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테킬라 /출저=위키미디어
[한꺼풀 벗긴 글로벌 이슈-293] 멕시코를 상징하는 술, 비주류 감성을 대변하는 술 테킬라가 코로나19로 뜻밖의 수혜를 입었다. 미국의 코로나19 봉쇄조치로 클럽과 주점을 찾지 못하는 인디 성향의 '힙스터(hipster)' 감성 소비자들이 집에서라도 힙스터 감성을 흠뻑 느끼기 위해 테킬라를 구매하는 경우가 늘었기 때문이다.
테킬라의 대미 수출은 지난달 25일 기준으로 총 4주간 전년 동기 대비 60% 늘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마케팅 조사기관 닐센의 조사 결과를 인용해 1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테킬라의 올해 1분기 총 수출량도 전년 동기 대비 42% 증가했으며, 특히 3월 한 달 동안에만 43%가 껑충 뛰어올랐다고 글로벌 무역정보 제공업체 판지바는 밝혔다.
반면 멕시코인들에게는 물론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맥주 '코로나'는 이름 때문에 코로나19 시국에서 피해를 입은 데다 멕시코 정부의 주류 생산·판매 조치라는 타격까지 입어 수출량이 급감했다. 테킬라와 달리 3월 맥주 수출량은 오히려 전년 동기 대비 11% 감소했다고 판지바는 밝혔다.
코로나 맥주의 수출량은 지난해만 해도 테킬라의 두 배가량이었는데, 올해 코로나19 타격으로 두 주류의 판도가 완전히 뒤바뀐 것이다.
테킬라의 대미 수출 급증은 지난 5년간 테킬라가 북미 지역에서 세련된 주류로 꾸준히 명성을 쌓아올린 결과라고 FT는 분석했다. 테킬라의 미국 매출은 2015년부터 2019년 사이에 36% 증가했다고 런던에 위치한 국제주류연구소(IWSR)는 밝혔다. 뉴욕에 거주 중인 패션 관련 사업가이자 테킬라 애호가인 크리스털 슬래터리는 "테킬라는 혈당지수(GI)가 낮고 숙취가 적어 더 건강한 선택이라고 인식되고 있다"며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중 테킬라를 더 많이 구매해 집에 쌓아놓고 있다고 밝혔다.
테킬라는 멕시코 정부가 다른 모든 비필수 산업들의 운영을 중단한 가운데 테킬라만 예외 대상으로 분류함으로써 생산량을 유지해 대미 수출을 늘릴 수 있었다. 멕시코 정부는 지난 3월 코로나19 사태가 본격화된 이후 모든 비필수 산업들의 운영을 중단시켰다. 하지만 테킬라 제조업체들은 테킬라 생산을 중단시킬 경우 멕시코 농업이 큰 타격을 입을 거라며 정부 상대로 로비를 벌여 성공을 거뒀다. 테킬라는 멕시코에서만 볼 수 있는 선인장의 한 종류인 아가베로 만드는데, 테킬라 생산을 중단할 경우 아가베의 수확 시기를 놓치게 될 수 있으며 양조장 근로자들도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고 테킬라 제조업체들은 주장했다. 멕시코 국립테킬라제조업위원회 회장인 로돌포 곤살레스는 "테킬라는 멕시코의 핵심 브랜드이자 상징적인 산업 중 하나다. 테킬라 산업에 7만개의 일자리가 달려 있다"고 말했다. 같은 아가베 원료로 만드는 주류인 멕시코의 메스칼과 달리 테킬라 생산업체들은 대규모 아가베 농장과 양조장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 코로나 맥주 /출처=월페이퍼플레어
반면 코로나 맥주 생산업자들은 테킬라와 달리 로비에 실패하며 봉쇄조치에서 예외로 인정받지 못했다. 멕시코 가정 중 70% 이상이 매주 코로나 맥주를 구매하고 있기 때문에 맥주 역시 봉쇄조치에서 예외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이들은 주장했지만, 멕시코 정부는 이를 들어주지 않았다. 멕시코 맥주 양조장은 현재 모든 생산을 중단한 상태며, 멕시코 주정부들은 봉쇄기간 동안 모든 주류 구매를 중단시킨 상황이다. 맥주 생산·판매 자체가 중단되자 멕시코인들은 소량 남은 맥주를 블랙마켓에서 웃돈을 얹어서라도 구매하고 있다. 국립소기업연합 대표인 콰우테모크 리베라는 "맥주 한 캔 가격이 보통 11~12페소 정도 하는데, 지금은 35페소로 껑충 뛰어올랐다"고 설명했다. 멕시코 소규모 업체들은 맥주 판매로 매출의 40%가량을 벌어들이고 있다고 리베라 대표는 덧붙였다.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은 5월 중순부터 국가 일부 지역에서 봉쇄조치를 점진적으로 완화할 수 있으며, 5월 말부터는 모든 봉쇄조치를 해제하길 희망한다고 최근 밝혔다. 리베라 대표는 "만약 (봉쇄조치가) 연장된다면, 소규모 업장들은 다시 문을 열 수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맥주 소비자들만 맥주 판매 금지 조치가 조만간 사라지길 기도하고 있는 게 아니다. 멕시코 정부도 많은 세금을 안겨주던 맥주 판매가 금지돼 타격을 입었다. 맥주와 소프트드링크 판매가 멕시코 정부의 특별소비세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올해 3월 이 분야 특별소비세는 전년 동기 대비 15%가량 줄어든 것으로 밝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