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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방향과 그 변화: 국희종 선생님 6주기에 붙여
조동희- 이곳 앞마당에서 국희종 선생님의 고별예배를 드리던 때가 엊그제만 같은데 벌써 6년이 지났습니다.
제가 지금 드리는 말씀은 선생님이 생전에 써 두셨던 「내가 걸어온 길」, 「박석현 선생과 나」, 「나의 무교회 신앙 40년」 등을 참고하였습니다. 혹시 오류가 있다면 나중에라도 지적하여 주실 것을 부탁드리면서 저의 말씀을 시작하겠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아버지를 따라 목포 양동교회엘 나갔고, 1948년에 광주의전을 졸업한 후에는 역시 양동교회에서 세례를 받고, 그 후 육이오 발발 직전 목포를 떠날 때까지 성가대원으로 봉사하셨습니다. 목포 양동교회는 목포 개항 후 미국 남장로교 선교 단체에서 들어가 지은 교회로, 목포에서는 제일 먼저 지어졌으며, 1919년에는 목포 지역의 만세운동을 주도하기도 했던 역사 깊은 교회입니다. 선생님의 신앙은 이 양동교회에서 시작했고, 세례 또한 이 교회에서 받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타지에서 교회엘 나가실 때에는 꼭 장로교만을 고집하진 않으셨습니다. 해군 군의관 시절에는 임지 어디에서건 교파에 상관없이 병사들을 가까운 교회로 인도해서 주일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평일에는 부대 안의 벙커에서 새벽집회와 저녁 성경모임을 갖기도 했습니다. 진해 해군병원에 근무하는 동안에는 피난민들이 세운 여좌동의 천막교회에 숙소를 정하고 새벽마다 종을 치면서 큰 은혜를 경험하게 되는데, 이 교회는 성결교회 계통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교회에서 신앙의 싹이 트고 뿌리가 내리고 성장했지만 교파를 가리진 않았던 것으로 보아 일찍부터 교파와 신앙과는 별개의 문제라고 여기셨던 것 같습니다. 그러한 선생의 교회신앙이 언젠가부터 무교회적 독립신앙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 시기를 정확히 말하기는 어렵지만, 복흥에서 의료전도사업을 시작할 때에는 확실히 바뀌지 않았는가 생각해 봅니다. 그러나 그 동기는 그보다 몇 해 앞선 1958년도에 서울의 한 서점에서 만난 한 권의 책이었습니다. 이 책은 嘉信-기쁜 소식이란 이름을 가진 일본 무교회의 평신도 잡지로, 발행인은 矢內原忠雄 선생이었습니다. 이 책을 만나기 전까지의 선생의 꿈은 軍에서 전역을 하고 나면 신학교를 나와 교역자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당신이 軍 생활 중 겪었던 은혜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이 책을 만난 후로는 신학교를 나오지 않은 평신도로서도 충분히 복음 전도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후 선생께서는 군에서 전역을 하던 해에 또 한 번의 계기를 맞게 됩니다. 그 해 가을에 부친께서 경영하던 병원(광주의 화평의원)에서 치료 차 찾아온 박석현 선생과 조우하게 됩니다. 박석현 선생님은 화순 남면의 절동 분으로, 1927년에 왜경의 순사가 되어 담양경찰서에서 근무하던 분입니다만, 1942년에 경찰에서 쫓겨난 분입니다. 그 것도 부인과 사별한 날 파면을 당했으니 참으로 기막힌 일이었지요. 파면 이유는 기독교 신자, 창씨개명 불응, 성서조선 지 구독 등이었습니다. 그 무렵은 김교신 선생께서 주관하던 성서조선의 내용이 불온하다 하여 폐간처분 되고, 그 독자들은 구금하던 때였습니다. 박석현 선생은 그 날 이후 그리스도 이름으로 받는 고난에 감사하면서 여생을 개인전도에 몸을 바치게 됩니다. 물론 평신도로서의 전도였습니다. 그날 박석현 선생님과의 만남 이후 국 선생님은 한국의 무교회 신앙인들과 잡지들을 만나게 되고, 矢內原忠雄 선생이나 黑崎幸吉 선생 등을 통해서 일본의 무교회 잡지와 서적들을 접하게 됩니다. 그리고 여수 애양원을 거쳐 복흥에서 의료전도를 시작할 때에는 「무교회적 독립신앙」이라는 신앙의 방향이 확고하게 잡힌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후, 선생께서는 6년 전 주님의 부르심을 받으실 때까지 무교회 신앙을 견지하셨습니다. 지금 여기에는 교회에 나가시는 분들도 많이 계십니다. 그렇지만 어떤 분들은 무교회 신앙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고, 또 어떤 분들은 무교회-하면 교회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이런 분들을 위해서 간단한 설명을 덧붙일까 합니다. 무교회 신앙을 한 마디로 설명한다면 「교회라는 건물과 조직을 초월한 신앙」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작금의 교회들은 교회라는 조직이 설립한 신학교를 나와서 신부 서품을 받거나 목사 안수를 받아야만 교역자가 되고, 그래야 목회를 할 수 있고, 이 분들이 이끌어 가는 교회에 다녀야 기독교인이 된다는 형식의 틀을 벗어난 신앙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초대 교회처럼 조직이 없고 형식을 중히 여기지 않던 순수신앙과 흡사한 것으로 보아주시면 되겠습니다. 예수 전도를 사명으로 여기고 신학교 진학을 꿈꾸시던 선생님이었기에 우연히 접한 무교회 관련 서적들은 선생님의 진로 문제에 큰 영향을 끼쳤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선생님이 무교회 신앙으로 변한 뒤에도 특별히 교회 신앙을 경원하진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긴 예는 드리지 않고 이제는 마무리를 해야 될 것 같습니다. 국희종 선생님의 신앙의 방향이 교회 신앙에서 무교회 신앙으로 바뀐 후 조금은 힘든 길을 걷기도 하셨지만, 종국에는 당신이 꿈꾸시던 신앙을 이루고 가셨다는 것을 끝으로 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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