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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log.naver.com/ktusjye/221562049704
광령1리 마을회관에서 출발, 용두암 지나
동문시장 인근 중앙로터리까지 이어지는 17코스는
총 거리 18.1킬로미터, 난이도 '중'이다.
16코스를 완주하고
17코스 시작점 표지석을 지나쳐 걷는다.
중산간서로 광령1리 교차로다.
노형로가 무수천을 가로지르는
광영교를 건넌다.
'광령천'이다.
이 지역을 '무수천'으로 부른다.
지명 유래가 재미있다.
머리가 없는 내(無首), 또는 물이 없는 내(無水)라고도 하고,
지류가 수없이 많아서 (無數)라고도 한다는데
계곡에 들어서면 모든 근심 걱정이 사라진다(無愁)하여
무수천이라고도 한다.
지역에서는 당연히
'이 곳에 들어서면 모든 근심이 사라진다.'고
지명을 설명하고 있다.
대부분 건천이지만 곳곳에 용천수가 있어
웅덩이를 이루고 있다.
광영교를 건너자 마자 왼쪽으로 접어들어
무수천을 따라 걷는다.
방호벽에 분명 누군가에게는 위안이 될
글귀를 한참동안 적어놓았다.
천변 수풀이 너무 짙다.
무수천 열곡이 장관이지만
아쉽게도 수풀에 가려 보이질 않는다.
가끔 드러나는 사이로 보이는 모습이다.
화산작용에 의한 절리가 보인다.
아마도 절리가 발생한 후 폭우가 내려
스며들지 못한 물이 중앙부를 쓸어내며
함몰된 것이 아닐까 추정해 본다.
애조로 무수천 제2교 밑이다.
무수천을 건너는 제1사리교다.
건너지는 않는다.
제1사리교에서 내려다 본 상류 모습이다.
인근에 수량이 풍부한 용천수가 있는 듯,
길게 물 웅덩이를 이루고 있다.
물도 제법 맑다.
하류, 바다쪽은 제법 번화해 보인다.
창사교 다리 위에서
물길이 둘로 갈라진다.
오른쪽 갈래는 어시천으로 합류한다.
길가 돌담에 장대를 세워
그 위에 기묘한 모양의 자연목으로 솟대를 세워놓았다.
대부분 건천이다.
무수천을 잠깐 두른 길은
다시 무수천변으로 닿는다.
'유적조사 중' 이라는 안내판이 서있다.
올레가 외도천교 밑으로 길을 안내한다.
광령천 아래 건천을 건넌다.
물론 비가 오거나 물이 불면
우회로를 이용하도록 안내하고 있다.
천을 건너 곧바로
외도천교 다리 위로 올라온다.
아마도 또 다른 이름이 '외도천'인 모양이다.
외도교를 다시 건너 우평로를 따라 걷다
첫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접어든다.
외도 축구장 1, 2구장에
주차된 차량이 빼곡하다 못해 이중으로 세워져있다.
운동장에는 축구시합이 한창이다.
응원과 환호, 주문, 아쉬움에
주변은 매우 소란스럽다.
'2019 제주시 아이리그'에 참가한
꿈나무, 유소년들이 시합중이다.
일요일이라 부모들이 응원을 왔다.
하류에 다다르자 수량이 풍부한 것이
뭍의 여늬 하천과 다르지 않다.
천 변에 용천수가 있다.
월대교 바로 위다.
민물과 바닷물이 섞인듯
해조류가 보인다.
물이 무척이나 깨끗하다.
외도교지나 올레는
'외도물길 20리'로 안내한다.
연자방아를 복원해 놓았다.
수령 270년이 넘은 보호수, 해송이다.
그 뒤 정자, 월대가 있던 터다.
밝은 달이 뜰 때
주위와 어우러져 물 위에 비치는 달빛이
장관이었다 한다.
신선이 달그림자를 구경하며 즐기던 누대라 하여
월대라고 불렀다 한다.
광령천을 이곳에서는 '월대천'이라고도 부른다.
어시천과 합류한 도근천이
다시 광령천과 합류하여 바다로 흘러든다.
풍부하던 수량은 땅으로 스며들고
천을 건너는 돌다리가 놓여있다.
광령천이 바다에 닿기 전,
일주서로 외도교가 천을 가로지른다.
외도교 다리 밑을 지나
다시 외도교로 올라와 다리를 건넌다.
광령천이 먼 길을 휘돌며 보듬은 물길이
마침내 쉼을 얻는다.
건너편 기와지붕을 인
3층 한옥 건물이 '대원암'이다.
해안도로 변 방호벽 채색이 싱그럽다.
기세등등한 부인과
기가 꺽인 왜소한 남편 동상이 서있다.
'장군석과 힘센여자'라는 안내문이 있다.
장군내(川)에 여장군석이 있었다.
인근 도평마을에는 유달리 힘센 여자가 태어나
부부간 갈등이 생기면 남편을 집어 지붕위로 던지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산신이 지나다가
지붕 위에 던져진 남편을 보고 연유를 물었다.
박을 타러 왔다고 대답했지만
산신은 속지않고 남편의 하소연을 듣는다.
이에 남편이 방법을 묻자,
장군내 여장군석 때문에 여자장수가 많이 나온다며
그것을 없애면 해결 될 것이라고 알려준다.
마을 청년들이 모여 그 여장군석을 없앤 뒤로는
힘센 여자가 안나왔다고 한다.
내도 알작지 해변이다.
바닷속에도,
해변에도
작고 둥근 몽돌이 무한을 연상케한다.
'작지'가 '작은 자갈'을 뜻하는 방언이니
'둥그렇고 작은 자갈'을 뜻한다.
알작지 해변 끝 갯바위에
낚싯대를 드리운 사람이 보인다.
해안도로를 벗어나
안쪽 마을길을 지나던 길은
원장교 앞에서
왼쪽으로 꺽어져 다시 해안으로 연결된다.
원장교 밑으로 흐르는 원장천에
풀이 무성하다.
아마도 습지가 이루어진 덕이겠다.
올레 정방향 화살표지가 바닥에 떨어졌다.
친절한 누군가가
밭담에 올려놓으며 바른 방향을 가르키고 있다.
멀리 방파제 끝에
하얀색, 빨간색 조형물이 보인다.
이호목마등배라고 소개하고 있는데
소재가 나무는 아닌 것 같다.
현사포구 안쪽, 해안도로 밑에 있는
용천수 '동물'이다.
'남성출입금지', '여성전용빨래터'라고
표지를 붙여놓았지만 잠시 실례한다.
항상 그늘진 곳이라
바닥이 매우 미끄럽다.
이호테우해수욕장이다.
가까운 바다에는
윈드서핑을 즐기는 사람들이 몇 보인다.
바닷물에 들어갈 기온은 아닌 듯
모래사장 끝에 가족들이 휴일을 즐기고 있다.
이호천이 바다로 들어가는 곳이다.
천은 발달해 있지않고
모래로 스며드는 형태로 인도교를 놓았는데
공사중이다.
바닷가 모래해변으로 돌아간다.
해수욕장 뒷 편, 숲길로 이어진다.
해변에서 바다방향으로 담을 쌓아놓았다.
'이호동 쌍원담'이다.
긴 원이 두 개 보인다.
원담은 원형돌담을 쌓아
밀물따라 들어온 멸치떼나 고기를 가두었다가
썰물 때 잡아들이는 제주도 특유의 어업형태다.
마을 주민들이 공동작업을 한다.
쌍원담은 총 길이 450미터 정도로
제주도에서는 가장 큰 규모였다고 한다.
주로 멸치가 잡혔고
농어, 벵에돔, 숭어 등도 잡혔다.
본래 모살원, 물쓴원이 쌍원담을 이루었는데
해안매립으로 소멸되어
서측으로 약 5백미터 정도 옮겨 현 위치에 복원하였다.
원담의 기능을 아는 지,
사람들이 돌담 사이를 뒤지고 있다.
방파제쪽에서 보니 하트모양이다.
빨간목마 등대다.
건너 하얀목마 등대는 가지 못했다.
제주공항 관제탑이 보이고
여객기가 막 착륙을 시도하고있다
자전거를 즐기는 이들도 자주 보인다.
공항이 가까워서인지
바다에 일정간격으로 부표가 떠있다.
건물 뒤 봉긋한 봉우리가 도두봉이다.
해변도로 바깥으로
마을 수호신을 모시는 본향당이 있다.
'붉은 왕돌 할망당'으로 소개하고 있다.
예전에는 바로 앞 바다에 붉은색 왕돌이 있어
불렀던 이름이라는데
지금은 개발되어 확인할 수 없다.
앞으로 9.1킬로미터를 더 가야한다.
'도두 추억애거리'가
방파제를 따라 이어진다.
어린 시절을 회상케 하는
조형물들이 설치되어있다.
조각상이 굴렁쇠를 굴리고 달려간다.
도두항 내항과 외항을 가로지르는
인도교를 건넌다.
도두항 외항이다.
도두봉을 올라간다.
오르는 길 다소 경사는 있지만
긴 거리가 아니니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다.
전망대에 서면
도두항이 한 눈에 들어온다.
잠시 숨을 돌리고 마져 오른다.
도두봉 정상이다.
제주에 왔다가 돌아가는 날,
대부분 여유있게 렌트카를 반납한다.
용두암도 좋지만
시간 여유가 된다면
도두봉 정상에 올라도 좋을 것 같다.
망망대해, 창해를 향해 앉으면
그 너머 닿는 세상은 무가 된다.
제주공항 활주로가 가까이 보이고
한라산은 멀리 몸을 숨기려 한다.
나무터널이다.
진한 향기가 풍겨나온다.
하얀 꽃이 잔뜩 뒤덮였는데
꽃에서 향기가 풍겨나온다.
도두봉을 내려간다.
무덤 앞 정낭이 굳게 닫혀있다.
세 개가 다 걸쳐있다는 건
주인이 멀리 출타중이라는 표시다.
무덤의 주인은 다시 올수 없을 터,
언제쯤 다시 열릴수 있을까?
도두봉을 내려선 곳에 사찰이 있다.
'장안사'다.
해안도로를 따라 올라가다
방향이 아니라 내려와
횡단보도를 건너 곧바로 진행한다.
온전한 도심도,
농촌도, 마을도 아닌 길이다.
오른쪽에 제주공항 활주로가 있다.
도리로에 올랐다가
이내 다시 해안도로에 오른다.
제주 환상자전거길이 함께한다.
용담3동에 있는 용천수
'엉물'이다.
원담으로 보인다.
보수가 되지 않으니
담도 낮고 유실된 곳이 많다.
용담서해안로 방사탑이다.
2009년 새로 만들었다는데
모두 5기가 같은 공간에 있다.
조금 더 간 곳에
해안가 '어영공원'이 있다.
우호협력도시 로렐라이시에서 기증한
'로렐라이 요정상'이 세워져 있다.
제주시에서는 돌하르방을 기증했다.
바다를 바라보며
무언가 기도를 하는 동상이다.
13킬로미터 지점을 통과한다.
까만 상의와 빨간바지,긴머리가 여자같다.
지나치며 언뜻 보니 남자다.
거기에다 외국인이다.
'수근연대'다.
해안이나 구릉에 세워 적의 침입에 대비하고
유사시 봉수기능을 수행했다
'말머리 소금빌레'다.
이곳에 물을 가둬, 태양에 증발시켜
소금을 만들었다.
용두암 못미친 곳 전망대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해녀가 물질로 잡아왔다는
멍게, 해삼 등 해산물에 소주 한 잔하는 사람들도 제법있다.
지나온 사람들이 한 마디 한다.
"한 접시에 삼만원이면 너무 비싸.
여기도 예전에 비하면 장삿속이 다 됐어."
용두암이다.
전설에 의하면
용왕의 사자가 한라산에 불로장생의 영약을 구하러 왔다가
혹은, 아득한 옛날 용이 승천하면서
한라산 산신의 여의주를 훔쳐 물고 달아나다가
한라산 산신이 쏜 화살에 맞아 몸통은 바닷물에 잠기고
머리만 나와서 울부짖는 것 이라고 한다.
50대 이전 세대에게는
최고의 신혼여행지였던 제주도,
용두암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이 한 두 장 쯤은 있으리라.
위 전망대에서 담았다.
'용연 구름다리'다.
구름다리에서 바다방향을 담았다.
한천이 바다에 이르기 전,
화산작용으로 함몰된 열곡이 물을 담고있다.
'용연'이다.
'용이 사는 연못'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예로부터 용은 비를 몰고다니는 영물로 여겨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냈다.
제주시내로 들어간다.
'제주목 관아'다.
'수문장교대식'이
매주 일요일 4시 반에 재현한다.
교대식 후 '김수문목사와 결사대 공연'도 있다.
일부러 시간을 맞춘건 아니지만
관광객 틈에서 잠시 구경한다.
병사들을 훈련시키기 위해
조선 세종대왕 때 세운 '관덕정'이다.
제주목 관아 입구 현관이다.
김수문목사와 결사대 공연이 펼쳐지고 있다.
제주목관아 앞 횡단보도를 건넌다.
오늘 여정의 도착지,
18코스 시작점 표지석을 지나쳤다.
15일,
18코스를 역방향으로 걸으며 담았다.
그리 멀지않은 곳에서 걷기를 하던 일행과 통화하여
저녁식사는 회로 정했다.
바다로의 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메뉴다.
일행에게 동문시장으로 오시라 하고
먼저 구경 겸 장을 본다.
회골목으로 들어서는데 회를 썰어
스티로폼 접시에 담아놓은 풍경이 이채롭다.
한접시에 대부분 만원,
그 이상도 있지만 그리 부담스러운 가격은 아니다.
몇 곳을 둘러보다 물어본다.
"여기는 미리 포장해 놓은 것 밖에 없나봐요?"
"종류만 말씀해 주시면 바로 썰어드려요."
흥정을 해 세 접시를 썰어 담고
찐 문어 한 접시를 사고 매운탕거리를 받는다.
쌈채소, 된장, 고추, 마늘 등
재료를 산다.
시장 주차장에 도착한 일행이
주차 행렬이 길어 가까스로 주차할 즈음
주차장으로 찾아가 차를 빼 숙소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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