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0. 15(화)
에즈라기서 7장~ 10장 끝
(에즈 7,9)
바빌론에서 여행을 시작하여,
그의 하느님의 너그러우신 손길이
그를 보살펴주셨으므로
(에즈 7,28)
주 내 하느님의 손길이 이처럼
나를 보살펴 주시므로
(에즈 8,31)
하느님의 손길이 우리를 보살펴 주셨다.
묵상-
세 번에나 반복된 노랫말
후렴구 같은 문장이다.
다른 예언서에서는 주로
‘주 하느님께서 도우셨다.’
‘주님께서 그렇게 해주셨다.’ 라는
표현이었다면, 에즈라기서에서는
위 세 문장에서처럼, 조금은 더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뉘앙스로
전해진 달까?
우리네 사는 현실적인 일상을
하느님께서 이토록 살갑게
보살펴주신다는 그런 느낌이랄까.
하느님께서.. 라고 하지 않고,
하느님의 손길이라고 표현한
것도 다른 때와 달리, 직접적이고
친숙하게 느껴져서 그런 듯하다.
왠지 서정적이면서도 인간적인
정서가 묻어나는 그런…
하느님의 손길이 에즈라 일행을
살펴주셨기에, 여행하는 동안
원수들과 매복자들의 손에서
우리를 구해 주신 거라고 믿었던
그 마음일터.
에즈라 예언자의 인품이 엿 보인다.
또 하룻길을 걸어가는 여행에서조차,
하느님의 섬세한 손길을 느끼고
감사할 줄 알았던 작은 마음도
감동으로 다가온다.
에즈라의 이런 심성과 연결되는
또 다른 구절,
(에즈 9,4)나는 저녁 제사 때까지
넋을 잃고 앉아 있었다.
돌아온 유배자들이 이민족
여자와 혼인을 하며, 주님의
거룩한 자녀로서의 정체성이
무너져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이 대목에서, 그릇이 큰
예언자가 뭐 이 정도의 배신을
봤다 해서 이렇듯 먹지도 않고
넋을 잃고 앉아 있었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자세히 읽어보니,
요즘 시대에 비유해서 말하자면,
유서 깊은 가톨릭 집안의 아들이,
신천지 교인의 딸과 결혼한다거나,
모태신앙인 딸이 통일교인 아들과
결혼한다거나, 보도 듣도 못한
이단 종교랄지, 무속신앙이
뿌리깊이 박힌 집안에 며느리나
사위로 들어간다면 어떤 심정일까.
불교나 개신교 집안과 결혼한대도
다른 종교가 결혼생활에 걸림돌이
될까봐 염려하는 판에, 말도 안 되는
종교를 가진 집안과 통혼 관계가
맺어진다면 어떻게 하겠나 말이다.
생각만 해도 긴장이 되면서,
호적을 파네, 마네, 난리가 날 텐데,
그런 불미스러운 짓을 한 배신자들이
얼마나 원망스럽고 슬프겠나 싶다.
사제들의 자손 가운데에서 이민족 여자와
혼인한 이들을 순서대로 열거하니
정말 많기도 하네. 그런 상황을
목도했으면서도 에즈라의 단호한
선택은 그들에게 먹혔다. 왜냐,
위에서 세 번이나 언급했듯이,
하느님의 손길이 에즈라의 여정을
살펴주신 덕분이다.
그간의 예언자들과는 사뭇 다른
이미지를 풍기는 에즈라의 말과 행동,
그리고 하느님에 대해 생각하는,
그 섬세함과 살가운 사랑, 그리고
무한 신뢰하는 마음이 시종 느껴져서,
가슴이 포근해진 묵상이었다.
주님, 우리가 일상의 작고 평범한
길을 가면서 당신의 현존을 느낄 땐,
작은 것에 감사하고 감동하며,
만사에서 주님의 손길을 생각하는
마음이 될때입니다.
그렇지요. 우리가 집을 나서서
시장을 가든, 공원에 가든, 복음을
전하러 가든, 봉사를 하러 가든,
버스를 타든, 기차를 타든,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과
악의 손에서 우리를 보살펴주시고
구해 주시고 계심을 더 체험하며,
작은 것에도 감사할 수 있게 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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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피나의 성경통독 묵상글
118.에즈라가 느낀 하느님의 섬세한 손길(에즈라기 7장~1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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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박지현 요셉피나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