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을 통하여 배우는 영적 교훈들
욥기 5:6~7, 재난은 티끌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며 고생은 흙에서 나는 것이 아니니라 사람은 고생을 위하여 났으니 불꽃이 위로 날아가는 것 같으니라
오늘 저녁 기도회에서는 인생에 찾아오는 고난에 대하여 잠시 묵상하고 기도 제목으로 삼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혹독한 고난의 한가운데 있는 욥에게 그의 친구 엘리바스가 전한 메시지 중 일부입니다. 욥이 당한 고난을 특별한 고난으로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욥만이 아니라 모든 인생들은 다 고난 아래 처해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마치 고난을 위하여 태어난 존재인 것과 같아서 모든 사람들의 인생에는 고난이 자연스럽게 뒤따르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그렇습니다. 욥을 비롯한 모든 인간에게는 그의 인생 길에 반드시 고난을 맞이하게 되어 있습니다. 고난 없이 이 세상을 그냥 지나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렇게 아담과 하와 이래로 모든 사람에게 고난이 주어지는데 고난을 허락하시는 데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고난에는 인생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교훈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모든 인간에게 불가피하게 고난이 주어지는데 고난에는 어떤 교훈이 있고 어떤 유익이 있을까요?
먼저 고난은 인간이 보잘것없는 흙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줍니다.
고난이 없으면 인간은 기고만장해집니다. 자기가 어떤 존재인지를 알지 못합니다. 인간은 보래 흙에서 태어난 존재입니다. 그래서 사람이라는 히브리어 ‘아담’은 흙이라는 히브리어 ‘아다마’에서 나왔습니다. 인간을 하나님께서 빚으실 때에 흙덩이를 가지고 빚으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고난이 없으면 자연스럽게 교만해지고 자기가 대단한 존재로 착각합니다. 자기를 하나님처럼 생각합니다. 자기 인생을 스스로 결정하며 뭐든지 생각하는 대로 될 듯이 착각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인간의 이러한 착각을 깨뜨리고 자기가 무엇인지, 자기가 흙덩이에 불과한 비천한 존재임을 상기하게 해주고자 고난을 허락하십니다. 그래서 욥기의 지혜자들은 노래하기를
“구더기 같은 사람, 벌레 같은 인생이랴”(욥기 25:6)
라고 토로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고난은 인간의 본질이 단지 한 덩이 흙 먼지에 불과함을 상기해줍니다. 인생이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가는 비천한 존재임을 기억하게 해줍니다.
또한 고난은 인간의 무력함을 깨닫게 해줍니다.
고난은 우리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음을 절감하게 해줍니다. 건강을 내 마음대로 되돌릴 수도 없습니다. 재난을 미리 막을 수도 없습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노화를 누구도 멈출 수 없습니다. 뜻밖에 찾아오는 예상치 못한 시련들을 대비할 수 있는 것들이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병과 죽음과 사건과 사고를 누가 미리 예상하고 준비를 잘 할 사람이 우리에게 누가 있습니까? 아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인생 길을 사는 동안 만나게 될 고난을 미리 보여주었다고 한다면 우리 중에 한 사람도 감히 인생을 살아갈 용기를 얻지 못하고 미리 좌절하고 포기했을 것입니다. 인간은 고난을 통하여 우리 자신의 무력함을 절실히 깨닫고 낮아지게 됩니다.
또한 고난은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진정한 소유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실감하게 해줍니다.
고난이 없으면 우리는 내 건강도 내 것이요 내 가정도 내 것이요 내 재산도 내 것이요 내 인생도 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고난이 닥치면 아무 것도 안전한 것이 없습니다. 고난이 내 안전한 소유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다 흔들어버립니다. 재물도 내 것이 아니요 주님의 손에 있는 것이요 건강도 내 것이 아니요 주님의 손에 있는 것이요 내 가정도 주님의 손에 있는 것이요 내 인생도 실상은 내 것이 아니요 주님의 손에 놓여 있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혹독한 고난 속에서 비로소 내 것이 하나도 없음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비로소 하나님께서 내 모든 것의 주인 되심을 인정하며 하나님께서 친히 자기의 것을 그의 뜻대로 하시도록 다 맡겨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고난은 비로소 내가 가진 모든 것의 소유권이 하나님께 있고 그것을 지키시는 분도 하나님이시요 그것들을 그의 뜻대로 분배하는 분도 하나님이시라는 점을 확실하게 깨닫게 해주는 지혜자인 것입니다. 그래서 고난을 당한 이후에야 비로소 내 것이라고 하는 소유의 노예가 아니라 비로소 소유에서 자유로운 자가 되고 주님 손에 우리가 가진 것을 홀가분하게 맡길 수 있게 됩니다.
또한 고난은 우리의 범죄함을 막아줍니다.
모든 것이 평탄할 때에 우리 안의 타락한 본성은 슬그머니 힘을 얻고 죄를 향하여 일어납니다. 고난당할 때에는 죄를 지을 틈이 없습니다. 살아 남아야 하기에 매일 매일 급급합니다. 하나님께 부르짖기에 급급합니다. 그러다가 고난이 사라집니다. 모든 일이 이제 고요해집니다. 그러면 이제 슬그머니 우리 속에 타락한 본성이 일어나서 죄를 찾게 됩니다. 다윗도 사울 왕에게 쫓길 때에는 아무 정신이 없어서 살아남기 위하여 하루 하루 하나님만 바라보며 의지하며 살았습니다. 죄를 지을 틈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왕에 오르게 되고 12지파 전체의 추대를 받고 예루살렘에 도성을 짓고 마음 먹은 대로 법궤도 모시게 되고 왕권이 튼튼해지니까 그만 밧세바를 취하고 그 남편 우리야를 전쟁터에서 화살을 맞아 죽도록 살인 교사를 해서 죽이는 악행도 서슴지 않습니다. 평탄하니까 그렇게 범죄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고난은 범죄를 막아주는 방부제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우리로 하여금 죄에 빠져 영혼이 죽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방부제 역할을 합니다. 북해에서 물고기를 잡아 오는 어부들은 그 물고기를 살려서 시장까지 가져오도록 배 속에 물고기를 잡아넣은 물통에다가 그 물고기를 잡아 먹는 천적 물고기를 한 마리씩 집어 넣는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 천적 물고기 때문에 다른 물고기들이 어떻게 해서든지 살아남으려고 몸부림치다가 죽지 않고 살아서 항구까지 온다고 합니다. 이처럼 고난은 우리의 죄성이 살아나 범죄하지 않도록 막아주는 유익한 천적 역할을 해줍니다.
또한 고난은 우리의 죄를 상기해서 회개하게 해줍니다.
사렙다 과부가 엘리야 선지자를 자기 집에 모신 후에 기근 시에 밀가루 통과 기름 통에 기적이 일어나 굶어 죽지 않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런데 그 과부는 삼년 동안 선지자를 모시고 섬기다 보니 엘리야 선지자가 섬기는 여호와 하나님의 실재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자기의 지난 날의 죄를 회개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자기의 아들이 돌연 죽게 되는 큰 고난을 당했습니다. 그 때에 그 과부는 자기 아들의 죽음의 고난을 겪고서 선지자에게 이렇게 울부짖으며 말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이 나와 더불어 무슨 상관이 있기로 내 죄를 생각나게 하고 또 내 아들을 죽게 하려고 내게 오셨나이까”(열왕기상 17:18)
사렙다 과부는 아들이 죽는 커다란 고난을 경험하면서 자기의 지난날의 죄를 상기하게 되었고 그 죄 때문에 자기 아들이 이렇게 죽었다고 생각하며 깊은 회개의 울부짖음을 선지자 앞에서 토로하였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고난은 죄를 생각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깊고 간절한 회개의 자리로 나아가게 되어 온전한 신앙으로, 더 깊은 성숙한 신앙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또한 고난은 하나님 앞에 엎드리게 합니다.
고난이 있어야 사람은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게 됩니다. 매달리게 됩니다. 평상시에도 그렇게 매달리면서 간절히 기도해야 하지만, 인간의 본성은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으로 하여금 더 큰 은혜와 축복을 받게 하시려고 때로 고난을 주시어, 그로 하여금 하나님께 달려나와 매달리게 합니다. 그리하여 그렇게 간절히 부르짖는 기도에 응답하사 문제를 해결해주실 뿐 아니라 예비하신 다른 큰 축복과 은혜까지 더해주시게 하십니다. 시편 81:10 말씀에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고 약속하셨습니다. 고난은 우리 입을 하나님께 향하여 크게 열게 만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 크게 넓게 열린 입에 지극히 복된 보석과 같은 축복들을 넘치게 채워주시도록 합니다. 고난은 우리에게 하나님께 부르짖음으로써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넘치는 복을 우리로 받을 수 있도록 준비시켜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을 만났을 때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고난이 찾아올 때 괴로워하고 낙심하고 좌절하고 쓰러지지 말고 고난을 잘 대응해야 하겠습니다. 고난 중에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고난 중에 인내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그 고난의 뜻을 헤아려야 하겠습니다. 전도서 7:14 말씀에 이르기를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이 하나님 앞에 미진한 부분이 있는지를 차분하게 찾아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고난이 극심하여 기도하려고 주 앞에 엎드리기조차 힘이 들고 어려울지라도 주님을 다시 바라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선하심과 자비하심을 생각하고 그의 선하신 약속을 깊이 묵상하면서 그 은혜의 말씀들을 붙들어야 하겠습니다.
또한 믿음의 선배들을 기억하면서 그 본보기를 닮으려고 자신을 쳐야 하겠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서 전도하다가 귀신들린 여종의 귀신을 내쫓아주는 선한 일을 했다가 고발당하고 붙잡혀서 매맞고 감옥에 던져졌을 때 그 감옥에서 한밤중에 일어나 기도하고 찬양했던 것을 기억하며 그 결과를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나아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고난 중에 기꺼이 믿음을 위하여 자기 자신의 생명까지 내려놓았던 믿음의 선배들을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가 우상 숭배의 압박을 받았을 때에 뜨겁게 타는 풀무불에 던져질 위협을 받는 중에도 “그리아니하실지라도 왕이시여 우리가 우상에게 절하지 아니하고 왕의 명령에 순종하지 아니할 줄 아옵소서”라고 당당하게 고백하며 끝까지 믿음을 지킨 것을 기억합시다. 욥도 혹독한 고난 중에 고백하기를
“그가 나를 죽이실지라도 나는 그를 의뢰하리라”(욥기 13:15 난하주)
고 하였습니다. 그러한 믿음의 선배들을 생각하면서 우리도 고난 중에 의연하게 선하시고 참되시고 영원하신 하나님을 여전히 신뢰해야 하겠습니다. 설령 그가 이 고난 중에 우리를 건지시지 아니하실지라도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을 신뢰하며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을 결코 저버리지 아니할 것을 다짐합시다.
이렇게 고난을 대응할진대 고난은 우리를 성숙하게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강하게 할 것입니다. 우리 믿음을 순결하게 해줄 것입니다. 우리에게 고난을 극복하게 해주실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더 복되고 아름다운 선물들을 준비하셔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실 것입니다.
참으로 고난받는 것은 유익합니다. 우리 인생에서 피할 수 없는 불가피한 고난과의 만남에서 고난이 주는 이러한 교훈들을 배우고 잘 대응하여서 주님의 사람으로 더 온전해지고 주님께서 주시려는 더 지극히 큰 복과 은혜를 받아 누리는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