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살롬 ! (2022년 8월24일 신우회 예배 말씀)
“주 예수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우리도 이같이 큰 소리로 기도하고 주님께 아뢴적이 있습니다. 그러고 나의 문제가 혹은 숙제가 해결된 다음에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쩌면 숨을 쉬고 살아가는 이 순간이 감사할 일이 아닐까요. 눈에 보이는 일에 속아 주님을 잃어버리지 않는 한 주간이 되시길 기도합니다.
본문말씀 : 누가복음10: 11-19 (하나님나라 신약성경)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접경 지역으로 지나가셨다.
예수님께서 어느 마을에 들어가시다 악성 피부병에 걸린 사람 열을 만나셨다. 그들은 멀찍이 떨어져 큰 소리로 외쳤다. “주 예수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예수님께서 들을 보고 말씀하셨다. “가서 제사장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 그들이 가는 동안 몸이 나았다.
그들 중 하나가 나은 것을 깨닫고는 돌이켜 목소리를 한껏 높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그는 예수님이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열 명이 낫지 않았느냐? 아홉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예의를 갖춘 단 한 사람이 이 외국인이라는 것이 정말 사실이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서 네 길을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
말씀선포 : 온유한 사람은 복이 있다.(Blessings on the Meek!)
야웨 하나님의 영이 나사렛 출신 예수님을 그리스도, 즉 구세주로 고백했던 사람들에게 임하심으로 그들은 성령님이 머무시는 하나님의 성전이 되었습니다. 성령님은 성도들 안에 머무시면서 그들에게 은사라고 부르는 외적 능력과 내면에 열매라고 부르는 성품의 변화를 일으키십니다.
성령님께서 주님의 백성들의 내적 성품의 변화와 외적 은사의 충만을 수여하시는 이유는 모두를 한 하나님의 백성, 즉 이스라엘로 삼으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 고대 이스라엘을 부르셔서 자신의 백성 삼으셨던 것처럼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성도들을 부르셔서 하나님 백성 삼으셨습니다. 이 백성은 인종, 성별, 출신에 상관없는 전적인 하나님의 선택과 부르심으로 형성되었습니다. 고대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 신왕조로부터 탈출할 때 수많은 종족들이 함께 탈출하여 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던 것처럼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하여 주후 1세기 유대인 출신이든 비유대인 출신이든 다 하나님의 단일민족이 되었습니다.
다양한 출신을 가진 사람들이 한 가족이 되었을 때, 거기엔 언제나 하나 됨을 위한 여러 잡음들이 생깁니다. 예수님 안에서 부름 받은 교회도 유대인 출신과 비유대인 출신 간에 각자가 가진 다른 배경으로 인하여 주님의 한 몸을 이루는데 많은 잡음이 생겼습니다. 성령님이 주님의 백성에게 내적 성품의 변화와 외적 은사의 충만을 주도하시는 이유는 그들이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대립들을 슬기롭게 이겨내고 하나님의 단일백성을 유지하고 번성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모든 배경을 넘어서 오직 온 세상을 사랑하사 구속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세상을 대하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같은 성품이 주님의 백성에게 요구됩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 보내는 서신에서 이를 겸손, 온유 그리고 오래 참음 등으로 표현했습니다.
겸손과 인내는 들으면 바로 이해할 수 있는 단어이지만 온유는 들어도 바로 이해되지 않는 단어입니다. 교회는 역사 속에서 온유함을 겸손 또는 유순함으로 이해해왔습니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에 순둥 순둥하게 반응하는 이가 바로 온유한 사람이라고 인식해왔습니다. 하지만 민수기 저자가 모세가 하나님께서 유일하게 인정하시는 온유한 사람이었다고 말한 것을 볼 때 이런 교회사 내에서의 이해는 잘못되었던 것이었음을 인식하게 됩니다. 모세는 불의한 일에 분노하며 직접적으로 대처하는 모습을 여럿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가 당하는 모든 일에 해맑게 웃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유진 피터슨 목사님에 따르면 성경이 말하는 온유함은 ‘성화된 활력’입니다. 이를 따른다면 모세는 하나님 앞에서 내면이 단련된 기력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오랜 시간 동안 광야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면서 별의 별 어려운 일을 다 당하더라도 그들을 이끄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끝까지 헌신했습니다. 그는 지도자답게 야웨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일들을 쉬쉬하며 마치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해결될 거라는 식으로 안일함으로 넘어가지 않고 무엇이 잘못됐고 무엇이 올바르게 다시 세워져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분별하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부르신 지도자라는 자리를 절대 내려놓지 않았습니다. 그는 또한 지도자의 역할을 억지로 힘들게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즐거움 가득 안고 지도자의 역할을 잘 마무리하였습니다. 이 모든 것이 모세가 온유한 사람이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들입니다.
사람은 살면서 수만가지 일들을 경험하기에 처음 마음먹었던 대로 끝까지 그것을 유지하며 살아가기가 힘듭니다. 많은 성도들이 성인이 되고 수없이 많은 힘든 일을 겪으면서 하나님이 자신을 부르셔서 주님의 백성으로 살며 일하게 하셨던 것을 즐거워하기보다는 인생을 버거워하고 원망합니다. 모세처럼 하나님이 자신을 그분의 백성 삼으셔서 좋은 일 하도록 부르셨다는 것을 인생 끝마치는 날까지 감사하는 성도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인생 끝마치는 날까지 하나님 부르신 것에 감사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땅을 상속받을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에서 당했던 수만가지 일로 인하여 얻게 된 모든 부정적인 기력의 영향력을 최소화하며 성령 하나님이 내면이 성숙하게 하시는 기력을 가지고 끝까지 살아가는 온유한 이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다고 선포하셨습니다.
누가복음서 17장에 소개된 나음 받은 한 피부병 환자가 바로 예수님이 말씀하신 온유한 사람입니다. 사마리아인, 예수님은 그를 이방인으로 지칭하셨습니다. 악성 피부병으로 공동체에서 쫓겨나 처절하게 차별 받으며 외로운 삶을 살았던 그는 자신이 겪었던 모든 일로부터 생기는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렇기에 자신이 치유되었고 다시 공동체로 돌아갈 수 있음을 알았을 때 자신을 치유한 분께 감사를 표하러 올 수 있었습니다. 교회는 차별받고 구걸하며 험한 인생을 살았던 사람이 자신에게 베풀어진 기적에 감사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는 온유한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가 하나님의 백성, 그 나라를 상속받은 사람이 되었다고 선언하시며 유일한 복을 주셨습니다. 성화된 기력을 가진 사람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온유한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