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팔각지붕 해운대역사만 소중하나?
최근 동해남부선 옛 해운대역사를 허물고 고층 빌딩을 세우려던 민간건설사와 코레일의 계획이 백지화됐다. 부산도시철도 해운대역 바로 옆 옛 해운대역은 해운대해수욕장을 지척에 둔 해운대의 관문이었다. 복선 전철화로 새 동해남부선 노선이 생기기 전까지 80년 이상 시민과 애환을 함께했다. 특히 국내 철도역 중 유일하게 팔각지붕 형태가 남아 있는 옛 해운대역사다.
지난 2013년 동해남부선 폐선구간을 따라 올림픽 교차로에서 송정까지 걸어본 적이 있었다. 그때의 감흥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 당시 폐선부지 활용을 놓고 철도관리공단이 계획을 발표했어도 건설관계자들 외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대다수 시민들은 주어진 현실앞에 그냥 환영의 뜻만 밝히고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도 없었다.
동해남부선 옛 해운대역사의 상업 개발이 좌초되고, 공원을 조성한다는 소식은 분명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역사 보존이라든지 시민공원이라든지 추상적인 염원만 들릴 뿐 구체적인 안을 제시하는 쪽은 보지 못했다. 이 부근의 상업개발을 반대한 입장이라면 상업개발에 대항할 구체적인 활용방안도 제시하는 게 맞다. 그래서 시민들에게 상업개발과 맞서 공익적 계획을 두고 합리적 선택을 하게끔 유도해야 바람직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2013년 11월, 신동아아파트 입구의 우2 철길건널목에서 기차가 지나가는 모습(맨위)과 지금은 사라진 해운대, 우1, 우2, 우4 철길건널목 관리동(왼쪽에서부터)
● 사라진 역사의 산 증인… 철길건널목과 관리동의 가치
옛 해운대역사 부근의 부지 보존을 두고 한번 생각해 볼 일이 있다. 바로 우동 철길건널목을 비롯한 해운대역사부근의 작은 건널목에 관한 이야기다.
옛 해운대역사 부근엔 3곳의 건널목 관리동이 자리잡고 있었다. 하지만 동해남부선 철로 만큼이나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이들 건널목 관리동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는 없었다. 옛 해운대역사가 팔각지붕형태라 보존해야한다는 목소리는 들리지만 정작 철로의 역사와 더불어 철길 지킴이의 애환이 깃든 철길건널목 관리동은 철저히 무시되었다. 결과 그린레일웨이사업으로 이들 건널목 관리동이 다 사라져 버렸다. 해운대역사가 중요하면 그를 받치고 있는 철로와 건널목 역시 중요하다. ‘땡땡’ 소리와 더불어 시민들의 생활속에 고스란히 녹아있던 건널목 관리동이 그 역할과 문화적 중요성이 내팽개쳐진 채 형체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철길과 더불어 해운대역사의 가치를 알고 보존하자는 목소리 속에는 적어도 건널목의 가치도 들어 있어야 했다.
해운대역 부근에는 기계공고 아래 신동아아파트 입구의 우2, 스펀지 앞 우일시장 옆의 우3, 그리고 해수욕장에서 신시가지로 가는 과선교 아래에 우4 건널목이 있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있는 달맞이길 입구의 건널목 이름은 무엇이었을까? 놀랍게도 여기는 ‘우1’건널목이었다. 이곳에 처음 건널목이 생겨 우1이 된 것으로 보이는데 현재의 이곳은 행정구역이 중동이다. 옛 해운대역사 부근 철길건널목 이름에 거의 다 ‘우’자가 들어가 있다는 사실은 당시의 지명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과거 우1·4건널목이 생길 때는 그 부근이 중동이 아니라 우동이었다는 것이다. 후일 이곳이 중동과 좌동으로 분리된 역사를 철길건널목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우리는 역사의 산 증인을 무참히도 뭉개버린 꼴이다.
참으로 아쉬운 대목이다. 폐선부지를 따라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걸어 본 사람이면 건널목 옆에 아담하게 자리한 채 시민들의 안전을 담당해 온 관리동의 존재를 놓쳤을 리가 없다. 기존의 해운대역사에 건널목 관리동을 옮겨와 기념관 형태의 공원이라도 꾸몄으면 하는 뒤늦은 바람을 가져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