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이름에서 한자를 떼어내는 개명 신청 허가 판결
한글 이름짓기 운동가 이봉원님이 제출한 개명 신청
지난 5월 7일자로 한말글 이름짓기 운동가인 이봉원(한말글 이름의날 법정 기념일 제정 위원회 위원장)님이 수원지방법원에 한자 이름 李鳳遠에서 한자를 쓰지 않고 한글로 ‘봉원’이라고 쓰게 해달라는 개명 신청서를 냈는데 6월 19일자로 신청을 허가한다는 판결(판사 )이 났다고 한다. 이제 한자 이름이라도 호적이나 주민등록증에서 한자를 떼어버리고 한글만 쓸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지금까지 한자 이름을 버리고 민한글 이름으로 개명 신청을 해서 허가 판결이 난 일은 있으나 평소 쓰는 한자 이름에서 한자를 버려도 된다는 개명 신청을 한 일도 처음이고 허가 판결이 난 일도 처음이다.
앞으로 한글학회 회장이나 한글단체 장들부터 한글만 쓰는 개명 신청을 해서 한글만 쓰도록 하고 더 나아가서 우리 호적이나 이름은 한글만 쓰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마 머지않아 그런 세상이 될 것이다.
[이봉원님 편지]
나는 2007년 5월 7일에 수원지방법원에 개명 신청서를 제출했는데 6월 19일 자로 허가됐다는 반가운 결정문[파일 덧붙임]를 받았습니다. 아마도 한자이름에서 한자만을 떼어 버리는 이런 식의 개명은 제가 처음일 터. 이제 남은 과제는, 호적에서 반드시 한자를 병기해야 하는 성과 본관까지도 한자 없이 한글로만 적게끔 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이참에 한말글 운동가들은 누구나 우리말 이름으로 바꾸든지 아니면 저처럼 모두 '한자이름을 한글로만 적는' 개명 신청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명분이 설 게 아닙니까?
지금까지는 한자이름에서 한자만 떼어 버리는 한글이름 개명 신청이 법원에서 허가되지 않을 것이란 선입견이 있어 다들 생각을 못하거나 주저했지만 이번에 제가 받은 판결로 그 일이 가능하게 됐으니 더는 머뭇거릴 까닭이 없어졌습니다.
사실 요즘 한자이름은 호적이나 주민등록증에서만 볼 수 있지요. 일상생활에서 전혀 필요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한국인의 자존심만 상하게 하는 이름의 한자 표기는 이 땅에서 영원히 추방해야 합니다. '성' 또한 한글로만 적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새로 태어나는 아기의 이름은 아름다운 한말글(우리말과 한글)로 지어야 합니다.
- 얄라 이봉원
(한말글 이름의 날 법정 기념일 추진 위원장)
개명신청 이유
판사님, 안녕하십니까?
저는 대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40년이 넘도록 한글만쓰기 운동을 해 왔습니다. 특히 사람 이름부터 한자로 적지 말고 한글로만 적고, 새로 태어나는 아이의 이름은 되도록이면 우리 토박이말로 짓기를 국민들께 호소하는 운동을 펴 왔습니다. 그러면서도 정작 제 이름은 한자 이름을 지금까지 그대로 써왔습니다. 용기가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엔 이름을 반드시 한자로 지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또 이름을 한자로 적지 않는다고 해서 사회생활을 하는 데 불편이 전혀 없습니다.
어차피 이름에는 동명이인이 있을 수밖에 없고, (한자 이름이나 한글 이름, 영어 이름도 마찬가지) 우리나라 사람들은 주민등록번호란 게 있어서 사람 구별도 잘됩니다.
한자 이름은 전래돼 온 관습일 뿐이고, 현대 사회에서는 결코 필수적인 게 아닙니다. 저 역시 한자 이름을 부모님한테서 받았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 한자로 이름을 적는 경우는 이따금 공문서를 제외하고는 거의 없습니다. 소설가나 방송작가로서 또 연출가나 직장인으로서도 저는 제 이름을 사용할 때 언제나 한글로만 이 봉원이라고 적었고, 남들도 제 이름이 한자로는 어떻게 되는지 알지를 못합니다. 아니 그럴 필요가 없는 것이지요.
그런데 한 가지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은, 제가 날마다 지니고 다니는 제 주민등록증에는 한글 이름 옆에 한자가 적혀 있습니다. 그것을 볼 때마다 저는 수치심을 느낍니다. 떳떳한 자주 독립 국가의 국민으로서, 왜 남의 나라 글자로 이름을 적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중국 사람은 제 이름을 리 펑 왠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한참 전에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주민등록증에 이름이 한자로만 적히던 시절, 제 주민등록증에는 오랫동안 내 이름이 아닌 남의 이름이 적혀 있었지요. 그러니까 鳳(봉)자여야 하는데, 風(풍) 자가 적힌 채 발급됐던 것입니다. 물론 저는 잘못된 줄 모르고 오랫동안 그것을 사용했고, 그 뒤로 어느 정부 기관에서도 제 주민등록증이 잘못됐다고 지적한 적이 없었지요. 그런 중에 제가 중국에 가서 중국 간체자를 대면한 순간 제 이름이 잘못됐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됐습니다. 제 이름 가운데 글자 鳳을 어느 유식한(?) 동사무소 직원이 약자랍시고 風자의 약자를 쓴 것입니다. (? 속에 又를 쓰면 그런 대로 鳳의 간체자가 되는데, 획이 하나 없는 X 자를 썼기 때문에 風의 약자(간체자)가 돼 버린 것.)
이제 60세가 막 넘은 저는 여생을 바쳐 한말글 이름의 날을 정해 그것을 법정기념일이 되게 하는 일을 펼치고자 합니다. 그리고 이때를 계기로 한자로 된 제 이름을 버리고 싶습니다.
제가 활동하는 사회 단체나 저의 작품을 읽어 주는 독자들, 그 밖에 저를 아는 모든 지인은 제 이름이 한자로 어떻게 적는지 전혀 관심이 없고 또 아는 이도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제가 제 이름에서 한자를 빼어 버린다고 해서, 제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남에게 피해를 줄 리도 없고 또 남들도 전혀 혼란을 느끼거나 불편해할 리가 없습니다.
사실 저는 한동안 제 이름을 순 우리말로 바꿀까도 생각해 봤습니다. 하지만 이 나이에 그것은 남에게 다소 혼란을 줄 수가 있고, 또 이것저것 다 고치려면 매우 번거롭기도 할 것 같습니다. 더욱이 저는 제 이름으로 창작생활을 하고 있고, 지금도 공적인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 가지 방법을 찾았습니다. 한글 이름으로 개명은 하되, 제 정체성이 흔들리지도 않고 남에게 피해나 불편을 전혀 주지 않으면서, 제가 평생 사업으로 펼치고 있는 한글 이름 쓰기 운동의 길잡이로서 떳떳이 남 앞에 나설 수 있는 한 방법을 말입니다.
그것은 제 이름을 한자에서만 벗어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다시는 한자를 적을 필요가 없는 오로지 한글로만 적을 수 있는 이름입니다. 비록 발음은 같을지나 한자가 없는 소리글자 봉원은 한자 이름 鳳遠과는 엄연히 다른 이름이고, 따라서 이것은 개명이랄 수 있습니다.
판사님, 부디 제 청원을 거두어 주시어, 40여 년 동안 저를 짓눌러온 굴레에서 저를 벗어나게 해 주십시오. 그리고 홀가분하고 떳떳하게 한말글 운동을 계속 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2007년 5월 7일
신청인 이 봉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