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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티-외디푸스: 자본주의와 정신분열증(1972)
들뢰즈와 가타리, 최명관, 민음사, 1994(원 1972) 608쪽.
Deleuze et Guattari, L'Anti-Oedipe: Capitalisme et Schizophrénie, Minuit, 1972, p. 494.
충만한 원시 토지기계에 도래한 침입자에 의해 야만스런 전제정이라는 것이 어떻게 성립할 수 있을까? - 숲 속의 금속을 다루는 자들이 움직이기에 가능할까? 그래, 어떤 설명도 가능하지 않겠지만, 니체의 분석과 카프카의 상상에 맞게, 그 전제정은 갑자기 도래한다고 치자. 사실 그 갑자기 온 것이 정복이 아닌가? 어느 글에서 보았지만, 인간이 공동체 생활에서 잉여가치라는 것을 알아챘을 때, 잉여가치의 최고의 이익 그리고 최고의 오랜 착취를 하는 것으로 정복 또는 식민지 개척이라는 것을 알아챘다는 것이다. 테세우스의 설화와 아가멤논의 전쟁과 같은 고대 그리스 문화의 융성은 식민지 또는 정복에 있다. 그들의 신화에서 아르고의 신화나 여러 도시 건국의 신화의 배경에도 정복자의 이야기가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근대인들과 정신분석가가 고대 그리스의 외디푸스를 이야기로 삼은 것도 정복문화의 잉여가치의 극대화라는 근대산업사회와 맞물려 있다고 생각해야 할 것 같다.
나로서는 이 3장 6절에서 의미심장한 문장을 발견한다. “전제 군주의 지평에는 항상 유일신앙이 있다.(234)”, 아리스토텔레스적 표현이긴 하지만, 로마의 황제 제도에서도 쓰였고, 삼위신앙에서 받아들인 “부동의 원동자로서 전제군주”. 참주든 황제든, 유일신이든 외디푸스든, 메시아든 크리스토스든 하나의 절대자를 받드는 집단에서 벽돌로 된 집들은 짓는 것은 마찬가지이리라. 그래도 불교는 인더스 힌두문명에서 벗어나, 그 신앙의 절대자를 무너뜨리려고 스스로 보살이 되라고 가르쳤으며, 무소처럼 평생을 적선(積善)과 구법(求法)에 매진하라고 하고, 싯달다는 스스로 노력했고, 중생들과 더불어 살면서 가르쳤다. 888로 나누어 삼시 공양하며 ‘평화통일 영세 중립코리아’라는 주문을 외우면서 노력을 하라. (57MKJ)
제1장 욕망하는 기계들 Les machines désirantes 7-59 [몸의 기능] [의식의 역량]
제2장 정신분석학과 가족주의: 신성가족 Psychanalyse et familialisme : La Sainte famille 60-162.
제3장 야생인들, 야만인들, 문명인들 Sauvages, barbares, civilsés 163-324.
01절 등기를 행하는 사회체 Socius inscripteur 163-170
02절 원시 토지기계La machine territoriale primitive 170-180
03절 외디푸스 문제 Problème d'Oedipe 181-195.
04절 정신분석학과 인종학 Psychanalyse et ethnologie 195-217
05절 영토의 표상[재현] La représentation territorial 217-227
06절 야만스런 전제기계La machine despotique barbare227-236
[들뢰즈/가타리는 여기까지(§5) 야생에서 형성체에서 결연의 중요성을 논했다. 그리고 §6부터는 전제군주제의 창설을 다루고 있다. 어떤 부족집단이든 종족이든 그들이 결속은 외적 힘(마나, 와칸다)의 개입이 있다. 가부장제가 성립하면 전제군주제가 성립하고 이를 정당화하는 것이 신의 관념의 성립일 것이다. 마나가 인격으로 변용되는 과정이 정태사회이다. 이 시기에 상징, 기표로서 단일자의 성립이 영혼불멸과 연결된다는 것이 흥미롭다.(40UKD)]
[마나와 와칸다를 개입시킨 것은 너무 멀리 간 것 같다.(42RMC)]
6. 야만스런 전제기계 La machine despotique barbare, 227-236.
3.6.0 전제군주의 충만한 신체 Le corps plein du despote 227-236
[이 소제목의 “전제군주의 충만신체” 규정은 이§6절 전체의 내용일 것이다. 이 충만신체는 자연생산의 토지와 달리, 야만의 사회체에서 신(무한 퇴행을 방지하는 논리적 신, 사회체의 파괴와 해체를 방지하는 보증의 신)이다. - 벩송은 MR에서 정태적 종교의 발생이라 보았다. (40UKD)]
3.6.1. 새로운 결연과 직접적인 부자관계 Nouvelle alliance et filiation directe 227
전제 군주기계 또는 야만스런 사회체의 창설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새로운 결연[약속]과 직접적 부자관계. 전제군주는 고대 공동체의 횡적(latérales) 결연들과 넓혀진(étendues) 부자관계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는 새로운 결연을 강요하고 신과의 직접적인 부자관계에 들어간다. 그래서 인민은 따라야 한다. (227-228)
전제군주는 편집증자이다(정신분석과 정신의학의 파라노이아 관점에 고유한 가족주의를 집어치우고, 파라노이아가 사회조직체를 공급하는 형식임을 인정하기만 한다면, 이 명제는 이제 더 이상 나무랄 데 없다). 그리고 새로운 도착자 그룹은 전제군주의 발명을 선전한다(아마도 이 그룹들이 전제군주를 위하여 방책을 꾸며내기도 한다).
이제 더 이상 숲속의 편집증자나 마을과 야영지의 도착자들은 없고, 사막의 편집증자와 도시의 도착자들이 등장한다.(228)
3.6.2. 편집증자 - Le paranoïaque 228
원리적으로 전제군주의 야만적 조직체는 원시토지기계와는 대조적으로 생각되어야 하며, 이 토지기계의 폐허 위에 세워진다. (228)
[전제군주의 야만적 형성체에서] 그 기획(entrprise)은 무엇보다도 먼저 군사적이고 정복하려는 것일 수 있고, 무엇보다도 먼저 종교적이어서, 군대의 규율이 내적 고행과 응집력으로 전환된다. (228)
모세(Moïse)는 이집트기계에서 도망쳐 사막으로 나아가, 거기에 자기의 새로운 기계, 즉 거룩한 언약의 궤와 이동시킬 수 있는 성전을 설치하고, 그 민족에게 종교적 군사적 조직을 준다. 세례 요한의 기도를 요약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는 사람도 있다. “세례 요한은 유대교의 중심 학설을, 아브라함에 거슬러 올라가는 부자관계를 통하여 하느님과 결연한다고 하는 학설을 근본적으로 공격하고 있다.”여기에 본질적인 것이 있다. (229)
편집증을 정의하는 것은 이 투사 능력(puissance de projection)이며, 제로(0)에서 다시 출발하여, 완전한 변형을 객체화하는 것이다.이 주체[편집증자]는 결연-부자관계의 교차점 밖으로 뛰쳐나가, 극한에, 지평선에, 사막에 자리 잡는다. 이 주체는 탈영토화한 앎의 주체인데, 이 앎의 주체를 하느님에게 직접 다시 결부(relier)시키고 또 그 민족에게 연결시킨다(connecter). 처음으로 사람들은 생명을 심판하는 것을 또한 토지를 상회하여 나는 것을 허락하는 어떤 것을, 즉 편집증적인 인식의 원리를, 생명에게서 그리고 토지[땅]에게서 다시 끌어냈다. 결연과 부자관계의 상대적 놀이 전체가 이 새로운 결연과 새로운 직접적 부자관계 안에서 절대자에게 옮겨진다. (229)
3.6.3. 아시아적 생산 La production asiatique 229
이제 남은 문제는 다음과 같다. 야만의 형성체를 이해하기 위하여. 세속적이거나 종교적이거나 간에, 이 조직체[파라오 체제]와 경쟁하는 다른 조직체들[모세이즘, 크리스트, 알라]과의 관계가 아니라, 원시 야생 형성체와 관계를 밝혀야 한다. (229)
맑스(Marx, 1818-1883)는 아시아적 생산을 정의한다: 국가의 고도의 통일은 원시 전원 공동체들을 기초 삼아 그 위에 확립되는데, 이 공동체들은 토양(le sol)의 소유권을 보유한다. 한편 외견상의 객관적인 운동은 잉여생산물을 국가에 귀속시키고, 큰 공사들에서 생산력을 국가가 쥐게 하고, 그리하여 국가자체를 소유의 집단적 조건들의 원인으로 보이게 하므로 이 운동에 비추어보면 국가야말로 토양의 진정한 소유자이다. (229-230)
사회체로서 충만신체는 이제 토지(la terre)가 아니라, 전제군주의 신체, 전제군주 자신 또는 그의[전제군주의] 신이 된다.가끔 전제 군주로 하여금 거의 행동할 수 없게 하는 규정들과 금지들은 이 충만 신체를 기관들 없는 신체가 되게 한다.(230)
토지기계 대신에 국가라고 하는 거대기계, 즉 기능적 피라미드가 등장한다. 이 피라미드의 정점에는 부동의 원동자로서 전제군주, 측면의 전달 장치로서 관료장치, 저변에는 노동 부품으로서 마을 사람들이 있다. (230)
3.6.4. 벽돌 - Les briques 230
“그들[정복자들]은 운명처럼 들이닥친다‥…그들은 번개처럼 빨리 거기와 있다. 너무 무섭게, 너무 갑작스럽게‥…”이것은 원시적 체계의 죽음이 언제나 밖으로부터 오며, 역사가 유연한 일들과 만남들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 사막으로부터 오는 구름처럼, 정복자들이 거기에 있다: “어떻게 그들이 침투해 들어왔는지 이해하기 불가능하다”, 어떻게 그들이 “그렇게 많은 높은 고원의 사막들을, 그렇게 많은 광활하고 비옥한 평야를‥…” 가로질렀는지를 알 수 없다. “그럼에도 그들은 거기에 있다[닥쳤다]. 매일 아침에 그 수는 불어나는 것 같다‥…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들은 우리의 언어를 모른다.”(230-231)
한 원시 공동체가 내부에서 생기는 경향을 억제하는 공동체인지, 밖에서 오는 무서운 재해를 겪고 가까스로 지탱해 가는 공동체인지를 아는 것은 언제나 쉬운 일이 아니다.결연의 놀이는 애매하다[양의적]이다. 우리는 아직도 새로운 결연의 이쪽에 있는가, 또는 이미 저쪽에 있는가, 또 이쪽에 되돌아오는 듯 변형되어 남아 있는가? (부속적인 질문: 봉건제란 무엇인가?) (231)
다만 이 새로운 결연은 낡은 결연들을 제쳐놓고 그 자리에 들어서는 것일 뿐만 아니라 이 낡은 결연들과 연관을맺고 있다. 그래서 이 새로운 결연은 조약(un traité)이나 계약(un contat)과 전혀 다른 것이다. (231)
이것이 바로 아시아적 생산의 특수한 성격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토착의 전원(田園) 공동체들이 존속하며, 생산하고 등기하고 소비하기를 계속한다. 국가는 공동체들하고만 관계를 맺는다. (231)
[토지 공통체에서] 낡은 등기(inscription)는 그대로 남아 있지만, 국가의 등기에 의해 그리고 이 등기 속에 벽돌모양으로 쌓여 있다.덩어리들은 존속하고 있지만, 박아 넣고 끼워 넣어진 벽돌들이 되어 관리되는 가동성 밖에 지니지 못하고 있다. (232)
원시체계 전체는 상위의 권력에 의하여 동원되고 징발되며, 외부의 새로운 힘들에 의하여 굴복되어, 다른 목적들에 봉사하게 된다. 니체가 말한바와 같이, 사람들이 사물의 진화라고 부르는 것은 “다소간의 폭력적인, 또 다소간에 피차 독립해 있는 예속화 현상들의 끈질긴 계속이며, 끊임없이 일어나는 저항들을, 방어와 반작용에 기여하기 위하여 작용되는 변신의 시도들을, 마침내 반대방향으로 행동들의 행복한 결과들을 잊지 않아야 한다.” (232)
3.6.5.01 국가의 신비화작업(기만) Les mystification de l'Etat -
3.6.5.02 전제군주의 탈토지화와 무한한 부채 La déterriorialisation despotique et la dette infinie 232-
국가는 다음의 두 가지 근본적 작동들(actes, 칙령)에 의해 시작되고(또는 다시 시작된다). 하나는 주거를 고정시키는 토지 칙령이요, 다른 하나는 사소한 부채의 폐기에 의한 해방칙령이다. 그런데 국가는 완곡하게(par euphémisme) 진행한다. (232)
에띠엔 발라즈(Etienne Balazs, 1905-1963)가 “과학적이고 기술적인 조건이 모두 갖추어져 있던 것으로 보이는 13세기의 중국에서 자본주의가 생기지 않은 것은 무슨 까닭인가?”라고 물을 때, 그 답은 금속의 보유가 충분하다고 판단되자마자 광산을 폐쇄하고, 상업을 독점하거나 엄격하게 통제한 국가에 있다(공무원으로서 상인).상업에 있어서 돈의 역할은 상업 자체보다는 국가에 의한 상업의 통제에 기인한다. (233).
의지(Will, La Volonté)의 탐구들에 의지하여, 푸꼬(Foucault, 1926-1984)는, 어떻게 그리스의 몇몇 참주정치에서, 귀족들에 대한 과세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돈의 분배가 돈을 부자들에게 되돌아가게 하고, 이상하게도 부채의 체제를 확대하고 이 체제를 더욱더 강화하는 수단이 되어, 농업문제의 경제적 여건들을 통해서 생길 수 있었던 모든 재영토화를 예방하고 억제하였는가를 밝히고 있다. (233)
요컨데, 돈, 돈의 순환은부채를 무한하게 하는 수단이다.바로 이것이 국가의 두 칙령이 숨기고 있는 것이다. 국가의 주거와 토지는 모든 원시적 부자관계를 전제군주기계에 종속시키는 탈영토화의 큰 운동의 발단이 된다(농지문제).(233)
전제 군주의 지평에는 항상 유일신앙이 있다. 부채는 현존의 부채가 되고, 신민들 자체의 현존의 부채이다. (234)
“물론 빚을 갚으라고 요구할 수 있으나,
꾸어주는 것이 문제일 때는
물론 자기에게 가장 좋은 때를
선택할 수 있다.”(234)
3.6.4. 흐름의 초코드화 Surcoder les flux 234.
소위 말하는 아시아적 생산의 가장 순수한 조건들 속에서 나타나는 바와 같은 전제군주 국가는 두 가지 상관적 양상(deux aspects)을 띠고 있다. 한편으로 전제군주는 토지기계를 대체하여, 탈토지화한 새로운 충만한 신체[이 충만신체는 토지와 다른 사회체(국가)이다]를 형성한다. 다른 한편으로 전제군주는 낡은 토지들을 유지하고, 이것들을 생산의 부품 또는 기관의 자격으로 새로운 기계[충만 기계 사회체]에 통합한다. (234)
전제군주의 신체 위에서 생산되는 것은 낡은 결연들을 새로운 결연에 연결시키는 연결 종합(une synthèse connective)이요, 낡은 부자관계들을 직접적 부자관계로 내뻗게 하여 모든 신민을 새로운 기계 속에 결합시키는 이접적 종합(une synthèse disjonctive)이다. 따라서 국가의 본질적인 것은 제2의 등기의 창조이다. 이것을 통하여 불변부동의 거대한 충만한 신체는 생산의 모든 힘과 동인들을 자기의 것으로 만든다. (234-235)
작동하는 하부 집합들을 통합하는 초월적인 상위 통일체이다. 국가는 이 하부집합들에게 벽돌들로서 발전과 단편들로서 건설공사에 참여를 할당한다. (235)
카프카(Franz Kafka, 1883-1924)의 중국 만리장성(Muraille de Chine)에서처럼, 국가는 상대적으로 고립되어 있고, 따로따로 작동하는 하부 집합들을 통합하는 초월적인 상위 통일체이다. 국가는 이 하부집합들에게 벽돌들로서 발전과 단편들로서 건설공사에 참여를 할당한다. (235)
법률은 조화있는 내재적이고 자연적인 전체성과는 아무 관계없지만, 뛰어난 형식적 통일체로서 작용하고, 이 자격으로 단편들과 조각들을(des fragments et des morceaux)지배한다는 것을 카프카만큼 잘 밝힌 사람은 없다(벽과 탑). 따라서 국가는 원시적인 것이 아니라, 기원(origine) 또는 추상작업(abstraction)이다. (235)
“황제는 우리들의 모든 생각의 유일한 대상이다. 현재 통치하고 있는 황제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만일 우리가 그 황제를 알고 있다면, 만일 우리가 그에 관하여 조금이라도 정확한 것을 알고 있다면, 그것은 모든 우리 사유들의 유일한 대상이다.‥… 인민은 어느 황제가 통치하고 있는지 알지 못하며, 왕조의 이름조차 그에게 불확실하게 남아 있다. ...” (235) [물론 위 작품의 인용이겠지]
제국적 형성체 속에서 두 개의 등기가 공존한다. 하나는 다른 것 속에 벽돌을 끼워 넣어지는 한에서, 이와 반대로 다른 하나는 전체를 시멘트로 결합시키고 생산자들과 생산물을 서로 관계시키는 한 화해한다(이 두 가지 등기는 동일한 입말로 말할 필요가 없다). (235-236)
원시기계의 규준화된 흐름은 이제 모두 하구까지 밀려가, 거기서 전제군주기계에 의해 초코드화된다. 이 초코드화(le surcodage)야말로 국가의 본질을 이루는 조작이요, 국가가 낡은 조직체들과 연속하는 동시에 단절하는 일을 조정하는 조직이다. (236)
카스트들[계급제도]은 초코드화와 분리될 수 없고, 또 지배 “계급”을 내포하고 있는데, 이 지배계급들은 아직 계급으로서 드러나지 않고, 국가 장치와 일체를 이루고 있다. 누가 주권자(통치권자)의 충만한 신체를 만질 수 있는가? 여기에 카스트의 문제가 있다. .. 국가들의 창설자들과 더불어 시작하는 이러한 초규준화의 중요성을 지적한 것은 니체의 역량(puissance)이다. (236)
니체가 이렇게 말하듯이, 이런 무한화 작업(cette infinitivation)은 조상들, 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는 계보들 및 이어진 부자관계들이 작용한 결과로 이해될 수 없다 – 그러나 오히려 이어진 부자관계들이 새로운 결연과 직접적 부자관계에 의해 짧게 순환되고 유괴된다고 할 때 이해될 수 있다. 거기서, 조상은 즉 가동적이고 유한한 덩어리인 주인은, 벽돌들의 그리고 그것의 무한 회로의 조직자인 신에 의해 파면(박탈 destitué)된다.(236) (40UKD)
(3:34, 57MKF) (6:33, 57MK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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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 아브라함(Abraham) 혹은 이브라힘은 타나크(구약 경전), 쿠란의 등장인물이다. 기원전 1800년대에서 기원전 1600년대가량에 살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1230 모세 (Moïse, Moshé ben ´Amram; gr. Mωϋσῆς ou Μωσῆς, lat. Moyses. 1230경- 120세) 유대주의 첫 예언자. 출애급기.
4 세례 요한(Jean le Baptiste ou Jean Baptiste, Yohanan, / 전04–27) 크리스트교 인물, 신약과 이슬에서 예언자.
O
5 바울(Paul, gr. Παῦλος, lat. Paulus 파울루스, 5-67?) 초기 크리스트교 사도.
1818 맑스(Karl Marx, 1818-1883) 독일 철학자, 역사가, 사회학자, 경제학자, 기자, 혁명이론가. 공산주의 혁명가. Marx, Le capital, III, 7, ch 25(Pléiade, II, p. 1435).
1832 루이스 캐럴(Lewis Carroll, 1832-1898) 본명 찰스 럿위지 도지슨(Charles Lutwidge Dodgson, 1832-1898), 영국 작가, 수학자, 사진사이다. 놀라운 나라의 엘리스(Alice's adventures in wonderland, 1865), Sylvie et Bruno, 1889/1893
1844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1900)[쉰여섯] 독일의 철학자.
1883 카프카(Franz Kafka 1883-1924)의 유형지(In der Strafkolonie, 1919: Colonie pénitentaire), Muraille de Chine, 1917(1944년 출판)
1905 발라즈(Etienne Balazs, Balázs István, 1905-1963) 헝거리출신 중국전문가
1911 슈타인만(Jean Steinmann, 1911-1963) 프랑스인, 교회인물, 크리스트교 경전 주해석가. Saint-Jean Baptiste et la spiritualité du désert,(Paris, Éd. du Seuil, 1955, 191 p
1920 쉬레-까날(Jean Suret-Canale, 1921-2007) 프랑스 지리학자, 아프리카 역사가. 공산주의 운동가, 반식민지주의자
1926 푸꼬(Michel Foucault, 1926-1984) 프랑스 철학자. 고전시대에 광기의 역사(Histoire de la folie à l'âge classique, 1961.
1934 고들리에(Maurice Godelier, 1934-) 프랑스인 인류학자. 맑시즘 변호. 파푸아뉴기니아에서 작업. 선물의 수수께끼(L'Énigme du don, 1996, Maurice Godelier, Sur le mode de production asiatique, Ed. Sociales, 1969, 92-96.
(7:28, 57MM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