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천성당 가는 길
최 화 웅
이태 전 장전동으로 이사한 나는 교적부터 옮겼습니다. 이곳은 봄이면 겨울의 끄트머리 맛이 남겨진 들녘에 벚꽃길이 상큼하고 산그림자 길게 드리운 가을의 중심에는 단풍 빛이 눈부신 산마을입니다. 온천성당을 오가는 길은 자신과 솔직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길이고, 끝없이 묻고 답하는 내면의 성찰에 이르는 길입니다. 옛 소정마을을 지나 오른편으로 식물원과 금정산자락을 끼고 그 아래 온천천과 함께 흐르는 금강로가 남북으로 길게 이어집니다. 이 길은 옛날 전차종점을 오가던 길로 학창시절의 추억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자갈길입니다. 성당 가는 길은 참회의 기도가 스스로에게 솔직해집니다.
가을전어가 제철입니다. 금정산성으로 올라가는 교차로 아래 육일횟집의 전어회무침이 가을이면 입맛을 되살립니다. 진해만 수도연안에서 주복어업으로 전어를 잡아 5남매를 기르신 아버님 밑에서 자란 베드로 대자가 특히 그 맛을 치켜세웁니다. 가을산행 뒤에 꼬리를 문 등산객들이 자리를 잡고 산성막걸리병을 흔들면 온통 취기가 넘칩니다. 금강로 갓길 따라 대추나무 한 그루 탐스럽고 다소곳한 삼성(三省)한의원의 맑고 정갈한 유리창은 제 속을 훤히 보입니다. 건너편에는 가자미구이가 일품인 장수발 보리통집 주모가 저만치서 얼른거리는 모습이 정겹습니다. 이렇듯 성당 가는 길은 깊어가는 가을정취 속에 기도와 다짐이 아우러집니다.
온천장에 가까워지면 원탕에서 솟구치는 뜨거운 온천수가 사시사철 뿌연 물안개가 피어오릅니다. 건너편에는 일제강점기 이후 고관대작과 세상모르는 한량들이 몰려든 요정, 동래별장(東萊別莊)이 등 굽은 허리를 하고 산마루를 물끄러미 올려다볼 뿐 온천장 골목 따라 한 집 건너 온천여관에 한 집 건너 술집이 이마를 맞대고 지나가는 나그네를 손짓합니다. 예부터 현자(賢者)는 “길은 걸어 보고, 산을 올라야 험한 줄 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동래는 5세기경 옛 가야의 작은 부속국가로 해운대 장산기슭 수영강 하구를 중심으로 송정과 기장일원에 걸쳐 형성된 거칠산국(居漆山國), 또는 장산국(萇山國)이 자리 잡은 신라와 국경을 이루었던 곳입니다.
동래온천은 원래 ‘학이 머무르며 병든 몸을 치유했다.’는 백로(白鷺)온천으로 불린 유래가 지금으로부터 1,5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첫 역사기록으로는 삼국유사에 “신라 신문왕 3년(685) 재상 충완공이 옛 장산국 온정에서 목욕을 하고 돌아갔다.”고 남겼습니다. 조선 영조 42년(1766)에 세워진 온정개건비(溫井改建碑)도 오랜 세월의 풍상에 말없이 서 있습니다. 비문에는 “돌로 된 두 개의 탕이 낡아 동래부사 강필리가 다시 고치고 남탕과 여탕을 구분하여 9칸짜리 건물을 지었는데 그 모습이 상쾌하고 화려하여 마치 꿩이 나는 모습 같았다.“고 전합니다. 성당 아래 맞은편에 자리 잡은 음식점 호박소의 한 뼘 남짓한 길섶 화단에는 가을의 전령, 상사화가 붉게 타는 그리움의 화관을 머리에 올렸습니다.
온천성당은 설립 7년만인 1965년, 왜관 성베네딕도 수도회 알빈 슈미트(Alwin Schmid, 1904~1978)신부님의 설계로 새로운 성전을 마련했습니다. 성전으로 들어가는 입구 회랑 위에는 울지 않는 종탑이 오늘도 홀로 외롭고 벽면에는 작은 아치형 창이 바깥세상을 내다봅니다. 성당 앞에서 곧장 금강공원으로 올라가는 일방통행로는 도로정비의 마무리작업이 한창입니다. 일제가 1930년 그 길에 엉뚱하게 옮겨다놓은 망미루(望美樓, 부산유형문화재 제4호)를 최근에 동래읍성의 동래부 동헌 제자리로 옮겼기 때문입니다. 도로정비가 끝나면 ‘수가 화랑’을 드나드는 길이 한결 반듯해졌으나 성당을 드나드는 자동차는 한 방향을 지켜야 합니다.
온천본당 성전 서쪽벽면에는 회갑을 넘긴 복숭아나무 한 그루가 비스듬히 기대서서 우리에게 말을 겁니다. 그 복숭아나무에는 해마다 200여개의 복숭아가 열려 여름 한더위 속에 평일미사를 봉헌하는 신자들에게 ‘하늘복숭아’를 나누어 줍니다. 나는 미사가 끝나면 그 복숭아나무 그늘아래서 성가대 가운을 갈아입고 나오는 엘사를 기다립니다. 그럴 때면 ‘지금은 남의 땅-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로 일제강점기에 민족정신을 일깨운 이상화 시인의 “아, 너도 먼동이 트기 전으로 수밀도(水蜜桃)의 네 가슴에 이슬이 맺도록 달려오너라.”라고 노래한 ‘나의 침실로’의 그 주옥같은 싯귀를 줄줄 외던 젊은 날의 열정이 높푸른 가을하늘에 양털구름 되어 말없이 흘러갑니다.
나의 침실로
이 상 화
마돈나! 지금은 밤도 모든 목거지에 다니노라. 피곤하여 돌아가려는도다.
아, 너도 먼동이 트기 전으로 수밀도의 네 가슴에 이슬이 맺도록 달려오너라.
마돈나! 오려무나,
네 집에서 눈으로 유전하던 진주는 다 두고 몸만 오너라.
빨리 가자, 우리는 밝음이 오면 어딘지 모르게 숨는 두 별이어라.
마돈나! 구석지고도 어둔 마음의 거리에서 나는 두려워 떨며 기다리노라.
아, 어느 덧 첫닭이 울고-- 뭇개가 짓도다. 나의 아씨여, 너도 듣느냐.
마돈나! 지난밤이 새도록 내 손수 닦아 둔 침실로 가자, 침실로!
낡은 달은 빠지려는데, 내 귀가 듣는 발자국-- 오, 너의 것이냐?
마돈나! 짧은 심지를 더우잡고, 눈물도 없이 하소연하는 내 마음의 촛불을 봐라.
양털 같은 바람결에도 질식이 되어 얕푸른 연기로 꺼지려는도다.
마돈나! 오너라, 가자. 앞산 그리매가 도깨비처럼 발도 없이 이곳 가까이 오도다.
아, 행여나 누가 볼는지-- 가슴이 뛰누나, 나의 아씨여, 너를 부른다.
마돈나! 날이 새련다. 빨리 오려므나. 사원의 쇠북이 우리를 비웃기 전에
네 손이 내 목을 안아라. 우리도 이 밤과 같이 오랜 나라로 가고 말자.
마돈나! 뉘우침과 두려움의 외나무다리 건너 있는 내 침실, 열 이도 없으니!
아, 바람이 불도다. 그와 같이 가볍게 오려므나, 나의 아씨여, 네가 오느냐?
마돈나! 가엾어라. 나는 미치고 말았는가. 없는 소리를 내 귀가 들음은--
내 몸에 피란 피-- 가슴의 샘이 말라 버린 듯 마음과 몸이 타려는도다.
마돈나! 언젠들 안 갈 수 있으랴. 갈 테면 우리가 가자, 끄을려 가지 말고!
너는 내 말을 믿는 마리아-- 내 침실이 부활의 동굴임을 내가 알련만------.
마돈나! 밤이 주는 꿈, 우리가 얽는 꿈,
사람이 안고 궁구는 목숨의 꿈이 다르지 않느니,
아, 어린애 가슴처럼 세월 모르는 나의 침실로 가자 아름답고 오랜 거기로.
마돈나! 별들의 웃음도 흐려지려 하고, 어둔 밤 물결도 잦아지려는도다.
아, 안개가 사라지기 전으로 네가 와야지. 나의 아씨여 너를 부른다.
첫댓글 오랫만에 이상화님의 시를 읽게 해주심에 감사합니다, 그리움님.
아름다우신 엘사님도 뵙고,
그리움님께 인사도 드려서
행복한 어제였네요.^^
하루도 빠짐없이 오가시는 그 길에 묵은 추억과 정경이 눈에
그려집니다.
온천 성당 가는 길 전경이 그대로 그려지네요.
엘사형님과 다정하게 걸어 성당가시는 모습도 떠오르고요.^^
가을이 한발 더 성큼 다가오는 듯한 글..고맙습니다.
그리움님의 시선이 머무는 모든곳의 스토리를 이렇게 아름답게 나눠주시어 감사합니다~
선생님! 온천 성당 가는 길을 한번 가보아서인지 정겹게 느껴집니다.
엘사 형님과 이 가을을 즐기고 계시겠죠?
가을 햇살을 닮고 싶은 날입니다.
두 분 건강하시고 밝고 포근한 나날 되세요. ^^*
아주 가끔씩 가곤 하는 이웃 성당으로 오셨나봅니다.
같은 길을 자주 걸었지만 느끼지 못한 감흥을 일깨워주시니,
다음엔 늦어서 바쁜 걸음이 아니라 여유롭게 걸어봐야 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우리 집에서 20분 거리인 이웃 온천성당의 정취에 취합니다..저희도 가끔 그곳에 가서 미사를 보곤 한답니다..^^*
국장님 20여년 전에 온천성당을 가본 기억이 어렴풋이 납니다. 옛추억을 떠올리며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온천성당 가는 길이 너무 아름답게 그려집니다. 길은 걸어봐야 알게 되고 산은 올라가봐야 험한 줄을 알게 됨을~ 요즘 가을볕이 아주 좋아서 주로 걸어 다니기로 작정을 하는데 눈에 보이고 들어 오는 것들이 참 많아요.또한 자신 내면의 대화도 많이 하게 되고요,그리움님.육일횟집 전어무침 잊을 수 없는 맛이었는데~10월이면 사도요한과 함께 맛보러 갑니다.건강하소서!
하늘복숭아를 함께 나누는 모습이 눈앞에 그려지네요. 언제가 한번 가보고싶다는 생각을 하게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