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는 곶자왈이라는 특별한 지형이 있다. '곶'과 '자왈'이 합쳐진 합성어로 제주 고유어로만 이루어진 곶자왈. 숲을 뜻하는 곶과 나무 덩굴이 엉클어져 수풀처럼 어수선하게 된 것을 뜻하는 자왈이 합쳐진 곶자왈. 돌무더기로 인해 농사를 짓지 못하는 척박한 땅이 지금은 많은 학자들에게 사랑받는 숲으로 변모했다. 그저 생산성이 낮아 방목 따위에만 썼던 땅이 말이다.
제주도 전체 면적의 6.1%를 차지하는 이 지형. 이는 세계에서 유일한 지형으로 열대 북방한계 식물과 한대 남방한계 식물이 뒤섞여 공존한다. 그렇기에 더욱 특별하다 불리는 곶자왈. 형성된 용암에 따라 크게 네 개의 지역으로 걸쳐 분포하는데, 한경-안덕 곶자왈, 애월 곶자왈, 조천-함덕 곶자왈, 구좌-성산 곶자왈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오늘은 한경면에 속한 곶자왈로 환상적인 이야기가 있는 '환상숲곶자왈공원'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환상숲곶자왈공원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 녹차분재로 594-1 /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제주에서도 웰니스 관광지로 선정된 환상숲곶자왈공원. 이 작은 숲은 굉장히 특별했다. 결론적으로 입구에 적힌 환상숲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숲이 확실했다. 숲 입구에 작은 놀이터가 있고, 야생화와 맨드라미가 피고 있던 숲. 이것만으로도 숲은 특별했지만, 길을 따라 우거진 숲으로 걸어들어가면 그 매력과 특별함은 배를 더 했다.
나는 총 두 번을 나눠 숲을 누볐다. 그러니까, 한 번은 숲해설을 들으며 숲을 누볐고, 또 한 번은 자유 코스를 따라 숲을 누볐다. 첫 번째로 숲해설을 들으며 숲을 누빌 땐 이곳이 얼마나 특별한 곳인지, 이 숲을 설립할 때, 얼마나 큰 어려움이 있었는지, 또, 이 숲이 설립한 이들에게 얼마나 특별한 공간인지까지 느끼게 했다.
숲해설은 이곳을 설립한 대표님의 딸이자, 이곳에서 결혼식을 올린 이지영 부대표의 설명으로 진행됐다.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해설사는 호소력 짙은 설명과 이야기로 내 마음을 이끌었다. 이야기의 시작은 아버지였고, 내용은 이러했다.
'처음 숲으로 온 것은 아버지였고, 건강 때문이라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버지는 젊은 시절 오른쪽 몸이 마비되었고, 세상의 이야기를 다 피하게 되었다고 했다. 사람 만나기가 싫어 모든 것을 포기하고 들어온 숲. 가장 낮아지고 약해진 시기에 숲의 이야기가 들렸고, 그는 멀쩡한 왼쪽으로 길을 내고, 숲을 꾸몄다. 그리고 놀랍게도 3년이 지나자 몸도 마음도 완전히 치유됐다. 마비되었던 것까지.'
- 숲 해설 중 -
BTS 뮤직비디오 촬영지이자 결혼식을 올린 장소
두 번째로는 자신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이어갔다. 이야기는 이러했다.
'그녀는 원래 연구소를 다니는 뛰어난 회사원이었다. 하지만, 아버지를 돕기 위해 다니던 연구소를 휴직했고, 아버지 일에 보탬이 되고자 제주로 다시 내려왔다. 20대 아가씨가 숲 읽어주는 여자가 되길 자처하자 주변 사람들은 이 시골에서 시집은 갈 수 있을지 걱정했다. 하지만, TV에 나오는 그녀를 보고 시어머님과 시아버지는 숲을 방문했고, 며느리 삼고 싶다며 으레 인사를 건넨게 결혼까지 이어졌다.
서울에서 온 숲 방문객과 제주에 사는 숲 해설가. 처음부터 말도 안 되는 만남과 지속되기 어려운 인연이었다. 서울과 부산, 경주, 제주까지 쉬기에도 짧은 귀중한 주말 둘은 오고 가는 길에서만 8시간을 쏟으며 노력을 이어갔고, 인연으로 키웠다. 기리하여 서울 총각과 제주 처녀는 이곳 곶자왈 숲에서 결혼을 하게 됐다.'
- 숲해설 중 -
숲해설은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흘러갔다. 숲 안에서 일어난 재미난 일화들. 이 모든 건 호소력 깊게 다가와 내가 한 사람의 인물이 되어 다니는 기분을 느끼게 했다. 1시간이 되지 않는 짧은 시간. 해설사와의 여정은 숨골이라는 곳에서 마무리하게 됐다. 숨골은 제주 특유의 지형으로 지하에서 시원한 바람이 쏟아지는 공간이다. 음이온이 엄청나게 쏟아진다는 숨골. 나는 잠시 앉아 건강해지길 바라며 시원함을 만끽했다. 이곳 대표님이자 아버지도 숨골에서 치유가 많이 됐다고 하니 이는 어쩌면 경험으로 이뤄낸 신빙성이 아닐까 하며 즐겼다.
숲을 빠져나온 나는 자유 코스를 누비기로 했다. 600m를 거닐며 설명을 듣는 숲보다는 약 2배 이상 길었던 자유코스. 처음은 해설가와 함께 숲을 누비며 함께 숲이 주는 이야기를 공유했다면, 자유코스는 내가 직접 숲에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느낌을 들게 했다. 재미나면서도 즐거운 상상이 가득했던 숲. 작은 벌레들부터 새소리, 우거지고도 거친 마치 전쟁과도 같은 숲 사이로 내리쬐는 태양의 햇살까지 모든 게 이야기였다. 특히나, 눈길이 가는 넝쿨의 초록 잎들. 나는 이들에게 너희도 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구나 위로하며 쓰다듬었다. 숲이 들려준 경건한 이야기. 나는 이 모든 이야기를 끝으로 여정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환상숲곶자왈공원 끝에는 맨드라미와 이렇게 아름다운 보라색 데이지가 피어 나를 반겼다. 그리고, 전통차를 마실 수 있는 카페부터 1층과 2층으로 운영되는 족욕체험까지 이곳은 건강과 직결된 많은 것들로 즐비해 있었다. 제주 2021 웰니스 관광지로 선정된 이유를 여실히 느낄 수 있었던 작은 숲. 나는 이곳에서 숲과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 꽤나 달콤했던 곶자왈에서 추억. 나는 이날의 추억을 벗 삼아 숲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깨달았고, 여름을 보내고 성큼 다가온 겨울. 그 사이의 가을을 조금 더 열심히 즐겨보기로 마음먹었다. 사랑스러운 추억이 고스란히 녹아있던 환상숲곶자왈공원. 제주에 처음 내려와 내게 따뜻함을 선물한 이곳을 3년이 넘은 지금 다시 한번 찾을 수 있으매 감사하며 글을 줄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