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nnifer Paige (제니퍼 페이지)
1990년대 후반의 여성 틴 팝 뮤직은 브리트니 스피어스(Britney Spears)와 크리스티나 아길레라(Christina Aguilera)에 의해 전 세계로 유통되었지만, 그들이 선구자는 아니었다. 이 '영 사운드'의 물꼬를 튼 여가수는 1998년 'Crush'라는 싱글로 혜성처럼 등장했던 제니퍼 페이지(Jennifer Paige)였다. '1990년대의 가장 중요한 싱글 중 하나'라는 음악 매체의 극찬을 얻어내며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던 'Crush'로 제니퍼 페이지는 단숨에 팝 스타의 반열에 올라섰다. 그녀는 그러나 틴 팝이라는 조그만 범주에만 갇혀있는 것을 거부했다. 데뷔작의 수록곡 'Crush'와 'Get to me'에서 보여준 가능성은 그녀에게 브리트니와 크리스트니도 감히 얻지 못했던 '디바'라는 칭호를 붙여줬다. 'Crush'로 틴 팝의 시그널을 울림과 동시에 마침표를 찍은 것이다. 미국 조지아(Georgia)주 애틀랜타(Atlanta)에서 태어난 제니퍼 페이지는 불과 8살이라는 어린 나이 때부터 오빠 챈스 스코진스(Chance Scoggins)와 듀오를 결성하며 음악의 길로 발을 들여놓았다. 커피숍, 클럽 등지의 소규모 공연장에서 음악에 대한 기초 과정을 착실히 이수한 페이지는 이후 크리스털 버나드의 눈에 띄어 로스앤젤레스(Los Angeles)로 보금자리를 옮겼다. 조의 밴드(Joe's Band) 멤버로 팀웍을 익힌 때가 이 시기이다. 1996년 중반, 그녀에게 커다란 전환점이 찾아왔다. 프로듀서 앤디 골드마크(Andy Goldmark)와 조우하며 자신만의 작품을 선보일 수 있는 기회를 잡은 것이다. 그와의 첫 녹음작인 'Chain of fools'의 디스코 버전이 인기를 얻으면서 독일 인디 레이블 이델(Edel)의 러브콜을 받아냈다. 2년 뒤, 앤디 골드마크의 감독 아래 등장한 셀프 타이틀 데뷔작 그리고 3년이 지난 뒤, 제니퍼 페이지는 2집 |
출처: 간판쟁이의 유람선 원문보기 글쓴이: 항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