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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극장에서 상영 예정인 마릴린 먼로 주연의 '나이아가라'의 이해를 돕기 위해 먼로의 생애에 대해 소개해 봅니다.
세기의 연인 마릴린 먼로의 생애
* 마릴린 먼로(Marilyn Monroe | Norma Jean Mortensen) 미국의 영화배우, 가수
세기의 연인 마릴린 먼로는 출생부터가 불행했다. 그녀의 본명 '노마 진 모텐슨 베이커'에서 볼 수 있듯이, 먼로의 아버지는 마틴 에드워드 모텐슨이고 어머니는 글레디스 펄 베이커인데, 실제 아버지는 모텐슨이 아니라 어머니의 직장동료였다는 얘기가 있다. 결국 친아버지가 아닌 남자를 아빠로 두고 자란 셈인데, 설상가상으로 직장을 다니던 어머니도 다른 사람에게 딸을 맡겨서 키웠다고 한다.
포스터홈을 전전하던 어린 시절의 모습
부모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한 아이는 유달리 애정을 갈구하는 여성으로 성장했고, 어머니가 정신병원에 수용된 뒤부터는 생활 자체가 불안정하며 각종 보호시설을 전전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러다가 1942년에 고작 16살의 나이로 양부모에 의해 결혼을 하게 되는데, 남편의 군 입대 후 홀로 남은 그녀는 군수공장에서 페인트칠을 하며 살았다고 한다. 역시 전쟁은 노마 진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운명은 전쟁을 통해 다시 한 번 대전환을 맞게 된다. 혼자인 노마 진은 사진작가의 눈에 띄어 모델과 배우로 일하게 되고, 마침내 1946년 노마 진은 4년 만에 첫 남편과 이혼한다.
섹스 어필한 사진. 초기 무명때는 누드 사진을 찍기도 했었다고
이름을 마릴린 먼로로 바꾸고 영화사 '20세기 폭스' 스튜디오의 단역배우를 시작하게 된 그녀는 이듬해 영화배우로 정식 데뷔하는데, 1950년에 '이브의 모든 것(All About Eve)'으로 주목을 받기 전까지는 그다지 성공하지 못한다.
'이브의 모든 것'에서 단역으로 베티 데이비스와 함께 나옴
이 영화에서 마릴린 먼로는 맹랑하지만 섹시한 신인배우역인 단역을 맡았고, 스크린에 등장하는 시간 자체도 몇 분 되지 않는다. 그러나 여기에서 그녀는 자신만의 눈빛과 표정, 움직임만으로 짧은 출연 분량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을 매료시키며 깊은 인상을 남긴다.
팬레터에 싸여 있는 먼로(1952년)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의 한 장면
그리고 1953년 단 일 년 동안 그녀가 출연한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Gentlemen Prefer Blondes)'와 '백만 장자와 결혼하는 법(How To Marry A Millionaire)', 그리고 '나이아가라 (Niagara)'가 모두 세상에 나오고, 이 작품들을 통해 그 유명한 '금발 백치미'와 '섹스 심벌'로서 확고하게 자리를 잡는다.
나이아가라의 한 장면
이때부터 마릴린 먼로는 단박에 모든 남성들의 로망이 되면서 명실상부한 주연배우가 되는데, Niagara는 그녀가 본격적으로 여주인공이 되는 거의 첫 작품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에서 마릴린 먼로는 남편에게 죽임을 당하는 팜므파탈 아내로 출연하고 후반부에 죽기 때문에 클라이막스 부분부터는 아예 등장하지도 않지만, 초중반에 나오는 그녀의 모습은 너무나 치명적인 매력을 한껏 발산하고 있다. 사실상 악녀이지만 미워할 수 없는 마릴린 먼로 특유의 눈빛과 표정, 엉덩이를 오리처럼 빼고 좌우로 흔들면서 걷는 먼로워크(Monroe walk) 등은 소위 '연기력'이란 단어로는 절대 설명할 수 없는 그녀만의 치명적 매력이다.
1954년 먼로는 야구선수 조 디마지오와 혼인한 후 <7년 만의 외출 The Seven Year Itch>(1955년 개봉)을 촬영한다.
조 디마지오와 먼로
이 영화로 인해 먼로는 특별한 이미지를 세계에 선물한다. 지하철 환풍구 바람에 드레스가 들리는 관능적이면서도 코믹한 장면은 그해 9월 15일 뉴욕에서 촬영된 것이다.
7년만의 외출의 한 장면
매력적인 외모뿐만 아니라 연기력도 인정받고 싶어했던 먼로는 뉴욕의 액터스 스튜디오에서 리 스트래스버그로부터 연기를 배웠다. 탁월한 연기력까지 갖춘 그녀는 할리우드로 돌아와 <버스 정류장 Bus Stop>(1956), 로렌스 올리비에와 공연한 <왕자와 쇼걸 The Prince and the Showgirl>(1957), <뜨거운 것이 좋아 Some Like It Hot>(1959), <부적합자 The Misfits>(1961) 등의 영화에서 주연을 맡았다. 영광 속에 숨어 있는 파멸. 영화배우로서는 승승장구했지만, 그녀의 영광 속에는 늘 파멸에 대한 불안이 도사리고 있었다. 디마지오와의 결혼은 이미 9개월만에 파경을 맞았고, 1956년 7월 1일 유대인 극작가 아서 밀러와 혼인하지만, 5년 만에 파경을 맞이한다.
아서밀러와 먼로
그녀는 과학자 아인슈타인, 가수 프랭크 시네트라와 이브 몽탕, 존 F. 케네디와 로버트 케네디 형제와의 염문설도 뿌렸다. 이러한 화려한 연애 속에는 어쩌면 애정결핍에 시달렸던 어린 시절의 어두운 그림자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세 번의 결혼실패 등 사생활은 불행하였다. 할리우드라는 거대한 톱니바퀴에 끌려 약물중독이 되었고, 마침내 자살로 보이는 의문의 죽음으로 생을 마감했다.
보그지와 작업한 마지막 사진 중 하나
디마지오는 먼로가 세 번째 결혼에도 실패하고 약물중독에 빠졌을 때 다시 사랑의 손길을 내민다. 재결합을 목전에 둔 1962년 8월 5일, 먼로는 서른여섯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그 후 디마지오는 20여 년 이상 매주 세 번씩 장미꽃을 그녀의 무덤에 바쳤다. 1999년 디마지오는 숨을 거두기 전 “이젠 먼로를 다시 볼 수 있겠군.”이라고 말했다 한다. 2006년 5월에는 그들이 함께 사인한 야구공이 19만1200달러(당시약 1억8000만원)에 팔리기도 했다. 한편, 그녀의 묘 윗자리가 한 70대 여성에 의해 경매 매물로 나왔고, 2009년 마릴린 먼로의 위에 묻힐 수 있는 권리가 450만 (한화 약 56억 2000만원)에 낙찰되었다.
그녀가 간 지도 어느덧 50여 년이 흘렀다. 하지만 마릴린 먼로는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치명적 매력을 뿜어내며 오늘날까지도 끝없는 사랑을 받는 불멸의 별로 반짝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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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어떤 말로도 다 표현할 수 없는 다양한 매력의 소유자. 같은 여자가 봐도 이렇게 아름다운데 .....영원히 이모습으로만 기억되는 여인이죠?
불우한 어린시절과 평탄치 않은 결혼생활이 보이는것만으로는 판단할수 없음을 보여주는것 같아 그녀의 짧은 생애가
더 안타깝네요 좋은 부모와 남편을 만났다면 좋은 친구가 있었다면 더 또 다른 생의 마지막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