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수행이야기]〈69〉재가자도 일심으로 독경하면 영가 인도
백중 천도와 효 사상
‘그대 위한 기도’임을 잊지 말고
취지 정확하게 알고 기도하길
요 근래, 어느 사찰에서나 백중 기도가 한창이다. 백중은 사찰 행사 가운데 초파일 다음으로 큰 불공 의식이다. 물론 스님들은 7월 보름날이 하안거 해제 날이지만, 북방불교권 나라에서는 해제라는 의미보다는 백중 천도하는 날로 일반화되어 있다. 백중은 중국이나 일본도 마찬가지다.
중국에서는 백중을 우란분재라고 하는데, 당대에는 황제가 우란분 축제를 칙령으로 내리기도 하였다. 황실에서는 공양물을 올리고, 7대 조상까지 불공을 한다. 황실 사찰에서의 백중 행사는 황궁에서 일체 비용을 부담하였다. 일반 민중들도 마찬가지였다. 엔닌(圓仁, 794∼864)이 쓴 <입당구법순례기>에 이런 내용이 있다.
“음력 7월 보름날, 장안의 여러 사찰들이 백중 공양을 올렸다. 사찰에서는 양초, 떡, 조화, 과일 등을 불단에 올렸다. 마치 진귀한 공양물들이 서로 겨루는 것과 같았다. 공양물이 불단에 올려 있으면 장안의 사람들이 사찰을 둘러보면서 경배를 올렸다. 마을의 풍성한 축제였다.”
또 속강승(俗講僧)이라 불리는 스님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글자를 모르는 일반 서민들을 위해 알아듣기 쉽도록 통속적으로 설법해주는 스님이다. 도덕성과 효가 강조되고, 풍자성을 겸비하는데, 시대를 막론하고 단골로 등장하던 주제가 목련존자 이야기다. 중국에서 백중이 발달한데는 유교문화적인 ‘효’라는 개념 때문이지만, 종밀(780~841)의 <우란분경>에 대한 해설도 한 몫 하였다.
한편 불교 민속을 연구하는 학자에 의하면, 일본은 백중을 오봉(お盆)이라고 하였는데, 메이지 유신 이래 백중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대체로 일본인들은 백중 전날부터 가정집에 불단과 신단에 조상신을 모시고, 등불을 밝힌다. 그리고 다음 백중날, 사찰에 가서 백중 기도를 한 뒤 축제행렬에 참가한다.
한국은 근래 들어 백중 천도가 사찰의 큰 불공의식으로 자리 잡았다. 불심이 좋아졌다고 해야겠지만 왠지 모를 씁쓸함이 남는다. 물론 영가도 중생이니 천도 받는 일은 당연하지만, 사찰이 제사나 천도의식에 밀접하다는 것은 순수함이 사라진 한 단면이기도 하다.
불교신자라면 꼭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운서 주굉(1535~1615)의 <죽창수필>(연관역, 불광)에 있는 내용이다. 제목은 ‘경을 읽을 때의 마음가짐’이다.
총융인 척 공은 평소에 늘 <금강경>을 독송하였다. 그가 월의 삼강을 지킬 때의 일이다. 죽은 군사 한 사람이 꿈에 나타나 “내일 처를 보낼 테니, 저를 위해 경전 한 권을 읽어 저의 저승길을 도와주세요”라고 하였다. 다음 날 부인이 직접 찾아왔다. 공은 고인을 위해 경을 독송해주었다.
그런데 그날 밤 고인이 또 꿈에 나타나 “공의 은혜를 입었는데, 겨우 반 권만을 들었으며 그 가운데 ‘불용(不用)’이라는 두 글자가 섞여 있더군요”라고 하였다. 경전을 읽는 도중, 계집종이 ‘차를 드릴까요?’라고 물었는데, 공은 입 밖으로 말은 안했지만 속으로 ‘필요 없다(不用)’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공은 다음 날, 문을 걸어 잠그고 경전을 독송했다. 그날 밤, 다시 고인이 나타나 “이제 저승을 벗어나 제 갈 길을 가겠습니다”라고 감사를 전하며 떠났다.
이 이야기 말미에 운서 주굉은 “동림스님으로부터 직접 들은 것은 것인데, 진실한 그 스님이 거짓말을 할 리가 없다”고 덧붙였다.
이렇게 재가자도 일심으로 독경한다면, 영가를 좋은 곳으로 인도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백중날 사찰에 가서 불공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백중의 정확한 취지를 알고, 진심으로 조상을 위해 기도한다면 그 조상은 반드시 좋은 세계에 머물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대를 위한 기도라는 것, 잊지 않았으면 한다.
정운스님… 서울 성심사에서 명우스님을 은사로 출가, 운문사승가대학 졸업, 동국대 선학과서 박사학위 취득. 저서 <동아시아 선의 르네상스를 찾아서> <경전숲길> 등 10여권. 현 조계종 교수아사리ㆍ동국대 선학과 강사.
[출처 : 불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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