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공중 재림 이유/ 휴거/ 마지막 때/ 말세 / 종말/ 재림이 없을 거라고요?
재림이 없다 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아무튼, 예수님의 재림은 언젠가는 이루어질 사건이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기다리는 사건이다.
나는 지난번에 재림과 휴거에 대해서 포스팅을 했다. 오늘은 재림의 이유에 대해서 알아보랴한다. 믿는 자이건 그렇지 않은 자이건 재림을 준비하는 인생이 되어야 하겠다. 성경은 초림과 재림에 대해서 언급한다. 초림은 예수님이 주님이 첫 번째 오신 시간이었으며, 재림은 주님이 다시 오는 그것을 재림이라고 한다. 구약성경은 예수의 초림을 신약에서는 재림에 대해 언급되고 있다. 우리가 의식하지 않아서 그렇지 성경에 아주 많은 부분에서 예수님이 다시 오심, 재림에 대해서 상당히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의식하라고 얘기한다. 그리고 그날이 올 것을 기대하고 준비하는 인생을 살라고 한다.
인생은 심고 거두는 인생이다. 즉 봄, 여름, 가을, 겨울 씨를 뿌리는 시기가 있고, 추수하는 때가 있다는 것을 얘기해 준다. 즉 우리가 주님이 오셨고 가셨다라 면, 다시 오실 날이 있다는 것을 의식해야 한다. 다시 오실 그날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날과 그 시를 바라보면서 지금 현재 어떻게 내가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아야 할 아주 중요한 시점이다.
예수님의 초림이 있고 재림이 있다는 것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이라면 이 땅에서 그냥 그렇게 살아갈 수 없다. 왜? 믿고 있기 때문에 믿는 자는 삶이 다르다. 믿는 자는 삶의 내용이 다르다. 왜 믿기 때문에 믿음은 현재형이다. 소망은 미래형이다. 주님의 재림은 미래이다. 소망이다. 하지만 이것을 믿고 있기 때문에 현재형이다. 즉 재림을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이다. 믿고 있기 때문에 지금 확신할 수 있고 감사할 수 있고 두렵지 않게 그날을 준비할 수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재림을 잘 안 믿는다. 많은 사람이 이 땅이 전부인 것처럼 살아간다. 영원히 살 것처럼, 많은 사람이 이 세상이 영원한 것처럼 살고 있는 세태를 보게 된다. 하지만 사람들은 서서히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 죽을 때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이러나저러나 중요한 것은 인간은 영적 존재이다. 이 땅에 몸을 딛고 사는 한 유한하기 때문에 결국 죽는다. 그리고 죽음 이후에는 반드시 결산하는 심판이 있다는 것이다.
언제 마지막 날이 올까? 언제 지구의 종말이 올까? 지구 종말이라는 말만 들으면 두려워 덜덜덜 떨리는 분도 계실 것 같은데,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다 라면 너무 두려워할 필요 없다. 그러나 여러분 중요한 것은 이 두 가지 극단에 빠지면 안 된다.
하나는 뭐냐 하면, 과도한 두려움으로 말미암아 엉뚱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 또 하나는 과도한 무관심과 경멸과 멸시로 말미암아 그날을 준비하지 않는 인생을 사는 이 두 가지 다 우리는 경계해야 한다.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은 영적 존재이다(창 1:26, 벧전1:23,고후5:17). 영적 존재 즉 우리의 근거는 말씀이다. 그래서 말씀으로 돌아가서 재해석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재림이 오는 것에 대해서 이성을 숭상하거나 과학을 숭상하는 사람들은 절대 믿지 않으려고 한다. 그중에 대표적인 사람들을 성경에서 찾아보면 그 대표적인 한 사람이 누구냐 하면 그 소돔과 고모라 심판 때(창 18장 19장)의 상황으로 한번 들어가 보면, 현재 이승 사람들이 똑같이 그렇게 반응하고 있다.
소돔과 고모라가 악한 짓을 저질러서 심판에 이르게 되었을 때에 그 들에 대한 사위들의 반응 보면 롯이 천사의 안내를 받아서 심판받으려고 할 때 이렇게 전달한다.
(창 19:14 새번역) 롯이 나가서, 자기 딸들과 약혼한 사윗감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롯이 그들에게 말하였다. "서두르게. 이 성을 빠져 나가야 하네. 주님께서 이 성을 곧 멸하실 걸세." 그러나 그의 사윗감들은 그가 농담을 한다고 생각하였다.
정신 나간 소리다. 이 성이 망한다고 그들은 농담을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예수님이 재림하신다고 성경이 진짜라고 주님이 다시 오신다고라고 얘기하면서 그들은 실없다고, 즉 정신 나간 소리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롯의 아내는 유황불과 불이 떨어지는 그 심판 와중에서도 도망을 가다가 뒤를 돌아봤다(창 19:26). 그리고 롯의 아내는 소금 기둥이 되어 버린다. 왜 롯의 아내가 뒤를 돌아보았을까? 자신이 자기 힘으로 일궈 놓은 재산과 소유에 대한 아쉬움 때문에 뒤를 돌아보다가 소금 기둥이 되어 버렸다. 즉 이 땅에 있는 소유, 쾌락, 즐거움, 자기가 일구어 놓은 것들에 대한 이 유혹이 영원한 하늘의 것을 볼 수 없도록 가려 버리는 유혹이 될 수 있다.
왜 그런가? 저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이성의 욕심, 인간의 쾌락 때문에 그런 것이다. 사람은 영원한 존재이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미혹될 수 있다. 재물의 신(맘몬)에 미혹될 수 있고, 자기가 일구어 놓은 것에 대한 교만의 탐심에 미혹이 될 수 있다. 자기 스스로 바벨탑을 쌓고 그 모든 것이 끝까지 유지될 거라고 믿는 착각에 빠질 수도 있는 것이 인간의 어리석음이다.
그럼 당신 생각은 어떠한가? 왜 사람들이 이런 마지막 때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면 두려워할까? 그 이유는 정확하게 요한일서 4장 18절에 말씀해 주고 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무슨 말인가? 왜 두려워할까? 사랑 안에 온전히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즉 온전한 사랑을 모르기 때문에 온전한 사랑 안에 거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다. 즉 사랑과 두려움은 양립할 수 없다.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진정 확신하는 성도들이라면 그는 절대 주님 재림의 때에 마지막 날 심판의 때에 두려움으로 응답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의식하고 인식하는 자들은 절대 두렵게 반응하지 않는다. 우리는 두려워할 필요 없다. 어떤 일이 일어나든 강하고 담대하시라. 두려움을 이기는 최고의 방법은 내가 누구인지를 아는 것과 말씀대로 반응하는 것이다.
첫 번째는요 여러분 소망의 인내라는 키워드이다. 소망의 인내, 데살로니가전서 1장 2절에 보면,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아주 축복하면서 칭찬한다. 무엇을 등장하느냐 하면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 한다라고 한다. 무슨 말인가? 믿음도 칭찬하고 사랑도 칭찬한다. 그리고 예수님에 대한 소망, 예수님에 대한 소망의 인내가 뭘까? 소망은 미래이다. 미래 되어질 그 일들을 바라보면서 인내하는 것을 칭찬하고 있다. 무엇을 인내하는 것인가? 예수님이 다시 오실 것에 대한 재림에 대한 소망을 잘 가지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사도 바울이 칭찬하는 것이다. 그게 첫 번째 키워드이다.
두 번째는요. 때와 시기이다. 즉 때와 시기에 대해서 미리 단정 짓지 말고 걱정할 필요가 없다. 성경은 아주 단순하게 우리에게 얘기해 준다. 사람들이 참 주님이 언제 오실까 너무 간절히 고민하고 궁금해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언제 오실까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왜 오실까가 중요한 것이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그리고 이 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하여 이것이 더 중요한 것이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절 말씀을 보면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해서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주의 날이 밤에 도둑과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알기 때문이라" 도둑과 같이 도둑이 뭐 미리 얘기해 주고 오지 않는다. 시간을, 모르는 사이에 순식간에 집에 쳐들어온다. 그러니까 그날과 그 시는 우리가 아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단지 여러분 정확하게 이것을 아십시오.
그날과 그 시는 모르지만, 저와 여러분들은 그날과 그 시가 언제일지 어느 정도는 예측할 수 있는 직감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왜요? 깨어있다 라면
마태복음 24장 36절에도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그날과 그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천사도 모르고 예수님도 모르는 것을 우리가 알려고 할 필요가 없다. 오직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만 아시기 때문에 단지 우리는 주님이 오실 날을 기다리면서 주님이 왜 오시는지 생각하시면서 우리가 그럼 무엇을 준비하며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하며 이 땅에서 사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