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대한항공 조현아 부사장 사건으로 많이 시끄럽더군요.
덕분에 과거 라면 상무와 SK 최철원의 야구 방망이 사건이 재조명 되며
과연 누가 갑질의 최고봉인가를 놓고 말이 많습니다.
혹자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타고난 국민성을 말하기도 하고
또 혹자는 일제 강점기 때 유입되어 우리의 문화가 되어버린
상명하복의 일본의 왜곡된 유교 문화를 언급하기도 합니다.
어쨌든 타의 모범을 보여야 될 일부 고위층들의
이런 무분별한 사회적 일탈은
우리 사회의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고 봐야겠지요.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러한 갑질 문화는
재벌 2세들이나 일부 고위층에게만 적용되는 게 아닙니다.
이러한 저급한 갑질 문화는
이미 한국 사회의 모든 인간관계 속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굳이 최근 발생한 서울대 교수의 성추행 사건이나
대한항공 땅콩리턴 사건을 애써 들추지 않아도
조금만 물을 휘젓거나 작은 돌멩이 하나만 들추어도
그 안에 쌓여있던 더러운 오물들이 여실히 드러납니다.
그런 갑질은 대한항공 항공기 안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평범한 직장이나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서도 흔한 일입니다.
저항할 수 없는 갑질 앞에서
차곡차곡 쌓이는 절망,, 그리고 말 못하는 분노..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그렇게 병들어 왔던 것입니다.
..
한국 사회의 폭력성은
하나의 문화가 되어 우리들 속에 내면화 되었기에
폭력을 폭력으로 인지하지 못하고
악순환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유독 질 떨어지는 한국의 갑질 문화는
일부 고위 계층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에 만연한 역병과 같은 것입니다.
군에 갓 입대한 신병은 군생활에 적응하는 내내
선임병들의 갑질에 시달려야 하고
시간이 지나 군생활에 적응하고 나면
이제 새로온 신병들의 군기를 잡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내무반에서 일어나는 이러한 부조리를 알면서도
군대 간부들은 자신들의 정당한(?) 갑질을
좀 더 편하게 발휘하기 위해
그러한 부조리에 눈을 감아 버립니다.
문제는 이러한 부조리에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야 될 젊은이들이
너무 쉽고 빠르게 적응해 버린다는 것입니다.
하다못해 군에 입대하는 청년들에게 해주는 조언의 대부분은
가서 잘 적응하라이지 가서 변화시키라가 아닙니다.
잘 적응하라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악습이라 하더라도 저항하지 말고 잘 받아들이라는 얘기지요.
그리하여 군에서 제대하고 첫 직장을 잡을 때쯤 대부분의 청년들은
변화에 대한 열정은 찾을 수 없는 애늙은이가 되어 있게 마련입니다.
이러한 갑질 문화는 군대 이전에 학교에서 찾을 수 있고
더 깊이 들어가면 부모의 육아 과정에서도 찾을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곳은 첫 단계의 공식적 사회화가 진행되는 학교입니다.
한국의 학교가 과거에 비해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나
여전히 일제의 잔재가 많이 남아있고
학생과 학부모는 물론 교사들 또한 그런 과거의 잔재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단지 관행이나 예절로 포장되는 경우가 많지요.
하지만 갑질의 마인드를 기반으로 포장된 예절은
진정한 의미의 예절이 아니라 그냥 갑질의 다른 이름일 뿐입니다.
진정한 예절은 반드시 상호적인 것이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국에서의 예절은 항상 일방적인 특성이 있습니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지켜야 되는 예의는 중요하게 여겨지지만
반대로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지켜야 되는 예의는 쉽게 무시되곤 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 사회의 기본적인 ‘예절’이 부족한 사회라 할 수 있습니다.
..
예를 들어 군대에 신병이 들어오면
그 신병에게 그 누구도 ‘예의’를 지키지 않습니다.
나이와 상관없이 경험이 없다는 이유로 반말을 하고
인격적 비난과 모욕을 주저하지 않습니다.
사병보다 나이가 어린 하사관이나 초급장교들도
자신들이 간부라는 이유만으로 사병을 하대합니다.
교사는 별 생각 없이 아이들을 하대하고
상사는 자신의 부하직원을 진짜 부하로 착각하곤 합니다.
매장에서 물건을 사는 사람들은
자신이 소비자란 이유로 판매자에게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는 경우가 많고
돈 좀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돈이 있다는 이유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역시 ‘예의’를 지키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몰지각함의 정점에는
우리의 세금으로 생활하면서
정작 자신들에게 월급을 주는 국민들을 무시하는
고위 공무원과 정치인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미 국민들 서로가 서로에게 기본적 예의가 없다보니
국민들은 그들에게 당연히 요구해야 될 ‘예의’를 요구하지 못합니다.
사실 내가 내 삶에서 누리고 있는 약간의 정치적 권력이
바로 그 ‘예의 없음’의 문화에서 나온 것임을
직감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사회적으로 드러나는 큰 사건들에는 유감을 표하지만
자신의 생활 속에 잔존하고 있는 갑질 문화에는 관대해 지고 맙니다.
그런 식으로 대부분의 국민들은
지도자들의 예의 없음에 암묵적으로 동조를 하고 마는 것입니다.
권력의 맛은 그렇게 달고도 짭짜름한 것이지요.
사실 사회의 한 분야, 한 곳만이 썩고 부패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한 곳이 썩었다면 이미 모든 곳이 병들어 있다고 봐야 겠지요.
..
조현아 사건은 결국 우리사회의 거울일 뿐입니다.
조현아를 욕하는 사람들은
가정과 직장에서 먼저 자신을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내가 부하 직원에게 하는 말투가 예의바른 것인지,
그리고 업무상 내리는 지시가 당연한 것인지
스스로 반성해 볼 필요가 있겠지요.
그리고 이번 조현아처럼 금수저 물고 태어나
선민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도 문제지만
과거 포스코의 라면상무처럼
말단 직원에서 산전수전 다 겪으면 상무까지 승진한
어쩌면 우리의 일반적인 모습에 더 가까운 사람이 보여준 추태는
우리의 추악한 현실을 더 잘 드러내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라면상무가 라면상무가 되기까지
그 사람 위에 수많은 라면상무가 있었고
그 또한 자신이 꿈꾸던 라면상무가 되어
구태를 재현한 것뿐입니다.
그 수많은 라면상무가 상무가 될 수 있는 세상
그곳이 이 곳 대한민국의 현실인 것입니다.
..
최근 드라마 미생이 많은 인기라고 하더군요.
저는 책도 드라마도 보지는 못했지만
주위에서 하도 얘기를 많이 해서
대충 무슨 내용인지는 알고 있습니다.
전쟁터와 같은 직장에서
매일 하루하루 생존을 위해 투쟁하는
수많은 한국의 직장인들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으나
그 이전에 자신들의 직장을 전쟁터로 만드는 것은
정작 본인들임을 인지해야 할 것입니다.
굳이 전쟁터로 만들 필요가 없는 공간을 전쟁터로 만들어 놓고
피투성이가 되어 살아남는 게 무슨 큰 의미가 있겠습니까?
저는 과거 군생활을 하면서
어차피 사병의 신분으로
고생을 피할 수 없는 젊은 사병들이
자신의 그 작은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
서로를 괴롭히는 모습을 보면서 많이 힘들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도우며 힘을 합쳐도 힘들 군생활을
결국 서로가 지옥으로 만들고 있었던 것이지요.
서로가 서로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만 지키면
굳이 경험하지 않아도 될 부정적인 경험들을 하며
서로 악업을 쌓는 것은 정신적인 건강은 물론
사회 발전의 관점에서도 결코 좋은 선택이 될 수 없지요.
..
복학 후 학교에서 홉스의 사회계약설을 공부하며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는 표현을 보고
이게 바로 우리 사회의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사회계약설의 핵심은 그러한 개판 오 분 전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
서로가 자신의 권력을 양보하여 국가를 만들었다는 논리인데,
국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없느니만 못한 사회가 되어 간다면
계약서상의 '갑'에게 계약이고 나발이고 환불을 요구하거나
최소한 의미 있는 AS라도 추구해야겠지요.
그 또한 하지 못하고 을들이 서로 갑질하며 아귀다툼만 하고 있다면
'사회계약설'이 아니라 '사회사기설'이 맞는 상황일 것입니다.
..
마무리 하겠습니다.
아이들은 미래의 갑질을 위해 공부를 하고
부모들은 자식들이 ‘을’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칩니다.
그러니 성공하여 갑이 된 아이들 눈에는 뵈는 게 없고
실패하여 을이 된 아이들은 패배의식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리하여 사회 전체가 갑질의 병폐에 빠지게 됩니다.
이미 한국 사회는 그놈의 갑질 때문에 너무 심각하게 병이 들었습니다.
우리 스스로의 손으로 과거의 구습을 타파하고
근대화를 이루지 못한 결과가
대한제국 붕괴 후 100년이 지난 지금
사회의 붕괴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나마 과거의 경제 성장에 대한 환상이
아직까지 ‘을’들의 지친 마음을 달래주고 있습니다만
그 환상이 결국 진짜 환상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과연 그 많은 ‘을’들이 가만히 있을까요?
슈퍼 갑질에 질린 작은 갑들은 이민이라도 갈 수 있겠지만
늘 갑질만 당하는 그 많은 을들의 심정을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요?
정치인들과 회장님들이 한 번 깊게 생각해 볼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누구도 사람을 살 만큼 부자여서는 안되고, 누구도 자신을 팔 만큼 가난해서도 안된다!!'
정말 중요한 말씀입니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도 돈이지만 그 돈이 때로는 인간을 지나치게 탐욕스럽게 만들기도 하고 반대로 지나치게 비굴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인간이 돈의 주인이 아니라 돈이 인간의 주인 노릇하는 세상이지요..
연신 언론에서도 천민자본주의가 꼭 세상의 이치인마냥 떠들어 됩니다. 대한민국의 땅은 새로태어난 생명들과 공유해야하지만 기득권들이 사유화하고 그것을 법이라는 명목하에 정당화 시킵니다. 정치통치방식이 수많은 방법이 있음에도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딱 2개만 있는것처럼 가르킵니다. 아프니깐 청춘이다라는 개소리나 찌꺼려가며 희생을 강요하는 대한민국. 슬픕니다.
왜 한국을 천민자본주의라고 하는지 해외의 선진국에 가면 금방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소비자가 왕이라는 이상한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워 감정 노동자들을 노예처럼 부려먹는 것에 이미 길들어져 버렸습니다..
갑과 을이 상호 보완적인 관계가 아니라 일방적인 권력 관계가 되었지요..
그런 상황에서 '무조건 긍정의 힘'이나 '아프니까 청춘'같은 소리들은 사회 구조를 무시한 개소리들이 되는 것이지요..
커가는 아이들을 보면 답답한 생각이 많이 듭니다..
새로운 속담이 나왔습니다.
재벌가총수일가의 말한마디면 비행기도 돌릴수있다.:
이뜻은 갑이 1명이고 을이 수백명이 있어도 절때로 이길수없다....;가만있어서...
'가만 있어서'가 문제 아니겠습니까?
촛불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 저는 애초부터 불가능한 생각이라고 봅니다..ㅠ
비빔밥님의 좋은 글 항상 감사드립니다. 휴~ 생각은 많으나 어케 해야 되는지......
그렇죠.. 현실의 문제점들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데 바뀌지 않는 현실 앞에서 쉽게 좌절하게 되지요..ㅠ
홍익인간(만물로서의 인간개념), 재세이화(그런 만물의 번영)를 실천한 시대를 망각한 것 같은 세월(그래봐야 1/10의 시간도 안돼는)입니다. 일시무시일 일종무종일
홍익인간의 이념은 참 대단하지만 막상 그런 정신을 우리 주위에서 찾을 수가 없지요..
우리 사회를 이끌어갈 철학이 부재한 사회이다보니 사회 구성원들이 자신들의 욕망을 쫒아 가는 것이겠지요~~
민족성입니다.뭐 안좋은거 있을때마다 일제시대의 잔재라고 뒤집어 쒸우는것도 그만했으면 좋겠습니다. 갑질은 우리나라 역사이래 계속해서 보이는 특성입니다
원래 타고난 민족성이라고 단정을 해 버리면 변화의 가능성도 닫혀 버립니다..
과거의 역사가 그렇다 하더라도 그런 역사를 잘 극복하여 나름 평등한 사회를 만들어낸 북유럽 국가들도 있으니 우리라고 변하지 말란 법은 없겠지요~^^
누구말대로 인구가 많아서 그래요. 너 아니여도 일할 사람은 많다는거죠.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이 유입되면서 한국의 저임금 노동자들에 대한 인식도 낮아지고 있습니다..
결국 빈부의 격차가 심해지고 그 틈을 권위주의가 파고드는 것이겠지요...
비빔밥님 좋은 말씀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_()_
placebo님 반갑습니다..^^
좋은글 읽고 갑니다
클로버꽃님 반갑습니다~~^^
갑질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아니 생명이라면 다 갖게 되는 특성입니다.
유한한 육체라는 걸 덮어쓴 다음에는 도를 통하기 전에는 소멸시킬 수가 없는 것이 갑질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그 때가 되면 갑질을 가해자가 될 수 있습니다.
훌륭한 글 감사합니다.
열공하자님 반갑습니다..
불교에서 말하듯이 깨닫기 전에는 악업과 욕망으로 부터 완벽히 자유로워질 수 없을 겁니다.
하지만 같은 인간세계여도 상대적으로 우리보다 더 평등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어 온 국가들도 있으니 우리라고 꼭 요모양 요꼴로만 살라는 법은 없을 겁니다.. 저는 우리의 국민성에 좌절하다가도 이렇게 작은 희망을 가져봅니다..^^
@비빔밥(경기) 우리나라가 특히 좀 심한 건 저도 인정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극단적인 경쟁체제가 고착화된 이 나라와 같은 상황에서 이를 무릅쓰고 타인과 공감을 하며 살아갈 수 있다면, 경쟁이 덜한 동네에서 나누는 공감보다 더 귀중한 것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비빔밥님 글은 언제 봐도 깊고, 예리해서 감탄을 금치 못합니다^^
혹 시간여유가 있으시다면 문제점 진단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어떻게 하면 우리 사회의 병을 치유할 수 있을지
근본적 치유방법도 좋고, 일부내용도 좋습니다.
감히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늘 감사드립니다.
어떠한 힘이든 반작용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작용과 반작용이 늘 균형상태를 잡아가는 것은 아니지요.
인간의 생존 본능으로 인해 보통 한쪽의 힘이 더 강하게 작용되다가 누적된 반작용에 의해 단번에 뒤짚어지는 현상이 발생합니다.
즉, 충분히 곪아야 곪은 곳이 터지고 새살이 돋게 되는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 사회는 혼란과 붕괴를 겪고 나서야 의미있는 변화가 가능하리라고 봅니다..
정말 공감되는 글입니다.
주변에 조현아씨 모습과 우리들의 모습간에 별반 다를 것이 없다 말하고 다니는데, 정말이지 비빔밥님 말씀대로 우리사회에 너무 뿌리깊게 박혀있어 참 암울하게 느껴질때도 있네요.
감사합니다.. 갑을 사고는 이미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박혀 있습니다. 최근 경비원 자살 사건이나 서울대 교수의 제자 성희롱 사건들도 다 갑문화의 폐해지요..
나 자신도 혹시나
하찮은 갑질을 하면서 우쭐해하지 않는지
다시 돌아봐야 할것 같습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네! 감사합니다..
저도 사회 생활하면서 저에게 주워진 작은 권력을 남용하고 있지 않은지 늘 스스로를 돌아봅니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4.12.23 13:06
갑과 을이 없는 게 맞는 세상사람사이이긴 한테.. 그러나 현실의 관계성에서는 참 씁쓸힌 경우 많지요?
깊게 생각해보면 조현아에게 누가 돌을 던질 수 있나 생각도 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