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도쿄대 합격자, 공립은 늘고 사립은 줄어
일본 아이치(愛知)현 오카자키(岡崎)시에 있는 공립 오카자키 고교 교무실 앞 복도에는 책상이 6개 있다. 이 학교 진학담당 교사인 가와시마 히로시(川島洋)는 “학생들이 모르는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책 등을 갖고 와 교사들에게 질문하라는 취지에서 6년 전에 놓았다”며 “그래서 ‘질문 책상’이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주 5일제에도 불구하고 이 학교 교사들은 토요일마다 고3 학생들을 보충수업하고 있다. 재수생들을 상대로 연 3회 진학 지도까지 한다. 이 덕분에 이 학교 고3생의 올해 도쿄대 입학자 수는 2년 전보다 18명 많은 42명으로 늘었다. 전국 5418개 고교 중 12번째로 많은 숫자였다. 가와시마는 “교사와 학생이 같은 목표를 세워 3년간 충실하게 학교생활을 한 성과”라며 “교사가 면학 분위기를 조성하고 수준 높은 수업을 하되, 뒤처지는 학생들은 교사·선배·친구들이 함께 지도하는 분위기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일본의 공립고들이 살아나고 있다. 일본 출판사 ‘대학통신’ 등에 따르면 올해 고교별 도쿄대 합격자 수에서 주요 공립고는 증가한 반면 명문 사립고들은 감소했다. 가이세이(開成·도쿄)고, 나다(灘·효고현)고, 아자부(麻布·도쿄)고 등 사립 명문고들은 1~3위였지만, 지난해보다 20~59명 줄었다. 반면 공립고인 이치노미야(一宮·아이치현)고, 도야마주부(中部·도야마현)고는 전년보다 각각 5명, 6명이 많은 25명을 입학시켰다. 삿포로미나미(札幌南·홋카이도)고는 2년 전 6명에서 올해는 20명으로 증가했다. 전국 고교 중 26위였다.
일본의 공립고들은 1960년대만 해도 각 지역의 명문고였지만, 정부의 평준화 정책 등으로 빠르게 무너졌다. 도쿄 히비야(日比谷)고의 도쿄대 합격자 수는 64년 193명에서 93년에는 1명까지 줄었다. 그러자 학부모들은 등록금이 비싼 사립고로 몰렸다. 사교육 등으로 학부모의 부담은 더욱 커졌다.
일본 정부는 공립고를 살리기 위해 2001년 지방행정교육법을 개정해 교육정책 권한을 지방자치단체에 대폭 이양했다. 그러자 도쿄도 등 20개 지자체가 학군제를 폐지하고, 공교육 회생에 나섰다. 공립고들도 이에 힘입어 자율적으로 다양한 학력 강화 비책을 추진하면서 빛을 보기 시작하는 것이다.
◆“공립고 교육력 집중 강화”=도쿄도 교육위원회는 교원 공모제를 도입해 우수 교원을 유치했고, 학교에 ‘기업 경영 방식’을 도입해 교장의 자율적 권한을 대폭 강화했다. 대신 대입 진학률 등 목표를 정한 후 실적을 공개토록 했다.
주요 과목은 ‘100분 수업’ 명문대 탐방 프로그램도
가고시마(鹿兒島)현은 2006년 ‘학력 향상 추진 종합계획’을 시행하면서 공립고 2개를 진학지도 학교로 지정했다. 그 결과 가지키(加治木)고에선 2007년 국·공립대에 합격한 고3생이 전년도 149명에서 184명으로 늘었다. 히비야고는 2001년 진학지도 중점학교로 지정된 후 교사 재량으로 수학과 국어·영어 등 주요 과목 수업을 휴식시간 없이 2교시 연속 하는 ‘100분 수업’을 도입했다. 수업시간도 문부과학성의 주간 표준 수업시간(30시간)보다 많은 35시간을 가르치고 있다. 2005년 10명을 넘어선 도쿄대 합격자는 2007년 28명까지 늘었다. 도쿄도립 니시(西)고도 올해 11명의 졸업생을 도쿄대에 진학시켰다. 도쿄도가 2005년 이후 설립한 고이시카와(小石川)·료코쿠(兩國) 등 6개 중·고 일관교(중·고 6년 과정 통합 학교)도 학부모들 사이에 큰 인기다. 등록금은 사립고보다 훨씬 싸면서도 교육 수준이 높기 때문이다. 올봄 입시에서 이들 고교의 입학 경쟁률은 평균 8.5대 1을 기록했다. 3대 1가량인 사립고의 경쟁률을 크게 웃돈 것이다.

◆지방 공립고는 창의적인 교육 방식으로 승부=도야마주부고는 8년 전 대대적인 ‘학교 개혁’을 단행했다. 학교의 자체 모의고사와 외부 모의고사 결과를 비교해 학생 성적을 관리하고, 방과후 수업·주말수업도 마련했다. 도쿄대 등 명문대 탐방 프로그램을 통해 학생들의 진학열도 높였다. 삿포로미나미고는 2007년 수업시간을 6교시에서 7교시로 늘린 데 이어 지난해 ‘도쿄대 프로젝트’를 만들어 학생들에게 도쿄대 정보를 제공하는 등 자발적인 학습열을 북돋웠다. 오사카(大阪)의 덴노지(天王寺)고는 매주 토요일 모든 교실을 개방해 학생들의 자습을 독려하고, 교사들은 과목별로 ‘토요강습’을 하고 있다. 명문대에 진학한 이 학교 졸업생들은 직접 후배들을 지도하고 있다. 교토(京都)시립 호리카와(堀川)고는 99년 인문계 학과 외에 인간탐구과·자연탐구과 등 두 학과를 신설했다. 학교를 특화해 우수 학생을 양성하기 위해서였다. 두 학과의 학생은 2학년 여름까지 반드시 논문을 제출해야 한다. 좋아하는 공부를 스스로 깊이 연구하다 보면 사고력을 키우고, 일반 학과 공부에도 도움이 될 것이란 취지였다. 그 결과 2001년까지 매년 6명 정도였던 국·공립대 합격자가 2002년부터 100명 이상으로 늘었다. 일본 교육계에선 이를 ‘호리카와의 기적’이라고 부른다. 이는 공립고 기피 현상을 없애는 데 크게 기여했다.
도쿄=박소영 특파원
◆왜 도쿄대 입학 숫자가 중요한가=일본도 한국 못지않은 학벌주의 사회다. 와세다(早稻田)·게이오(慶應) 등 명문 사학과 교토(京都)대·도호쿠(東北)대 등 지방 유명 국립대도 있지만, 특히 국립 도쿄대를 최고 대학으로 친다. 그래서 대부분 대입 관련 정보 제공 기관들은 대입 고교 순위 자료를 낼 때 도쿄대 합격자 수를 기준으로 한다. 많은 고교나 학부모들도 도쿄대 합격자 수를 토대로 명문고 여부를 평가하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