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본 제목)
초망원카메라로 당겨 본 철의 삼각지/철원/김화/평강/백마고지/오성산/ 화살머리고지/한국전쟁/소이산
(유튜버 소개) 쏘다니기 @korea333‧구독자 1.09만명‧동영상 71개 조회수 3,210,684회 가입일 2021. 8. 15
(댓글 소개) (일부)
철원이 단순히 넓은 평야가 자리잡고 쌀이 맛있는 곳이 아닙니다. 서울로 향하는 여러 통로들이 출발하기 때문에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도가 높은 요충지였습니다. 남동쪽으로는 춘천으로 향하는 통로도 열리는 곳인데다 더구나 북한에게는 철원이 강원도 내륙에서 황해도, 평양으로 바로 가는 통로의 관문, 길목이었기 때문에 여기를 다시 찾는 게 매우 절실했답니다
1개월 전 78년 철원 6사단 수색대에서 근무했습니다.. DMZ 매복작전을 하면서 밤하늘 은하수를 보고 있노라면 마치 별이 쏱아질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는 그런 밤하늘을 보며 밤새 숨죽이며 작전을 펼쳤던 기억이 아스라이 떠오릅니다!!~
1개월 전 논들을 보니 6사단에서 군생활할때 모심기철에 대민지원 나갔든 기억이 납니다. 그 기억 때문에 저는 철원 동송 오대쌀만 먹고 있습니다.밥맛이 좋아요~
3차원 구글 어스로 보시면 철의 삼각지대에서 남쪽으로는 경기북부를 거쳐 서울로, 남동쪽으로는 한북정맥의 고개들 (마현리,수피령 등)을 넘어 화천과 춘천으로, 북동쪽으로는 금강산선을 따라 금성, 창도를 거쳐 금강산으로 북쪽으로는 추가령 구조곡을 따라 원산으로 서쪽으로는 마식령산맥, 아호비령산맥 사이 동서 통로를 통해 토산(시변리), 신계로 갈 수 있답니다.
4주 전 오래전 군생활했던 철원... 월정리 전망대에서 포병 관측장교로 4개월간 매일 쳐다보며 하루에도 2~3차례씩 관광객들에게 전방 브리핑을 해서인지 북한땅과 지명이 매우 친숙해보입니다. 훈련때 금학산을 두시간 이내에 점령하고 보고하도록 되어있어 토하기 직전까지 올라갔던 기억이 있는데 이젠 차로 편하게 올라갈 수 있어 보이네요... 좋은 영상 감사히 잘 보았습니다. 30년여전이 회상되는 시간이었습니다.
6사단 근무해서인지 낯설지 않습니다. 금학산 C3계곡 아래 독서당리 유격장 35년이 지나도 지형지물 기억이 새록새록 합니다. 철원을 포함한 철의 삼각지대는 (Iron triangle: 남서쪽의 철원, 남동쪽의 김화, 북쪽의 평강) 아래와 같은 특성들이 있습니다
1. 여러 통로가 모이고 여러 통로가 갈라지는 곳이라 교통의 요지이자 교통결절점입니다. 2. 서울, 경기와 관북을 잇는 남북 방향의 통로와 영서와 해서, 관서를 잇는 남동-북서 방향의 통로가 서로 교차합니다 3. 경원선이 관통하여 서울-원산의 중간 지점이며 내금강으로 가는 금강산선이 분기합니다. 4. 드넓은 평야지대가 펼쳐져 있어서 맛있는 쌀이나 농업에 유리하고 병력과 군사 물자의 대규모 집결에 적절합니다. 5. 주변이 높고 험한 고지로 둘러싸여 있어서 공격과 방어에 모두 유리한 입지입니다. 6. 서울로 향하는 남북축 주요 통로 3개와 (3번 국도, 43번 국도, 47번 국도) 춘천, 원주로 남하하는 영서내륙 통로가 동시에 갈라집니다. 7. 강원도 내륙에서 황해도 동부를 (토산, 금천, 신계, 평산) 거쳐 사리원과 평양으로 오가는 통로의 관문이자 길목입니다. 8. 우리가 여기를 가지게 되면 중부전선에서 북한의 남침을 한 곳에 모아 막을 수 있는 엄청난 장점이 있으며 유사시 북진할 경우 동시에 원산 방면과 (추가령 구조곡 = 철원-원산 축선) 황해도 방면으로 (곡산 회랑 = 방원령로) 진출할 수 있습니다. 9. 따라서 북한 입장에서 여러 경로를 동시에 활용할 수 있던 38도선 분단 시절과 달리 지금은 중부지역에서 남침할 수 있는 방법은 철의 삼각지대를 뚫는 것이 유일합니다 실제로 철원 지역은 강원도에 속하면서도 경기도, 강원도, 함경도, 황해도를 동시에 연결할 수 있는 유일한 도시입니다. |
끝까지 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유튜브 영상 감상기
이틀 후면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74년이 된다. 현재의 모든 국가 정세는 하루가 멀다하고 급변하고 있다. 따라서 본인의 좁은 소견으로서는 대한민국도 강대국의 영향으로 많은 변화가 예상되어 당당하게 올라서기 위해서는 많은 국가와 교류와 협력, 과감한 결단 등이 요구되는 시점이라고 생각이 된다.
본인은 해방 직후에 태어나 한국전쟁을 겪었고, 군생활과 베트남 참전 등을 통하여 우리 전 국민은 국방단결과 안보의식이 갈수록 절실하다고 느껴진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부 국가들의 전쟁은 그야말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亂中日記)에 있는 필사즉생(必死則生),필생즉사(必生則死) 정신으로 행동하고 있다고 생각해본다.
진정한 애국심은 외국 생활을 해본 사람들이 절실하게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위 철원과 백마고지 등을 만드신 유튜버 님에게 많은 감사를 드리고 싶다. 왜냐하면 나는 지금으로부터 57년 전 1967년 6월에 논산훈련소를 거쳐 강원도 모부대에서 16주의 긴 시간동안 2차 무선통신 훈련을 받은 후 11월 추위가 시작되는 시점에 강원도 6사단 철원에서 군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 이듬 해인 1968. 1.21, 김신조 간첩단 일당이 청와대 습격을 위하여 서울 중구까지 침투한 사건이 벌어졌다.
전군(全軍)은 비상사태와 더불어 군 사병들은 제대기간을 6개월 연장, 3년으로 늘이고, 휴가도 중지시켰다. 그리고 매일 피나는 전투훈련이 계속 되었다. 군부대 내에서는 24시간 군화를 신고 완전무장하여 5분대기조로 밤에도 선잠으로 보냈다. 잠 잘 때는 옷을 입은 채 벽쪽에 머리를 향하여 누워 즉시 일어나도록 출동 준비를 하였다. 그리고 낮에는 백마고지 부근에서 경계근무하면서 철조망과 방카작업을 하였고, 철원 동송읍 부근 금학산(937m)에 수시로 올라 수색과 훈련도 병행 하여 단 하루도 여유가 없었다.
그 당시 베트남전선 파병 증강시책에 따라 전방 근무병들에게 최우선적으로 파병에도 응해야 했다. 본인도 무선통신 직책으로 응했고, 베트남에서 전공을 올린 대가로 지휘관의 권유에 응하여 연장, 2년이라는 기간을 보냈고, 휴가도 한번 가지 못하고 귀국 후 제대하게 되었다.
파병 2년 기간 동안에도 우리나라가 여러번 간첩 습격 등 여려운 고비를 넘겼으며 국가가 건재하였기 때문에 무사히 조국의 품에 안길 수가 있었다. 조국이 없으면 자신도 살아남을 수 없고 귀국도 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오늘 이렇게 본인이 건재한 것은 피 흘려 지킨 많은 용사들과 거슬려 올라가면 독립투사 등 수많은 분들의 대가가 아니겠는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