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에 감사함
함석헌
「종교는 아편」이라던가.「종교는 지배계급의 특권을 옹보(擁保)하기 위하여 민중에게 씌우는 정신적 질곡(桎梏)」이라던가. 「하나님은 사람이 발명한 것」이라던가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우리는 이 세대를 위하여 슬퍼한다. 때로는 모욕을 당하는 것이라 하는 생각에 분개한다. 더구나 이런 종교비근론(宗敎批斤論), 무신론을 국가적으로 실행하여 왕왕 비인도적 방법으로까지 종교적 압박을 행하는 러시아의 소위를 볼 때에 그렇다. 그러나 한번 다시 고요히 생각하여 볼 때 이는 무용한 일임을 알 수 있다. 감독이라든가 승정(僧正)이라든가 혹은 그들을 옹위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럴 필요가 있을 런지 모르나 우리들 독립하여 그리스도만을 믿는 자에게 있어서는 이는 무용한 일이다. 무용한 일일뿐 아니라 도리어 그렇게 하는 러시아를 위하여 감사할 필요가 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이것을 하나님이 네게 주신 지혜로 말미암는 것이라고 감사한다.
물론 러시아에 감사함은 러시아를 위해서가 아니요 러시아가 위대하여서가 아니다. 그로 하여금 위대한 역할을 하게 하는 어떤 위대한 힘의 연유(緣由)다. 복음발달의 대역사에서 볼 때 러시아는 일찍이 애굽과 로마가 행하였던 것과 같은 사명을 다하고 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여호와 신을 알려주고 선민출생(選民出生)에 산파역을 한 것은 모세나 아론이나 여호수아만이 아니었다. 애굽의 바로도 그 일열(一列)에 참여할 정당한 자격이 있다. 또 종교개혁을 하여 복음의 정화를 행할 때에 일군으로 나섰던 것은 루터나 칼빈만이 아니요 로마의 법황도 그 일위(一位)를 점령한다.
오직 전자들이 축복할만한 공로자였던 대신에 후자들은 미안한 공로자였던 것이 다르다. 이들 불행한 공헌자들은 예수가 자기가 장차주인이 될 성극(聖劇)에 주요 등장인물의 일인인 가롯 유다를 가르켜 「이 사람이 차라리 나지 않았다면 좋았을 뻔하였다」고 했던 것과 같이 그들 자신을 위하여서는 차라리 없었던 것이 나을 만치 비참한 사명을 다하는 자들이다. 그러나 역사 그것을 위해서는 불가결의 요역자(要役者)다. 내가 러시아에 감사함도 그들이 불가결의 요역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종교는 아편」이라고 통매(痛罵)를 들어도 영국, 미국, 독일, 불란서의 교회는 일언의 답변이 있을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종교는 특권계급을 위하여 민중을 그들의 한정 없는 착취에 언제까지든지 인내케 하기 위한 정신적 마취제」라고 매도를 당하여도 러시아의 종교가들은 반사(半辭)의 변명이 있을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하나님은 사람이 발명한 것」이라고 모욕을 당하여도 정신적 중간계급에 처하는 신학자, 종교가, 도덕가는 편구(片句)의 대론(對論)이 있을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기독교와 황제가 혼인을 하였다. 기독교와 자본가가 혼인을 하였다. 기독교와 학자가 혼인을 하였다. 그 사이에서 모든 인류를 탄진(呑盡)하려는 종종(種種)의 괴물이 나왔다. 역사는 일시 그들의 손에서 내여 준 것인 듯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언제까지 그대로 방임하지 않았다. 문득 대시련의 날이 왔다. 그리하여 가장한 괴물들의 정체와 빛나는 혼합금속의 성질을 들어내기를 명령하였다. 여기 응하여 일어난 것은 러시아였다. 그들은 이 백주의 괴물을 용사(容赦)없이 해부대에 올려놓았다. 이 찬란한 합금을 주저 없이 레도루도 안에 집어넣었다.
면양과 산양을 가른다. 알곡과 쭉정이를 가른다. 순금과 불순물을 가른다. 모든 잡색과 잡종은 이 테스트에 의하여 제거되고 말 것이요 일곱 번 단련한 정금은 이 뒤끓는 레도루도 속에서 찬연히 빛날 것이다. 순백종이 있으면 깉을 것이요 순금이 있으면 깉을 것이다. 없다면 모든 것은 암흑 속에 파양되어 미진화하여 버릴 것이다.
의심할 것 없이 있다. 과거에서 그랬던 것같이 현재에 있어서도 복음은 역시 성장할 것이다. 한층 더 명료하여질 것이요 한층 더 순수하여 질 것이요, 일층 더 영화할 것이다. 인제는 그 안에 형식이 깉을래야 깉을 수없이 되었고 그 안에 바알세불이나 맘몬이 숨어있을래야 숨어 있을 수 없이 되었다.
러시아는 유물론의 철추를 들어 모든 우상들을 미진(㣲塵)으로 만들고 있다. 러시아로서 만일 실패만 않는다면 모든 우연은 일소 될 것이다. 예배당의 종각과 설교단은 무너질 것이다. 그리스도의 몸 위에 입히었던 금은 장식의 옷을 벗길 것이다. 그의 턱에 붙였던 미염(美髯)을 뜯을 것이요 그 머리 위에 씌웠던 왕관을 벗길 것이다. 그리하여 종래 너무 두텁게 입어서 만질 수 없었던 그의 살을 사람들이 직접만질 수 있게 될 것이요 너무 엄엄(嚴嚴)해서 우러러 볼 수 없었던 그 얼굴에 무한한 결백과 성애(聖愛)가 넘쳐흐름을 사람들이 자유롭게 정답게 무사기(無邪氣)하게 우러러 보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가 다시 종교가의 그리스도가 아니고 인간의 그리스도가 될 것이다.
모든 사각(死殻)과 모든 녹(碌)과 모든 허식이 없어지고 순백의 그리스도 상만이 인류 위에 서는 때 그때를 상상할 때 나는 러시아의 대업 완성하여지이다 하고 빌고 싶다.
종교박멸의 쓰라린 사명을 다하고 있는 러시아는 우리의 미안한 공로자요 가련한 공작자다. 그러나 정치적 경제적으로 소위 문명국인 다른 동반보다 적어도 일보를 내여 디딘 러시아가 종래 유치한 인류에 대하여 가장 유혹적이요 난관이었던 물질생활의 제문제를 비교적 완전히 해결하는 날이면(또 해결하노라면) 도리어 누구보다도 먼저 새로운 도덕 새로운 정신생활 새로운 종교의 원리를 체험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있다. 그를 아는 이는 하나님이요 자기의 경륜대로 행 할 것이다. 그러나 어느 편이 얻든지 러시아가 복음의 완성을 위하여 필요 불가결의 대임을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성서조선 1931. 2월, 25호
저작집30; 없음
전집20;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