보십시오. 사마리아에서 놀라운 복음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를 사람도 없는 광야로 불러내셨습니다. 빌립의 입장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회심하는 놀라운 역사의 현장에서 주역으로 활동하고 싶지, 사람도 없는 곳으로 가라는 명령에 순종하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빌립은 순종해서 갔으며 그곳에서 에디오피아의 모든 국고를 맡은 관리인 내시를 만나 그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27-39절). 그 일은 아프리카 선교의 씨앗을 뿌리는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이렇게 역사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직장에서 전직이나 퇴직 등으로 인해서 변화되는 상황에 대해서 너무 불평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어떤 상황을 통해서도 복음이 전파되기를 원하시며 또 그렇게 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광야로 향하면서 빌립이 어떤 마음을 가졌을지 생각해봅니다. 그는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계획을 잘 몰랐기 때문에 답답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복음에 갈급하던 에디오피아 내시를 만나고 그에게 복음을 전한 후에 다시 돌아오던 빌립의 마음이 어땠을지 생각해보십시오. 그는 아마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에 감탄하며 자기를 사용하신 주님께 감사드렸을 것입니다.
* 일하는 제자의 기도
직장에서 생각지 않은 곳으로 가게 되었을 때에도 빌립을 광야로 인도하신 하나님을 기억하게 하소서. (by 방선기 목사)
고통받는 사람의 아픔에 공감하는가? (2023년 6월 15일 목요일)
그의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키느냐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그가 이르되 그대의 말이 한 어리석은 여자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하지 아니하니라(욥기 2:9-10).
동방의 부호요 영적 거장이던 욥에게 하루아침에 재앙이 임했습니다. 열 명의 자녀들이 한꺼번에 죽었고 모든 재산을 다 잃었습니다. 욥의 몸에는 극심한 피부병이 생겼습니다. 사탄이 하나님의 허락을 얻어 욥을 시험한 이 재앙들은 사실 욥뿐만 아니라 아내도 함께 겪는 것이었습니다. 욥의 가족 중 성한 존재는 그의 아내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여인, 욥의 아내가 하는 말을 좀 들어보십시오.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키느냐?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하나님 앞에서 욥이 정직하고 의로운 사람임을 욥의 아내가 모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남편의 경건을 의심하며 저주하던 욥의 아내는 이후 더 이상 욥기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그 여인은 욥의 곁을 떠났을 것입니다. 욥은 그의 아내에게 이렇게 반문했습니다. “그대의 말이 한 어리석은 여자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10절).
남편이 고통당할 때 함께 고통을 나누면서 위로하고 격려했어야 할 욥의 아내의 행동은 악처의 전형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고통의 때에 더욱 하나 되어 아파하며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사람이 진정한 부부입니다. 비단 부부만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인간관계에서나 이 원리는 적용되어야 합니다. 고통 받는 사람이 있다면 그의 아픔에 공감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우리의 일터에도 있지 않나 돌아봅시다. 그들과 고통을 함께 하기 위해 노력합시다.
* 일하는 제자의 기도
고통 받는 사람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게 인도해 주소서. (by 원용일 목사)
말씀을 실천해야 할 때! (2023년 6월 14일 수요일)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호세아 4:6).
19세기 말에 복음이 전래된 우리나라 선교 역사의 독특한 특징 하나를 알고 있습니까? 1885년 4월 5일, 부활주일에 제물포를 통해 한국에 첫 공식 선교사로 입국한 아펜젤러와 언더우드 목사 두 사람은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일본에서 이수정이 발간한 「현토한한 신약성경」을 가지고 입국했기 때문입니다. 한자에 토를 달아 조선 사람들이 신약 성경을 읽도록 한 성경이었습니다.
그러나 두 선교사들이 복음을 전하면서 놀라운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이미 번역된 한글 성경이 전국에 퍼져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주 지방에서 존 로스 목사나 맥킨타이어 목사 등이 한글로 번역한 쪽 복음들(「예슈셩교젼서-루가복음」 등)이 권서(勸書)들을 통해 판매되어 전국 방방곡곡에서 읽히고 있었습니다. 1882년에 이미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이 출간되었고 1887년에는 신약이 완간되었습니다. 선교사가 공식적으로 입국하기 전에 그 나라 말로 번역된 성경이 보급되어 읽히는 일은 세계 선교 역사상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오늘 우리 한국 교회 성도들은 성경은 많이 가지고 있고 성경을 보고 설교를 듣기는 하는데 말씀대로 살아가려는 노력은 제대로 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심각한 한국교회 병은 바로 이렇게 말씀과 괴리된 삶을 사는 것 아니겠습니까. 만약 이런 현상을 그대로 둔다면 호세아 선지자의 지적대로 우리는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자녀들이 하나님께 잊히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씀을 실천하는 삶이 오늘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 일하는 제자의 기도
말씀을 읽고 듣고 공부하여 실천할 수 있게 도와주소서. (by 원용일 목사)
성령 충만을 점검하라! (2023년 6월 13일 화요일)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을 받으라(에베소서 5:18).
자동차를 운전하다 보면 타이어에 이상이 생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심각한 고장이 아니라면 핸들이 조금 흔들리는 것이 느껴지거나 소음이 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증상을 빨리 알아채서 공기를 더 주입하든가 펑크가 난 타이어를 교환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증상이 있는데도 귀찮다고 무시하거나 모르고 그냥 달리다보면 치명적인 사고를 당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영적인 생활에도 이와 비슷한 점이 있습니다. 영적으로 점점 고갈되어 충전되지 않으면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는 신호가 오는데도 정신없이 일에 파묻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열심히 하고 있다는 자부심과 자신의 성실성에 대한 대견함에 취해 자신의 영적 상태를 깨닫지 못하는 수도 있습니다. 그저 일만 열심히 하면 되는 줄로 생각합니다. 초보 운전자들이 타이어에 펑크가 난 것을 모르고 계속 달리다가 결국 타이어를 못 쓰게 만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뭔가 아쉬운 점이 있으나 그냥 일하고 살아갈 수 있으니 마냥 달리다가 영적으로 완전히 피폐해져서 회복이 어려운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늘 영적으로 문제가 없는지, 성령으로 충만한지 우리 자신의 영적 상태를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바울이 성령의 충만을 술 취함과 비교하고 있는 것과 같이 자신의 상태가 술 취함인지 성령의 충만함인지도 확인해야 하겠습니다. 무엇에 충만해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 일하는 제자의 기도
성령의 충만함을 받게 저를 인도해 주소서. 늘 자신을 돌아보고 주님의 요구에 합당한 삶을 살고 있는지 확인하게 도와주소서. (by 방선기 목사)
누구의 눈치를 보고 있습니까? (2023년 6월 12일 월요일)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고 선량한 일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복을 받고 그 땅에 들어가서 여호와께서 모든 대적을 네 앞에서 쫓아내시겠다고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아름다운 땅을 차지하리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으니라(신명기 6:18-19).
운전을 하다가 교통 경찰관을 만나면 자신도 모르게 위축됩니다. 잘못도 없지만 무의식중에 눈치를 봅니다. 기업도 고객을 향해 눈치를 잘 봐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종잡을 수 없는 고객의 니즈와 선호에 대해 예민한 감각으로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어야 합니다. 기업이 고객에게 집중하여 발 빠르게 행동하면 고객들은 아낌없이 자신들의 주머니를 열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고객의 니즈와 선호를 반영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큰 기업이라 할지라도 시장에서 도태되고 말 것입니다.
눈치 보는 것이 긴요하지만 누구의 눈치를 보느냐라는 문제는 좀 더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선거철만 되면 표를 의식하는 정치인들은 유권자의 눈치만을 보겠다고 공약하지만 그들의 공약이 빈말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다.
모세는 신명기에서 가나안에 입성할 이스라엘 백성들이 누구의 눈치를 보아야 하는지 교훈합니다. 가나안의 수많은 잡신들에 현혹되어 좌로나 우로나 치우지지 말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만 눈치 보며 살아가야 할 것을 명령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기준에 맞춰 “정직하고 선량한 일을 행”할 때 하나님으로부터 복과 함께 약속하신 땅을 받을 수 있습니다. 크리스천 직업인들은 고객의 눈치뿐만 아니라 상사, 동료 등의 눈치도 잘 봐야합니다. 그렇지만 우선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눈치를 보아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고 선량한 일을 잘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 일하는 제자의 기도
오늘 맞닥뜨리는 상황들 속에서 먼저 하나님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갈 수 있게 도와주소서. (by 정병한 목사)
주님이 곁에 계시니 두렵지 않습니다! (2023년 6월 11일 주일)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였더라(마가복음 4:39-41).
예수님이 제자들을 데리고 갈릴리 호수 반대편으로 가자고 하셨을 때 큰 풍랑이 일어나고 배가 부서질 지경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예수님은 배 안에서 주무시고 있었습니다. 당황한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우면서 야단이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잠에서 깨신 후 바람을 꾸짖어 잠잠하게 하셨고 제자들을 향해서도 믿음이 없어 무서워한다고 꾸짖으셨습니다.
제자들은 믿음이 없었기 때문에 무서워했습니다. 이 뱃길 여행은 예수님이 주도하신 여행입니다(35절). 예수님이 인도자가 되시는 길에서 당하는 고난은 의미가 있습니다. 또한 그 어려움을 능히 예수님이 해결해주실 것도 너무나 분명합니다. 그러니 예수님이 편안히 베개를 베고 주무시고 계신 상황에서(38절) 죽는다고 호들갑을 떠는 제자들에게는 믿음이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예수님이 주도하시는 인생길을 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겪는 어려움에 대한 관점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어려움이 없지 않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뱃길을 가던 제자들에게도 죽을 뻔한 위기가 있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그런 위험한 순간에도 예수님은 늘 우리 곁에 계십니다. 그 분이 위기를 해결할 능력을 가지신 분입니다. 그 분이 해결하시게 하기만 하면 우리는 안심할 수 있습니다.
* 일하는 제자의 기도
어려움이 있는 인생길을 살지만 예수님이 제 곁에 계시다는 사실을 믿게 하소서. 세상 한 복판에서도 두려움 없이 살게 하소서. (by 원용일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