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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와 사랑을 나누는 사람들의 모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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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우포럼,No.6870] | |
<언론문화포럼 ‘금주의 칼럼’-9>
전통으로부터 숭례문 구하기
성혜영: 한국언론문화포럼 논설위원, 박물관 칼럼니스트
수술대에 올랐던 숭례문 이야기가 점입가경이다. 숭례문을 사람이라고 가정해 보자. 국보, 그것도 1호. 문화재의 대통령이라 할 ‘그분’이 불의의 화재로 치명상을 입었다. 내로라는 명의, 자타가 공인하는 사계의 권위자들이 모여 부러진 팔이며 다리를 접합하거나 새로 끼워 맞추고 전신성형을 했다. 온 나라가 물심양면으로 지원하며 쾌유를 기원했고 마침내 잔치를 벌여 완쾌를 축하했다. 그런데 채 몇 달 지나지 않아 이상한 징후들이 포착되기 시작했다. 팔다리는 군데군데 갈라지고 알록달록 단장한 피부는 껍질이 벗겨지는 등 신체 여러 군데가 탈이 났다. 예후가 심상치 않다는 쑥덕임 속에 일군의 다른 의료진이 종합검진에 나섰다.
막상 정밀검사를 해보니 문제가 예상보다 심각했다. 한국인 몸체에 러시아인 다리를 달았다느니, 전통요법을 쓰지 않았다느니 한다. 구약(舊藥-전통적 처방)을 쓰자니 이미 단절된 지 오래라 녹록치 않았고, 신약(新藥)을 쓰자니 ‘전통’에 대한 안팎의 열망이 너무 컸던 게다. 어중간하게 구약과 신약을 버무린 시약(試藥)으로 검증도 못한 채 생체실험을 한 결과는 총체적 과실로 나타났다. 결국 이 모든 사태는 충분히 시간을 두고 차근차근히 해 나가야 할 수술을 너무 빨리 끝낸 것이 화근이었다고 사람들은 입을 모았다.
단순 의료사고인 듯했던 그 배후에서 비리의 징후가 포착되었다는 보도도 있다. 다소 석연찮게 수장이 경질되었고 집도의사는 수사선상에 올랐다. 그 와중에 종합검진에 참여했다가 소견을 밝혔던 한 의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마는 안타까운 일도 일어났다. 일부 의료진이 국가적 문화재 스타들의 검진과 수술을 독점하는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다는 둥, 자격증을 고액으로 대여한다는 둥, 또 이들의 담합으로 수술비가 전혀 엉뚱한 곳에 쓰이고 있다는 둥, 일파만파 소문만 흉흉한 채 진실의 문은 아직도 굳게 닫혀 있다. 그들만의 리그에서는 예외 없이 ‘전통’이라는 무기를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고 있다.
그러나 섣부른 판단도 성토도 단죄도 잠시 접어두고 엉킨 실타래를 가만히 들여다보자. 이번 사태의 진짜 핵심은 환자, 즉 해당 문화재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국내외의 수많은 예가 보여 주듯이 완벽한 복원이란 있을 수 없다. 관건은 어떻게 하면 해당 문화재에 생명력을 부여하고 그것을 지속가능하게 하는가이다. 문화재가 과거의 유산이니, 과연 ‘전통’이 생명일까? 오랜 시간 속에 축적되어 온 의미 있는 과거의 경험으로서 전통은 존중되어야 하고 또 계승될 가치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것이 문화재 복원의 요체는 아니다. 문화재의 생명력은 전통 자체가 아니라 그 전통을 거름 삼아 꽃피운 역사성과 예술성에 있기 때문이다. 복원의 목적도 그 생명력의 복원이지 단순히 어떤 박제된 과거의 재현이 아니다. 따라서 바람직하지도, 현실적으로 재생 가능하지도 않은 순혈주의 전통에 발목 잡혀 문화재의 생명력을 희생시키는 것보다는 차라리 그 문화재에 오늘의 역사성을 더하는 새로운 전통의 가능성을 열어 두는 것이 현명하지 않을까?
21세기의 복원, 넓은 의미의 보존에서 우리가 의지해야 하는 것은 시시때때로 유령처럼 출몰하는 ‘전통’이라는 깃발이 아니라 오히려 과학이다. ‘보존과학’이라는 학명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보존은 과학이다. 우리에게 위탁된 문화재를 다음세대로 전해 주어야 하는 영속성의 측면에서 보면 더욱 그렇다. 이때 과학이란 물리학이나 화학 등 자연과학적 지식을 응용한다는 차원이 아니라 보다 근원적인 과학적 ‘합리성’을 말한다. 복원은 단순한 기술이나 기능이 아니라 일종의 종합예술이다. 문학과 예술에 대한 애정, 역사와 인간에 대한 성찰, 그리고 사회에 대한 냉철한 비판이 겸비된 합리적인 ‘의사’만이 사람을 살리고 전통을 살리고 문화를 살린다.
전통을 살리는 것보다 전통으로부터 숭례문을 구하는 것이 우선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가 실체가 불분명한 전통이라는 유령에게 발목 잡혀 문화재에 대한 인식이 유연해지지 않는 한, 어떤 새로운 수장, 새로운 정책이 나와도 똑같은 과실이 되풀이될 것 같은 불길한 생각이 든다.**
* 이 칼럼은 원제작처인 <한국언론문화포럼 http://cafe.naver.com/ikmcf >과의 협의하에 전세계 연우포럼회원 여러분들께 전재.배포하고 있습니다.(김연우 포럼장)
<필자소개> 성혜영: 한국언론문화포럼 논설위원, 박물관 칼럼니스트 서강대 사학과, 홍익대대학원 미술사학과, 런던 시티대학 예술행정대학원 박물관경영학과 졸 /저서: <박물관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오후 2시의 박물관> 등 /이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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