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름열기를 식히는 데 바다도 좋고, 산과 계곡도 좋다. 하지만 금강산도 식후경, 음식 없이는 그림의 떡이다. 더위에 지친 입맛을 살리는 여름음식의 대표주자는 뭘까? 젓가락질 몇 번으로 후루룩 넘어가고 금세 배가 부른 행복감도 주는 면 요리가 제격일 듯. 경남의 향토색이 짙게 밴 면 음식을 찾아봤다. 소박하면서도 속이 꽉 찬 국수 한상을 받아보자.
글·사진 황숙경 기자
된장국수
경상남도의 향토음식이라는 된장국수. 하지만 낯설다. 간혹 고깃집에서 후식으로 내놓는다고 하는데, 잔치국수처럼 흔하게 보는 면 음식은 아니다. 따뜻한 국물국수로 먹는 된장국수는 집 안에 있는 식재료로 간단하게 말아 먹을 수 있다. 각종 야채를 넣은 된장국을 끓인 후 삶은 국수를 말면 된다.
전통적인 된장국수는 온면으로 먹는 것이라고 하나, 더운 여름 한 끼 뚝딱 상차림으로는 멸치국물이 필요 없는 비빔국수가 나을 듯하다. 대한민국 식품명인 제56호 정계임 선생의 레시피로 된장비빔국수를 소개한다.
삶은 국수에 야채와 고기를 볶아 만든 된장소스를 끼얹어 차려내는 정계임 식 된장비빔국수. 비법은 짜장면 소스처럼 걸쭉하게 볶아낸 된장소스의 농도에 있다. 호박, 양파, 당근 등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야채를 채 썰어 다진 마늘, 참기름과 함께 된장을 넣어 팬에 볶는다. 야채가 숨이 죽을 만큼 익으면 녹말 물을 넣어 묽지 않을 정도로 농도를 맞춘다. 매운맛을 즐기려면 청양고추를 조금 썰어 넣으면 된다.
의령 메밀소바
찬 성분을 가진 메밀은 여름철 식재료로 딱이다. 메밀면 특유의 부드러운 식감과 쌉쌀하면서도 담백한 맛이 무더위에 지친 입맛을 찾아준다. 그래서 여름철 더 구미가 당기는 의령메밀소바. '소바' 하면 일본보다 의령을 먼저 떠올릴 정도로 의령의 대표음식이 됐다.
해방 후 일본에서 귀국한 한 할머니가 일본식 소바를 선보이면서 시작됐다고 한다. 그 유래가 어찌됐든 의령에서 재배한 메밀을 재료로 국수를 뽑으니, 당연히 '의령소바' 아니냐는게 의령장터에서 3대째 장사를 하고 있다는 전문 식당 측의 말이다.
하긴 이름만 소바이지, 일본의 소바와는 별개로 보인다. 면을 맛국물에 적셔 먹는 일본식의 판메밀과는 완전 다른 형태의 면 음식이 됐으니 말이다. 온소바, 냉소바, 비빔소바로 식탁에 오르는 의령메밀소바의 형태는 거의 냉면과 흡사하다. 소 양지 편육과 무절임, 삶은 달걀을 고명으로 얹은 것도 냉면과 같다.
진주냉면
여름음식의 대명사인 냉면. 평양냉면, 함흥냉면과 함께 지역명을 딴 진주냉면이 몇 년사이 인기 고공행진 중이다. 진주냉면은 일반적이라고 볼 수 있는 냉면들과 차이점이 있다.
우선 육수가 다르다. 동치미국물과 고기나 뼈를 고아 우린 육수를 섞은 국물이 아니다. 바다가 있는 경남지역의 특성을 살려 멸치, 홍합, 바지락 등을 우린 해물육수를 써서 가볍고 개운한 맛을 낸다.
또 고명으로 양지와 우둔살을 삶아 얹는 대신 달걀옷을 입혀 지져낸 쇠고기 전을 쓴다. 노랗게 지져낸 육전을 달걀지단 크기로 채 썰어 무절임, 배채와 함께 보기 좋게 얹어 내는데, 편육을 그대로 고명으로 쓴 냉면보다 색감이 훨씬 화려하고 먹음직스럽다. 이 쇠고기 육전은 일반적인 냉면과 진주냉면을 구별하는 가장 큰 차이점이다.
물냉면, 비빔냉면으로 즐길 수 있는데, 둘을 놓고 고민하는 맛객들을 위해 최근 섞음 냉면이 등장, 고민해결사 역할을 하고 있다. 메밀면 위에 듬뿍 올린 육전과 보기만 해도 시원해지는 살얼음이 지쳐가는 여름 입맛을 제대로 살려준다.
산청 어탕국수
어탕국수처럼 향토색이 진하게 밴 음식도 없을 것이다. 산청, 함양, 거창 등 물살 빠른 강을 끼고 있는 서부경남지역에서 천렵으로 잡은 민물고기를 재료로 해먹던 음식이다. 5시간 이상 뼈째 곤 민물고기탕에 우거지와 호박 등 제철 야채와 고추장, 된장, 들깨가루 등을 넣고 끓인 후 국수를 말아 낸다.
산청군 생초면에 즐비한 어탕국수 음식점에서는 추어탕처럼 끓여낸 국물에 생국수를 넣어 한소끔 더 끓여 손님상에 낸다. 걸쭉한 산청 어탕국수의 국물은 생국수를 넣어 끓여냈기 때문이다.
경남식 어탕국수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제피가루이다. 톡 쏘는 매운 맛과 코끝을 찌르는 독특한 향이 비린내를 잡고 입맛을 돋우는 역할을 한다. 방아잎을 함께 써서 더 진한 향을 내기도 한다. 쏘가리, 피리, 꺽지, 모래무지, 참마자, 붕어, 돌고기 등이 여름철에 잡히는 고기들. 웬만한 보양식 저리가라 할 정도의 영양가 높은 면 음식이다.
국수장국
쉽게 차려내고, 쉽게 한 그릇 쓱싹할 수 있는 음식으로 국수만한 게 없다. 거기다 영양까지 채워 넣을 수 있으면 금상첨화. 한식 상차림에서 빠지지 않는 국을 활용한 간단한 국수요리가 있다. 바로 국수장국. 장터의 국밥식 쇠고기국에 면을 말아먹는 것인데, 국수를 고기국과 함께 먹는 셈이니 영양면에서도 더할 나위가 없다.
국수장국은 맑게 혹은 맵싸한 빨간색 탕 요리로 식성에 따라 집에서도 쉽게 해먹을 수 있다. 따뜻한 쇠고기무국, 쇠고기우거지국에 밥 대신 삶은 국수를 말면 된다. 별다른 반찬 없이도 한 끼 밥상이 된다.
국수장국은 평범한 음식인 듯하지만 음식점을 통해 쉽게 맛볼 수 있는 음식은 아니다. 육개장칼국수, 창녕의 수구레국수 정도가 비슷하다 할 수 있겠다. 사골을 고아 하얀색으로 말아내는 제주도식 고기국수와는 요리법과 비주얼 자체가 다르다. 경상도식 고기국수는 일상요리에 좀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