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회복
입력2023.04.11
이기정 한양대 총장
감동할 줄 아는 한 청년이 있었다. 애절한 사랑 영화도, 살짝 과장된 성공담도 그는 있는 그대로의 눈물과 가슴 벅찬 포부로 받아들였다. 그의 지적인 친구들은 감성을 자극하는 상업주의의 결과물이니, 미담으로 승격된 다 비슷한 사람의 영웅담일 뿐이니 하며 제대로 된 이성을 갖추라고들 했지만, 그의 마음속 떨림은 언제나 여전하다고 했다. 책도 꽤 읽는 듯했는데 알고 읽는지 모르고 읽는지 동서양 고전, 종교 경전, 전공 서적 등 참 지치지도 않고 읽어대는 것 같았다.
그는 내가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교수로 임용된 지 얼마 안 돼 만난 학생이었다. 나는 그의 미래가 무척 궁금했다. 기대가 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삶의 실용적인 관점이 보이지 않아 세상을 잘 헤쳐 나갈지 걱정도 됐다. 시간은 흘렀고 수업에다 연구에 집필까지, 학교의 국제화 관련 보직으로 세계를 누비는 동안 간혹 잊을 만하면 학교를 나간 그의 소식이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 어렴풋이 들려왔다. 세상사란 게 정말이지 마음대로 안 되는 모양이다. 그의 인생은 순풍이 밀어주는 돛단배가 아니었다. 뭔가가 될 만하면 안 되고, 이어지는 집안의 우환에다가 아이마저도 몸이 성치 않은 모양이었다. 안타까움의 감정이란 이런 느낌이란 것을 그 친구 인생을 통해 경험하는 것만 같았다.
그런데 반전이다! 세상사가 마음대로 안 된다고 했지만, 또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은 놀랍게도 그의 인생이 해피엔딩으로 전환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제 내게 안타까움이 아니라 ‘회복’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더 놀라운 것은 내가 거기에 들어있다는 그의 분석이다. 무엇일까? 나는 그저 가끔 이야기를 나눴고, 될 수 있으면 들어줬고, 함께 밥을 먹고 제법 긴 거리를 같이 걸어줬을 뿐이었다. 어쩌면 그것은 용케도 나의 빈 시간을 잘 찾은 그의 성과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무엇보다도 그는 나로 인해 ‘자존감’을 찾았다고 했다. 그랬었나? 그러고 보니 새벽녘 어디선가 울린 음성의 명령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옛날 학생으로 그를 만났던 젊은 교수 시절의 그 생명력 넘치는 활기를 나 역시 ‘회복’하고자 했던 것도 같다. 그야말로 소위 ‘윈윈’이 됐다. 그의 웃음을 따라 나도 뿌듯하고 행복해졌으니 결국 모두가 다 잘된 것 아닌가. 한번 물어봐야겠다. 들어준 게, 걸어준 게 그렇게 컸었냐고. 그렇다면 앞으로는 주변을 향해 좀 더 대놓고 그래야겠다.
------------------------------------------------------------------------------------------------------------
당신이 좋아할 만한 뉴스
- 1
[한경에세이] 새 성장엔진, 관광벤처기업
약 2년 전 드라마 ‘스타트업’이 젊은이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으며 화제가 됐다. 당시 주인공은 인공지능(AI) 안면인식 기술을 비즈니스 모델로 창업한 스타트업 대표였다. 불과 몇 년 지나지 않았지만,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활용 등 4차 산업혁명에 따른 ICT 기술의 획기적 발전은 다양한 산업과 비즈니스의 디지털 전환을 가속화하며 우리 일상에 스며들었다. 관광산업도 이런 기술적 변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변모를 거듭하고 있다.한편 이런 기술혁신을 통해 성장한 글로벌 온라인여행사(OTA)들이 세계 여행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더 늘고 있어, 상대적으로 영세한 국내 여행업계가 고군분투하고 있다. 이 같은 세계적 흐름 속에 혁신적인 사물인터넷(IoT) 기술과 매력있는 콘텐츠를 융합한 스타트업이 국내 OTA로 성장하면서 글로벌 진출을 통해 관광산업 영토 확장의 첨병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관광공사가 2011년부터 시작한 관광벤처사업을 통해 선발하고 육성한 관광벤처기업들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관광벤처기업 발굴 육성 사업 초기에 관광 부문 스타트업의 성공 가능성에 대한 우려 섞인 시선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글로벌 진출에 성공해 해외 기관과 투자자에게 많은 관심과 협업 제안을 받는 기업들을 보면 이들 중 가까운 미래에 유니콘 기업(기업 가치 1조원 이상 스타트업)으로 성장할 가능성과 잠재력이 충분한 기업이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돌이켜보면 팬데믹이 지속된 지난 3년간의 큰 어려움 속에서도 혁신 기술 기반의 관광벤처기업은 기업가정신과 불굴의 의지로 생존하며 역량을 키워 왔다. 공사는 특히 글로벌 진출 경쟁력을 갖춘 우수 관광테크기업을 본격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작년 8월 말 싱가포르 관광기업지원센터를 최초로 개소했다. 관광테크기업은 공사 지원으로 해외 현지법인을 설립하고, 공사의 현지 네트워크를 활용해 중동 일본 등 해외 비즈니스를 확대, 투자 유치에 성공하는 등 해외시장에서 가시적 성과를 창출해 나가고 있다. 이런 실적을 바탕으로 올해에는 일본 도쿄에 관광기업지원센터를 열 예정이다.매력적인 K컬처가 전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는 현 상황에서 잠재 관광객을 유치하려면 글로벌 MZ세대(밀레니얼+Z세대)의 관심을 끌고 있는 다양한 한류 콘텐츠를 활용하고, 새로운 기술로 경쟁력을 갖춘 관광벤처기업과 전통 관광기업의 적극적인 협업과 시너지도 필요하다.관광산업은 국가 경제의 신성장동력이다. 앞으로 한국 관광산업의 미래를 이끌 혁신적인 관광벤처기업의 맹활약을 기대한다.
- 2
[한경에세이]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기
지난 주말 벚꽃축제가 한창인 석촌호수에 갔다. 한 송이만으로 화려한 자태를 뽐내는 장미와 달리 벚꽃은 수많은 꽃송이가 때론 흩어지고 때론 송이송이 모여서 잔잔하고 화사하게 하늘을 수놓는다. 흩날리며 떨어지는 꽃비를 맞으며 “아련한 아름다움이란 이런 것이구나” 생각했다. 버릇처럼 한쪽 눈을 감고 바라보다 다른 쪽 눈을 감아봤다. 조금 달리 보인다.한참 전 오른쪽 눈 망막에 문제가 생겨 수술받은 적이 있다. 안과 의사 친구 말이, 워낙 고난도 수술이라 예전엔 기술적으로 불가능했다고 한다. 수술을 마치고 ‘시력이 안 돌아오면 어떡하나’ 며칠간 잠을 설칠 정도로 걱정했었다. 다행히 아직 별 이상은 없지만, 잘 보이는지 확인하기 위해 가끔 한쪽 눈을 감아보는 버릇이 생겼다.눈을 번갈아 뜨다 보면 같은 사물인데도 달리 보이는 경험을 하게 된다. 학창 시절 데생 시간에도 이런 경험을 해봤을 것이다. 왼쪽 눈과 오른쪽 눈을 번갈아 감으면서 연필을 쥔 손을 바라보면 그 뒤로 보이는 조각상의 위치가 조금 달라 보인다. 실제 조각상이 이동한 것이 아닌데도 그렇다. 이는 같은 물체를 서로 다른 두 지점에서 봤을 때 생기는 시각(視角)의 차이 때문이다.물리에서 시각이라 함은 물체의 양쪽 끝에서 눈에 이르는 두 직선이 이루는 각을 뜻한다. 우리는 이 시각의 차이 덕분에 나와 대상의 거리를 인지할 수 있다. 우리한테 눈이 둘 있다는 건 두 눈 사이에 공간이 있다는 것이고 각각의 시각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이 두 관점이 통합돼 새롭고 입체적인 시각이 창조된다.시각은 또 사물을 관찰하고 파악하는 기본적인 자세와 생각, 즉 관점을 칭하기도 한다. 일을 하다 보면 상대방과 견해나 시각이 다를 때가 많다. 왜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지 답답해서 은근히 화가 치밀기도 한다. 상대와 시각의 차이가 생길 때마다 서로 각자의 지점에서 한쪽 눈을 감은 채 내 얘기만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보면 어떨까. 상대방 관점에서 바라보는 시도를 해보면 미처 발견하지 못한 가능성과 만날 수도 있다. 나만의 고정된 시각을 버리고 다양한 관점을 포용할 때 균형 잡힌 조화로움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이번주 막바지 꽃나들이에 나서는 분들이 많다고 한다.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는 “진정한 여행이란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각을 갖는 것”이라고 했다. 봄꽃들의 아름다운 향연 속에서 색다른 관점과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법을 발견하는 기쁨을 느끼는 한 주가 되길 바라본다.
- 3
[한경에세이] 조금 더 살기 좋은 세상
미국의 유명한 사상가 랠프 월도 에머슨은 “진정한 성공이란 자신이 태어나기 전보다 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필자 또한 이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한다.사실상 기업은 경제활동만으로도 사회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제품을 팔아 이익을 내고, 그 이익의 일부를 인건비로 지출해 경제의 선순환을 이끌어낸다. 좋은 제품을 통해 소비자가 얻는 만족도 기업이 창출하는 무형의 가치에 속한다.하지만 이것으로 기업이 사회에 의무를 다했다고 할 수 없다. 경제활동을 위해 사회의 기본 인프라를 활용하고 있으며 국가 차원에서 받는 지원과 혜택도 많다. 그러므로 기업은 받은 혜택을 적극적으로 사회에 돌려줘야 할 의무가 있다.블랙야크도 다양한 분야에 후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후원의 기본원칙은 ‘자연’과 ‘도전정신’이다. 자연을 보호하는 활동, 미래에 도전하는 청소년,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세계 제일을 꿈꾸는 산악인 등을 후원한다.필자는 2013년 BYN블랙야크그룹 창립 40주년을 맞아 더욱 체계적으로 사회 일반의 이익에 기여하고 소외계층을 지원하고자 재단 출범을 결심했다. 사회복지법인 ‘블랙야크강태선나눔재단’과 재단법인 ‘블랙야크강태선장학재단’이 그 결과물이다. 혹자는 공익 활동에 ‘강태선’을 넣은 것에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름을 내건 이유는 책임감을 느끼기 위해서다. 단순히 보여주는 형태가 아니라 진정한 사회공헌 활동을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올해 10주년을 맞은 나눔재단은 자연과의 공존, 이웃과의 공존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매년 ‘블랙야크청년셰르파’를 선발해 2030세대 중심의 공익 캠페인을 연다. 올해 모집한 블랙야크청년셰르파 8기들이 ‘공존’을 위해 펼칠 활약이 기대된다.장학재단은 미래 세대의 꿈과 도전의 가치가 실현될 수 있도록 장학사업을 이어오고 있다. 도서 지역 성적 우수 학생, 국민 도전정신 고취를 위해 헌신한 산악인 및 산악인 유족들을 지원하는 장학금 등이 있다.훗날 누군가가 필자에 대해 떠올린다면 무엇보다 ‘사회를 생각하고 남들과 나눌 줄 알았던 사람’으로 기억됐으면 한다. 진정한 성공이란 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이라는 에머슨의 말처럼, 지금보다 조금 더 살기 좋은 세상이 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