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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진노와 심판 선언(11-12)
우리가 삶에서 누리고 있는 것들 중에는 우리가 노력해서 성취한 것 보다는 은혜로 주어진 것이 많은 것을 발견합니다. 모든 것은 은혜로 주어졌고 그 모든 것들을 잘 관리하며 경작하는 비결은 그 은혜에 합당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은혜로 사는 우리의 본질을 망각하고 스스로 인생의 주인 노릇하며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지 못할 때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 있다는 경고를 깨달아야 합니다
11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내가 그들 중에 많은 이적을 행하였으나 어느 때까지 나를 믿지 않겠느냐 12내가 전염병으로 그들을 쳐서 멸하고 네게 그들보다 크고 강한 나라를 이루게 하리라(11-12)
긴급한 상황에 하나님께서 극적으로 개입하여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십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모세와 아론과 여호수아와 갈렙을 구하기 위함이지만, 반역한 이스라엘 백성을 심판하기 위함이기도 합니다.
백성들의 반란은 우선 모세의 지도력을 거절하는 것이지만, 그것은 필연적으로 하나님의 구속 역사와 권능에 대한 불신앙과 연결됩니다. 백성들은 모세의 지도력을 거절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모세에게 말씀하심으로 그를 지도자로 인정하신다는 뜻을 드러내십니다. “어느 때까지”를 두 번이나 반복하시는 데서 하나님의 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속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적을 행하시고 그들을 구원하시고 돌보셨으나, 그들은 여전히 불신앙 가운데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백성을 향해 ‘언제까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시험하고 반역하는 것을 참고 또 참아야 하겠느냐’고 반문하십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는 “나를 멸시하겠느냐”와 “나를 믿지 않겠느냐”라는 두 가지 징계의 이유를 말씀하십니다. 이 둘은 같은 의미를 다르게 반복하는 것입니다. ‘멸시한다’는 말은 하나님을 가볍게 여기거나, 당신의 거룩함을 훼손하는 경우를 뜻하는 단어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는 말은 하나님을 가볍게 여기고, 당신의 거룩함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지 않음을 뜻합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에 대한 심판을 선언하십니다. 본문에는 하나님의 분노 사인이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전염병으로 쳐서 모두 멸절시키시고, 그 후에 모세를 통해 다시 큰 민족을 이루겠다고 하십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을 주어로 해서 사용되는 동사는 아주 강력한 하나님의 의지 표현이 담긴 동사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이스라엘을 치시고, 멸하시고, 모세를 통해 민족을 세우실 것이라 강하게 약속하십니다. 이 대목은 출애굽기 32:10에서 하신 말씀을 거의 그대로 반복한 것입니다. 가데스 바네아에서의 반역과 금송아지 사건이 유사한 만큼 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도 유사한 것입니다.
모세의 중보기도(13-19)
우리도 누군가를 위해 중보기도를 합니다. 먼저는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계신 주님께서 우리의 영원한 중보자가 되신다는 사실을 신뢰함으로 기도를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기도의 내용은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의 형편을 나열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우리의 능력이 되시는 하나님의 성품과 약속을 붙드는 것입니다. 중보기도의 성패가 기도자의 능력에 달려있다면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면서도 불안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과 성품에 근거한 중보기도는 언제나 우리에게 소망과 확신을 줍니다.
13모세가 여호와께 여짜오되 애굽인 중에서 주의 능력으로 이 백성을 인도하여 내셨거늘 그리하시면 그들이 듣고 14이 땅 거주민에게 전하리이다 주 여호와께서 이 백성 중에 계심을 그들도 들었으니 곧 주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보이시며 주의 구름이 그들 위에 섰으며 주께서 낮에는 구름 기둥 가운데에서, 밤에는 불 기둥 가운데에서 그들 앞에 행하시는 것이니이다 15이제 주께서 이 백성을 하나 같이 죽이시면 주의 명성을 들은 여러 나라가 말하여 이르기를 16여호와가 이 백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에 인도할 능력이 없었으므로 광야에서 죽였다 하리이다 17이제 구하옵나니 이미 말씀하신 대로 주의 큰 권능을 나타내옵소서 이르시기를 18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인자가 많아 죄악과 허물을 사하시나 형벌 받을 자는 결단코 사하지 아니하시고 아버지의 죄악을 자식에게 갚아 삼사대까지 이르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19구하옵나니 주의 인자의 광대하심을 따라 이 백성의 죄악을 사하시되 애굽에서부터 지금까지 이 백성을 사하신 것 같이 사하시옵소서(13-19)
모세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서 다시 중보기도를 드립니다. 출애굽기 32장에서 금송아지 사건이 일어났을 때도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동일한 제안을 하셨지만, 그때도 모세는 주저하지 않고 백성들을 위해 중보했습니다. 지금은 이스라엘 백성이 한 목소리로 하나님을 배반하면서 모세를 죽이려고 합니다. 모세는 꼼짝없이 그들 앞에서 엎드러져 있어야만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심판이 선언되자, 그는 주저하지 않고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중보하며 기도합니다. 진정한 지도자의 모습입니다. 먼저, 모세는 하나님의 이름에 기대어 중보합니다. 그는 이스라엘을 애굽으로부터 구원하셨던 하나님께서 이제 그들을 광야에서 죽게 하신다면,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능력이 없어 자기 백성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게 했다고 오해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애굽의 백성은 물론 가나안의 여러 족속들이 하나님의 능력을 조롱할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모세의 주장은 타당해 보입니다. 또 다른 측면에서 모세는 여호와 하나님의 성품에 호소합니다.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약속하신 말씀대로, 하나님의 크신 권능을 드러내시도록 간청합니다. 모세가 간청한 하나님의 권능은 곧 하나님의 자비입니다. 18절에서부터 구약 시대에 하나님의 성품을 묘사하는 가장 잘 알려진 말씀이 반복됩니다. 사실 이 고백은 출애굽기 34장에서 모세가 중보기도 할 때 처음 강조된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권능은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납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는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자가 많아 죄악과 허물을 사하십니다. 둘째는 하나님께서는 형벌 받을 자를 결코 사하지 아니하십니다. 죄악과 허물을 사하시는 분이지만,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 자는 용서받지 못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권능이 크신데, 또한 하나님께서는 인자도 광대하십니다. 지금 모세가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은 그들의 죄를 모른 척해달라는 말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중대한 죄악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 크신 권능으로 오래 참으시고 자비를 베푸시며, 그들이 심판으로 인해 멸망 당하지 않도록 그 형벌을 감해달라는 간청입니다.
하나님의 용서, 징계, 그리고 보상(20-25)
환경이 받쳐주지 않아도, 답답한 조건이어도, 관계가 잘 안풀려도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사는 것입니다. 선한 인도하심을 의심하지 않고,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와 기대로 사는 삶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살아갈 때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약속으로 우리를 인도해 가실 것입니다.
20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네 말대로 사하노라 21그러나 진실로 내가 살아 있는 것과 여호와의 영광이 온 세계에 충만할 것을 두고 맹세하노니 22내 영광과 애굽과 광야에서 행한 내 이적을 보고서도 이같이 열 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한 그 사람들은 23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을 결단코 보지 못할 것이요 또 나를 멸시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그것을 보지 못하리라 24그러나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따랐은즉 그가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의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25아말렉인과 가나안인이 골짜기에 거주하나니 너희는 내일 돌이켜 홍해 길을 따라 광야로 들어갈지니라(20-25)
모세의 중보기도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십니다. 하나님의 응답은 모세가 기도한 바로 그 순간이 아니라, 40여 일이 지난 다음에야 주어졌을 것입니다(신 9:25). 이로 볼 때, 모세의 중보가 얼마나 지속적이고 진심이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요청대로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용서하십니다. 그러나 반란을 주도한 지도자들에게는 죽음의 형벌을 내리십니다. 하나님께서 용서하신다는 말이 심판이 없을 것이라는 뜻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은 그들이 출애굽한 이후부터 지속적으로 하나님을 시험하고 의심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무려 열 번에 걸쳐 하나님을 시험하고 불순종했다고 말씀하십니다. 열 번이라는 표현이 실제로 열 차례의 불순종을 의미하든지, 아주 많은 불순종을 뜻하든지 상관없이 그들은 지속적으로 하나님 앞에 불순종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이었기에 그들은 결코 약속의 땅을 상속받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심판을 받을 대상은 출애굽 당시 20세 이상 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당신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십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보다 더 큰 이가 없기 때문에 당신의 이름을 두고 맹세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이름으로 맹세하신 심판에서 제외되는 사람이 있으니 그들은 여호수아와 갈렙입니다. 갈렙을 앞세워 언급하는데, 이는 정탐 결과를 보고할 때 갈렙이 앞장서서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자고 외쳤기 때문입니다. 갈렙은 특별히 하나님을 불신하는 다른 정탐꾼들과는 ‘마음이 달랐다.’ 그 말의 의미는 갈렙의 마음속에 다른 영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갈렙은 오직 여호와만을 온전히 따르며 신뢰했습니다. 그의 이름 뜻과 같이 그는 여호와 하나님께 충성스러운 일꾼이었습니다. 갈렙은 그니스 자손으로 이방인이지만 이스라엘 중에 거하면서 모든 이스라엘 백성보다 더 영광스러운 칭찬을 받게 됩니다. 그런 의미로 볼 때 초기 이스라엘 공동체가 혈연 공동체보다 믿음 공동체에 가까웠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중대한 변화를 가져오는 명령을 주십니다. 가데스 바네아에서 정탐을 했기 때문에 이제 가나안 땅을 향해 북진하면 되는데, 하나님께서는 돌아가라고 명하십니다. 그들은 다시 돌이켜 홍해 길을 따라 광야로 들어가야 했습니다(25). 하나님께서는 아말렉인과 가나안인이 골짜기에 거주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을 피해 홍해 길을 따라 광야로 들어가라고 명하십니다. 홍해 길은 히브리어로 ‘갈대 바다의 길’이라는 뜻입니다. 이 길은 남쪽으로 내려가서 엘랏에 이르는 길입니다. 그 때문에 이스라엘이 광야 길로 접어들고 있다고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가데스 바네아에 도착했을 때, 드디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간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불신앙 때문에 가나안 땅을 바로 코앞에 두고 돌아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 길로 이스라엘 백성의 40년 광야 방황의 삶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 기간 동안 불순종했던 모든 자가 이 광야에서 죽어 장사 지낸 바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반란을 일으킨 대가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용서하신 것은 우리가 용서받을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사랑하시고 자비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성품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언약 백성, 아브라함의 후손은 단지 혈통적으로 이어지는 민족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고 믿으며 순종하는 사람들입니다. 오늘날도 예수님을 구원자이자 주님으로 믿고 순종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새 언약 백성인 교회로서 하나님 나라의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날마다 사랑과 자비로 우리를 향해 오래 참으시고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기억하며 감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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