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다시쓰는 제주맛집] 포도호텔

[민욱아빠]

  올 여름휴가는 우울 그 자체였습니다.  날을 맞추어 초대형 태풍 볼라벤이 올라오고 있는지라 휴가 첫날부터 비가 엄청나게 내려주었거든요.  비만 왔다면 다행이었을 겁니다.  추자도 우도 가파도 세 섬을 일박씩 섬여행을 계획했던 우리는 높아진 파도때문에 뱃길이 끊겨 그냥 섬 안에 머물러 있어야 했거든요.

  폭우를 내달리며 일단 가파도행이 가능한지를 모슬포에서 타진해 보았지만, 휴가 첫날 입도는 가능하지만 다음날 나오는 일은 거의 불가능할 거란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아마, 이날 가파도를 들어갔다면 우리 가족은 여지없이 2주동안을 배가 끊긴 섬에서 있어야 했었을 겁니다.  아쉬운 건, 태풍직후 인터넷 기사에도 올라왔던 높은 파도에 가파도 해안으로 밀려온 돗돔을 맛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이었달까요?

  다시 폭우를 내달리며 휴가를 어떻게 보낼 것인지 곰곰히 고민해보니 가장 나은 건 맛집기행을 해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결정을 하고나니 막막했던 섬 안에서의 여정이 차츰 정리가 되기 시작하고 차를 몰아야 할 목적지들이 하나둘 생겨났습니다.  그 첫번째 목적지는 포도호텔이었습니다.  포도호텔의 튀김우동이 괜찮다는 이야기는 진즉부터 듣고 있었죠. 

  비오는 날의 포도호텔 정경은 참 좋았습니다.  호텔내 레스토랑에 앉아 보니 생각보다 메뉴가 많더군요.  다른 거 볼 거 없이 목적한 튀김우동을 찾아 주문하려 보니...  가격이 무척 비쌉니다.  순간 주저했는데, '우리는 지금 휴가중이야!' 란 마음의 소리가 들리더군요.  바로 주문했습니다.

  전식으로 스프가 나옵니다.  별다를 건 없죠.

  튀김우동이 나옵니다.  비쥬얼로는 막대하다 싶을 새우튀김의 위엄이 인상적입니다. 

  왕새우 한마리 반의 위엄이 이렇게 사람들을 불러모으나 싶을 정도의 이 비쥬얼은 맛을 보기 전 큰 기대를 불러오기 충분합니다.

  튀김옷의 화려함은 생각보다 두껍긴 하지만 우동국물에 살짝 불은 상태에서 맛이 극대화 됩니다.  우동면발도 쫄깃함을 유지하며 부드러운 느낌이라 만족스럽습니다.  국물도 만족스럽긴 하지만, 여기서 조금만 더 진하면 짜겠다 싶을 정도여서 튀김과 면발과의 조화가 살짝 아쉬운 느낌입니다. 

  후식으로는 콩가루가 듬뿍 올려진 아이스크림을 주문했습니다.  콩가루와 아이스크림의 조화가 좋긴 했는데 딱히 맛이 독특하고 좋다는 느낌은 없었습니다.

  식사를 마친 뒤, 호텔 내부를 둘러봅니다.  이타미 준이 설계한 아담한 호텔의 내부는 바깥의 빛이 비교적 긴 공간을 타고 안으로 흘러들어오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자연의 빛이 어두운 내부를 은은하게 비추게 만들더군요.  안에서는 공간을 흐르는 물줄기가 다시 긴 공간을 자연스레 흘러서 바깥으로 나가도록 되어 있습니다.

바깥의 빛이 다양한 공간적 특징을 거쳐 들어와 내부를 비추는 모습은 가히 인상적입니다.

  자연광이 그리 많지 않은 비오는 날엔 어둡고 차분한 내부에서 바깥의 물줄기를 바라보며 안락감과 서정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한정된 공간을 통해 바라보이는 바깥의 비오는 풍경은 집중감이 극대화되면서 맑고 깔끔하게 보입니다.

  튀김우동에 대한 기대감은 만족스러운 결과를 내지 못했습니다.  과연 이걸 맛있다고 해야할까 싶은게, 보통의 다른 호텔음식보단 조금 나을 수는 있어도 가격을 생각해보면 그닥 다시오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타미 준의 건축미가 살아있는 호텔의 모습을 감상하고, 언덕위에서 바라보이는 산방산과 제주의 남서부 해안의 풍경을 감상한다는 생각을 해 보면, 맑은날 한번 쯤 와보고 싶은 생각이 들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소문은 그냥 나는 것은 아닌 듯 싶고, 그 소문에 호기심을 가지고 한 번쯤은 와 볼만한 메뉴다.. 뭐 이정도로 마무리가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