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거사청산위][공동논평] 대법원의 형제복지원 비상상고 기각 판결에 대한 논평
[대법원의 형제복지원 비상상고 기각 판결에 대한 논평]
판결 유감, 제2기 진실화해위원회의 역할을 기대한다 |
서울시 종로구 동숭길 25 유리빌딩 5층 형제복지원대책위 사무국 / 전화 02-794-0395 |
발 신 | [형제복지원사건진상규명을위한대책위원회] 다산인권센터, 탈시설정책위원회,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과거사청산위원회, 민주주의법학연구회,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부산사회복지연대, 인권단체연석회의, 49통일평화재단, 언론개혁시민연대, 인권운동사랑방, 부산장애인차별철폐연대, 천주교인권위원회,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공익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참여연대, 문화연대, 참의료실현청년한의사회, 지역복지운동단체네트워크,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홈리스행동, 부산지역형제복지원대책위 |
수 신 | 각 언론사 사회부 기자 |
일 자 | 2021년 3월 12일(금) |
담 당 | 여준민 형제복지원사건대책위 사무국장 010-3218-7044 이동준 변호사(민변 과거사청산위원회 위원장) 010-9386-3869 |
분 량 | 4페이지 |
1. 대법원은 어제(3.11) 형제복지원 울주작업장에서 행해진 특수 감금행위에 대한 무죄판결 비상상고 사건에서, 상급심의 파기판결에 의해 효력을 상실한 판결(대구고등법원 1987.11.22.선고 87노1048판결)은 비상상고 대상이 될 수 없다(2019오1판결)거나, 원판결(대구고등법원 1989.3.15.선고 88노593판결)이 적용한 법령은 이사건 훈령이 아니라 정당행위에 관한 형법 제20조나 상급심 재판기속력에 관한 법원조직법 제8조이고, 이사건 훈령의 존재는 형법 제20조 적용의 전제되는 여러 사실 중 하나에 불과하여 심판대상이 되지 않는다(2019오2판결)면서 비상상고를 기각하였다.
2. 먼저 이 사건은 검찰이 사안을 축소 기소하고, 법원은 이에 대한 묵인을 넘어서 박인근 형제복지원 원장의 특수감금 행위 등을 정당행위라 포장하며 면죄부를 부여한 사건이다. 당시 검찰은 울주군 야산 자동차 운전교습소 작업장에서 도망치던 원생에 대한 폭행치사사건을 수사하면서 부산시 조례동 형제복지원 감금·폭행 등에 대한 수사를 확대했었다. 그러나 당시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으로 부담을 갖던 ‘상부’의 지시에 의해 파견 수사관은 철수되고, 결국 형제복지원 원장에 대한 보조금 업무상 횡령, 울주작업장 원생들에게 대한 감금죄 등만 축소 기소하였다. 요컨대, 주례동 형제복지원(본원)에서 발생한 폭행·감금, 치사 등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수사조차 이뤄지지 않았던 것이다.
3. 당시 재판의 경과는 다음과 같다. 울주군 작업장에서 주간에는 1.5미터 목봉을 든 감시원과 13마리 감시견이 원생들을 감시하고, 야간에는 문을 잠그는 등의 특수감금 행위가 자행되었는데, 이에 대해 법원은 피고인의 주·야간 특수감금 혐의에 대해 유죄판결을 선고하였으나(울산지원 1987.6.23.선고 8733판결), 항소심 법원은 야간 감금에 대해서는 유죄, 주간 감금에 대해서는 무죄판결을 선고하였다(대구고등법원 1987.11.27.선고 87노1048판결). 그 후 대법원은 야간 감금 행위에 대하여도 무죄 취지로 원심을 파기하였다(대법원 1988.3.8.선고 87도2671판결). 제1차 환송심에서 법원이 야간 감금에 대해 유죄판결을 선고하였으나(대구고등법원 1988.7.7.선고 88노144판결), 대법원은 제2차 상고심에서 재차 야간 감금행위를 무죄로 판시하였고(대법원 1988.11.8.선고 88도 1580판결), 결국 2차 환송심에서 법원은 위 2차 상고심 판결의 취지에 따라 야간 감금 행위에 대해 무죄판결을 선고하였으며(2차 환송심, 대구고등법원 1989.3.15.선고 88노593판결), 검사는 상고하였지만 최종적으로 대법원은 상고를 기각하였다(대법원 1989.7.11.선고 89도698판결). 대법원이 무죄 취지로 환송한 사건을 고등법원이 이례적으로 기속력을 어기면서까지 유죄판결을 내렸다는 점에서, 그리고 대법원은 2번에 걸쳐 고등법원 유죄판결을 파기환송 하였다는 점에서, 이는 사법부의 희귀한 역사이기도 하다.
4. 우리는 대법원 판결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
첫째, 대법원은 스스로 비상상고 이유로서‘판결에서 인정한 사실을 변경하지 아니하고 이를 전제로 한 실체법 또는 절차법상의 위법’을 간과하였다. 이미 항소심이나 1차 환송심 유죄판결이 지적한 바와 같이, 감금사실이 인정되었다고 전제하면 울주작업장이 법령에 따른 적법한 부랑인(아)시설로 볼 수 없고, 피고인의 행위를 법령에 의한 정당행위로 볼 수 없다. 기속력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무죄를 선고한 2차 환송심 또한 ‘두 차례에 걸친 대법원 환송판결이 내무부 훈령 제410호가 모두 유효함을 전제로 법령에 근거한 정당한 직무 수행행위’라고 판시하여 ‘이에 기속되지 않을 수 없어’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보기로 하고’ 무죄를 선고하였다. 위 판결 문언에 비추어 보더라도, 대법원은 훈령에 근거한 감금행위가 형법 제20조 법령에 의한 정당행위에 해당되는지 여부를 ‘심판이 법령에 위반한 때’로서 판단하였어야 마땅하다.
둘째, 대법원은 법령에 대한 위헌심사권을 스스로 포기하였다. 당시 그리고 현행 헌법에 의하더라도 법령 위헌심사권한을 갖는 대법원은 형법 제20조의‘법령에 의한 정당한 직무행위’에 위 훈령에 의한 감금행위가 포함되는지, 즉 위 훈령이 위헌인지 심판하였여야 마땅하다. 줄곧 재판에서 쟁점이 된 것은 감금행위 여부가 아니라, 이를 전제로 내무부 훈령 등에 근거한 감금행위가 형법상 정당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였고, 이는 곧 법령 ‘적용’문제였다. 이례적으로 검찰총장이 비상상고 한 주된 이유 또한 ‘이 사건 훈령이 상위법령에 저촉되는 위헌, 위법한 것이어서 무효임에도 법원이 이를 간과하였다는 점’때문이었다. 따라서 대법원이 이 사건 훈령의 위헌여부를 심사하지 않은 것은‘법령의 해석·적용에 통일을 도모하려는 비상상고 제도 본래의 의의와 기능’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셋째, 대법원은 정의의 수호보다 법리의, 법원의 안정성을 우선시한 판결을 선고하였다. 대법원 판결이 적시하는 바와 같이. 과거 대한민국은 국가권위주의 체제 아래서 국가기관 주도로 부랑인으로 지목된 사람들을 단속· 수용하였고, 대규모의 인권유린이 오랫동안 행해졌다. 중대한 인권침해가 도시 질서 확립이라는 미명하에 자행되었고, 이는 법률이 아닌 이 사건 내무부 훈령에 근거한 것이었다. 헌법과 법률이 유린되고 국가권력이 임의로 발령한 훈령에 기한 감금 행위 및 이를 면죄한 1987∼1989년 사법부 굴욕의 역사 또한 2021년 현재의 대법원이 응당 성찰하고 시정하였어야 마땅하였다.
넷째, 대법원은 인권과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여야 할 사법부의 최고 기관으로서, 형제복지원 감금의 법적 정당성 여부를 심판할 책임과 역할을 도외시 한 채 결국 이를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원회라’ 한다)에 전가하였다. 새로이 출범한 진실화해위원회가 국가폭력의 진실과 피해자들의 아픔을 마땅히 조사하겠지만, 내무부 훈령에 근거한 감금행위가 법령에 의한 정당행위가 아님을 판결로서 선언하는 것은 사법부의 책임이자 권한이다. 따라서 사법부가 그 책임과 역할을 진실화해위원회에 전가하였다는 점에서 이번 기각결정은 직무유기라 아니할 수 없다.
다섯째, 대법원은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이 오로지 감정적 접근과 피해의 심각성만으로 법원의 재판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간과하였다. 저울의 균형, 실체의 심각성만으로 절차의 저울 한쪽이 기울어지도록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판결에 일응 수긍할 점이 있지만, 이 사건 피해자들은 저울대에 한 번도 올라보지 못한, 우리 사회가 최우선적으로 연대하고, 권리회복을 도모해야 할 이 시대의 가장 소외된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신이 왜 끌려갔는지 알지도 못한 채, 감금되고 맞아 죽고, 그리고 사회에 버려졌다. 그렇다면, 현재의 사법부로서는 ‘법이란 무엇인지’ 판결로써 말해주었어야 했다.
한국판 아우슈비츠, 판결 없는 무기징역 교도소. 사망자 513명 죽음의 수용소…우리는 형제복지원의 그 어두운 이름을 다 부를 수도, 정할 수도 없다.
당시나 현재의 헌법과 법령 체계 하에서도 내무부 훈령 제410호는 법률의 위임 없이 신체의 자유 등을 제한한 것으로 헌법상의 법률유보 및 적법절차, 과잉금지, 명확성 원칙을 위반한 위헌·위법한 것이다. 따라서 이미 인정된 감금행위 하에서, 형법 제20조 정당행위의 근거가 된 내무부 훈령의 위헌성은 당연히 법령의 적용문제로서, 대법원이 심사하였어야 마땅한 것이었다.
역시 공은 진실화해위원회로 돌아왔다.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은 진실화해위원회에 진실규명 신청서를 첫 번째로 접수하였다. 대법원이 그나마 국가기관 주도로 단속 수용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였다는 점을 최소한의 위안으로 삼으면서, 진실화해위원회가 서둘러 조사 업무를 시작하여 국가폭력의 진실을 밝히고, 피해자들의 아픔과 명예가 회복되길 기대한다.
2021. 3. 12
20210311비상상고_대법원기각_논평_대책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