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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7: 36 찾아도 - 요 7: 38 성경에 이름과 같이
요 7: 36 찾아도 -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 한 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니라. (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 한 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니라. )
예수의 말씀은 사람의 지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1]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
이 구절은 앞의 34절을 참고하자.
2] 한 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니라. ( 유대인의 메시야관. 요한복음 7: 25-36 )
유대인들은 오래 전부터 메시야를 대망 해 온 민족이다. 그들은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메시야를 바랐다. 이 같은 그들의 바람은 자기들이 원하는 그때에 메시야가 나타나서 자기들을 민족적으로 구원해 줄 것을 기대한데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메시야관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메시야관이었다. 이런 메시야관이 결국은 나사렛 땅에 가난한 가정의 목수의 아들로 태어난 예수를 메시야로 믿지 아니한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이스라엘(유대인)은 지금도 영광 중에 나타나서 자기들을 구원해 줄 메시야를 기대하고 있다.
(1) 예수를 그리스도인줄 알았는가?
예수님은 초막절 중간이 되어 성전에 올라가셔서 성전에 모인 유대인들을 향하여 복음을 가르쳤다. 그곳에는 그를 비난하는 무리들이 많이 있었지만 안식일의 규례를 어기는 그들의 잘못된 행실에 대하여 신랄하게 공격하셨다.
① 유대인들은 그리스도의 오심을 몰랐다.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는 어디서 오시는지 아는 자가 없으리라.” 유대인들은 그리스도의 태어나심에 대한 신비를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은 다만 그들을 구원할 메시야가 말할 수 없는 영광중에 오시리라고 생각했다.
예루살렘 사람들은 예수님의 신상에 대하여 소상히 알고 있었지만 주님의 이 같은 신상관계가 그들로부터 메시야로서의 인정을 외면하게 만들었다.
②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출생지에 대하여 전혀 몰랐다.
나사렛이 그의 고향이며 갈릴리 사람으로만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주님이 권세 있는 말씀을 하고 놀랄만한 이적을 행해도 메시야에 대한 그들의 사상을 뒤엎을 수가 없었다.
“혹은 그리스도라 하며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가 어찌 갈릴리에서 나오겠느냐? 성경에 이르기를 그리스도는 다윗의 씨로 또 다윗의 살던 촌 베들레헴에서 나오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요 7: 41-42).
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 사실을 안 사람은 그 부모와 동방박사들이며, 들에서 양을 쳤던 목동들은 이미 까마득히 잊었을 것이다.
이처럼 예수님은 갈릴리 나사렛에서 온 사람임을 누구나 다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생각하고 있는 메시야관에 합치되는 인물이 아니었다. 혹 그들 가운데는 예수님을 메시야로 인정하는 무리들도 적지 아니하였지만 그들의 메시야관도 유대인만을 위한 편협적인 사상이므로 바른 메시야관은 못되었다.
(2) 예수님의 증언
진리를 증거하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진리를 깨닫게 하시는 성령의 역사가 없으면 깨달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① “너희가 나를 알고 내가 어디서 온 것도 안다”라고 하셨다.
주님의 이 말씀은 그들이 자신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실이 사실이다.라고 하신 뜻에서 이처럼 말씀하신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이 육신적으로 알고 있는 주님에 대한 지식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에 대하여 탄식하시는 말씀이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의 신분에 대하여 알고 있었던 일은 나사렛 땅에서 태어나셨다는 것으로 그들은 이 일에 대해서만은 잘 알고 있었다.
② “내가 스스로 온 것이 아니라”라고 하셨다.
예수님은 태어나심의 신비를 그들에게 가르쳐 주시기를 “내가 스스로 온 것이 아니라”고 하셨다.
스스로 온 것이 아니라고 하신 말씀은 인간적인 출생하는 방법으로 태어나지 아니하셨다는 사실을 밝히신 것이다.
③ “나를 보내신 이는 참이시라”고 하셨다.
참이란 진리인데 진리는 곧 하나님이시다.
예수님은 참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분이다.
④ “너희는 모르나 나는 그를 안다”라고 하셨다.
주님은 어째서 그들에게 “너희는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고 하셨나? 그들이 알고 있는 하나님은 의식화된 율법적인 하나님이라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이런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예수님은 이 같은 말씀으로 그들의 잘못된 메시야관을 공격하고 자신이 참 하나님의 보내신 메시야심을 증언하셨다. 이런 예수님의 말씀에 그들은 분이 가득하여 주님을 잡으려고 했지만 감히 어느 누구 하나 손을 대는 자가 없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은 아직 그들의 손에 잡히실 때가 아니셨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예수님의 가르치시는 말씀에는 권능이 있었다. 사람들의 마음을 강하게 움직이시고, 그들은 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자 그들 중에 많은 무리가 예수님을 메시야로 믿기 시작했다.
무리들의 수군거림은 바리새인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예수를 잡으려고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의 아랫사람들을 그곳에 보냈지만 아직 때가 이르지 않은 예수님을 붙잡을 수는 없었다.
예수님은 유월절에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돌아가실 것을 이미 알고 계셨다. 초막절부터 유월절까지는 약 반년간의 시일이 있었다. 그때 예수님은 그의 사명을 마치시고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것이다.
6. 생수의 강 ( 7: 37-44 )
37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39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 40 이 말씀을 들은 무리 중에서 어떤 사람은 이 사람이 참으로 그 선지자라 하며 41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라 하며,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가 어찌 갈릴리에서 나오겠느냐? 42 성경에 이르기를 그리스도는 다윗의 씨로 또 다윗이 살던 마을 베들레헴에서 나오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며 43 예수로 말미암아 무리 중에서 쟁론이 되니 44 그 중에는 그를 잡고자 하는 자들도 있으나 손을 대는 자가 없었더라.
요 7: 37 누구든지 -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
이 말씀은 초막절 끝날 곧 거룩한 대회로 모이는(레 23: 36) 큰 날에 예수께서 사람들을 향해 하신 복된 초청이었다. 그의 초청에는 제한성이 없다. 목마른 자는 누구든지 주께로 나오라고 초청되었다.
이 목마름은 정신적, 종교적, 도덕적 갈증을 가리켰다. 인간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며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 인간은 왜 늙고 병들고 죽어야 하며 세상에는 왜 불행한 일들이 많은가? 인간은 왜 죄를 극복하지 못하는가?
실상, 이런 질문들은 인간의 가장 근본적 문제들이다. 이런 문제들과 관련해, 예수께서는 단순히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고 초청하셨다.
1]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초막절은 한 주간이지만, 거기 하루를 더하여 8일 동안 지켰다(레 23: 36. 민 29: 35).
유대인들은 이 초막절 기간에 매일 실로암 못에서 물을 길어 가지고 행렬을 지어 성전 문에 돌아와서 물을 붓는 행사가 있었다.
그것은 그들의 선조들이 광야에 있을 때 바위에서 이적으로 솟아나온 물을 기념하는 뜻이라고 한다. 예수님께서는 이와 같은 초막절 행사와 관련하여 영적 생수에 관한 설교를 하셨다.
2]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내게로 와서 마시라." 이것은 보통 사람이 할 수 없는 큰 말씀이다. 이것은, 메시야로서 하실 수 있는 말씀이다. 이 말씀의 권위는 마 11: 28 말씀과 같다.
* 마 11: 28 -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 사 55: 1 -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이 말씀을 보면, 예수님만이 인류의 갈증을 멈추어 주실 수 있음이 확실하다. 인간은 작은 몸이지만, 그의 소망과 요구는 무한한 것으로 채울 수 있다.
* 전 3: 11 -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이 무한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며,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 뿐이시다.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인류의 갈증을 참으로 만족시키신다는 사실은, 약 2,000년 동안의 진실한 기독 신자들의 경험이 증언한다.
요 7: 38 성경에 이름과 같이 -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
예수께서는 자신이 인간의 목마름을 해소시켜 주겠다고 말씀하신다. 사람이 그를 믿으면 모든 문제의 해답을 얻는다는 뜻이다.
성경은 구원을 물에 비유하였다.
* 사 12: 3 -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 사 35: 6-7 – 6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7 뜨거운 사막이 변하여 못이 될 것이며, 메마른 땅이 변하여 원천이 될 것이며, 승냥이의 눕던 곳에 풀과 갈대와 부들이 날 것이며,
* 사 44: 3 – 나는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나의 영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부어 주리니.
* 사 55: 1 -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구원은 갈한 영혼에 시원한 물과 같다.
사도 요한은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신 고로 성령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라고 설명을 덧붙였다.
예수를 믿는 자들의 속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내린다는 말씀은 그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킨 것이었다. 예수께서 승천하셔서 성령을 보내신 이후에는 성령께서 모든 성도들 속에 계셔서 은혜의 풍성함을 누리게 하실 것이다.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 신약교회는 성령의 내주(內住)하시는 복을 누리고 있다. 이것은 성도들 속에 메마름이 없는 풍성한 은혜이다. 성령께서는 믿는 이들 속에 영원히 계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로하시고 인도하시고 필요한 영적 은혜를 날마다 공급하신다.
1]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어떤 학자들은, 이 구절 초두에 있는 "나를 믿는 자"란 말을, 앞 절 끝의 "마시라"는 말의 주격으로 올려붙인다.
그것은 문법상으로 가능한데, 그렇게 하는 경우에는 그 뜻은, "나를 믿는 자로 마시도록 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 배에서"란 말을 "그리스도의 배에서"란 뜻으로 간주한다(Lagrange, Bultmann, Wikenhauser). 히폴리트(Hippoliyt)가 그렇게 해석하였다.
그러나 우리 한역과 같이 번역함이 옳다. 초대 교회의 신자들은 성령의 은혜로 충만하였고, 그들에게서 나온 영적 역사는 무수한 사람들에게 미쳤다.
후대의 일반 성도들도 잘 믿는 사람들은 이렇게 남들에게 신령한 은혜로 충만하였고, 강수처럼 풍성히 전달해 준다. 그들에게서 나온 영적 역사는 무수한 사람들에게 미쳤다.
"성경에 이름과 같이"란 말씀은 다음 성구들을 기억하게 한다.
* 사 43: 20 -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
* 사 44: 3 - 나는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나의 영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부어 주리니
* 사 55: 1 -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 사 58: 11 -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 겔 47: 1-12 - 1 그가 나를 데리고 성전 문에 이르시니 성전의 앞면이 동쪽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전 오른쪽 제단 남쪽으로 흘러내리더라. 2 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으로 나가서 바깥 길로 꺾여 동쪽을 향한 바깥문에 이르시기로 본즉 물이 그 오른쪽에서 스며 나오더라. 3 그 사람이 손에 줄을 잡고 동쪽으로 나아가며 천 척을 측량한 후에 내게 그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발목에 오르더니 4 다시 천 척을 측량하고 내게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무릎에 오르고, 다시 천 척을 측량하고 내게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허리에 오르고, 5 다시 천 척을 측량하시니 물이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된지라. 그 물이 가득하여 헤엄칠 만한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 6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가 이것을 보았느냐? 하시고 나를 인도하여 강 가로 돌아가게 하시기로 7 내가 돌아가니 강 좌우편에 나무가 심히 많더라. 8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 물이 동쪽으로 향하여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에 이르리니 이 흘러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되살아나리라. 9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되살아나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10 또 이 강 가에 어부가 설 것이니, 엔게디에서부터 에네글라임까지 그물 치는 곳이 될 것이라. 그 고기가 각기 종류를 따라 큰 바다의 고기 같이 심히 많으려니와 11 그 진펄과 개펄은 되살아나지 못하고 소금 땅이 될 것이며, 12 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과실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열매가 끊이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열매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를 통하여 나옴이라. 그 열매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
* 욜 3: 18 - 그 날에 산들이 단 포도주를 떨어뜨릴 것이며, 작은 산들이 젖을 흘릴 것이며, 유다 모든 시내가 물을 흘릴 것이며, 여호와의 성전에서 샘이 흘러 나와서 싯딤 골짜기에 대리라.
* 슥 13: 1 - 그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주민을 위하여 열리리라.
* 슥 14: 8 - 그 날에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솟아나서 절반은 동해로, 절반은 서해로 흐를 것이라. 여름에도 겨울에도 그러하리라.
2]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여기 이른 바 "그 배에서"란 말은 성령님께서 신자의 가장 깊은 심령 속에서 역사하실 것을 가리킨다.
유대인들은 배를 인간의 깊은 내면이나 마음으로 이해하였고, 나아가 전 인격을 뜻하기도 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질 영적 역사는, 이렇게 인간의 가장 깊은 요구를 만족시켜 주며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여 준다.
"생수"는 성령의 비유로 이런 비유가 성령님의 인격성을 제외함이 아니다.
요한복음은 성령님의 인격성(人格性)을 밝히 말하고 있다.
* 요 1: 33 -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베풀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 요 3: 34 - 하나님이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 없이 주심이니라.
* 요 6: 63 -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