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에세이 광장
봉황과 작은 새
원준연
놀랍다! 처음 보는 광경이다. 매스컴에서 듣던 것보다 실제로 보니 훨씬 더 웅장하고 예쁘고 화려하다. 그러니 놀랄 수밖에. 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의 빙등제 모습이다.
해가 바뀌니 어느새 ‘칠순’이 함께 따라왔다. 나이 70에 이르니 느끼는 삶의 무게가 다르다. 두려움이 엄습하면서 한층 더 무거운 느낌이랄까. 이제까지 살아온 삶의 과정도 중요하지만, 지금부터의 여정이 훨씬 소중하다는 생각에 잠을 설칠 정도다. 훗날 후회하지 않은 삶을 살았다고 말하려면 지금부터의 시간이 더없이 귀중하다는 생각이다.
중국 당나라 시인 두보는 그의 곡강시 (曲江詩)에서 ‘인생칠십고래희’라 하여 칠순을 ‘삶에 있어 칠십도 드문 일이다’라고 하였다. 아마도 그가 살던 시대는 분명히 그랬을 것 같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매우 달라졌다. 사회적 인식으로는 70세를 노인으로 인정하기보다는 중년쯤으로 여기고 있다. 나도 언행이 다소 어눌하고 무디어지기는 했지만, 노인으로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렇다손 치더라도 나이 70을 건강하게 맞이하는 것은 축하받아도 부끄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나의 버킷리스트를 엿보기라도 한 듯, 칠순을 축하하는 뜻으로 아이들이 하얼빈 빙등 축제 여행을 추진하고 있다. 새 가족이 된 자부와 사위까지 가세하여 함께 진행하니 마음이 한결 더 기쁘고 든든하다. 사실 작년에 계획하였었는데 무산되었었다. 그러니 더욱 기쁠 수밖에.
나의 버킷리스트에는 세계 3대 겨울 축제를 관광하는 것이 들어 있다. 매년 2월 초에 열리는 일본의 유키마쓰리는 삿포로시의 중심부에 있는 오도리공원에서 열리고 있다. 문화적 소통 장소이기도 한 오도리공원은 폭이 약105m에 이르고 있다. 이곳에 홋카이도 전역에서 끌어모은 눈을 세계적인 조각가들이 모여서 서로 경쟁하듯 자국의 상징이나 자신의 창작품을 아름답게 수놓고 있다. 우리나라의 용평에서 보았던 규모보다 훨씬 장대해서 과연 지구촌 3대 겨울 축제라고 불릴만하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캐나다 퀘벡시에서 열리는 Winter Carnival은 언제 기회가 오기는 할는지….
이번 제26회 하얼빈 빙설제는 세계 최대 규모의 얼음 조각 축제로, ‘겨울의 꿈, 아시아의 사랑)’을 주제로 하고 있다. 곧 열릴 동계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붙인 슬로건 같다. ‘눈과 얼음의 도시’로 불리는 하얼빈의 겨울 평균 기온은 영하 20도 안팎이란다. 이런 혹한의 자연환경을 자원으로 여겨서 이뤄낸 인간 승리의 축제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고 보니 하얼빈이나 삿포로나 퀘벡은 모두 북위 40~50도 사이에 자리 잡고 있다. 세 도시는 역경과 시련의 조건을 순경으로 변화시킨 위대한 인간의 쾌거다. 추위에 단단히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에, 방한용품을 준비하면서 설레는 마음으로 손가락을 꼽으며 기다리고 있다.
하얼빈은 오후 4시쯤 되니 벌써 해가 서편으로 뉘엿뉘엿 지고 있다. 우리는 조명으로 눈이 부시도록 찬란한 야경을 보기 위해 가이드를 따라나섰다. 평일임에도 인파는 대단하였다. 자칫하면 일행을 잃을 수도 있을 지경이다. 그런데 생각 외로 우리말은 들려오지 않았다. 한국 사람이 넘쳐날 것으로 생각했는데 의외였다. 간혹 러시아 사람이 보일 뿐 거의 다가 중국인이다.
입구를 미끄러지듯 빠져나오니, 세계 각국의 건축물들이 얼음으로 조각되어 있다. 얼음 안에는 튜브를 이용하여 오색의 조명이 들어 있다. 그 빛의 덕으로 얼음 형상물은 매우 찬란하고 화려하게 빛나고 있다. 형형색색의 조형 물이 경이롭다. 다채로운 모습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우리나라의 상징 남대문에서 기념사진도 한 컷. 크기를 알 수 없는 방대한 면적에 수많은 거대한 얼음 조각상은 중국의 대륙적 기질을 잘 말해주는 것 같다. 최고 인기체험 코스는 단연 500m에 이르는 슈퍼 아이스 슬라이드인 것 같다. 두시간을 기다려도 탈지 말지다. 그런데 사람들이 드문드문 미끄러져 내려온다. 좀 더 빠르게 진행하게 해도 되겠다는 내 생각과는 달리 만만디다. 아마도 안전을 우선시하기에 긴 줄이 생기는 것 같다. 과연 세계 최대의 겨울 축제답다.
각종 공연, 불꽃놀이, 이글루호텔 등은 좋은 볼거리지만, 얼음 속에 들어 있는 참치도 좋은 구경거리다. 투명한 얼음 속에 마술이라도 부린 듯 거대한 참치 한 마리가 통째로 들어 있다. 다른 곳에서는 예쁜 장미꽃으로 그렇게 아름답게 장식하고 있다. 얼음을 붙인 흔적도 없다. 통얼음이다. 도대체 어떻게 한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좋은 구경에 훼방이라도 놓듯 갑자기 찬바람이 휙 몰아친다. 볼이 따가울 정도로 시리다. 어릴 적 얼음을 지칠 때 손발과 볼이 무지하게 시리던 느낌이 되살아났다. 구경도 좋지만, 입김으로 눈썹에 얼음이 송골송골 맺히고 살을 에는 듯한 혹한으로 미련을 남긴 채 아쉽지만 조금 일찍 나왔다.
와아~ 하고 감탄하며 보낸 3박 4일 여정에서, 太陽島風景區에서 본 눈 조각상이 자꾸 생각난다. 가로 30m, 세로 10m, 높이 20m의 장대한 봉황조각상이다. 한가운데 커다란 봉황 한 쌍이 있고, 그 주변에는 작은 백 마리의 새들이 봉황을 경배하듯 향해 있다. 어떤 유래라도 담겨있는 것인지 하나의 예술품으로 바라보면 그뿐이지만, 혹시 봉황은 중국을, 작은 새는 주변국을 나타낸다면,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다. 나의 지나친 기우이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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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월간 그린에세이 2025년 5‧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