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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례받은 마음으로 하나님께 순종
예레미야 3장 19절- 4장 4절
인간관계에서는 속마음과 다르게 말하고 행동함으로 어느 정도 상대방을 속일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께는 그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 앞에서 어떠한 마음과 자세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행해야 하는 지를 교훈받고자 합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하며 이스라엘에게 돌아오라고 선포하십니다. 그러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마음을 돌이키지 않으실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12-18절까지 이스라엘의 구원에 관한 목소리가 들렸지만, 19절 이후에는 다시 심판을 말합니다. 이스라엘은 신뢰할 만한 자들이 못 되었습니다. 그들은 남편을 속임같이 하나님을 속이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이방신을 숭배한 것을 ‘헛된 말’이라고 고백하며 여호와께 돌아가고자 노력합니다.
이스라엘의 배신(19-20)
죄는 속임, 곧 거짓말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속이는 행위며, 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에는 ‘아멘’으로 화답했으면서도 정작 삶에서 순종하지는 않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을 속이는 행위입니다. 이스라엘이 율법의 말씀을 알면서도 따르지 않았습니다.
19슬프고 아프다 내 마음속이 아프고 내 마음이 답답하여 잠잠할 수 없으니 이는 나의 심령이 나팔 소리와 전쟁의 경보를 들음이로다 20패망에 패망이 연속하여 온 땅이 탈취를 당하니 나의 장막과 휘장은 갑자기 파멸되도다(19-20)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자녀들 중에 둘 것을 말씀하시면서 그들이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라 부르게 하며 하나님을 떠나지 말 것을 명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출애굽 때부터 이스라엘 백성과의 관계를 아버지와 아들로 표현하셨습니다.
(1) 하나님의 기대(19)
18절까지 여호와의 약속 이후에 본문은 이스라엘에 대한 간략한 약속을 다시 서술합니다. 19절에는 “내가... 네게 주리라”라는 미래형 약속이 나오는데, 이로써 저자는 이 약속이 여호와로부터 나왔음을 강조합니다. 덧붙여 여호와는 “너를 자녀들 중에 두며”라고 선언합니다. 개역개정에는 성(性)의 구분이 나오지 않지만, 여기에서 눈에 띄는 표현은 ‘너’가 여성으로 나온다는 점입니다. 게다가 여호와가 여성인 ‘너’에게 줄 것은 ‘아름다운 기업, 즉 귀한 땅’입니다. 여호와는 이 기업을 의도적으로 ‘여성’으로 표현된 이스라엘에게 주겠다고 약속합니다. 또한 이 땅은 ‘귀중한다’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나오는데, 이것은 ‘기름진’ 땅으로 표현되기도 했습니다(2:7). 여호와는 ‘나를 떠나지 말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문자적으로 ‘내 뒤에서 돌아서 떠나가다’입니다. 여호와는 이스라엘에게 가장 좋은 땅을 주었지만, 이 땅은 ‘어두운 땅’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2:31). 이것이 그처럼 변한 이유는 여호와를 ‘속였기’ 때문입니다(2).
(2) 이스라엘의 배반(20)
이것은 유다의 ‘패역함’을 서술할 때 사용된 것과 동일한 단어입니다(3:8). 하나님을 속이는 것은 신실하지 못한 행동이며 패역한 행동인 것입니다. 개역개정은 “아내가 그의 남편을 속이고 떠나감 같이”라고 번역합니다(20). 하지만 히브리어 레아(“남편”)는 본래 ‘친구’ 또는 ‘이웃’을 의미합니다(창 38:12; 43:3; 2:13).
백성의 회개(21-25)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세상의 우상들이 더 달콤하고 능하다는 거짓말에 속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붙들지 않으면 세상의 거짓말에 쉽게 속는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유다 백성이 하나님을 속이고 떠난 이유는 우상에게 속았기 때문입니다.
21소리가 헐벗은 산 위에서 들리니 곧 이스라엘 자손이 애곡하며 간구하는 것이라 그들이 그들의 길을 굽게 하며 자기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렸음이로다 22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내가 너희의 배역함을 고치리라 하시니라 보소서 우리가 주께 왔사오니 주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이심이니이다 23작은 산들과 큰 산 위에서 떠드는 것은 참으로 헛된 일이라 이스라엘의 구원은 진실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있나이다 24부끄러운 그것이 우리가 청년의 때로부터 우리 조상들의 산업인 양 떼와 소 떼와 아들들과 딸들을 삼켰사온즉 25우리는 수치 중에 눕겠고 우리의 치욕이 우리를 덮을 것이니 이는 우리와 우리 조상들이 청년의 때로부터 오늘까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에 순종하지 아니하였음이니이다(21-25)
예레미야는 하나님을 떠나 망해 버린 이스라엘 자손이 애곡하며 간구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아마 이는 망해 버린 이스라엘이 주님 앞에서 나아와 회개하는 환상이라 생각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배역한 자식들’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돌아오라 하시며, 그들을 고치겠다 약속하셨습니다.
(1) 헐벗은 산에서 탄식(21)
여호와는 “헐벗은 산”에서 소리가 들리고 있다고 하십니다. 예언자는 2절에서 헐벗은 산을 언급했는데, 그곳은 행음이 일어나는 부정적 장소였습니다. 이제는 그곳에서 소리가 들리고 있다고 하는데, 그 소리는 ‘애곡하며 간구’하는 이스라엘의 통곡입니다. 그들은 ‘길’을 굽게 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하나님 여호와를 망각했음을 고백합니다(21). “그들의 길”은 이스라엘이 화자가 되므로 ‘자기들의 길’로 번역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스스로 잘못 가고 있거나 바른 길에서 벗어났음을 고백하는 발언입니다. 여호와를 ‘잊었다’는 표현은 예레미야 2:32에서도 서술되어 이스라엘의 행음을 가리키는데 사용되었으므로, 본문은 예언자의 선포에 따라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예레미야 3장은 ‘요시야’를 언급함으로써 이 사건의 시간적 배경을 가리킵니다. 요시야는 이스라엘 역사에서 종교개혁을 단행했을 뿐만 아니라, 다윗의 후손 가운데 가장 긍정적으로 평가받는 왕으로 나옵니다: “모든 율법을 따라 여호와께로 돌이킨 왕은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더라”(왕하 23:25).
(2) 하나님의 초대(22a)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배역한 자’라고 말하며 ‘돌아오라’고 명령하는데, 여기에는 동일한 어근(슈브)이 사용되었습니다. ‘배역한 자’(쇼바빔)는 앞서 여호와를 ‘떠나지 말라’고 말했지만, 여호와께 등을 돌리고 떠났던 자들을 가리킵니다(19). 명령문 이후에는 ‘내가 고치리라’라는 미완료 동사가 나오는데, 이것은 결과절의 의미를 갖습니다. 이스라엘은 스스로 고칠 수 없으며, 여호와만이 그들을 치료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습니다(출 15:26). 그들의 죄는 이제 비누로도 씻을 수 없는 본성이 되었기 때문입니다(2:22).
(3) 초대에 대한 응답-회개(22b-25)
22b절은 ‘보소서’라는 말로 시작하여 내용이 전환되고 있음을 가리킵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께 나아와 “주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이심이니이다”라고 고백합니다. 본문은 ‘주’가 아니라, ‘당신’이라는 용어로 시작하며, ‘당신은 여호와, 우리 하나님’으로 번역됩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를 비로소 자신들의 하나님이라고 하며 자신들의 신앙을 고백합니다. 23절은 “진실로”라는 표현을 2회 활용하여 이스라엘이 깨달은 바를 서술합니다. 하나는 “헛된 일”이라는 것인데, 여러 언덕과 산에서 떠드는 행위를 대상으로 합니다. “산 위”는 이방 종교를 숭배하던 장소로(2:20), 예언자는 그곳에서 행해지는 것을 ‘헛된 일’로 규정합니다. 이것은 문자적으로 ‘거짓’을 의미하는데, 예언자는 이스라엘의 회개를 거짓된 것이라 비판하기도 했습니다(3:10). 다른 하나는 이스라엘의 구원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있나이다”라는 고백입니다. 이스라엘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라는 표현을 연속하여 사용함으로써 여호와를 구원의 주체로 고백합니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라는 문구가 25절에 한번 더 기록되는 것을 볼 때, 저자는 그 의미를 강조합니다. 계속해서 24절은 “부끄러운 그것이 자신들의 산업과 자녀를 삼켰음을 고발합니다. 원문은 ‘부끄러운 그것’을 ‘하바알’로 읽을 것을 제안하는데, ‘보쉣’은 바알을 경멸조로 표현하는 용어입니다. ‘부끄러운 것’은 23절이 서술하는 ‘헛된 것’과 연결되며, 이스라엘은 바알 숭배와 ‘헛된/거짓된 것’을 연결합니다. 동시에 본문은 구원을 주는 ‘여호와’와 자신들의 것을 삼기는 ‘바알’을 대조적으로 서술합니다. 덧붙여 ‘양, 소, 자녀들’을 삼키는 모습은 왕권 비판과도 무관하지 않습니다(삼상 8:13-17). 25절은 자신들의 죄를 이방 숭배의 관점이 아니라, 여호와를 청종하지 않은 불순종과 연결합니다. ‘순종하지 아니하였다’는 신명기에서 반복해서 나오는 ‘들으라’는 명령과 연결됩니다(신 4:1; 5:1; 6:4). 본문은 “우리와 우리 조상들이 청년의 때로부터 오늘까지”라고 서술합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불순종한 과거부터 현재의 기간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저자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불순종의 역사로 규정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이스라엘은 수치와 치욕의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새로운 시작을 위한 과정(4:1-4)
우리는 회개를 쉬운 것으로 야기다 보니 죄를 쉽게 짓기도 합니다. 죗값은 절대 가볍지 않고, 회개는 절대 편안하지 않습니다. 주님 앞에서 거룩함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에 합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에게 묵은 땅을 갈고 가시덤불에 파종하지 말라고 하시며 마음에 할례를 받아 여호와께 속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1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스라엘아 네가 돌아오려거든 내게로 돌아오라 네가 만일 나의 목전에서 가증한 것을 버리고 네가 흔들리지 아니하며 2진실과 정의와 공의로 여호와의 삶을 두고 맹세하면 나라들이 나로 말미암아 스스로 복을 빌며 나로 말미암아 자랑하리라 3여호와께서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에게 이와 같이 이르노라 너희 묵은 땅을 갈고 가시덤불에 파종하지 말라 4유다인과 예루살렘 주민들아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너희 악행으로 말미암아 나의 분노가 불 같이 일어나 사르리니 그것을 끌 자가 없으리라(1-4)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에게 돌아오려거든 다른 곳이 아니라 자신에게로 돌아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유다 백성이 여러 가지 위기에 봉착해 새로운 길을 모색하려 할 때, 그들이 살기 위해 달아가야 할 곳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 가증한 것, 즉 우상들을 숭배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1) 가증한 것을 버리라(1)
1절에는 ‘임’을 사용한 조건문이 2회 나옵니다. 첫째는 “네가 돌아오려거든”이고, 둘째는 ‘네가 버리고(면)’입니다. ‘네가 돌아오려거든’은 ‘내게로 돌아오라’와 동일한 동사를 사용하며, ‘네가 버리면’은 ‘요동치 아니하며’와 형태적으로 유사하기 때문입니다. 여호와는 이스라엘에게 ‘내게로 돌아오라’, ‘가증한 것을 버리라’고 요구합니다. 이 둘은 ‘수치와 치욕’에 처한 이스라엘이 새로운 시작을 하기 위한 조건입니다. ‘돌아오라’는 명령은 예레미야 3장에서 세 차례나 언급되었기 때문에(12,14,22), 새로운 명령은 아닙니다. 두 번째 조건인 ‘가증한 것을 버리는’ 행위는 여호와에게 돌아왔음을 보여주는 징표이기도 합니다. “가증한 것”은 신상을 가리키는데, 이스라엘은 그것을 여호와의 성전에 두고 숭배해왔음을 암시합니다(7:30; 32:34).
(2) 진실과 정의와 공의를 취하라(2)
2절에는 “진실과 정의와 공의로 여호와의 삶을 두고 맹세”할 것을 요구합니다. 본문에 언급된 ‘진실, 정의, 공의’가 함께 나오는 경우는 예레미야 4:2이 유일하며, 이것은 이스라엘의 삶을 정의합니다. 여호와께 돌아오고자 한다면, 그는 ‘진실, 정의, 공의’를 실천할 것을 결심해야 합니다.
(3) 할례를 행하라(3-4)
비유적인 명령(3) 이후에 여호와는 ‘할례’를 요구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육체의 할례가 아니라 마음의 할례입니다. 이스라엘은 마음의 가죽을 베어야 여호와께 속할 수 있습니다. 4절이 언급하는 할례는 창세기 17장과 연결됩니다. 그것은 성경에 기록된 최초의 할례 명령이며, 남자에게만 주어진 명령입니다. 그러나 예레미야가 언급하는 ‘마음에 하는 할례’는 창세기 17장을 뛰어넘습니다. 마음에 하는 할례는 남녀를 구분하지 않으며, 외형적 할례가 아니라 본질적 할례를 가리킵니다. 덧붙여 고대 이스라엘은 ‘마음’을 사고의 체계로 이해해왔기 때문에, 마음의 할례는 이스라엘에게 과거의 행동과 생각으로부터 탈피해야 함을 요구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를 선포하는 말씀만 좋아하고, 죄를 지적하며 회개하라는 메시지는 듣기 싫어합니다. 그러나 죄를 지적하는 메시지에 귀를 기울인 자들만이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의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게 살아가기 위해 나의 어두운 면을 내려놓고, 주님 앞에 크게 뉘우치며 나 자신을 바로잡는 참된 지혜자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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