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터가 되어준 사람들을 생각하며 걷는 해파랑길
해파랑길이 50코스 770km라고 하여 엄청나게 복잡하며, 어려운 댄스 스포츠처럼 힘들까봐 엄두를 내지 못했었다. 그렇지만 1~2구간에 9코스 157km를 무난히 끝내고 보니, 한 코스 한 코스가 전체로 연결은 되어 있지만 코스마다 독특하고 개성 넘치는 라인댄스처럼 딱딱 떨어지는 상큼한 단품식 여행길이다. 모르는 사람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는 그 긴 길을 혼자 걸어서 가느냐고 묻는다. 글쎄, 몸소 체험하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오묘한 맛을 어찌 설명할까마는 숱한 사람들이 이미 끊이지 않고 계속 해내고 있지 않는가?
혼자 걷는 길은 자유롭다. 노브라에 생얼굴로 거울도 필요 없고, 치장도 단장도 신경을 쓸 일이 없으니 그야말로 자유로운 영혼이다. 선글라스에 모자 하나면 충분히 나를 연출할 수가 있다. 또한 빨리 걷고 더 걸으며, 천천히 걷다가 맘껏 쉬는 등 탄력과 신축성의 농도가 매력적이다. 그 잡아당길 때의 스릴과 서서히 푸는 여유를 쏠쏠히 맛보며 시공간에 한껏 나를 내려놓는다.
해파랑길 내내 하루 여는 일출에 배낭끈을 조이고, 닫는 일몰에 감사한다. 일출과 일몰은 꼭 장관이 아니어도 좋다. 흐린 날 비오는 날에도 마음 한가운데에 해가 뜨고 가슴 저편에 해는 진다. 발가락 물집 터져 꼬부려가면서도 무작정 걸어내야 하는 길, 땡볕에, 지열에, 무거운 배낭에 걸음이 쳐지는 길, 폭풍우가 몰아치는 길에도 반드시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실 수 있는 카페나 쉼터가 있다. 바닷바람 솔솔이 내 온몸을 감싸주고 부채질해주는 정자도 곳곳에 있어 누워 쉴 수가 있다. 지금껏 살아온 내 힘든 역경 속에서도 언제나 안식처가 되고 쉼터가 되어준 사람들을 생각하며 끝까지 걸어내었다.
5월 23일 월요일 아침 또 한주 동안 해파랑길을 이어 걸으러, 지난 울산구간의 끝지점이었던 정자해변으로 다시 돌아왔다. 고성쪽으로 올라가는 빨강색, 부산쪽으로 내려가는 파랑색의 선명한 해파랑길 화살표가 바로 경주구간 출발점으로 이끌어주었다. 집에서 싸온 대추토마토 등 과일부터 먹어가며, 멸치, 물고기를 말리는 어촌의 풍경과 방파제에 부딪치며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의 포말이 해후로 반가웠다. 낚시꾼들만이 호롯이 앉아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을 뿐, 평일날의 정자해변은 조용하다. 파도랑 놀며 검은 몽돌밭을 거닐고, 시원한 바닷바람을 또다시 마음껏 마셨다. 강동화암 주상절리에 도착하니, 시커먼 바위, 찌르는 바위, 삐죽 튀어나온 바위들이 몰아치는 파도 너울과 하나되고 있었다. 오랜 세월 곁에서 바라보기만 하는 해송은 얼마나 파도 품에 안기고 싶었을까? 신명해변, 관성 솔밭해변, 수렴리 할매바위를 차례차례 거쳐 가는 동안, 나팔꽃 같은 엷은 분홍꽃, 토끼풀 같은 진분홍꽃이 바닷가에 천지로 나처럼 온화하게 피어 있었다.
양남 ‘주상절리 파도소리길’로 가는 길목에 ‘사랑해길’은 바닷가에 세운 영화세트장 같았다. 대형 사랑의 열쇠 형상을 방파제 부두에 설치하고, ‘사랑해(海)마을’ ‘물빗 사랑 마을’ 등의 명칭으로 하트 모양의 조각과 꽃을 바치는 연인 모습 그림들이 환상과 낭만을 부르고 있었다. 고기 잡고 그물 수선하는 지친 어부들에게 알록달록 관광지는 미안할 정도로 인공적이었다. 출렁다리를 지나니 바다로 내려가는 길이 나오면서, 먼저 보았던 강동화암 주상절리보다 더욱 거대한 절리들이 기기묘묘한 풍광으로 바닷가를 장식한다. 누워 있는 바위, 솟아 오른 바위, 서있는 바위, 부채꼴 모양의 바위 등의 명칭으로 펼쳐진 주상절리엔 평일임에도 관광객이 많았다. 분재처럼 정갈한 작은 소나무들이 곳곳에서 검은 절리들과 어울리니 사진의 명작이 탄생할 만도 하다.
읍천항의 ‘그림이 있는 마을’ 엔 마을 사람들이 상당수 참여한 듯 보인다. 어촌의 풍경과 자유로운 그림들이 토담집 담벼락에, 창고, 문짝, 심지어 지붕에까지 근 2km를 걷는 내내 펼쳐져 있었다. 그림들을 따라 촬영하면서 걷는 길은 바로 양남 성당으로 이어졌다. 바다를 향해 두 팔을 벌리고 서서 마을을 지켜주시는 예수님 상은 참으로 성스러웠다. 장미꽃 속 하얀 성모님께 가벼운 인사를 드리고 나왔다. 한참을 가니 ‘방사능에서 도망가고 싶어요’ 란 붉은 글씨가 바위에 새겨진 원자력 공단이다. 저항하는 마을 사람들의 뜻이 현수막에 실려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나아해변의 아픈 모습이다. 지난 울산 때의 나사해변처럼 둥근 커다란 탱크 건물들이 아스라하게 떨고 있었다. 울산 대왕암공원에서 보았던 바닷속 바위 집성촌이, 봉길 대왕암해변에선 바다 한가운데에 문무대왕바위만이 장엄하게 떠 있다. 석양이 곱게 물드는 저녁 영험하신 문무대왕님께 기도드리는 장구소리 꽹과리 소리 밤새 드높다.
다음 날 새벽 일출을 보러 5시에 나왔다. 흐린 중에도 대왕암 바다엔 여명이 은은했다. 갈매기들이 무수히 날았다. 한옥팬션에서 짐을 정리하고 단단히 발가락에 테이핑한 후, 7시 경 이정표를 보며 정신없이 걷고 있을 때였다.
모를 낸 시골 들판을 배경으로 ‘감은사지 가는 길’ 영화 한 편을 찍었다.
“색시, 그 가방 큰 걸 보니, 과자 들었지? 과자 좀 주고 가.”
드라마 전원일기 일용엄니 김수미 씨의 목소리 같은 할머니다. 계속 나를 쫓아오며 과자를 달라고 조르신다. 아이고! 배낭 속 꽁꽁 싸 맨 걸 어찌 풀를까? 양갱도 초콜릿도 몇 개 있겠지만 어디 들어있는지 모른다. 복잡하게 언제 찾는가 싶고, 오늘은 두코스를 걸어야 해서 갈 길이 먼데, 저 할머니는 과자 주고 가라고 빠르게 쫓아오신다. 할머니를 따돌려야 하니, 나는 완전히 경보대회에 출전한 선수이다. 감은사지가 보일 무렵 윗길로 접어들자 할머니가 갈라진 길 아래로 내려가며 한마디 하시는 게 들린다.
“어찌 저리 걸음이 빠른가? 시집 안 간 처년가? 과자 좀 주고 가지!”
감은사지 3층탑에 도착해 맥이 탁 풀렸다. 이토록 전신에 땀을 흘리느니, 복잡해도 배낭 속에서 차근차근 양갱이랑 초콜릿을 꺼내드릴 걸 후회막급이다.
부슬부슬 내리는 빗속, 엉겅퀴 보랏꽃, 할미꽃들이 피어 있는 묘지들 풀을 헤치고 올라서니 ‘이견대’로 가는 길이 보이지 않는다. 해파랑 꼬리 리본을 잘못 보았는지 올라갔던 길을 다시 내려와 처음부터 땀 뻘뻘 흘리며 다시 올라갔다. 갈래길에서 잘못 들어서면 무참히 고생을 하기 마련이다. 부산에서 보았던 ‘이기대’ 해안산책로 못지않게 이견대에서 바라본 동해 풍경 또한 일품이다. ‘감포깍지길’ 로 내려와 한참을 걸어가니 빨강 등대 하양 등대가 반기는 전촌항이다. 비는 더욱 거세어지고 온통 젖은 채로 꼬불꼬불 산길을 다시 올라가 송대말 등대를 찍을 때엔 카메라에 물이 튀었다. 물이 뚝뚝 떨어지는 우비와 허연 김이 안개 피어오르는 안경인 채로 감포항에 도착해, 방파제 횟집에서 이른 저녁 물회를 먹으며 쉬었다. 배를 많이 넣어 시원했다.
쏟아지는 빗길을 묵묵히 걸었다. 안내표시가 제대로 보이질 않고 해안길은 파도가 너무 심해서, 해안 자전거도로 표지판을 따라 걸었다. 물도 떨어지고 기력도 떨어졌다. 얼마나 빗속을 헤매었는지 머리가 멍멍했다. 다행히 양포항엔 여관들이 눈에 띄어 숙소 잡기에 수월했다. ‘산장여관’이란 곳에선 3만원 달라면서도 무척 친절했다. 침대 위엔 전기장판이 있고, 바닥엔 이불과 요도 한 채 있었다. 젖은 옷가지들을 빨아서 전기장판에 쫘악 깔아 이불을 덮어 놓고, 나는 바닥에 요를 깔고 누웠다. 감은사지 가는 길에 만난 할머니가 내내 마음에 걸렸다. 잠깐의 귀찮음 때문에 이렇게 번민은 길구나!
*첫째날 정자 해변에서 해파랑길을 다시 시작하고
*과일컵이 거울 속에서 보여지네.
*강동 화암 주상절리 절경
*읍급 구호 튜브 타이어 속으로 보이는 신명해변
*연분홍 진분홍 꽃의 이름은 무얼까?
*양남 주상절리 파도소리길로 내려가며
*양남 주상절리 기기묘묘한 풍경
*읍천항 그림이 있는 벽화 마을 풍경
*양남 성당 풍경
*둥근 커다란 탱크 건물이 보이는 나아해변
*봉길 대왕암 해변의 문무대왕 바위
*봉길해변 한 쪽으로 조용히 저녁노을 물들고
*둘째날 아침 문무대왕릉 아침 여명이 시작되고
*문무대왕의 유언비
*감은사지 가는 길
*감은사지 3층탑
*이견대에서 내려다본 문무대왕암과 해안 풍경
*파란 지붕 집들이 바다의 푸르름을 더해주고
*해파랑길 표시가 있는 정자에서 쉬고
*비오는 날의 송대말 등대
*빗속에 감포항에 잠시 쉬고
*아픈 발가락, 발목 다잡으며, 물회랑 커피랑
첫댓글 우리나라의 대왕암과
대왕암공원의 풍광은
외국인들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대단한 보물의 자랑거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