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봉사·기도·자선으로
일구는 ‘자비로운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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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충규 원장이 요셉의원에서 한 환자의 치아를 치료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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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년 동안 소외되고 가난한 이웃의 치아를 치료해준 이충규 원장. 그에게 의료봉사는
밥 먹는 일처럼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지혜 기자 |
“가끔 제가 가지고 있는 치과의술이 별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다 밤새 통증으로 잠 못 이룬 환자가 왔을 때 간단한 처치로
환자의 입가에 미소가 돌면 ‘별 게 아닌 게 아니네!’ 하며 슬그머니 미소 짓습니다.”
이 별거 아닌 것 같은 치과의술로 25년
동안 알코올 중독자와 행려인, 장애가 있는 어르신들이 밥 한술 편히 뜨도록 아픈 치아를 들여다보고, 틀니를 끼워준 의사가 있다.
서울 관악구 봉천로에서 개인 치과를 운영하는 이충규(요셉, 55, 서울 반포본당) 원장이다.
“주일에 꽃동네 진료를 다녀오고,
월요일 저녁에 요셉의원에 가면 입에서 단내가 나고 등이 벌어질 것 같은 통증을 느낍니다. 그렇지만 진료를 마치고 파김치가 돼서 집에 돌아갈 때는
‘내가 살아 있구나!’ 하고 느껴요.”
전남 진도에서 공중보건의로 일했던 이 원장은 25년 전 고향을 떠나 개인 병원을 차리기
위해 서울로 올라왔다.
“서울에 가면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이 더 많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무작정 상경했습니다. 전남 목포 고향
근처에 병원을 차렸으면 돈은 좀 벌었겠지요.”
그는 1991년 서울에 개원하자마자 당시 충북 음성 꽃동네에서 활동하고 있던 치과
봉사 모임 ‘녹야회’에 가입해 의료 봉사를 시작했다.
녹야회는 치과의사ㆍ치위생사ㆍ치기공사 등 회원 50여 명으로 구성된 봉사 단체다. 대부분 가톨릭 신자로, 현재 그가 회장직을 맡고 있다.
회원들이 매주 돌아가면서 꽃동네를 방문해 치과 진료를 맡고 있다.
이 원장이 매주 월요일 저녁 7시부터 2시간 동안 요셉의원에서
만나는 행려인들과 쪽방촌에서 생활하는 홀몸 어르신들의 치아 상태는 엉망이다.
알코올 중독자가 많다 보니 치아 관리가 안 되고, 또 규칙적으로 양치질할 수 있는 환경도 아니다. 그는 보철치료와 함께 틀니를 만들어
끼워준다.
“이따금 환자들에게 ‘이거 우리 치과에서 하면 몇백만 원짜리’라고 알려줍니다. 공치사하는 게 아니라 귀하게 잘 쓰시라는
의미지요. 치료비를 받지 않으니, 틀니를 맞춰주면 제대로 관리를 안 해 쉽게 잃어버리거든요.”
봉사를 막 시작했던 초창기, 그의
마음에 오래도록 남아 있는 환자가 있다.
“한 환자의 틀니를 다 만들고, ‘한번 틀니를 뺐다가 껴보시라’고 했는데 두 팔이 없는
환자인 겁니다. 저는 틀니를 만들어주면서도 그걸 몰랐던 거지요. 치과의사로서 환자의 입안만 들여다봤구나 싶었어요. 저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그 후로 이 원장은 환자들을 만나면, “식사는 하셨는지?” “다른 불편한 곳은 없으신지” 등 가벼운 안부 인사를
주고받는다.
그에게는 봉사하면서 얻은 귀한 인연들도 많다. 함께 봉사하면서 알게 된 요셉의원과 꽃동네 직원과 봉사자들이다.
그는 “치과 진료는 의사와 치위생사, 치기공사가 원활한 유기관계 속에서 이뤄지는데, 조명을 치과의사만 받고 있는 게 겸연쩍다”고도 했다.
이 원장은 의료 봉사가 배고플 때 밥을 먹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그에게는 밥을 먹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 또
있다.
매일 하루 진료가 끝나면, 3만 원을 빼 책갈피 속에 꽂아뒀다가 한 달 치를 모아 어려운 곳에 기부한다. 하루도 빠짐없이 묵주기도 20단을
바친다. 자신의 병원을 찾는 성직ㆍ수도자들에게는 최소한의 보철 치료비만 받는다.
그는 지난해 병원 직원들과 함께 필리핀, 베트남에
의료 봉사를 다녀왔다.
“좋은 의술을 내 밥벌이에만 쓰기에는 아깝지요. 작은 의술이지만 베풀 때 커집니다. 좋은 의술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봉사)하지 않는 것은 저 자신에게 직무 유기라고 생각해요.”
그는 75세까지 병원을 운영하고, 80세까지 봉사하는 게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