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내린 날 '한티순교성지'에 가다
한티순교성지
한티순교성지는 경상북도 칠곡군 동명면 득명리에 위치한 천주교 성지로서 조선 후기 천주교 박해를 피해 모인 신자들이 형성한 교우촌으로, 순교자들의 삶과 죽음, 그리고 신앙의 역사가 깃든 곳이다. 서쪽의 가산(901미터)과 남동쪽의 팔공산(1,192미터) 사이 해발 600미터의 깊은 산중턱 고갯길에 자리잡고 있는 천혜의 은둔지로, 박해를 피해 숨어든 신자들이 모여 신자촌을 이루었다.
역사적 배경으로서, 1815년 을해박해와 1827년 정해박해를 전후하여 박해를 피해 신자들이 이곳에 숨어들기 시작하여 1850년 말경에는 큰 교우촌으로 성장했다. 1860년 경신박해와 1866년 병인박해 때 많은 신자들이 순교했다. 1868년에는 병인박해가 진행 중일 때 배교를 거부한 교우들을 현장에서 처형하고 마을을 불태워졌으며, 지금까지 확인된 순교자의 묘는 37기로, 성지 곳곳에 흩어져 있다.
1980년대 초반부터 대구대교구가 성지 개발 계획을 수립하여 본격적으로 천주교 성지로 조성되기 시작하여, 현재 순교자묘역, 피정의 집, 재현된 초가집 등이 있어 순례객들이 방문하고 있다. 한티순교성지는 순교자들이 실제로 살고, 순교하고, 묻힌 곳으로, 200년 동안 신앙의 숨결이 이어온 특별한 성지이다. 이곳은 한국 천주교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며, 단순한 성지가 아니라, 한국 천주교의 뿌리와 순교 정신을 이해하고 기릴 수 있는 특별한 장소이다.
한티순교성지를 둘러보면서
2025. 3. 3, 대구에서도 반가운 눈이 약간 내렸고, 대구를 둘러싼 팔공산을 비롯하여 동북 외곽지 주변에는 상당히 많은 눈이 내렸다. 앞으로 금년 봄 이내에는 이만큼 오기 힘들것 같다. 우리 일행들은 점심식사를 일찍 마치고 하얀 설산으로 변한 팔공산을 끼고 한티재 입구에 자리잡은 '한티순교성지'를 둘러보았다.
지금으로부터 불과 약 200년 전후 우리나라 천주교 신자들은 죽음을 마다 않고 신앙 정신을 일깨우며 생활한 그날의 역사 흔적들을 팔공산 사이 600미터 산중턱에 신자촌으로 남겨놓았으며, 그때 모습들을 오늘날 떳떳하게 볼 수있게 되어 감명이 깊었다. 그 분들의 거룩한 희생으로 종교가 살아나고 평화로운 시대와 조국 발전에 크게 이바지 되었다고 생각이 든다. 외부와 단절된 곳, 열악한 주거환경 속에서도 끈질긴 신앙의 정신을 오늘날 마음껏 누리고 있는 우리들은 어찌 그 분들에게 감사와 존경심을 가지지 않을 수 있으랴.
해방과 한국전쟁 사이에 태어난 우리들은 구비구비 높고도 험한 꼬부랑 산길을 하염없이 올라가 자리잡은 산간마을이 있었고, 돌담으로 둘러싼 우리들의 고향 그 옛날 모습 그대로였다. 토담집 웃채와 아랫채, 그리고 아랫채에 자리잡은 마굿간, 뒷간, 문 입구 뚜껑 덮힌 우물과 한켠에 살포시 자리잡은 장독대, 웃채 부엌담에 매달린 멍석.........
지금 눈내린 겨울 날 한복 입은 우리들 아부지가 온 산을 헤메어 땔감나무가지들을 지게에 한 짐지고 싸릿문 소리를 내면서 들어오실 것만 같고,
흰머리 성성한 어무이(어머니)가 찌그러진 부엌문소리를 내면서 나오셔서 물묻은 손을 행주치마에 닦으시며 하시는 말씀,
"야 야, 돌아 느그 아부지 이제사 오셨다... 기도 드리고 저녁 묵자(먹자)"
그리운 그날들, 그 분들은 어디로 가셨나요...........?!
왜냐하면 아버지의 그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께서 수없이 죽게될 목숨들을 부지하며 아들 손자들을 살려내었기에 오늘 우리들이 있기 떼문입니다.
추억과 그리움이 가득한 오늘, 거룩한 종교정신을 바탕으로 우리들을 살게해주신 많은 분들에게 깊이 감사드립니다.
관련 사진 이모저모
감사합니다
첫댓글 고갯길은 아무래도 잘 트여지지 않았을텐데 눈길에 수고하셨습니다.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선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