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아함경_168. 의행경(意行經)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을 유행하실 적에 승림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는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이제 너희들에게 설법하리라. 이 법은 처음도 묘하고 중간도 묘하며 마지막도 또한 묘하다. 뜻도 있고 문채도 있으며 구족하고 청정하여 범행(梵行)을 나타낸다.
이 경의 이름은 분별의행경(分別意行經)이고, 의행(意行)대로 태어나는 것을 설한 것이니, 자세히 듣고 잘 기억하라.”
그때 모든 비구들은 분부대로 경청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떤 것이 의행대로 태어나는 것인가?
[초선]
혹 어떤 비구는 욕심을 여의고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여의어 각(覺)도 있고 관(觀)도 있으며 여의는 데서 생기는 기쁨[喜]과 즐거움[樂]이 있는 초선(初禪)을 성취하여 노닌다.
그가 이 선정[定]을 좋아하여 거기에 머무르려고 한다면 그는 이 선정을 좋아하여 거기에 머무르려고 한 뒤에 반드시 그렇게 되어 거기에 머무르고 그것을 즐기게 되며 목숨을 마치고는 범신천(梵身天)에 태어나게 된다.
모든 범신천은 그 곳에 태어나 그 곳에 머물며 여의는 데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고, 비구는 이 곳에 머물며 여의는 데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는데, 이 두 가지 ‘여의는 데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離生喜樂]’은 차별이 없고 두 가지가 똑같은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그들 범신천도 먼저 이 곳에서 선정을 행한 뒤에 그 곳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 선정을 이렇게 닦고 이렇게 익히고 이렇게 널리 폈기 때문에 범신천에 태어난 것이다. 이와 같이 의행(意行)대로 태어나느니라.
[제2선]
또 비구는 각과 관이 이미 쉬고 안으로 고요히[內靜] 한마음이 되어[一心], 각도 없고 관도 없으며, 선정에서 생기는 기쁨[喜]과 즐거움[樂]이 있는 제2선(第二禪)을 성취하여 노닌다.
그가 이 선정을 좋아하여 거기에 머무르려고 한다면 그는 이 선정을 좋아하여 거기에 머무르려고 한 뒤에 반드시 그렇게 되어 거기에 머무르고 그것을 즐기게 되며 목숨을 마치고는 황욱천(晃昱天)에 태어나게 된다.
모든 황욱천은 그 곳에 태어나 그 곳에 머물며 선정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고, 비구는 이곳에 머물며 제2선에 들어가 선정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는데, 이 두 가지 ‘정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定生喜樂]’은 차별이 없고 두 가지가 똑같은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그들 황욱천도 먼저 이곳에서 선정을 행한 뒤에 그 곳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 선정을 이렇게 닦고 이렇게 익히며 이렇게 널리 폈기 때문에 황욱천에 태어난 것이다. 이와 같이 의행(意行)대로 태어나느니라.
[제3선]
또 비구는 기쁨의 욕심[喜欲]을 여의고, 평정하여 구함 없이 노닐며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로 몸에 즐거움을 깨닫는다. 이른바 저 성인께서 말씀하신 성인의 평정[捨]ㆍ생각[念]ㆍ즐거움에 머묾[樂住]ㆍ공(空)이 있는 제3선(禪)을 성취하여 노닌다.
그가 이 선정을 좋아하여 거기에 머무르려고 한다면 그는 이 선정을 좋아하여 거기에 머무르려고 한 뒤에 반드시 그렇게 되어 거기에 머무르고 그것을 즐기게 되며 목숨을 마치고는 변정천(遍淨天)에 태어나게 된다.
모든 변정천은 그 곳에 태어나 그 곳에 머물며 기쁨도 없고 즐거움도 없게 되고, 비구는 이곳에 머물며 제3선에 들어가 기쁨도 없고 즐거움도 없게 되는데, 이 두 가지 ‘기쁨도 없고 즐거움도 없음[無喜樂]’은 차별이 없고 두 가지가 똑같은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그들 변정천도 먼저 이곳에서 선정을 행한 뒤에 그 곳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 선정을 이렇게 닦고 이렇게 익히며 이렇게 널리 폈기 때문에 변정천에 태어난 것이다. 이와 같이 의행대로 태어나느니라.
[제4선]
비구는 즐거움이 멸하고 괴로움도 멸하는데 기쁨과 걱정의 뿌리는 이미 멸한 상태이며 괴로움도 없고 즐거움도 없으며 평정[捨]ㆍ기억[念]ㆍ청정(淸淨)이 있는 제4선(禪)을 성취하여 노닌다.
그가 이 선정을 좋아하여 거기에 머무르려고 한다면 그는 이 선정을 좋아하여 거기에 머무르려고 한 뒤에 반드시 그렇게 되어 거기에 머무르고 그것을 즐기게 되며 목숨을 마치고는 과실천(果實天)에 태어나게 된다.
과실천은 그 곳에 태어나 그 곳에 머물며 평정과 기억과 청정의 즐거움을 누리고, 비구는 이곳에 머물면서 제4선에 들어가 평정과 기억과 청정의 즐거움을 누리는데, 이 두 가지 ‘평정[捨]과 기억[念]과 청정의 즐거움[淸淨樂]’은 차별이 없고 두 가지가 똑같은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그들 과실천도 먼저 이곳에서 선정을 행한 뒤에 그 곳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 선정을 이렇게 닦고 이렇게 익히며 이렇게 널리 폈기 때문에 과실천에 태어난 것이다. 이와 같이 의행대로 태어나느니라.
[무량공처]
또 비구는 일체의 빛깔에 대한 생각을 벗어나 상대가 있다는 생각을 멸하고 약간의 생각[想]도 기억[念]하지 않는 한량없는 공(空)이 되고 이 한량없는 공처[無量空處]를 성취하여 노닌다.
그가 이 선정[定]을 좋아하여 거기에 머무르려고 한다면 그는 이 선정을 좋아하여 거기에 머무르려고 한 뒤에 반드시 그렇게 되어 거기에 머무르고 그것을 즐기게 되며 목숨을 마치고는 무량공처천(無量空處天)에 태어나게 된다.
모든 무량공처천은 그 곳에 태어나 그 곳에 머물며 한량없는 공처의 생각을 누리고, 비구는 이곳에 머물며 한량없는 공처의 생각을 누리는데, 이 두 가지 ‘한량없는 공처의 생각[無量空處想]’은 차별이 없고 두 가지가 똑같은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그들 공처천(空處天)도 먼저 이곳에서 선정을 행한 뒤에 그 곳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 정을 이렇게 닦고 이렇게 익히며 이렇게 널리 폈기 때문에 무량공처천에 태어난 것이다. 이와 같이 의행대로 태어나느니라.
[무량tlr처]
또 비구는 한량없는 공처를 벗어나 한량없는 식(識)이 되고 이 한량없는 식처[無量識處]를 성취하여 노닌다.
그가 이 선정을 좋아하여 거기에 머무르려고 한다면 그는 이 선정을 좋아하여 거기에 머무르려고 한 뒤에 반드시 그렇게 되어 거기에 머무르고 그것을 즐기게 되며 목숨을 마치고는 무량식처천(無量識處天)에 태어나게 된다.
모든 무량식처천은 그 곳에 태어나 그 곳에 머물며 한량없는 식처의 생각을 누리고 비구는 이곳에 머물며 한량없는 식처의 생각을 누리는데 이 두 가지 ‘한량없는 식처의 생각[無量識處想]’은 차별이 없고 두 가지가 똑같은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그들 식처천(識處天)도 먼저 이곳에서 선정을 행한 뒤에 그 곳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 선정을 이렇게 닦고 이렇게 익히며 이렇게 널리 폈기 때문에 무량식처천에 태어난 것이다. 이와 같이 의행대로 태어나느니라.
[무소유처]
또 비구는 한량없는 식처를 벗어나 무소유가 되고, 이 무소유처(無所有處)를 성취하여 노닌다.
그가 이 선정을 좋아하여 거기에 머무르려고 한다면 그는 이 선정을 좋아하여 거기에 머무르려고 한 뒤에 반드시 그렇게 되어 거기에 머무르고 그것을 즐기게 되며 목숨을 마치고는 무소유처천에 태어나게 된다.
모든 무소유처천(無所有處天)은 그 곳에 태어나 그 곳에 머물며 무소유처의 생각을 누리고 비구는 이 곳에 머물며 무소유처의 생각을 누리는데 이 두 가지 ‘무소유처의 생각[無所有處想]’은 차별이 없고 두 가지가 똑같은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그들 무소유처천(無所有處天)도 먼저 이곳에서 선정을 행한 뒤에 그 곳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 선정을 이렇게 닦고 이렇게 익히며 이렇게 널리 폈기 때문에 무소유처천에 태어난 것이다. 이와 같이 의행대로 태어나느니라.
[비유상비무상처]
또 비구는 일체 무소유처의 생각을 벗어나 비유상비무상이 되고 이 비유상비무상처(非有想非無想處)를 성취하여 노닌다.
그가 이 선정을 좋아하여 거기에 머무르려고 한다면 그는 이 선정을 좋아하여 거기에 머무르려고 한 뒤에 반드시 그렇게 되어 거기에 머무르고 그것을 즐기게 되며 목숨을 마치고는 비유상비무상처천에 태어나게 된다.
모든 비유상비무상처천은 그 곳에 태어나 그 곳에 머물며 비유상비무상처의 생각[非有想非無想處想]을 누리고 비구는 이곳에 머물며 비유상비무상처의 생각을 누리는데 이 두 가지 생각[想]은 차별이 없고 두 가지가 똑같은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그들 비유상비무상처천도 먼저 이 곳에서 선정을 행한 뒤에 그 곳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 선정을 이렇게 닦고 이렇게 익히며 이렇게 널리 폈기 때문에 비유상비무상처천에 태어난 것이다. 이와 같이 의행대로 태어나느니라.
[상수멸]
또 비구는 일체 비유상비무상처를 벗어나 상(想)과 지(知:受)가 멸한 촉(觸)을 성취하여 노닐고 혜(慧)로 모든 번뇌가 사라진 지혜[諸漏盡斷智]를 본다.
저 모든 선정[定] 가운데서 이 선정을 가장 제일이요, 가장 위대하며 가장 높고 가장 훌륭하며 가장 묘하다고 말한다.
마치 소로 인해 젖이 있고 젖으로 인해 낙(酪)이 있으며 낙으로 인해 생소(生酥)가 있고 생소로 인해 숙소(熟酥)가 있으며 숙소로 인해 소정(酥精)이 있는데, 이 소정을 가장 제일이요 가장 위대하며 가장 높고 가장 훌륭하며 가장 묘하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저 모든 선정 가운데서 이 선정을 가장 제일이요 가장 위대하며 가장 높고 가장 훌륭하며 가장 묘하다고 말한다.
이 선정을 얻어 이 선정에 의지하고 이 선정에 머무르고 나면 다시는 생ㆍ노ㆍ병ㆍ사의 괴로움을 받지 않나니 이것을 괴로움의 끝이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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