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읽는 자세 (김혜윤 수녀)
성경을 공부하면서 우리가 탐구해야 할 최종 대상은, 성경이라는 책 자체나 이스라엘의 역사가 아니다. 사실 아브라함과 모세가 무엇을 했는지를 속속들이 아는 것이 지금, 여기에서 실존하고 고뇌하는 나의 삶과 무슨 관련이 있단 말인가? 그런 지식은 나의 궁극적인 삶과 아무런 관련을 맺지 못하는 그들만의 이야기일 수 있다. 요한복음 저자가 사도 요한이었는지 다른 사람이었는지, 계약의 궤가 아카시아 나무로 만들어졌는지 오동 나무로 만들어졌는지는 우리에게는 아무런 구체적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는 무기력한 지식일 수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성경에 대한 잡다한 정보를 많이 머릿속에 입력해 두는 것이 곧 성경 공부의 주된 목적인 양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성경은 천 년이 훨씬 넘는 장구한 문헌화 과정과 여러 저자의 손을 거쳐 완성된 산물이다. 그러한 성경이 제시하는 하느님은 그분의 속성상 절대로 인간의 인지 기능을 통해 완벽하게 인식될 수 있는 분이 아니시다. 사실 아무리 난해한 학술 서적이라도 평생을 바쳐 연구하면 통달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성경은, 단어 하나하나가 성령의 감도로 쓰인 책이기에 아무리 뛰어난 지성의 소유자라고 해도 인간의 지혜로는 천상의 언어를 따라잡을 수 없다.
성경 공부를 아무리 많이 해도 우리 주변이 하느님 나라가 되지 못하고, 세상이 고학력 사회가 되어도 삶의 질이 개선되지 않는 근본적 이유는, 세상의 교육이 정보information만 있었지 그것이 인간으로서 진정한 꼴을 갖추게 하는 양성*형성formation으로는 승화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교육의 진정한 완성은 정보information을 통해 교육의 대상자가 형성*양성formation되고 이를 통해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는 변화*전이transformation가 이루어질 때 이루어진다. 우리말의 ‘아름답다’라는 말은 ‘앎답다’라는 말에서 파생되었다고 한다. 아름다움이 단순히 외적인 미모나 멋짐에 있지 않음을 잘 드러낸다고 하겠다. 삶을 살아가면서 터득하고 깨닫게 되는 진리가 진정으로 나를 새롭게 형성*양성formation 해 갈 때, 우리는 진정한 앎을 가지고 있는 이름다운 존재로 변화*전이transformation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으면서 진정한 탐색 대상으로 삼아야 할 것은 성경이라는 책 자체가 아니라, 성경 속 인물들이 어떻게 하느님을 만나고, 체험했는지를 앎으로써, 그것을 통해 내 삶에 존재하시고 나를 인도하시는 하느님을 직접 만나고 체험하기 위해 성경을 읽는 것이다.
‘성경 여행 스케치’ 중에서 우리가 때때로 간과하는 ‘성경에 접근하는 자세’를 저술한 내용을 다시 되새기며 초심으로 돌아가기 위해 다음과 같이 인용한다.
* 김혜윤 수녀님의 '성경여행 스케치'에서 발췌하였습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