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5》
탱가리의 한
글쓴이 원 종 문
햇살이 따사롭다. 산골짝 얼음 밑엔 물방울 구르는 소리가 꼬르륵거리고, 버들강아지가 겨우내 숨겨두었던 솜털을 살짝 밀어 올린다. 모든 생명들이 겨울옷을 벗어버리며 이제 막 나래를 펴기 시작한다.
시냇물도 두꺼운 얼음을 열어낸다. 어두원리 소의 얼음은 물이 깊다. 아직은 때가 아닌지 부지직거리며 매끄러운 윤기가 다해 왔음을 아쉬워한다. 여울 한복판은 이미 열리어 콸콸콸 힘찬 물소리를 쏟아내고 그늘진 돌 틈의 고드름이 한두 방울의 물방울을 떨어트리다 이내 굵직한 물줄기를 만들어 여울 속으로 빨리어 들어간다.
겨울이 지나며 생동의 계절을 자랑삼아 우쭐거리는 자연의 미묘한 모습들이 참으로 좋아 보이기만 하는데, 그 속에 탱가리(퉁가리의 방언) 한마리가 흐느적거리며 맥없이 물가에서 빙빙 돌고 있다.
탱가리란 냇가에 사는 주황색을 띤 민물고기로 일급수에서 자라며 주로 밤에 활동하는 야행성이다. 한 뼘도 채 안돼 보이는 작은 놈이지만 건드리기라도 하면 지느러미의 가시로 쏘아 댈 줄도 안다. 손가락이라도 한번 쏘일라치면 팔딱팔딱 뛸 절정도로 심한 통증을 느끼고 그 아픔이 이틀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대가리가 유별나게 커서 아이들끼리 머리가 큰 애들에게 “탱가리” “탱가리” 하고 별명을 붙일 정도로 시골 사람들에겐 잘 알려진 토속어종이다.
사람의 그림자라도 보일라치면 돌덩이 밑으로 파고들던 놈이나 돌땅을 맞았는지, 약물을 먹었는지 병병 대는 모습이 어째 심상치 않다. 툭툭 건드려 보아도 도망갈 기색은 보이지 않는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놈뿐이 아니다. 여기저기 흐느적거리는 물고기들이 수두룩하게 눈에 들어오고 탱가리도 한두 마리가 아닌 수십여 마리쯤 아니, 백여 마리도 넘어 보인다.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2007년 3월의 초 어느 날, 원통 앞 냇가에서 물고기 모두가 떼죽음을 당하고 있었다. 쉬리와 피라미는 이미 뱃살을 허옇게 들어낸 채 흐르는 물을 따라 둥둥 떠내려간다. 조금의 움직임도 없는 모습이 이미 세상과 등을 지고 있었다.
그나마 강하다고 질기기로 소문난 탱가리만이 이틀째 가쁜 숨을 몰아쉰다. 마지막 힘을 보태어 살아보려 애쓰고 있다. 그 긴 하얀 수염을 맥없이 늘어뜨리고 살려 달라 애원하는 듯하다.
웅덩이 마다 쉼터인양 보금자리인양 옹기종기 모여든다. 서로가 살을 맞대 비벼보고 꼬아대며 아픔을 나누는 듯하다. 고통을 달래기엔 여울의 돌 틈 보단 고요한 웅덩이가 한결 낳은 모양이다.
고통을 좀 거들어 줄 수 있을까? 두 손을 오므려 탱가리 한 마리를 사알짝 떠올려 보았다. 힘이 빠져 움직일 수도 없는지 가만히 드러누워 미동도 하지 않는다. 커다란 입만 연실 벌름거리며 실눈만 껌뻑 거린다. 안쓰럽고 측은하기 그지없다. 다시 물속으로 되돌려놓으나 맥 빠진 기색은 여전하다. 고맙다할 답례도 버거운 모양이고 꼬리 흔들 힘조차 잃어버렸나 보다.
강 뚝 넘어 갓 돋아난 쑥 싹을 찾던 여인네의 손끝이 멈춰졌다. 다리를 건너던 행인도 난간에 기대어 가던 길을 멈추어 섰다. 누구의 짓인가 미친 듯 욕설을 퍼부어 댄다. 모두가 아쉬움을 성토하며 서글픔을 감추지 못한다. 그래도 탱가리의 안타까운 숨만은 꺼져가고 있었다.
누구의 실수인가? 누구의 잘못일까? 무심코 흘려보낸 폐수가 원인인가? 악의적으로 던져버린 약물이 요인일까? 그러나 던져버린 사람도, 흘려보낸 곳도 없다고들 한다. 모두가 입을 다물고 난 아니 했다 발뺌할 뿐이다.
움이 트는 시기!
나래를 펴는 봄!
이날을 기다리며 탱가리는 겨우 내 차디찬 얼음 밑에 엎드리어 봄소식을 기대해 왔을 터이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생동의 꿈을 고대해 왔건만 …
기다리던 꿈은 피워보지도 못한 채 마지막 숨을 거두어야 하다니.
만물이 소생하는 봄.!
기쁨을 나누는 봄.!
누가 봄이라 했는가?
누가 겨울잠을 자라 했는가?
애처 롬에 속이 터지며 가슴이 저려온다. 오늘도 탱가리는 이기적인 인간을 증오하며 사람답지 못한 행위에 원망스런 한을 남기고 있으리라.
에이 염병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