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들의 섬>
요르크 슈타이너 지음, 요르크 뮐러 그림, 비룡서, 2002
영화 <마당을 나온 암탉>에서 마당을 나온 암탉을 기다리는 건 온갖 위험이지만, 그렇기에 삶입니다.
비슷한 동화가 있습니다. 「토끼들의 섬」 (요르크 슈타이너 지음, 요르크 뮐러 그림, 비룡소, 2002).
마당에서 도망친 암탉처럼 토끼 두 마리가 사육장을 탈출합니다.
두 토끼 가운데 하나는 거친 자연에서 삶을 힘들어 합니다.
갇혀 지내도 안락하게 느껴지는 사육장을 그리워하고, 다시 돌아갑니다.
동화 속 사육장은 인간의 아파트를 닮았습니다. 토끼도 착각할 정도였습니다.
상자 같은 공간에서 타인과 관계·교류 없이 지낼 수 있는 건 매가 아니라 닭뿐입니다.
이웃과 교류, 아파트 ‘단지’가 문제입니다.
한국은 아파트 주거율이 높습니다. 아파트 단지는 주거 공간 둘레를 평준화했습니다.
사람과 환경 그 모두가 비슷해졌습니다.
우연히 마주할 수 있는 다양한 사람이나 여러 오래된 상점 같은 것은 남지 않게 되었습니다.
대규모 단지 속에 살면서 무언가 구매하거나 이용하거나 활용하려면 차를 타야만 합니다.
완벽한 사적 공간인 자동차 안에서의 생활은 더욱 다른 세상과 접촉 기회를 차단했습니다.
우연한 이웃과의 만남이나 보석 같은 작은 가게를 발견하고 그 주인과 알아가는 그런 기회를 잃었습니다.
게다가 아파트 단지 속 생활은 비슷한 경제 수준이나 비슷한 연령대의 사람들만 모여 살게 했습니다.
다양한 사람을 만날 기회를 잃은 겁니다. 물질적 풍요로움을 이룬 듯하지만 인간적 관계는 확실히 작아졌습니다.
물리적 주거 환경의 변화와 소비 방식의 변화가 맞물리고,
여기에 IT 기술의 진보까지 더해지면서 이제 우리는
다른 이(낯선 이)와 인간적 만남과 교류에서 얻는 위로와 행복을 맛보기 어려워졌습니다.
다양한 사람을 만날 기회가 점점 적어지고 있습니다.
만난다 해도 그 이웃과 가깝게 지내기 쉽지 않고, 마음이 맞을 확률도 낮습니다.
사회적 동물인 사람에게 이런 비공식적 공공 생활이 없어졌으니 ‘집’과 ‘일'에서 모든 것을 얻으려고 합니다.
가족과 직장 동료 관계에 지나치게 의존합니다.
그 결과, 지나치게 예민한 관계로 상대를 만나고 때로는 좁아진 그 관계에 집착합니다. 삶이 빡빡해지고 생기를 잃어갑니다.
이탈리아 철학자 프랑코 베라르디가 「죽음의 스펙터클」(프랑코 비포 베라르디, 반비, 2016)에서 말한
한국 사회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일상의 사막화’입니다.
우정과 환대를 경험할 제3의 공간이 없다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