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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2월 12일 날 씨 : 맑음
행 선 지 : 금산(錦山 681m,실제는 701m(망대) 5만분의 1지도에도 701m로 되어있음)
산행취지 : 가람산악회 138차 정기산행
참가인원 : 56명
글 쓴 이 : 요산요수 (류 인 호)
산행시,종점:경남 님해군 이동면 신전리(원천마을)-> 남해군 상주면 상주리(대형주차장)
산행코스:원천마을-계곡-능선갈림길-전망대-망대-단군성전-상사바위-보리암-쌍홍문-주차장
지점별통과시간과 간단한 설명:
-10:06~10:08 원천마을(원천수퍼)(원첨마을 원천수퍼앞에 하차 신속히 도로를 건너 마을로)
-10 : 16~19 농로끝(마을을 통과하고 시멘트포장농로는 개울을 좌측으로 건너가자 끝남.)
-10 : 26~29 공터에서휴식(후미인 코스모스님을 기다리려 합류한 후 올라가기 시작한다.)
-10 : 33 산길시작(논둑사이 길을 올라가고 그물망을 통과하니 산길이 시작된다.)
-10 : 40 묘2기(우측은 돌담이 있는 언양김씨 묘2기를 지나자 대나무 숲을 통과한다.)
-10 : 53 개울건넘(물바가지가 걸린 개울을 우측으로 건너 진행하자 눈이 보이기 시작)
-11 : 30 능선길3거리(묘2기를 지나고 눈 쌓인 경사길을 올라가자 희미한 삼거리길.)
-11 : 55 T자갈림길(T자 갈림길에서 우측(좌측은 565.8봉에서 올라오는 길)으로 진행한다.)
-12 : 03~13 전망바위(남해와 금산이 잘 보이는 좌, 우측의 전망바위에 올라 조망한다.)
-12 : 18~20 얼음절벽에 줄(높지는 않지만 얼어있는 바위사이의 줄을 잡고 올라가자 망대.)
-12 : 30~33 망대(봉수대)(봉수대에 올라서자 사람들이 붐벼 조망을 즐길 여유가 없이 하산)
-12:44~13:04 단군성전입구(중식)(망대에서 1시방향으로 내려가며 대밭을 통과 4거리서 중식)
-13 : 08~09 단군성전(중식을 마치고 우측으로 70m거리에 단군성전을 들렸다가 되돌아온다.)
-13 : 13 헬기장(길이 녹아 진창이 된 헬기장을 지나가자 통금이 된 부소암 갈림길)
-13 : 25~30 상사바위(바위전시장인 상사바위위에서 전망(오늘산행 중 전망이 제일)을 즐긴다)
-13 : 56 좌선대(이정표 없는 삼거리서 우측으로 진행 산기슭을 돌아가 우측에 층층바위)
-14 : 03 금산산장(알바를 한차례하고 올라서니 옛날지도에는 부산여관이라고 되어 있는데)
-14 : 06~09 제석봉(금산산장을 지나 Y자 길에서 우측길로 가야 제석봉에 간다)
-14 : 10 흔들바위(구암)(제석봉에서 산정상쪽으로 20m쯤 편백나무 숲 속에 있음.)
-14 : 13 일월암(흔들바위에서 단군성전입구 사거리로 오르다가 우측에 있음.)
-14 : 14 단군성전사거리(점심식사 하던 곳으로 올랐다가 보리암쪽으로 하산한다.)
-14 : 17 화엄봉(보리암쪽으로 하산하다가 오른쪽에 있는 바위 봉우리)
-14 : 21 보리암(양지바른 사찰로 전방전망이 매우 아름답고 불자들이 엄청 많음)
-14 : 28~29 이성계기도처(보리암에서 동쪽으로 내려가 등을 하나 넘어서 있음)
-14 : 38 해수관음상(보리암으로 돌아와 앞마당에 나서니 석탑과 관음상이 있음)
-14 : 46 쌍홍문(좌선대서 내려오는 길과 만나 쌍홍문을 나가자 장군암과 사선대가 있다.)
-14:59~15:01 샘터(쉼터)(휴식용 의자가 있고 거북머리로 된 음수대와 화장실이 있음.)
-16 : 21 상주주차장(산행종료)(매표소를 지나고 도로에 도착하자 우측에 주차장이 있음)
예 상 시 간 : 5시간 30분
실제등산시간 : 5시간 13분(10시 08분 - 15시 21분, 중식 및 휴식시간(53분)포함, 본인기준)
실제산행거리:약 6.88km (GPS측정거리)
위 개념도의 표시된곳에는 길이 없는것 같다. 자세한정보를 아는분 연락주세요
산행개요
이번산행은 금년산행의 안녕을 기원하는 시산제산행이므로 가벼운 마음으로 산행에 임하지만 혹시나 모를 폭설로 인하여 시산제가 차질을 빚지 않을까하는 우려의 마음으로 우리나라 남녘의 명산이자 한려해상공원인 남해의 금산으로 정해진 후 코스문제로 등반대장께서 상당히 고심을 많이 하셨다. 월간 ‘사람과 산’에서 제공한 금산개념도(2004년 12월)를 보고 남해편백휴양림에서 산행을 시작하려고 하고 자료를 구하고 현지(휴양림)에 전화로 문의 해본 결과 휴양림에서 금산으로 가는 등산로는 없다고 하고 미조만 항도에서 가마봉을 거쳐 금산쪽으로 오르거나 아니면 노구에서 대기봉과 가마봉을 거쳐 금산으로 오르는 길도 사전정보가 없어 고민하던 차에 등반대장님이 직접사전답사를 다녀오시는 치밀함까지 보여 이번 산행코스를 좋은 곳으로 안내해 준 것에 대하여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원천마을에서 화계천 계곡을 거쳐 금산 서부능선에 오를 때까지 때묻지 않은 신선한 코스는 정말 좋았으며 능선에 들어서자 남쪽 기슭은 온통 편백나무로 우거져서 금산의 또 하나의 명물인 것 같다. 금산정상부터는 너무 많은 인파와 시산제를 지나는 사람들 때문에 온통 난리여서 조용해야 될 산상이 마치 도심지와 같은 감이 들어 신선미가 감소되었지만 남해의 조망은 너무나 환상적으로 우리나라의 명산임이 분명하고 이정표 역시 자세히 되어 있어 누구나 찾기 쉬웠다. 그러나 시산제 시간에 쫒기여 금산정상석도 못보고 38경중에 극히 일부분만 찾아보고 그 유명한 부소암과 음성굴등을 찾아보지 못하고 하산하여 다소 아쉬움을 남긴 산행이었다.
금산을 오르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금산정상의 또 다른 모습
금산(錦山 일반적으로 681m알려져 있으나, 실제는 701m)
[개요 및 소개] 남해 금산은 한려해상 국립공원 중에 유일한 산악공원이다. 기암괴석의 절경과 남해를 한눈에 굽어보고 있어 전망도 장쾌하다. 한겨울에도 포근하여 겨울 등산 코스로도 좋다. 금산은 삼남 제일의 명산으로 온갖 전설을 담은 38경의 기암괴석이 금강산을 빼어 닮았다 하여 소금강 혹은 남해금강이라 불린다. 주봉인망대(701m)를 중심으로 왼편에 문장봉, 대장봉, 형사암, 오른편에 삼불암, 천구암등 암봉이 솟아 있다. 탑대(고제암)를 중심으로 가사굴, 쌍홍문등 명소가 많다. 금산의 절경 38경중에서 쌍홍문, 사선대, 상사암, 삼불암 등이 대표적인 명소다. 쌍홍문은 여인의 눈동자 같기도 하고 커다란 해골에 두 눈이 뻥 뚫린 듯하기도 한 쌍굴로서 높이는 7~8m쯤이다. 굴이 둥근 모양이어서 ‘한 쌍의 무지개’라는 이름을 얻었다. 굴 속에 들어 뒤로 돌면 다도해의 풍광이 한 눈에 들어온다. 멀리 상주해수욕장의 쪽빛 바닷물이 반짝이고 크고 작은 섬들이 그림처럼 떠있다. 굴 속에서 내려다보는 산과 바다의 조화도 절경이다. 금산에서 가장 웅장한 높이 80m의 상사암에는 양반집 규수를 짝사랑하던 머슴의 전설이 얽혀 있는데 이 바위에 올라 기원하면 사랑을 이룰 수 있다고 한다. 신라 신문왕 3년(683년) 원효대사가 이곳에 초당을 짓고 수도하면서 관세음보살을 친견했다고 한다. 그래서 원래 이름은 보광사였고 산 이름도 보광산이었다. 조선의 태조 이성계가 이곳에서 약 200m 떨어진 큰 바위 아래에서 기도를 올리고 세상을 얻었다. 산 전체를 비단으로 덮어주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러나 그 만큼 큰 비단을 구할 수가 없자 비단이란 비단금(錦)자를 써서 비단산이란 이름을 붙여주었다. 이후 현종은 보광사를 왕실의 원당으로 삼고자 보리암(菩提庵)으로 개칭했다.(한국의 산하의 글)
찾아간 길 : 성서나들목 - 화원요금소-구마고속도로-내서분기점 우회전-남해고속도로-사천나들목 1시방향 직진-3번국도-창선.삼천포연육대교(3.77번국도)-창선교 건너서 우회전1024번지방도-이동사거리 좌회전 -19번국도-77번국도-복곡삼거리 직진-원천마을 원천수퍼앞 정차
산행지로 출발하며
04 : 40~10 : 00 우려했던 날씨는 맑게 개여 산듯한 기분으로 산행을 나선다.
시산제 산행지인 남해금산에 신청자가 일찍 마감되어 가고 싶은 분들이 많다고 하는 바람에 월례회때에 부득이 35인승 차량을 한대 더 운행하기로 결정해놓고도 인원이 생각보다 많지 않아 걱정이 되었는데 산행당일 날씨는 활짝 개여 다행이었으나 메아리님이 불참하시는 바람에 내가 법원주차장에 주차를 시키고 출발한다. 시내 최종경유지인 성서홈플러스 앞에 정차하였을 때 다른 때와 달리 교통정리를 하는 경찰들과 사소한 시비도 잘 마무리하고 출발을 서두르지만 우려하였던 데로 무더기 불참자들 때문에 56명이란 적은 인원이 차량 두 대에 나누어 타고 출발하여(07:13) 예정보다 늦게 성서나들목으로 들어가 화원요금소를 지나자 중부내륙고속도로(구마고속도로)를 달리다가 영산휴게소에서 아침식사와 휴식을 마친 후(07:43~08:16) 다시 출발하자 이내 남해고속도로로 바꿔 달리던 버스는 남강휴게소 옆을 지난 지(08:42) 18분만에 서천나들목으로 나가자 1시방향인 사천방으로 3번국도를 따라 수없이 많은 신호등을 지나면서 우측 창넘어로 보이는 바다를 즐기다 보니 사천시내로 접어들어 수도교사거리에서 우회전(삼천포대교쪽)한(09:23) 버스는 다시 삼거리에서 우회전하자 시작되는 3번,77번국도를 따라 삼천포-창선연육교와 창선대교를 건넌 후 잠시 휴식을 하고(09:42~50) 우회전(좌회전은 남해편백휴양림) 상주해수욕장이정표를 따라 1024번지방도를 10분정도 달리면 나오는 도로밑을 통과한 후 이동면소재지 사거리서 좌회전(상주.미조)하여 19번 77번 국도를 들어서자마자 나오는 오르막 삼거리서 직진(우회전은 호구산.설흘산)하여 고개를 넘어 내리막 삼거리서 또 직진(좌회전 복곡주차장(차로 금산을 오를 때 가는 곳)) 금평교를 지나고 바닷가 도로를 따라 서서히 달리다가 전방에 원천회집 입간판이 보이자 정차를 하고 하차를 서두른다.
하차지점 우측에 있는 원천수퍼
10:06~10:08 산행준비(원천수퍼앞) 하차를 하자마자 준비운동도 생략하고 출발하기 바쁘다.
전방에 원천회집이란 입간판이 보이고 우측 바닷가 쪽에는 새로 지은 건물 원천수퍼앞 길가에서 하차를 하자 이번 산행시작코스가 정해진 등산로가 아니므로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단속 때문에 빨리 이동한다고는 하지만 배낭을 꺼내고 사진 한 컷을 찍느라고 시간이 약간 지체가 된다.
산행을 하면서
원천수퍼에서 길을 건너 마을로 들어가는 길
마을에 들어서자 왼쪽 첫집앞에서 좌측으로 가서 우회전한다.
좌측 맨 끝집을 지나지 말고 좌측으로 꺽어 간다.
마을이 끝나자 시멘트포장 농로를 따라 간다.
10 : 08 산행시작(院川마을)
하차직후 짐을 챙겨 좌측으로 도로를 건너서 마을 안으로 신속이동
일행들은 속속히 차에서 내리자마자 좌측(원천수퍼 반대편) 마을로 접어드는 길은 마치 미로 찾기와 같다. 도로를 건너 시멘트포장 마을도로 길을 50m정도 들어가 좌측 첫 집을 지나지 말고 좌회전하여 10여미터를 가서 다시 우측으로 꺾어서 7~80m정도 들어가면 왼편 마지막집을 지나지 말고 좌측 90도 방향을 꺾어 들어가면 마을은 끝이 나고 시멘트 포장된 농로가 좌우전답사이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올라가면 일단은 안심이다. 농로를 따라가다 개울(화개천)을 좌측으로 건너가더니 이내 시멘트포장길은 끝난다.
농로는 개울을 건너 좌측으로 간다.
농로는 끝나고 논둑밑으로 난 길을 따라 간다.
10 : 16~19 농로끝 마을을 통과하고 멘트포장농로가 따라 개울을 좌측으로 건너자 끝남
논둑을 따라 진행해야 하지만 뒤에 처져 있다는 심마니부회장님과 코스모스님이 전혀 연락이 없다. 무전기로 불러보아도 소식이 없고 휴대폰을 해봐도 두 분이 다 받지를 않는다. 마굿간(부등반대장)님을 잠시 기다리게 좀더 올라가며 선두에 연락을 하니 심마니님은 선두에 계시는 것을 잘못 알았고 코스모스님은 우측 개울 건너에서 가시밭을 헤치면서 이쪽으로 건너오고 계신다.
공터에서 후미를 기다리면서 잠시들 쉬고 있다.
양쪽의 높다란 눈둑사이로 빠져간다.
10:26~29 공터에서휴식 코스모스님을 기다리면서 잠시 휴식을 하다 합류하여 올라간다.
후미에게 연락을 하고 올라오게 하고 코스모스님과도 합류하여 함께 공터에서 잠시 쉬었다가(10:26~29) 키가 훨씬 넘는 논둑사이 길을 따라 올라가자 산길이 시작되는 곳에 그물이 쳐져있다.
논둑길도 깉나고 그물망을 통과하면서 산길이 시작된다.
잡초더미 속의 길을 올라간다.
우측은 담장을 쌓아놓은 곳을 통과하는데 왠 철이른 푸른 새순이~
10:33 산길시작 논둑사이 길을 올라가 그물을 통과하니 산길이 시작되지만 우측엔 왠 돌담
그물이 있는 곳에 전천호 부대장이 기다리고 있다가 우리들 모두가 들어서자 그물을 원상대로 복구해 놓고 숲 속으로 들어가지만 우측에는 인가나 밭이 있었던 터인지 돌담이 있는 옆을 지나 올라가며 겨우살이풀도 아닌데 벌써 푸른잎새가 드문드문 한 길이 끝나자 묘2기가 나온다.
묘2기를 지나자 표석이 나오고 태나무밭속으로 들어간다.
잡목이 빽빽한 사이를 비집고 올라간다.
묵묘에서 개울로 가는 길도 있지만 직진한다.
10 : 40 묘2기 우측은 돌담이 있는 언양김씨 묘2기를 지나자 왕대나무 숲을 잠시 통과한다.
나란히 있는 묘2기는 우측에 역시 돌담이 쌓여져 있고 마지막 묘 앞에 있는 비석에 보니 언양김씨성백지묘(彦陽金氏成伯之墓)라고 세워져 있는 곳을 지나자 묘를 장식하기 위해 심었는지 아니면 이 일대에 인가가 있었는지 왕대나무 숲이 우거져 있다. 잔 나무가 우거진 숲 속으로 들어서니 우측으로 개울로 들어가는 길이 있는 묘1기가 더 나오는데(10:49) 지나올라가자 길은 우측(직진도 희미한 길이 있음)으로 개울을 건너간다.
개울우측나무에 매달린 물바가지 목마른 사람을 기다린다.
개울 우측으로 붙자 본격적인 눈길이 시작되고
묘1기를 또 지나가자 본격적인 오르막이 시작된다.
본격적안 오르막을 숨이차게 올라가는 일행들
10:53 개울을 우로 건넘 물바가지가 걸린 개울을 우측으로 건너 진행하자 눈길이 시작된다.
언 듯 살펴봐도 샘터라고는 보이지를 않는데 나뭇가지에는 자루가 달린 하늘색 플라스틱 물바가지가 걸려있는 곳을 보아 샘이 있는 것 같지만 선두를 따라가기 바쁜지라 그냥 개울을 건너 우측 산비탈로 올라서자 눈이 깔려 있는 길이 시작되고 다시 개울을 좌측으로 건너서서(11:06) 다시 묘2기를 지나서자(11:10) 호젓한 길은 오르막이 심해지면서 숨을 차오르지만 원시림을 올라가는 즐거움은 가슴가득 시원하고 산듯한 감정은 혼자만이 느끼는 감정이 아닐 것이다. 갈지자로 오르는 길이 지능선에 오르자(11:20) 눈은 더욱 많아지면서 좌측에는 등백산에서 565.8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에 햇살이 비춰 산듯하게 보이고 우측에는 오막등의 능선위에 기이한 바위가 가무가지 사이로 보면서 경사길은 끝나고 편한 길이 되는가 싶더니 삼거리 길이 나온다.
능선에 올라서자 희미한 Y자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간다.
능선3거리에 올라서면 우측은 편백나무 숲이 연결된다.
11 : 38 능선길3거리 묘2기를 지나고 눈 쌓인 경사길을 올라가자 능선위엔 희미한 삼거리길
흰눈이 상당히 깔려있는 능선위에 삼거리 우측 길(두모계곡과 오막등 갈림길)은 자세히 보지 않으면 쉽게 알아볼 수가 없고 표시기만 달렸을 뿐이다. 아마 통행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서가 아닌지? 그리고 능선에 올라서니 오른편에는 편백나무로 숲을 이루어졌고 왼편은 참나무나 잡목이 우거져서 대조를 이룬다. 10시 방향으로 능선을 따라 가지만 오른편에 우거진 편백나무가 컴컴하게 느껴진다. 완만한 능선을 15분정도 진행하자 T자 갈림길 앞에 닥친다.
다시 T자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산사면을 돌아 간다.
서서히 커다란 바위들이 좌우에 나타난다.
11 : 55 T자 갈림길 T자 갈림길에서 우측(좌측은 565.8봉에서 올라오는 길)으로 진행한다.
좌측(북쪽) 등백산에서 565.8봉으로 연결되는 능선에서 올라오는 길과 합쳐지는 T자 갈림길에서 우측(남쪽)으로 휘어지면서 산우사면을 돌아서 올라서나 좌우의 별별 모양을 갖춘 기암괴석들이 나열한 전망대에 도착한다.
전망바위 좌측에 있는 뱀머리 같은 바위
멀리 남해바다의 정취가 아름답다.
우측 전망바위에 올라서 즐거워 하는 일행들...
바위에 올라서자 남해바다가 더욱 가까히 보이네....
바위를 들려고하나? 아님 바위와 씨름을 하나....(산오름님)
12 : 03~13 좌우전망바위 남해와 금산이 잘 보이는 좌, 우측의 전망바위에 올라 조망한다.
전망대가 있는 지능선 마루에 도착하여 우선 좌측바위로 올라보니 무슨 짐승을 닮은 것 같은 바위들이 층층이 쌓여 있고 남서쪽 멀리에는 앵강만의 바다가 눈에 들어온다. 내려와서 우측으로 올라가니 누구의 묘인지는 모르지만 바위틈새에 바람을 피해 모셔져 있고 그 뒤로 올라보니 한 없이 많은 바위가 무엇을 닮았는지! 그 너머로 보이는 앵강만의 바다가 더욱 가까이 보이고 그 뒤로 작년에 시산제를 지냈던 설흘산이 아스라이 보이며 서북쪽에는 아직도 미답지인 바위산인 호구산이 오라고 손짓한다. 일행들과 함께 두루 조망하며 즐기다가 진행방향을 바라다보니 금산정상이 바로 앞에 보인다. 한 동안 정신없이 조망을 빠졌다가 지능선 마루로 돌아내려와(12:11) 좌측으로 산사면을 돌아가다 한군데의 절벽에 도착하니 얼음이 얼어 내린 바위에 줄이 매어진 곳에 도착한다.
정상을 얼마 남지 않은 곳에 미끄러운 어름벽에 줄을 타야 한다나...
정상을 거의 다 오른곳의 호젓한 길
12:18~20 얼음절벽에 줄 높지 않지만 얼어있는 바위사이의 줄을 잡고 간단히 올라가자 망대
10여미터 되는 절벽에 새날개쭉지 같이 생긴 틈새에 매여진 줄은 얼음이 얼어 발 디딤이 미끄러워 쉽사리 올라가지 못할 것 같았지만 생각보다 쉽게 올라갈 수 있었다. 우리팀들이 임시로 설치해 놓은 보조로프를 회수하여서 올라서니 생태복원지역을 지나가니 왁자지껄 사람들이 갑자기 많아지면서 일부는 바닥에 천막을 깔고 시산제를 준비하는 것을 보니 정상이 가까워 진 것을 알 수 있었다. 좀더 올라서니 돌을 쌓아올린 망대에 도착한다.
인천지가 된 망대로 오르는 계딘길
망대에 올라 사람들 틈을 비집고 촬영을 한다.
망대의 오르니 왼쪽으로 보이는 복곡주차장에서 올라오는 찻길.
망대우측에 있는 문장암의 글씨들...
문장암 옆에 있는 큰바위들(정상석이 이 바위뒤에 있었나?)
망대앞 바위군을 벗어나려고 틈새로 내려가는 뒤를 따라 간다.
산위에 산죽이 아닌 왕대나무 숲속이 이채롭다.
12 : 30~33 望臺(망대:봉수대) 봉수대에 올르니 사람들이 붐벼 조망을 즐길 여유없이 하산
금산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701m)이며 이곳에 오르면 사방으로 시야가 탁 트인 금산과 남해 바다가 한 눈에 들어와 그 광활한 경치가 황홀하다. 장엄한 남해의 일출을 보러 수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이곳에 오르면 발아래로 금산 삼십팔경과 금산을 에워싼 만경창파를 한 눈으로 굽어 볼 수 있다. 이곳에는 고려시대부터 사용했던 봉수대가 그대로 남아 있다. 산 정상 좌우 바위틈에 돌을 쌓아올려 만든 봉수대위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붐비고 있지만 사람들 틈에 끼어 올라 왼쪽으로 내려다보니 동쪽으로 뻗은 능선에 주차장이 있고 버스와 승용차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 복곡리에서 올라오는 주차장이 지척간에 있다. 봉수대에 대하여 잠시 알아보면
금산봉수대: 1987년 5월 19일 경상남도기념물 제87호로 지정되었다. 산림청 소유로 남해군에서 관리하고 있다. 수량 1기. 높이 4.5m, 둘레 26m이다. 남해군 금산의 높은 봉우리에 설치되었으며, 규모가 큰 편이다. 이곳에 오르면 금산 38경(景)과 금산을 에워싸고 있는 남해 바다를 한눈에 굽어볼 수 있다. 군사 통신 시설의 하나로 낮에는 연기, 밤에는 횃불로 신호를 하던 이 봉수대는 남해안으로 침입하는 왜구를 막기 위하여 그 정세를 급히 중앙에 전달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고려 명종 때 축조된 것이라 전하며 당시 전국 봉수 경로의 5대 거선(巨線) 중 제2거선(동래∼서울)인 동래(東來)로부터 시작되는 봉수대로 한국 최남단에 자리잡아 촉각적인 역할을 담당한 중요한 출발지이다. 동쪽으로는 창선면(昌善面) 대방산(臺方山) 봉수대를 거쳐 진주로 연결되었으며, 서쪽으로는 남면(南面) 설흘산(雪屹山) 봉수대를 거쳐 제5거선인 돌산도(突山島)로 연결되었고, 북쪽으로는 이동면(二東面) 원산(猿山) 봉수대로 연결하는 간봉(間熢)으로서 현재까지 비교적 본래의 모습으로 보존되어 있다. 그 당시 봉수대에는 오장(伍長) 2명과 봉수군(烽燧軍) 10여 명이 교대로 근무하였다.
망대를 내려와 남쪽을 보니 커다란 바위가 2~3개 군집해 있는데 그중에 한 곳(文章岩(문장암))에는 한문으로 쓴 글씨가 있는데 조선 중종 때 성리학자이자 우리나라에 서원제도를 처음 건립했고 대사성을 지낸 한림학사 신제(愼齋) 주세붕(周世鵬)의 글씨란다. 확인되는 데로 살펴보면
由虹門 上錦山(유홍문 상금산 : 큰글씨:홍문(쌍홍문)을 거쳐서 금산정상에 올라왔노라(어떤 사람은 금산에 홍문이 있어 일부러 올라왔다.)고 해석을 하지만... 틀린 해석인 듯하다. 由자는 ‘말미암아 또는 ~에서부터‘ 라고 해석하기 때문이다.)
嘉靖戊戌成(?)(가정(1522~1567년 조선세종때 연호)무술년에 이루다(?)
前翰林學士周世鵬 遊(전 한림학사 주세붕은
尙州浦權管金九成(상주포(상주해수욕장)권관인 김구성과)
進士吳季鷹(진사 오계응과)....
등의 글씨가 있으나 글씨도 희미하고 나의 실력도 부족하여 더 이상의 해석은 다른 유명한분의 명쾌한 해석을 기대합니다.
망대 좌우에 수많은 바위가 있어 모두 한번씩 올라보고 싶지만 선두에서는 벌써 점심식를 한다고 전갈이 온다. 발걸음이 급해 문장암뒤에 있는 금산 정상석이 세워진 정상바위와 대장암에도 올라보지 못하고 남쪽 바위사이를 빠져나가 얼음판이 깔린 길을 조심스럽게 내려가서 대나무 숲속 길을 빠져나가 이정표(↖보리암 200m/↓금산정상 130m/단군성전 220m↗,산장식당 265m↗)에서 1시방향으로 진행하여 얼었다 녹아 진창이 된 길을 1분정도 따라가니 양지바른 단군성전입구 사거리길에서 좌우 양쪽으로 갈라져서 식사를 하는 일행들 틈 사이에 끼어든다.
대나무숲이 끝나는 지점에 있는 이정표
당군성전입구에 있는 사거리이정표
12:44~13:04 단군성전입구(중식) 망대에서 1시방향으로 내려가며 대밭을 통과 4거리서 중식
식사를 마치고(12:44~13:04) 주위에서 권하는 커피한잔까지 받아 마시고 나니 나른하니 졸리기까지 하지만 나는 남 먼저 일어나 사거리 이정표(←산장.식당 115m/↑상사바위 /단군성전 70m→/산정상 280m↓)에서 오른쪽으로 단군성전으로 들어간다.
단군성전 전체의 모습
단군성전 우측에 모셔 놓은 단군상
단군성전을 들어가려면 이길을 따라 가야 한다.
13 : 08~09 단군성전 중식을 마치고 우측으로 70m거리에 단군성전을 들렸다가 되돌아온다.
약간 내리막길을 따라 가며 대나무밭 울타리 좌측을 돌아 들어가자 檀君聖殿(이 곳은 우리계례의 시조(始祖)인 단군(檀君)할아버지를모신 성역으로서 한배검님의 가르침으로 일문(一門) 김연섬(金淵蟾)선생께서 1995년에 건립하였다. 성전(聖殿)에는 환인(桓因)한님, 환웅천왕(桓雄天王), 국조단군왕검의 영정을 봉안하고 우리민족의 상징으로 기리고 있다. 단군 천부경을 모시는 종교단체 )마당에 들어서자 양쪽건물 중간에 단군상을 모셔놓은 곳도 별도로 있다. 한바퀴 둘러보고 단군성전 본전은 올라가 보지도 않고 되돌아 나와 사거리에 도착하여 우회전하여 몇 십미터를 가니 헬기장에 도착한다.
단군성전을 나와 우회전하면 있는 헬기장
부소암가는길은 출입금지라고 경고하는 안내판
상사바위를 올라가기 직전에 미끄러운 바위길
13:13 헬기장 길이 녹아 진창이 된 헬기장을 지나가자 오른쪽은 통금이 된 부소암 가는 길
진창이 된 헬기장 중앙엔 흰 블록으로 헬기장표시만 있는데 양쪽에는 양지바른 곳을 찾아 식사를 즐기는 산객들을 사이를 가로질러 건너서 산길에 들어서자 이정표(↖상사방위 380m/부소암 0.4km↗)가 있는 Y자 삼거리에서 왼쪽(오른쪽 길은 허공다리를 거처 부소암(扶蘇岩)과 두모계곡으로 내려가는 길로 통행금지가 되었음)으로 진행하자(13:15) 다시 공터가 나오면서 Y자 삼거리길에서 다시 왼쪽(오른쪽은 부소암으로 가는 길인 듯)으로 내려가기 시작하여 갈림길 이정표(↑상사바위 0.2 / ↙보리암 0.5 / ↓단군성전 0.4)에서 직진하여 100m를 내려가면 다시 왼쪽으로 갈림길이 있는 이정표(↑상사바위 0.1 / ↓단군성전 0.5 보리암 0.6)을 지나자 다시 ← 등산로 아님 갈림길이 있는 이정표를( ←등산로 아님 / ↓보리암 0.7 단군성전 0.6 / ↑상사바위) 지나면서 오르막이 시작되고 미끄러운 바위틈새를 올라서자 널따란 바위군들은 눈을 놀라게 한다.
상사바위를 올라서면 보이는 부분
상사바위에서 바라본 보리암주변경치
상사바위에서 바라보는 남해 상주해수욕장
상사바위에서 우측으로 건너다본 팔선대암릉
추락하기 쉬운 상사바위(추락주위 부근에 공룡발자국 같은 구정암이 있다)
13:25~30 상사바위(想思岩) 바위전시장인 상사바위위에서 남해와 보리암의 전망을 즐긴다!
암봉위 올라서서 엄청나게 큰 바위군들로 전망은 그야말로 천하가 내발 밑에 있는 듯 하다. 상사바위는 상주해수욕장 쪽에서도 가장 높고 큰 바위로 보이고 남쪽바위아래에는 실같이 흐르는 甘露水(감로수)(상사암에서 조금 남쪽에 있는데 바위 밑에서 실오라기처럼 새어 나와 고이는 물을 말한다. 조선 숙종 대왕이 병중에 이 물을 마시고 나았다고 하여 구군천(求君泉)이라는 글자를 새겨 놓았다. 이후 사람들은 임금을 구한 이 물을 만병통치의 감로수라 한 것이다.)가 있다지만 아찔하여 내려다보기도 쉽지 않다. 군데군데 공룡발자국처럼 패여 있는 곳이 아홉 곳이나 구정암(九井岩)이라고 하며 여기에 고인 물이 상사풀이 할 때 썼던 물 이라하며 세수를 하면 재수가 좋다는 전설도 있단다. 상사바위(想思岩)는 ‘ 금산에서 가장 웅장하고 큰 바위.조선 19대 숙종때 전남 돌산 사람이 남해에 이거 하여 왔다가 안집 여자가 너무 예뻐서 상사병에 걸려 죽음 일보 직전에 그 여자와 이 바위에서 상사의 원을 풀어 목숨을 건졌다는 애틋한 전설’라는 안내문도 서 있고 암봉 끝머리에는 높이가 높아 정말 조심을 해야 한다. 남쪽으로 보이는 상주해수욕장의 환상적인 모습과 뒤돌아보면 보리암을 위시하여 금산일대의 암봉들의 모습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며 서쪽으로도 암릉줄기(八仙岩(팔선암):상사암의 앞쪽에 있는 여덟 개의 서있는 바위들로서 마치 여덟 신선이 유희하는 모양임)가 대단하지만 시간이 부족하여 모두 올라보지 못하여 아쉬움이 남는다 . 이 시간의 감정이 그대로 유지되었으면 하는 바램과 함께 되돌아 와 미끄러운 바위틈새를 내려서고 오르막이 시작되는 지점에 있는 이정표(↓상사바위 0.1 / ↑단군성전 0.5 보리암 0.6)삼거리에 오른쪽으로는 아무런 표시가 없는 곳으로 호기심이 발동하여 들어서기 시작한다.
상사바위에서 되돌아오다 오른쪽에 있는 바위
이정표에 표시되지 않은 길로 들어선 능선에서 가까이 본 비위(위 사진과 같은것)
무명바위에서 뒤돌아 본 상사바위 끝 부분
무명바위에서 뒤돌아본 상사바위 첫부분
13:36~37 무명바위 갈림길에서 좌선대로 가다가 오른쪽에 있는 상당히 크고 아름다운 바위!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100m정도 가다가 오른쪽으로 흘러내린 능선을 따라 15m정도에 있는 커다란 바위(바위이름을 모름)를 구경하고 돌아와 산사면을 내려섰다 돌아가니 왼쪽에 높다랗고 밑 부분에 기도를 올렸던 터가 있는 바위(사자암?)앞을 지나서 갈림길에서 오른쪽 길로 내려서니 약간의 공터에 두개의 바위가 비스듬이 얹혀져서 원형을 이룬 문이 있고 아래에 제단이 있는듯하니 이곳이 삼사기단터인가? 삼사(윤필거사,원효대사,의상대사)가 이곳에서 기도를 올렸는지는 모르지만 무척 따뜻하고 안온한 곳에서 잠시 쉬었다가 갈림길까지 되돌아 와서 위길(왼쪽길)로 올라서니 오른쪽에 솟아 있는 암봉이 좌선대란다.
좌선대를 조금 못간 부분 제단까지 있는 이바위는?(사자암?)
삼사기단으로 보이는 좌선대 밑부분에 있는 바위들...
좌선대의 바위들(여자분이 올라간 곳이 촟대봉인가?)
좌선대의 또 다른 모습
13:56 좌선대(坐禪臺) 이졍표 없는 삼거리서 우측으로 진행 산기슭을 돌아가면 있는 바위
약간 언덕머리에 올라서면 우측에 있는 궁글궁글한 바위들이 층층이 쌓여있는 좌선대는 제석봉 왼쪽에 있는데 신라시대 원효대사.의상대사.윤필거사가 수도좌선 하였던 자리라고 전해지고 있다. 오르기에 힘드나 바위 위에 앉는 자리가 뚜렷이 패여 있어 앉아 볼 수 있어 신기하다. 동시에 여러 사람이 올라가서 향로봉과 촛대봉을 확인하기에는 무리일 것 같은데 이미 여러 사람들이 올라가 있어 올라가는 것을 포기하고 안내판이 있는 곳에서 Y자 갈림길(이정표 없음)이 있는데 오른쪽으로 7~80m정도 내려가다 보니 엉뚱한 방향(이 길은 도선바위를 거처 쌍홍문으로 내려가는 길)으로 내려가기에 되돌아와 갈림길에 왼쪽으로 올라서니 매점겸 산장인 금산산장에 도착한다.
금산산장을 빠져나오면서 한컷
제석봉에서 바라본 금산산장(구명 부산산장 혹은 부산여관)
14:03 금산산장 알바를 한차례하고 올라서니 예전지도에는 부산여관이라고 되어 있었는데
돌담을 따라 올라서고 보니 보리암 서쪽에는 유일한 매점과 민박을 겸한 금산산장으로 오래된지도에는 부산여관이라고 되어있는 양쪽건물지붕 밑으로 통과해야 하는데 마당을 쓸고 있는 주인에게 흔들바위와 일월암에 대하여 길을 묻고 미안하여 음료수 한 캔을 사서 목을 축이고 금산산장을 나서자 또 길은 Y자 갈림길인데 아래쪽인 오른편(왼편길은 흔들바위로 바로 가는 길)으로 진행하여 편백나무숲 아랫머리를 지나 50미터정도 가자 T자 삼거리길에서 우측에 제석봉의 안내문과 암봉이 있어 얼음이 얼어 미끄러운 바위 틈새길을 올라서니 제석봉에 올라설 수 있었다.
제석봉을 오르기전에 본 제석봉 모습
제석봉에서 건너다본 좌선대의 또 다른 모습
14:06~09 帝釋峰(제석봉) 금산산장을 지나 Y자길에서 우측길로 가야 제석봉 암봉에 간다.
제석이란 帝釋天(제석천)의 준말로 천상 도리천의 범왕(범왕)과 더불어 불상을 좌우를 지키는 신을 이란 뜻을 가진 제석봉은 제석천이 놀다 갔다고 하여 제석봉이라고 한단다. 제석봉 아랫편에 있는 바위로 마치 "개"의 형상을 하고 있는 천구봉은 일월봉을 보고 있다지만 어느 곳인지 찾지 못 하였였고 제석봉에 올라서니 지나온 좌선대와 상사바위며 동쪽의 보리암이 너무나 잘 보이며 우리 일행중에 코스모스님이 멀리서 나의 사진을 찍는다. 제석봉을 내려와 북쪽으로 편백나무숲 속으로 난 길을 따라 커다란 바위(흔들바위)밑을 통과하자 산장에서 바로 오는 길과 합쳐지는 부분에 있는 흔들바위를 발견했다.
흔들바위 밑부분은 이렇게 생겼다.
흔들바위를 지나서 되돌아 보고 촬영한 흔들바위
14:10 흔들바위(구암) 제석봉에서 산정상쪽으로 20m쯤 편백나무 숲속에 있으며 일명'요암'
오른쪽 즉 편백나무 숲 속 일월봉 왼쪽 제석봉 뒤쪽 맞은편에 있는 흔들바위로 거북 모양처럼 생겼다 해서 구암(龜岩), 또는 흔들(요)자를 써서 요암(撓岩)이라 하며 한 사람의 힘으로도 움직인다 하여 흔들바위라고도 부르며 바위의 무게는 35톤가량 된다. 거북 모양의 목 부분을 위로 추켜세우듯 밀면 가장 잘 흔들린다는 흔들바위를 흔들어 보지만 꿈적도 않는다. 올라가는 길은 Y자 두 갈래길에서 오른쪽으로 들어서면서 오른편을 바라보니 커다란 바위가 있어 들어가 본다.
금산산장에서 본 일월암
곁에 다가가서 본 일월암의 모습
14 : 13 日月岩(일월암) 흔들바위에서 단군성전입구 사거리로 오르다가 우측에 있음
흔들바위에서 단군성전 사거리로 오르다가 오른쪽에 2~3개의 바위가 층암 절벽을 이루고 있는데 가까이에서 보면 "日"자형이고 멀리 떨러져 전체를 보면 "月"자로 보이기 때문에 일월봉이라 부른다. 입구에 설명문도 꺼꾸러져 있고 출입금지인지 철조망을 쳐놓아 더 이상 들아가 보지도 못하겠기에 멀리서 바라다만 보고 1분정도 더 오르자 다시 점심식사를 하였던 단구성전입구4거리에 다다른다. 이정표(↙산장.식당 115m/←상사바위 /단군성전 70m↑/산정상 280m↗/보리암 200m→)사거리에서 오른쪽 보리암으로 우회전하여 내려가 공터를 지나고 약간 내리막이 시작되는 길 오른쪽에 또 하나의 암봉이 설명안내판과 함께 있으니 화엄봉이다.
보리암으로 내려가면서 본 화엄봉(책을 쌓 놓은 모습인가?)
화엄봉을 지나오며 본 보리암 뒤의 대장봉과 그앞에 형리암
화엄봉에서 바라본 대장암 좌측에 있는 암봉
14:17 華嚴峰(화엄봉) 보리암쪽으로 하산하다가 오른쪽에 설명문과 함께 있는 바위 봉우리
보리암 뒤쪽에 있는 대장봉과 농주암의 왼쪽(서쪽)에 있는데 바위 모양이 '화엄(華嚴)' 두 글자 모양이라고 해서 화엄봉이라 하고 원효대사가 이 바위에서 화엄경을 읽었다고 전하나, 불교의 화엄종파는 의상대사가 포교한 것으로 의상대사일 것으로 추측하는 이도 있단다. 화엄봉 왼쪽으로 내려가면서 대장봉과 농주암, 형리암을 건너다보면서 3분정도 내려가니 그 유명한 보리암에 들어선다.
보리암의 복잡한 모습
보리암에서 태조기단으로 가다가 있는 극락전
14 : 21 菩提庵(보리암) 양지바른 사찰로 전방전망이 매우 아름답고 불자들이 엄청 많음
엄청난 사람들로 붐비는 경내에는 정숙이란 말 자체 무색하지만 스님의 독경소리는 사바세계의 잡념을 몰아내는듯하다. 이 곳 보리암의 내력은 : 683년 원효대사가 이곳에서 초당을 짓고 수도하면서 관세음보살을 친견한 뒤로 산 이름을 보광산,초당 이름을 보광사라고 했다. 훗날 태조 이성계가 이 곳에서 백일기도를 하고 조선 왕조를 열었다는데, 그 감사의 뜻으로 1660년 현종이 이 절을 왕실의 원당으로 삼고 산 이름을 금산, 절 이름을 보리암으로 바꿨다. 금산의 정상에 자리잡고 있는 보리암은 금산의 온갖 기이한 암석과푸르른 남해의 경치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절이다. 강원도 낙산사 홍연암, 경기 강화도 보문사와 더불어 우리나라 3대 기도처의 하나로 신도들이 연일 줄지어 찾고 있다.
사람들의 틈을 비집고 대웅전 앞에 까지 갔는데 '태조이성계기도하신곳 200m→'란 안내판이 있는 곳에서 서둘러 내려서니 극락전이 있고 그 앞 대나무숲 속 계단길을 내려서는데 송종일 홍보부장이 벌써 하산을 완료해 간다면서 지금 어디쯤이냐고 묻더니 오늘은 회장이 일찍 하산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일책을 가한다. 마음은 급하지만 가던길을 계속하여 동쪽으로 돌아가 철계단을 올라선 능선에서 이성계 기도처가 너무 잘 보인다. 기도처 뒤에 삼불암의 위용도 바라보면서 철계단을 내려섰다 올라서니 입구좌측에 촛불을 켜놓은 암굴이 있는 곳을 지나자 이성계기도처이다.
태조기단을 가기위해 이 대나무 숲과 철계단을 내려가야 한다.
철계단을 올라간 능서에서 본 태조기단(태조이성계기도하던곳)
태조기단을 들어서면서 보이는 바위틈의 기도처(촛불이 보인다.)
태조기단 건물뒤에 있는 추모각자
보리암에서 건너다 본 태조기단 주변모습
14:28~29 이성계기도처(太祖祈壇) 보리암에서 동쪽으로 내려가 등을 하나 넘어서 있는 절경
태조가 이 자리에서 백일기도 후 곧 등극하였다는 전설이 깃든 유적으로 탑대에서 건너다보이는 삼불암 아래에 있다. 삼불암 옆에 천계암이 있다고 하는데 어디인지 구분하지 못하고 문이 굳게 닫힌 기도처 건물만 살펴보고 그 뒤에 바위아래 있는 李太祖墠壝追慕閣(이태조선유추모각)이라고 쓴 기단만 살펴보고 보리암으로 서둘러 돌아나온다.(14:35) 보리암을 빠져나와 좌측으로 계단을 내려가다 쌍홍문으로 내려가는 길을 무시하고 바로 내려가서 공터에 올라서니 탑대에 도착한다.
보리암에서 탑대를 올라서는 계단
나침판이 엉터리가 된다는 삼층석탑
탑대에 있는 바다를 바라보는 해수관음상
14:38 해수관음상(塔臺) 보리암으로 돌아와 앞마당에 나서니 삼층석탑과 해수관음상이 있음
천인단애 위에 보리암전 삼층석탑으로 불리워지고 있는 탑이 서있어 이 절벽을 탑대라 한다. 보리암 바로 밑에 있어 전망이 좋아 봄철의 푸른 나뭇잎과 가을철의 만산 단풍경은 천하 절경이라 하여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란다. 탑대에 올라서니 흰 색깔의 바다를 바라보고 서있는 관음보살상이 무척이나 자애로워 보이며 그 앞에서 무수히 자기소원을 비는 참배객들이 붐빈다. 관음보살상 앞에는 고색창연한 3층석탑(탑의 높이는 약 165㎝인 삼층석탑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 74호로 지정되었다. 가야국의 김수로왕비 허태후가 인도의 월지국에서 가져온 불사리를 봉안하기 위하여 이곳에 탑을 세우고 봉안하였다고 하나 탑의 양식은 고려 초기의 것으로 추정된다. 신기한 일은 이 탑 2층 기단의 남으로 향한 면의 가운데에 나침반을 놓으면 N극이 북쪽을 가리키지 않고 아무렇게나 회전한다는 사실이다. 과학적으로는 해석이 불가능한 일이다.)을 한바퀴 돌아보고 이 부근에 가사굴과 음성굴, 만장대가 있다지만 다음을 기약하고 보리암쪽으로 올라오는 계단중간에서 ←상주,쌍홍문,좌선대 표시를 따라 왼쪽으로 용굴로 보이는 곳을 건너다 보며 2분정도 내려가자 쌍홍문 직전 삼거리에 도착한다.
쌍홍문으로 내랴가다 왼쪽으로 건너다본 용굴의 보습
쌍홍문전 삼거리에 있는 경관안내도
쌍홍문의 사람이 드나들지 않는 오른쪽 관통된 굴
사람이 주로 통행하는 왼쪽굴(계단까지 있다.)
쌍홍문을 빠져나와 몰리서 바라본 쌍홍문의 모습(오른쪽은 사용않함)
14:45 雙虹門(쌍홍문) 좌선대서 내려오는 길과 만나 쌍홍문을 나가면 장군암과 사선대
이정표(↑단군성전 0.3 / ↓보리암 0.3 / ←도선바위 0.8)와 한려해상국립공원금산구역안내도가 서있는 삼거리길(14:43)에서 좌측으로 내려가 어마어마하고 속이 비어 있는 바위에 난 두개의 굴 중에 계단까지 있는 왼쪽 굴로 빠져 나간다. 억지로 해석하면 쌍무지개문이라는 쌍홍문(웅장한 바위에 2개의 큰 굴이 문 모양으로 나란히 뚫려있는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절경으로 여름철에 서늘한 바람이 불며 상주 쪽에서 금산을 오르는 관문이다. 옛날 세존이 석주(돌로만든 배)를 만들러 타고 우측 문으로 나갔다는 전설이 있다.)은 금산을 오르다 보면 해골에 난 두 눈과 같은 모습과 흡사하다.
쌍홍문을 빠져나오면 오른쪽에 있는 장군암
장군암위에 엉켜 있는 늘 푸른 송악덩굴
14 : 46 將軍岩(장군암) 쌍홍문을 나오자마자 오른쪽 공터에 있는 늘 푸른 몇 개의 암봉
쌍홍문 앞에 마치 칼을 지팡이 삼아 짚고 동쪽을 바라보며 쌍홍문을 드나드는 사람들을 지키는 수문장과 같은 형상을 한 바위위에는 습한 곳에서 잘 자라는 늘 푸른 덩굴식물인 송악(송악[명사]학명: Hedera rhombea 두릅나뭇과의 상록 활엽 만목. 뿌리와 가지에서 기근(氣根)이 자라나 딴 물체를 타고 오름. 잎은 달걀 모양으로 어긋맞게 나고 윤기가 있음. 가을에 녹황색 꽃이 피며, 이듬해 봄에 검은 열매가 익음. 관상용인데, 잎과 줄기는 약재로 쓰임.)이라는 희귀한 식물이 붙어 자라고 있어 인상적이다. 우측에 대나무가 우거진 계단길을 1분정도 내려서다 오른쪽을 보니 거대한 바위가 서 있으니 이름하여 사선대란다.
장군암에서 조금 내려오면 우측에 있는 사선대
14 : 48 四仙臺(사선대) 계단을 내려오면서 우측에 네 분의 신선과 닮은 바위능선
때 마침 그늘이 져서 자세한 모습은 볼 수 없으나 장대한 바위능선이 옛날에 삼신산의 네분의 신신이 놀다 갔다는 전설이 실감이 난다. 이 사선대 북쪽에는 임진왜난때 백명이 숨어들어가 피난을 했다는 백명굴이 있다지만 하산길이 바쁜지라 확인하지는 못하고 수없이 많은 계단을 내려 뛰기 시작하여 10분 만에 샘터에 도착한다.
거북이 입에서 한없이 흘러나오는 생수가 있는 쉼터
14:59~15:01 샘터(쉼터) 휴식용 의자가 있고 거북머리로 된 음수대와 화장실이 있음
이정표(↓금산(정상) 1.15 쌍홍문0.8 / ↑금산(입구) 1.15)와 우측에 쌍거북이 머리로 장식한 음수대가 예전 그대로 있고 그 옆에는 화장실이 오가는 길손들의 금심을 해결해 주며 휴식용의자도 흘린 땀을 식히기에 충분하지만 여기서도 서둘러 연속적인 계단길을 내려가길 4분만에 우측에 있는 휴식용 의자를 지나자 뒤에 내려가는 센돌이님 내외를 만나고 이어서 현경희 일행도 만난다. 길은 개울을 건너 우측으로 내려가니 길은 평탄해지고 엎드린 악어와 같은 바위를 지나자 돌이 깔린길이 나오면서 자연관찰로 갈림길이 있지만 그냥 내려가며 우측에 잘 단장된 묘1기(雲波金海金公之墓)를 지나고(15:18) 탐방지원센타(매표소)와(15:19) 매점 한군데를 지나서 우측으로 내려서며 마지막 이정표(↓단군성전 2.2 /↓보리암 2.2 /↓도선바위 1.2/↓금산 정상 2.3 )와 안내도를 지나니 산길은 끝나고 도로가 나오면서 우측에 있는 주차장에 도착한다.
마치 악어가 엎드린것 같은 바위
내려가는 길의 숲이 아름답다.
매표소를 거의 다 내려간 곳에 있는 김해김씨 묘
매표소를 지나고 매점하나를 지나면 산길은 끝난다.
산길 날머리에 있는 마지막 이정표
주차장에서 올려다 보는 금산의 명물인 금산전체 모습 (가장 높게 보이는 것이 상사바위)
16:21 상주주차장(산행종료) 매표소를 지나고 포장도로 우측에 주차장에 도착 시산제행사
먼저 도착한 일행들이 주차장 북쪽 공터에 이미 시산제행사를 위해 모든 준비를 마치고 기다린다.
총무부장이신 박하님의 시회로 시산제 시작이 되고 식순에 따라 착착 진행한다.
유세차 병술 정월 무오삭.... 등등 우리산악회 연로이신 코스모스님이 축관으로 숙연한 마음을 내게 하더니 참석자 여러분들이 함께 참배를 마치고 음복술도 한 순배씩 돌아가면서 시산제도 끝나고 돌아오는 길머리에는 마침 오늘이 음력 정월 대보름이라 마을마다 달집태우기가 한창을 차안에서 구경하고 떠오르는 달을 바라보면서 우리 가람의 안녕과 가족의 무사행복을 빌었다.
도로가에 섰는 금산의 유래와 설명문 최고의 높이가 701m로 되어있다.
산행을 돌아보며
금산의 38경을 다 찾아보지 못하고 하산한 것이 마음에 걸리지만 산악회 일년의 무사안녕을 비는 시산제를 여러분의 축원속에 잘 마무리하여 정말 기쁘다. 그리고 금산정상의 높이는 꼭 수정되어야 된다고 본다.
- 끝 -
요산요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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