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들의 순례 모습 16일 차
어제 저녁 한 방을 쓰는 로사 자매와 술 한잔 하면서 이야기 나눔
자매는 50세이고, 어머니 간호를 27년째 하고 있다 함
성소가 있어 수도원에 들어갔다
어머니를 간호해야 할 처지가 되어
수도원을 나와 결혼하지 않고 어머니를 돌봄
본인의 시간을 거의 갖지 못해
50세가 되면 자유여행을 하겠다고 생각하며 살다
친구 3명과 오기로 했는데 2명은 사정이 생겨 혼자 오게 되었슴.
처음엔 두려워 한국인과 동행하고 만나는 것이 좋았는데,
특히 처음 9일간
나도 만난 적 있는
40년 전 미국인과 결혼해 이민간 68세 자매가
영어도 잘해 함께 동행했는데 의견차이로 상처를 받음
또 한국분들은 만나면 모이기를 좋아해
단톡방을 만들어 연락하며
어느 곳에서 며칠에 만나 파티하자
이곳서 만나 순례중인 신부님과 피정하자며
수시로 연락하여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
이곳에 온 보람이 없다고 함
동행하던 분과 헤어졌고 한국 분들과 일정도 맞추지 않고
혼자만이 갈수 있는 거리를 조정하며
남은 순례길 조용히 생각하는 시간 갖겠다 함
순례길 특히 프랑스길엔 한국인이 정말 많음
함께 장을 봐 조리하느라 주방은 한국인 차지.
삼겹살 닭도리탕 닭죽 스파게티 카레 등
먹고 싶은 것 모두 해먹음
하지만 시끄럽고 먹는데 치중
미사나 순례자 함께하는 프로그램 등엔 소홀한 면이 있음
젊은 친구들은 시간이 부족한 사정도 있겠지만
완주 증명서를 받기 위한 목적인지
하루에 40킬로 이상 경주하듯이 걸어
20일이 안 걸려 도착하기도 함.
묵상하며 까미노를 걷기보다는 마라톤 경주하는 모습을 보임
한국분들은 만나면 인사하고 헤어지는 정도로 대하고
자기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것이 나의 생각
순례길에서 나를 기쁘게 하는 것과 슬프게 하는 것(16일 차)
기쁘게 하는 것
새벽에 비가 안 오면
길가에 핀 이름 모를 들꽃과 향기
보리밭 밀밭과 흙냄새
아침에 지저귀는 새소리
드넓게 펼쳐진 들판
아스라이 보이는 스카이 라인과 하늘
바람에 스치는 향긋한 냄새
한낮의 나무그늘
쉼터와 식수대
성당의 종소리
까미노 사인
마주치며 인사하는 말: ‘올라’ ‘부엔 까미노’
숙소에 도착 샤워하고 마시는 시원한 맥주 한잔
카톡 응원 메시지를 보는 일
이 모든 것을 듣고 보고 맛보고 느낄수 있고
걸을수 있는 모든 것을 주신 주님께
감사와 찬미드림
슬프게 하는 것
신자는 줄고 낡고 허물어져 가는
웅장하고 아름다웠던 시골 마을 성당이
새들의 보금자리가 되어가는 것
하지만 성당의 종소리는 변함없이 울리며 희망을 기원
길가에 순례자들 발에 밟혀 죽은 수많은 달팽이들
로드킬 당한 산토끼, 이름 모를 예쁜 새
로드킬 당해 죽은 새를 집어 길가 풀숲에 놓았다 하니,
카톡으로 딸이 하는 말
앞으론 그 위에 꽃 한 송이도 올려놓으라고
미처 그 생각을 못한 나의 측은지심의 한계
아직 사랑이 부족한 스테파노
순례도중 돌아가신 수많은 순례자들의 표지석(십자가)
순례길 단상
순례길을 걸으며 계속 맞닥뜨리는 것은
템풀기사단의 흔적,
중세 순례자를 위한 병원 흔적,
까미노를 위해 헌신한 분들(성인,왕비 등).
순례자를 위해 건설된 다리들, 숙소, 성당등
이모든 흔적이 까미노에 남아있고
전해지는 많은 이야기를 품고 번성했던 마을들
그래서 마을이름에도 다 유래가 있고
까미노가 붙은 마을이름도 많음
어제 묵었던 알베르게 이름이 하케스 데 물라이 인데,
이 마을이 과거 템플기사단의 근거지였고
하케스 데 물라이는 템플기사단의 마지막 수호자였음
여기서 잠깐 템플기사단이란?
1차 십자군 전쟁 승리 후
유럽에서 예루살렘으로 오가는 성지 순례자들을 보호하기위해
1119년말 프랑스 귀족 위그드파생 주도로
뜻을 같이하는 8명이 모여 9인 기사단을 조직
이 소식을 들은 예루살렘왕 보두앵2세는
예루살렘성전 언덕에 기사단 거처를 마련해 주었는데
그 터가 옛날 솔로몬왕의 성전이 있었던 자리로,
기사단의 이름을 성전(템플)기사단이라 짓게 됨
이들의 폭발적 성장에 바티칸과
여러 왕들의 음모에 의해 1307년 10월 18일 금요일
중세 최대 검거작전과 함께 순식간에 사라짐.
여기서 13일의 금요일이라는 말 유래
그 무렵 무어인들을 상대로
국토회복 전쟁(레콩키스타)이 한창이던 스페인이
도망친 기사들을 받아들였고
산티아고 순례길을 수호하던 기존의 기사단에 통합시킴
그래서 산티아고는 가장 안전한 순례길이 되었고
많은 흔적을 남기게 됨
첫댓글 우리네 사람은 순례길에 나서도 어찌할 수 없는 한국인인가 봅니다.
모이면 떼창하는 그 모습처럼 어디를 가도 버리지 못하는 습관인 된것 같읍니다.
아직 가보지 못한 멋진 순례길의 일상을 사진을 통해서 언젠가의 순례길을 그려봅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