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6일 10:00 ~
백운회 전수경 회장님을 비롯해
박사마을 관리위원회 최선화 위원장님
그리고 백운회 임원분들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최선화 위원장님 . 전수경 박사 회장님 .최창규 박사 총무님)
(유성선 박사 명예회원님 . 조성배 박사님 . 소프라노 민은홍 특별회원님)
박사마을 선양탑을 둘러보고
백운동 모현비가 최초에 위치해 있던 서면 현암리 일대를 둘러보았습니다.
백운동 모현비는
박사마을의 역사적 산 증인이신 최선화 위원장님의 노력에 의해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 곳의 지주가 바뀌어 토지작업이 이루어 지면서
문화적 유산인 백운동 모현비가 포크레인에 의해 땅이 뭍혔었습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최선화 위원장님께서 관련기관을 통하여 찾을 수 있도록하였고
모현비가 현재 박사마을 선양탑 옆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문화재 복원사업의 일원으로 최초 설치되었던 곳에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의견이 있는 관계로
현장을 방문하여 검토작업을 착수했습니다.
아울러
바로 옆에 태봉이 위치해있는데 역사적 가치가 있는 태봉귀부가 존재한다하여
최선화 위원장님의 제안으로 둘러보았습니다.
안타깝게도 거북상은 남아있는데 위에 놓여있어야 할 비석은 자취를 감춘 상태였습니다.
위원장님의 기억에 의하면 어릴 적에 비석이 그 옆에 쓰러져있었다는데
문화재 도굴꾼에 의해 자취를 감춘 상황입니다. 이를 찾을 수 있기를 바랄뿐입니다.
그리고
백운동 모현비 또한 문화재 복원사업 일환으로 복원될 수 있기를 희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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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암리 태봉귀부
소재지 : 강원도 춘천시 서면 현암리
시 대 : 조선시대
태실(胎室)이란 왕실의 왕, 대군, 군, 공주, 옹주 등의 태를 석함(石函)에 넣어 길지(吉地)에 안치한
곳을 말한다. 이 곳 현암리 태봉은 고려시대 왕의 태를 묻은 곳이라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는 곳
으로, 완만하게 이어져 오던 산줄기가 봉긋하게 급경사를 이룬 봉우리의 정상부에 태실과 관련된
귀부(龜趺)가 남아 있다.
정상부에 올라서면 북한강과 그 건너편의 춘천시가 한눈에 보이는 절경이 펼쳐지고 있다. 원래 태실
이 자리하고 있던 태봉산 정상부의 평탄지에는 현재 비교적 큰 규모의 석물을 갖춘 민묘(民墓)가
묘역(墓域)을 형성하고 있으며, 민묘의 상석에는 동남쪽으로 약 2m 90cm 거리에 태실과 관련된
귀부가 이수(螭首) 및 비석(碑石)이 없는 상태로 놓여져 있다.
현암리 귀부는 어느 시기의 것인가 확실하게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 조각수법 및 장식의 세련미를
통해서 볼 때, 태실을 조성하기 위하여 국가의 최고 장인에 의해 만들어진 뛰어난 기법의 것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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