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카르트의 꿈
Dream in Descartes 笛卡尔的梦
데카르트는 꿈을 뇌와 신경이 작용하여 생성한 가상의 관념(idea)으로 보았다. 간단히 말하면 꿈은 사실이 아닌 허구다. 그렇다면 왜 데카르트는 허구인 꿈을 인식의 대상으로 삼았을까? 그것은 확실한 지식과 진리를 구축하고 명증한 학문의 체계를 수립하기 위해서였다. 데카르트는 [방법서설]과 [성찰] 등에서 자신이 오랫동안 지식/진리로 알고 있던 것들의 오류를 설명하면서 대부분 지식이 감각을 토대로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리고 전통 철학의 지식도 대부분 감각을 토대로 한다고 비판했다. 감각과 경험을 토대로 지식을 구축하는 것은 타당하지만 녹아 없어지는 밀랍(wax)과 물속의 막대처럼 확실하지 않은 것도 있다. 그러므로 감각과 경험에 근거한 지식에는 오류 가능성, 교정 가능성, 의심 가능성, 부정 가능성이 내재해 있다. 올바른 지식, 진리, 학문은 감각이 아닌 명석판명하고 명증한 이성에 근거해야 한다.
지식/진리를 감각과 경험에 의존한다는 것은 위험하다. 지식은 완전한 근거와 토대, 명석판명하고 명증한 이성, 더 이상 의심할 수 없는 공리(axiom) 등에 근거해야 한다. 그런데 이보다 먼저 정립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생각하는 나’와 ‘존재하는 나’다. ‘생각하는 나’와 ‘존재하는 나’가 없으면 인식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데카르트 인식론의 기본 구조는 <①인식의 주체인 자아(ego) - ②인식의 대상인 관념(x) - ③관념의 근거인 내부 가상이나 외부 실재>로 구성되어 있다. 데카르트 철학에서 영혼과 정신을 가진 자아(ego)는 ‘②인식의 대상인 관념(x)’을 먼저 인식하고 그다음에 관념과 대상의 정합성(coherence)을 인식한다. 데카르트가 가장 먼저 의심하고 가장 먼저 정립한 주체는 ‘생각하고 존재하는 나’다. 데카르트는 ‘생각하는 나’인 코기토(Cogito)를 인식의 제1원리로 삼고 다른 지식/진리를 구축했다.
확실하게 정립된 나(ego)라고 하더라도 꿈과 같은 환상, 감각의 오류, 전능한 악마의 속임수, 이성의 착오 등을 제거해야 하고 최고의 완전 존재인 신이 인간을 기만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해야 한다. 이런 데카르트 인식론의 체계에서 꿈은 인식의 오류를 보여주는 중요한 예다. 데카르트가 꿈의 오류로 제시한 것은 ‘난롯가에서 옷을 입고 앉아 있는 나’다. 실제로는 옷을 벗고 잠자고 있는데, 잠재의식을 가진 나(ego)는 ‘난롯가에서 옷을 입고 앉아 있는 나’의 꿈을 꾸었다. 그 꿈이 너무나 생생하여 현실에서 느끼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감각적으로는 현실과 꿈의 차이가 없다. 그렇지만 꿈에서 감각적으로 인식한 ‘난롯가에서 옷을 입고 앉아 있는 나’는 실재가 아니다. 실재의 나는 ‘옷을 벗고 잠자고 있는 나’다. 이것을 통해서 데카르트는 감각적 사실이라도 실제로 거짓일 수 있다는 것을 논증했다.
데카르트는 (감각과 경험은 오류가 있으므로) 철저하게 검증하여 확실한 지식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것을 방법적 회의라고 한다. 방법적 회의를 통하여 오류 가능성, 교정 가능성, 의심 가능성, 부정 가능성이 없는 확실한 지식/진리를 구축할 수 있다. 이것을 위해서 데카르트가 첫 번째 검증한 것이 꿈이다. 그런데 데카르트가 제시한 꿈의 논증은 국지적 꿈(local dreaming)이자 일시적 꿈(now dreaming)이다. 국지적 꿈은 ‘지금, 여기에서 생각하는 나’를 현실로 놓고 잠시 꿈꾼 것이다. 그렇다면 현실 전체를 의심할 수 없을까? 장자(莊子)의 우화 호접지몽은 현실 전체가 꿈일 수 있다는 가설을 제시한다. 호접지몽은 나비가 무 잎에 앉아 잠시 인간의 꿈을 꾼 것이 현실일 수 있다는 우화다. 현대 심리철학에서 제시한 통 속의 뇌(brain in a vat) 역시 감각 경험의 참과 거짓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데카르트가 말한 꿈은 감각과 이성의 환영, 환상, 환각, 오류, 착각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가령 신기루와 같은 환영은 실재는 아니지만, 감각적으로는 분명한 실재다. 인간의 감각이 잘못된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생각하는 나의 제1원리에 근거하고 하나하나 연역하여 사실, 실재, 지식, 진리를 확립해야 한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이 명석판명한 생각의 규칙인 이성이다. 명석판명한 이성은 지금 내가 꿈을 꾸는 것인지 현실에 존재하는 것인지 판명할 수 있다. 꿈이 아님을 증명하려면 ‘생각하는 나’를 확인하고 다시 ‘존재하는 나’를 확인하면 된다. ‘지금 여기에서 생각하고 존재하는 나’는 다른 상상을 할 수도 있고 머리를 흔들 수도 있다. 만약 꿈이라면 생생한 감각이 있더라도 다른 상상을 하거나 머리를 흔들 수 없다. 이처럼 데카르트의 꿈은 감각적 사실의 오류를 상징하는 방법적 회의의 대상이다.★(김승환)
*참고문헌 René Descartes, Meditations on First Philosophy(1641), translated by Cottingham, J.,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6).
*참조 <나의 존재 증명[데카르트]>, <데카르트의 극장>, <데카르트의 극장 논증>, <데카르트의 악마>, <두비토(dubito)>, <명석판명[데카르트]>, <방법적 회의>, <숨(sum)>, <숨(sum)의 주체>, <이성>, <제1원리[데카르트]>, <코기토>, <코기토 에르고 숨>, <코기토의 오류 논증>, <코기토의 인식과 존재>, <코기토의 주체>, <코기토의 직관과 추론>, <통 속의 뇌>, <호접지몽>, <회의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