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활을 배울 때 저는 활을 쏜다는 것을 단순하게 생각했습니다.
한 손으로 활을 밀고, 다른 손으로 시위를 당긴다.
충분히 당긴 뒤 깍지를 풀면 화살이 나간다.
겉으로 보기에는 활쏘기가 그렇게 보입니다.
하지만 수련을 계속하면서 한 가지 의문이 생겼습니다.
사법서에서는 왜 단순히 시위를 ‘당긴다’고 하지 않고, 개궁(開弓), 즉 ‘활을 연다’고 표현했을까.
최근 20파운드 연궁으로 아주 천천히 활을 열어보면서 저는 그 차이를 조금씩 몸으로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경험한 개궁(開弓)은 한쪽 팔로 활을 밀고 다른 쪽 팔로 시위를 잡아당기는 동작과는 조금 달랐습니다.
몸통의 회전으로 활을 열고, 그 과정에서 규(規)와 구(矩)가 자연스럽게 나타나며, 앞과 뒤가 하나의 장력(張力)으로 연결되는 과정에 가까웠습니다.
구(矩)는 당겨서 만드는 모양이 아니었습니다
『정사론(正射論)』에서는 앞의 작용을 규(規), 뒤의 작용을 구(矩)로 설명합니다.
저는 처음에는 규(規)와 구(矩)를 각각 팔로 만들어야 하는 정해진 형태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연궁으로 천천히 활을 열어보면서 생각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거궁(擧弓)한 상태에서는 깍지팔을 쭉 뻗어 펴려는 힘을 줍니다.
그리고 시위의 힘을 손가락에만 전부 걸어놓은 채 잡아당기려 하지 않습니다
깍지팔의 어깨가 먼저 뒤로 빠지지 않도록 한 상태에서,
깍지구미를 뒤로 돌린다는 느낌으로 흉추를 회전시키며 활을 엽니다.
그러면 처음에는 쭉 뻗어 있던 깍지팔이 흉추의 회전에 따라 자연스럽게 접혀 들어옵니다.
손이 시위를 끌어당기면서 팔꿈치를 뒤로 보내는 것이 아니라,
몸통이 회전하고, 그 회전에 따라 깍지구미가 돌아가면서 결과적으로 구(矩)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저는 『사예결해(射藝訣解)』의 **회주만만(回肘慢慢)**이라는 구결도 이러한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습니다.
팔꿈치만 따로 억지로 돌리는 것이 아니라,
깍지구미를 천천히 돌린다는 느낌으로 흉추를 회전시키며 개궁(開弓)하는 것.
그렇게 했을 때 구(矩)는 처음부터 억지로 만들어놓는 자세가 아니라, 올바르게 활을 열어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형태가 됩니다.
규(規)는 줌팔을 밀어붙여 만드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앞쪽의 줌팔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저는 줌팔을 처음부터 완전히 펴서 관절을 잠그지 않습니다.
거궁(擧弓)한 상태에서는 줌팔을 약간 굽혀두고, 개궁(開弓)이 진행되면서 줌팔을 내전시키며 활압을 받아 점차 펴지도록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줌손으로 활을 억지로 밀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뒤에서는 깍지팔을 뻗은 상태로 흉추를 회전시키면서 구(矩)가 나타나고,
앞에서는 그 회전에 대응하여 살짝 굽혀두었던 줌팔이 내전하면서 활압을 받아 열립니다.
그 과정에서 규(規)가 형성됩니다.
즉,
깍지팔을 당겨서 구(矩)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흉추 회전의 결과로 구(矩)가 나타나고,
줌팔로 활을 억지로 밀어서 규(規)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내전하는 줌팔이 활압을 받아 펴지면서 규(規)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개궁(開弓)의 감각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라고 생각합니다.
규(規)와 구(矩)는 따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제가 이 방식으로 활을 열었을 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규(規)와 구(矩)가 각각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뒤쪽에서는 흉추의 회전에 따라 구(矩)가 나타납니다.
동시에 앞쪽에서는 줌팔이 내전하며 활압을 받아 규(規)가 형성됩니다.
그러면 어느 순간부터 앞과 뒤가 서로 영향을 주기 시작합니다.
뒤가 열리면 앞이 살아나고,
앞이 활압을 받아 살아나면 다시 그 힘이 몸통을 통해 뒤에 전달됩니다.
저는 이 경험을 하면서 『정사론(正射論)』의
이집위거 이거위집(以執爲擧 以擧爲執)
이라는 구절을 이전과 다르게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뒤의 집(執)으로 앞의 거(擧)를 이루고,
앞의 거(擧)로 다시 뒤의 집(執)을 이룬다는 말입니다.
제 몸에서 느낀 감각으로 표현하면,
뒤가 열리면서 앞을 만들고,
그렇게 살아난 앞이 다시 뒤를 채우는 것
에 가까웠습니다.
규(規)와 구(矩)가 서로 맞물리기 시작하면 그 사이에는 하나의 장력(張力)이 생깁니다.
연궁으로 천천히 느껴보는 이유
저는 이 감각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강한 활보다 연궁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강한 활을 잡으면 활의 힘을 이겨내기 위해 본능적으로 팔과 어깨에 힘을 쓰기 쉽습니다.
그러면 흉추의 회전이나 규(規)와 구(矩) 사이에 형성되는 미세한 장력(張力)을 느끼기가 어려워집니다.
그래서 연궁을 들고 아주 천천히 시험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저는 이것이 『정사론(正射論)』이나 『사예결해(射藝訣解)』를 해석하는 유일한 정답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사법서를 읽고, 연궁을 들고, 실제 몸으로 하나씩 시험해보는 과정에서 저는 이러한 감각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그 경험을 통해 ‘활을 당긴다’와 ‘활을 연다’는 말 사이에는 생각보다 큰 차이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깍지손으로 시위를 당겨 구(矩)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흉추의 회전으로 구(矩)가 나타납니다.
줌손으로 활을 밀어 규(規)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내전하는 줌팔이 활압을 받아 열리면서 규(規)가 나타납니다.
그리고 그렇게 나타난 규(規)와 구(矩)가 서로를 이루며 하나의 장력(張力)으로 연결될 때,
비로소 몸 안에도 또 하나의 활이 생기는 듯한 감각이 나타납니다.
저는 지금 그것을 개궁(開弓)이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활을 억지로 당기는 것이 아니라,
활의 힘을 받아 몸을 열고,
몸 안에 하나의 현(弦)을 세우는 것.
그것이 제가 경험한 ‘활을 연다’는 감각입니다.
첫댓글 前手撇而後手絶。將箭腰如將絶之。則胸乳展開。而左臂左肩。撑亘於前後手之間。而右手自脫儘洞快。豪遠聲䧺。遠有音折。(전수별이후수절。장전요여장절지。즉흉유전개。이좌비좌견。탱긍어전후수지간。이우수자탈진통쾌。호원성웅。원유음절。)
앞 손은 줌통이 부러질 듯, 뒷손은 시위가 끊어질 듯, 맹렬히 채주기 위해 화살대 허리가 끊어질 것 같이 비틀어 짜 주면, 앞가슴이 펴지면서 왼쪽 팔과 왼쪽 어깨가 앞뒤의 손 사이를 탱탱하게 받치게 되어, 오른쪽 손이 저절로 시위에서 벗어나는 것이 매우 통쾌하여, 우렁찬 소리가 호쾌하게 나서 먼 곳에서도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기존에 전추태산이라 하여 밀 推추자를 씁니다. 하지만 사예결해에서는 지탱하다의 撑탱자를 씁니다.
우리 활쏘기에서 미는 동작은 없습니다. 만작도 당겨서 만작을 합니다. 줌팔도 각지팔도 모두 광배근을 끌어당겨 내려서 만작을 합니다. 그래서 고고원원 거궁을 해야 하는거고, 우리활에서 밀고 당긴다는 개념은 틀린 것입니다.
정답을 거진 다 찾아가고 있네요. 왜 그리 했는지 철학적인 물음에 대한 해답을 내어 놓아야 할 때가 된것 같습니다.^^.
저는 아직 철학적인 부분까지 깊이 생각해본 것은 아닙니다.
제가 접근한 것은 오히려 규와 구의 형태와 작용이었습니다.
규는 컴퍼스이고 구는 곱자이니, 하나는 둥글게 이끌고 하나는 반듯하게 이끕니다.
기존 철전사법의 형에서 별절의 동작으로 이어지려면 뒤쪽에 구의 작용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흉추를 회전하며 활을 열어보니 구가 자연스럽게 나타났습니다.
반면 앞쪽에는 제가 보기에는 하나의 연결고리가 비어 있었습니다. 기존처럼 줌팔을 처음부터 펴서 잠그지 않고, 살짝 굽힌 줌팔을 내전시키며 활압을 받아 펴지도록 하자 규의 작용이 나타났습니다.
구가 작동할 수 있도록 움직임을 이해하고, 잠겨 있던 줌팔에 규의 작용을 채워 넣어본 셈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규와 구를 모두 갖추고 활을 열어보니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감각이 나타났습니다.
앞과 뒤가 서로 이어지며 장력이 생기고,
제가 활을 당기는 것이 아니라
활 전체가 열리는 듯한 감각이었습니다.
저는 그제야 이것이 개궁이라는 말과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만작 질량을 가진 모든 물체는 중력장의 영향을 받습니다. 피보나치 수열의 형태를 가지는 것이지요. 이것이 인체가 힘을 쓰는 근본원리 입니다. 그래서 정사론 第二十二 (제 22 편)
面與體射之我也 臂與節射之彼也 彼先從於我則射之規 我先從於彼則射之不規 我正則彼正而自近 我不正則彼不正而亦遠也 (면여체사지아야 비여절사지피야 피선종어아즉사지규 아선종어피즉사지불규 아정칙피정이자근 아부정즉피부정이역원야)
얼굴과 몸은 활쏘기의 나(我,본체)이다, 팔과 골절은 활쏘기의 남(彼,객으로 따라오는것)이다. 남이 먼저 나를 따르면 활쏘기의 법(規)이 되고, 내가 먼저 남을 따르면 활쏘기의 법이 아닌 것(不規)이다. 내가 바르면 남도 바르게 되어 저절로 가까워진다, 내가 바르지 않으면 남도 바르지 않게 되어 역시 멀어진다. 라고 이야기 하는 대목입니다.
이게 철학적으로 선기옥형의 六방정과 예기 사의에 나오는 以射天地四方이사천지사방과 대학의 혈구장과 정확히 맞아 떨어집니다. 그래서 상하.전후.좌우를 반듯하게 하고 쏘는 것이 천도에 부합하는 활쏘기가 되는 것이고 그 궁체가 별절이 되어 드러나는 것입니다.
천도에 부합하게 쏘는 것. 이것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