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영모재준공기(永慕齋竣工記){비석}
조선(朝鮮) 세종(世宗) 때(朝) 당시 남원(南原) 부사(府使)이신 연촌(烟村) 선조(先祖)께서 주암(舟巖){방계(芳磎)마을}을 둘러보시고 이곳에 자손(子孫)들을 살게 하면 장차 크게 창성(昌盛)할 것이라 예견(豫見)하시고, 터를 잡아 장자(長子) 호군공(護軍公) 휘(諱) 주(淍) 선조(先祖)님을 살게 하셨다.
그로부터 이곳에 뿌리를 내려 후손(後孫)들이 대대(代代)로 번성(繁盛)하여 명문거족(名門巨族)으로 푸른 산맥처럼 뻗어가고 있다.
그간에 우리 후손(後孫)들은 조상(祖上)님들의 은덕(恩德)을 추원(追遠) 보본(報本)키 위하여 묘제(墓祭)와 단제(壇祭)를 온 종인(宗人)들이 모여 정성(精誠)스럽게 모시면서 종인(宗人)들의 화목(和睦)과 단결(團結)을 도모하여 왔다.
그러나 이제 우리의 전통적(傳統的)인 미풍양속(美風良俗)들이 서구화(西歐化), 산업화(産業化), 극도(極度)의 개인주의(個人主義), 핵가족주의(核家族主義)로 변하여, 조상(祖上)님들에 대한 숭배(崇拜) 정신(精神)이 퇴색하였고, 제례(祭禮) 행사(行事)도 소홀이 되어가고 있다.
이에 종인(宗人)들은 시대적 흐름을 고려하여 문중(門中) 제례(祭禮) 문화(文化)의 전통(傳統)을 새롭게 발전시켜, 더욱 숭조(崇祖) 돈목(敦睦)하고 명문거족(名門巨族)의 위상(位相)을 정립(定立)하자는 뜻의 결집(結集)으로,
여기 연촌(烟村) 선조(先祖)님의 얼이 머물고 있는 성스러운 터에 영모재(永慕齋)를 옮겨서 고쳐짓고(移改築) 매년 음력 10월(十月) 10일(十日)에 묘제(墓祭)를 합동(合同) 향사(享祀)로 모시게 되었다.
이 영모재(永慕齋)는 유현산(乳懸山)의 제각(祭閣)을 옮겨서 고쳐지었고(移改築), 공사비(工事費)는 전주-광양간고속도로 개설에 편입된 유현산(乳懸山) 보상금(補償金)으로 충당(充當)하였다.
앞으로 우리 후손(後孫)들은 영모재(永慕齋)에서 합동(合同) 향사(享祀)를 모시게 됨을 계기로 하여 문중(門中)의 제례(祭禮) 문화(文化)를 더욱 발전시키고 국내외(國內外) 후손(後孫)들이 많이 참여(參與)한 가운데 매년 축제(祝祭) 속에서 경건(敬虔)하게 제례(祭禮) 행사(行事)가 푸른 강물처럼 이어져 가기를 기원(祈願)한다.
서기(西紀) 2008년 11월 7일.
우원(牛園) 최근호(崔根鎬) 지음(撰)
영모재(永慕齋) 이개축(移改築) 공사(工事) 기념(記念)
착공년월일(着工年月日) : 2008년 8월 1일.
준공년월일(竣工年月日) : 2008년 10월 31일.
건물(建物) 구조(構造) 및 건평
제각(祭閣) : 목조와가(木造瓦家) 건평(建坪) 14.4평(47.5m2)
문간(門間) : 목조와가(木造瓦家) 건평(建坪) 5.0평(16.7m2)
공사비(工事費) : 7,260만원.
종회장(宗會長) : 최근호(崔根鎬)
부종회장(副宗會長) : 최병철(崔炳哲), 최규홍(崔圭弘), 최선림(崔善林)
총무(總務) : 최규완(崔圭椀)
감사(監事) : 최래규(崔來圭), 최낙생(崔洛生)
큰골유사(有司) : 최건호(崔建鎬)
* note.
1. 이 글은 국한문(國漢文) 혼용(混用)으로 되어 있는데, 독자의 편의를 고려하여, 한문을 괄호 속에 넣고 발음을 한글로 기록하였다. 단, 일부 단어는 독자의 편의를 고려하여 한글로 번역하였다.
2. 문단 나눔과, 띄어쓰기, 쉼표(,)와 마침표(.)를 임의로 추가하였다.
3. 일부 오자(誤字)로 보이는 글자를 바로잡아 수정하였다.
4. 숫자는 괄호 속 한자를 생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