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상가(喪家)에서 장례를 치르는 경우에는, 나름대로 일정한
절차를 밟게된다. 이른바 '상례(喪禮)'이다. 이 상례는 종교나 민족에
따라 그 내용이 서로 달라진다.
우리나라는 토속 신앙에 따른 예법, 불교에 따른 예법, 유교적인 예법
등이 대표적이다. 그중에, 기독교 장례 예식이 추가된다. 교회의 장례
예식은 기존의 다른 장례 예식과는 여러모로 차이가 있다.
사람이 이 세상을 떠나면 과연 어찌 되는가'에 대한 신념은 장례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사람이 죽으면 그 영혼은 소멸되고 마는가?
아니면 어떤 방식으로든 존재하는가? 사람이 죽어서 영혼으로 존재할
때, 이 세상 사람들의 정성이나 노력으로, 고인이 된 영혼을 위해 영향
을 미칠 수 있는 지 여부(與否)는, 장례법에 아주 중요한 영향을 준다.
살아있는 사람들의 치성(致誠)이나 노력으로써, 고인의 영혼에게 좋은
영향을 끼친다고 믿는 이들에게는 불교의 '천도제'나, 캐톨릭의 고인을
위한 '미사', 무속(巫俗)신앙의 망자(亡者)를 위한 '굿거리' 도 부담없이
수용될 것이다.
또한, 유교의 제사행위도 이런 내세관과 영혼관에 그 뿌리를 둔다.
본래, 유교의 비조(鼻祖)라 할 수 있는 공자께서는 "괴력난신(怪力亂神)"
의 존재에 대해서 초연하였다. 그러나 후대로 내려오며, 점점 고인에
대한 제사법이 복잡하고 까다로워졌다.
결국은, 고인이 된 조상의 영혼이 후손들의 제사를 받는다는 신념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제례(祭禮)를 중시해, 이 제례에 고인의 영혼이
참석한다는 개념이 자리를 잡았다.
그래서 제사가 시작되면 제사의 주인공인 영혼이 찾아온다는 강신
(降神), 제사에 참여하여 생전처럼 제물(祭物)을 드신다는 참신(參神),
영혼이 제사를 다받고 돌아간다는 반신(返神) 등의 용어와 절차들이
생겨난 것이다.
그런데, 기독교의 장례법은 많이 다르다. 이 장례법은 오직 성경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사후(死後)에도 고인(故人)의 영혼이 존재한다
는 것에는 별다른 이견 (異見)이 없다. 다만 고인의 영혼이 이 세상을
떠돌아 다닌다던지, 저승과 이승을 오갈 수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를
않는다.
아울러, 살아있는 자들이 故人을 위해 기도를 한다던지, 어떤 선행
들을 통해, 고인에게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도 인정하지 않는다.
사람의 인정(人情)상 그 순수한 뜻을 모르지 않지만, 실제로는 그리
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인생은 누구나 살아생전에 자신의 삶의 내용과 그 결과에
따라, 내세(來世)에서의 존재 가치가 결정되는 것이지, 결코 타인들에
의해 사후(死後)의 영혼에게 영향을 끼칠 수 없다고 믿는 것이다.
그래서, 소위 "고인의 명복을 빈다." 라는 인사도 조문객 입장에서는
인정상으로 할 수 있는 인사말이겠지만, 사실은 공허(空虛)하면서도
무의미한 인사말로 간주하는 것이다.
사람은 그 신분의 존비(尊卑)나, 업적의 고하(高下), 그리고 수명의
장단(長短), 남녀간의 성별(性別)의 차이를 가릴 것없이, 지금 우리가
살고있는 이 세상에서의 삶의 내용에 의해 내세에서의 존재가치가
결정되는 것이기에, 현재 이곳에서의 하루하루가 소중하고 위대함을
일깨워 주며,
인간 본연의 존엄성을 잘살려서 살아가야하는 엄숙한 존재임을 분명
히 하며, 각자 자신의 귀한 삶의 현장에서 이를 꾸준히 적용해 나가는
것이 현명한 삶이라고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