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20, 07, 24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을 찾았다.
2019년 6월 1일 개관했는데
지상에는 서소문 역사공원이,
지하에는 4층 규모의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이 있다.
박물관 구내에 정하상 기념경당에서는
매일 오전 오후 두 차례 미사를 드리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오래 휴관했던 탓인지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금요일 오후인데도
아름다운 역사박물관 건물을 보기 위해
방문객 특히 젊은 이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조선시대 “서소문 밖 네거리”는 한양도성 4대문 중
숭례문(남대문)과 돈의문(서대문) 사이의
간문間門인 서소문(소의문) 바깥에 위치했던
마을의 이름이다(동명연혁).
성저십리의 번화했던 공간으로 상업적 농업,
수산업, 그리고 수공업이 발달했던 장소.
한편 이곳은 조선시대 국가의 공식 처형지였다
아울러 이 지역은 조선시대부터 지금까지
역사성이 참으로 많은 곳이다.
의주로의 일환으로 중요한 외교통로였고,
한국 최초의 성당인 약현성당(1892)이 세워졌다.
최초의 철도(경인선1900,경의선1906)가 놓여 졌고,
역시 서소문 고가는
1910년 우리나라 최초의 고가도로였다.
그야말로 최초라는 수식어가 참 많은 곳이다.
가장 최근에는 바티칸이 승인한 아시아 최초
세계국제순례지로 공식 선포(2018.9.14.) 되었다.
순교자 현양탑
1984년 고(故) 김수환 추기경이
요한 바오로 2세 방한과
103위 성인 시성을 기념하여
같은 해 12월 22일 순교자 현양탑을 건립한 후,
서울시에 기부 채납 하면서
서소문성지 조성사업의 첫걸음을 내딛게 되었다.
그러나 1997년 공원 리모델링 공사로 인해
순교자 현양탑이 약현성당 내
기도동산으로 옮겨지게 되었고,
1999년 5월 성령강림대축일에
새로운 현양탑이 세워지게 되었다.
서소문 밖 연대기
조선 후기 1801년 신유박해, 1839년 기해박해,
1866년 병인박해를 거치며
목숨을 잃은 모든 이들을 기억하며
작은 십자가들로 이루어진 칼 형상으로
역사의 흐름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노숙자 예수
비가 내리는 데 노숙자가 얇은 이불을 덮어쓰고
장의자에 누워 있었다.
어찌 저렇게... 하면서 가까이 갔더니
담요 밖으로 빠져나온 발등에 못이 박혔던 흔적.
아, 조각품이구나!
안심이 되면서도 마음이 싸하게 아렸다.
카나다 작가 티모시 슈말츠는
마태복음 25장 40절에서 영감을 받아
노숙인의 모습으로 예수를 표현했다.
노숙인의 모습을 한 예수상이
처음 어느 성당 앞에 설치 되었을 때,
신성모독이라고
많은 비난과 항의를 받고 철거됐다.
하지만 로마 교황청에서
바티칸 광장에서 얼어 죽은
노숙인을 기리기 위해 이 작품을 설치한 이후
스페인 마드리드, 아일랜드의 더불린,
싱가포르, 미국의 노스켈로라니아 등
지금은 세계 곳곳에 설치되었다고 한다.
수난자식민의 유산을 떠안은 채 다가온 한국전쟁과
분단의 고통이 채 가시지 않은 시대를 살아온
우리 민족의 자화상
스테인드글라스
빛을 따라
빛을 찾는 사람들
성 정하상 기념경당
피에타처형당한 자식의 머리를 품에 안고 서 있는
어머니 상
순교자들
정하상 가족상
죽임을 당한 부친 정약종을 등에 업은 모습
사랑의 산 불꽃
순교자의 문
세 개의 못
십자가 처형 중의 못 세 걔를 연결해
한국인의 얼굴과 머릿결
등의 모습으로 의인화했다.
순교자 유해함이 있는 지하실
서 있는 사람들
서소문 밖 형장에서 종교를 빌미로
박해 당하다가 순교하여 성인의 반열에 오른
44인을 형상화한 예술 작품
하늘광장
하늘길
발아
역사박물관 상설전시장조선 후기 사상사의 흐름을 다룬 전시실과
서소문 지역의 역사성과 장소성을
이야기하는 전시실로 구분되어 있다.
목민심서
정감록
1674년에 제작한 목판본 세계지도- 坤與全圖
순교자의 칼조선시대 죄인들의 목에 씌웠던 칼을 형상화했다.(이상 참고 자료 출처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출입구
출처: 아굴라와 브리스가 원문보기 글쓴이: 아굴라
첫댓글 함 찾아가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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