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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하고 주린 영혼
시편 107편 4~9절
4 그들이 광야 사막 길에서 방황하며 거주할 성읍을
찾지 못하고
5 주리고 목이 말라 그들의 영혼이 그들 안에서
피곤하였도다
6 이에 그들이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들의 고통에서 건지시고
7 또 바른 길로 인도하사 거주할 성읍에 이르게
하셨도다
8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9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신앙생활에서 꼭 필요한 것이 많이 있다.
믿음도 당연히 필요하고 사랑도 필요하고 예배도 필요하고
뭐 한두 가지 필요한 것이 아니다.
세상 살아가면서 많은 것들이 필요한 것처럼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우리가 많은 것이 필요한데
그 중에 꼭 있어야 할 한 가지가 있다면
그건 바로 사모하는 마음인 것이다.
9절에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사모하고 주린 영혼’ 이런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는데
우리의 심령이 주님의 모든 것을 사모하는 마음,
주리고 배고파하는 마음 이것이 신앙생활에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성경에는 목마른 사슴이라고 나온다.
목마른 사슴이 얼마나 목이 마르면 그 시냇물을 찾아
헤매면서 오직 물만 보이니까 포수가 옆에 와도
보이질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처럼 우리가 목마른 사슴과 같이 돼야 되고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는 것처럼 스펀지 같은
심령이 돼야 되는 것이다.
천로역정에 보면 기독도가 좁은 문에 들어가서
일곱 개의 방을 지나면서 그 방 중에 하나가
이 방 안에 이 마귀가 계속해서 물을 뿌린다.
그 방 안에 불이 타고 있는데 그 불이 꺼지면 안 되는데
마귀가 자꾸만 불을 꺼뜨리려고 물을 갖다 붓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한편에서 은밀하게 자꾸만 기름을
부어주시는 것이다.
그래서 그 불이 꺼지지 않는다.
원수 마귀에는 우리의 신앙의 불을 꺼치려고
자꾸 물을 갖다 붓는 것이다.
어려움도 갖다 주고,
만족할 만한 좋은 세상 것도 갖다 주고,
주님을 찾지 않게 만들면서 은혜의 불을 꺼치게 하고
신앙의 불을 꺼치게 하고 믿음의 불을 꺼치게 하고
사모하는 마음을 자꾸만 꺼치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은밀하게 자꾸만 기름을 부어주시니까
믿음이 떨어지지 않고 사랑이 떨어지지 않고
은혜가 떨어지지 않고 사모하는 마음이 끊이지 않는 것이다.
사모하는 마음이 계속 불타는 그것이 바로 예수님이
은밀하게 기름을 부어주시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시편에 107편 말씀 중심으로
우리가 은혜 받고자 하는 이 말씀 가운데
첫 번째 교훈은
내 마음에 현재 사모하는 마음이 없다면
우리 이걸 두려워할 줄 알아야한다.
배가 고파야 밥을 먹고 목이 말라야 물을 마시는데
내가 주님 안에서 사모하는 마음이 없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받을 수가 없다.
사모하는 마음속에 그 영혼 속에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을 채워주신다고 했는데
내 안에 지금 전혀 신령한 것을 사모하는 마음이 없다면
그걸 두려워해야 한다.
그러니까 이 마귀가 불을 꺼치려고 하는 것처럼
주님이 기름을 부어줘도 마귀가 많은 물을 갖다 부으면
결국 불이 꺼지는 것처럼 내 안에 사모하는 마음이
지금 없다면 이것을 우리는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
우리가 무엇을 사모할 것인가?
1) 전도서 3장 11절 말씀에 보면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사람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고 이것을 우리가 흔히 종교성이라고 이렇게 말한다.
짐승에게는 영이 없기 때문에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도 없고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그런 게 아무것도 없다.
그냥 사람의 마음처럼 혼만 있다가 그 짐승은 땅으로
내려가고 마는데 하나님이 사람에게는 영혼을 주시고
영을 주셔서 그 영이 하나님의 모든 신령한 것들
영원한 것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우리가 이 사모하는 가운데 제일 먼저
영원한 것을 사모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신령한 것들이라는 것이다.
히브리서 11장 16절에 보면
우리가 지지난주에 말씀드린 것처럼 더 나은 본향이 있다.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이 땅에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가나안 땅에 들어갔지만 그 가나안 땅에 들어가 보니
나그네처럼 이방인처럼 객과 같이 살고
하나님이 지으신 하늘의 성 그 더 나은 본향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 본향을 사모하니까 하나님이 예루살렘 성을
마련해 주셨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우리가 영원한 것을 사모해야 한다.
이 세상은 잠시라고 하는 것이다.
이 세상은 아무리 만족할 것이 많아도
영원한 것은 아닌 것이다.
오직 하나님 안에만 영원한 생명이 있고
하나님 나라에만 영원한 것이 있고
천국적인 것에만 영원한 것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은 이 영원을 사모하기 위해서는
기독교적인 인생만을 가지고 살아야 된다.
성경은 계속해서 말씀한다.
인생은 들에 풀과 같고 꽃과 같고 안개와 같이 모였다가
흩어지는 인생이라고
그러니까 우리가 잠시 다녀가는 세상이다.
언젠가는 다 하나님이 부르시면 우리가 다 죽을 수밖에 없는
이런 인생인데 그 위에 영원한 것이 있다는 것이다.
이 잠시와 영원한 것을 어떻게 우리가 비교할 수가 있겠는가?
우리는 이 세상은 잠깐이다.
그래서 영원한 것을 사모하고 그 영원한 것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 거기에 가치를 두고 사는
그런 기독교적인 인생관이 되어야 된다.
그래서 이 세상에 애정과 욕망이라고 하는 것,
이 세상에 좋은 것들은 다 지나간다고 말씀한다.
이 세상도 지나가는 것이다.
내가 죽고 나면 다 없어지는 것이다.
아무리 세상에 좋은 것이어도 그건 잠시이다.
내가 떠나가면 다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 안에만 영원한 것이고 하나님 안에만 신령한 것이
있는 것이고 그 영원한 것을 사모하는 마음
그게 내 속에 지금 없다는 사람은 우리가 두려워하고
그 영원한 것을 사모하는 마음이 없다고 하는 거기에
대해서 우리가 스스로 점검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도서 11장 9절 말씀에 보니까 이렇게 말씀하셨다.
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들을
마음에 기뻐하여 마음에 원하는 길들과 네 눈이 보는 대로
행하라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
청년은 혈기가 방정할 때니까
청년의 날에 마음에 기뻐하는 대로 마음에 원하는 대로
눈이 보는 대로 쫓아 행하라 네 마음대로 살아봐라
그러나 이 모든 일로 인하여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 그랬다.
그래서 12장 1절에 보니까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
여러분 나이가 먹으면 이제 해주는 밥도 맛이 없다.
입맛이 없어지는 것이다.
아무리 맛있는 걸 먹어도 영양분을 충분히 섭취하지도 못하고
그러니까 청년의 때가 다 지나가고 나면 곤고가 이르게 되고
아무 낙이 없는 인생이 되는데 그 이전에 청년의 때부터
어릴 때부터 하나님 창조주 여호와를 기억하며 살아가야지
우리가 눈이 원하는 대로 보기 좋은 대로
이렇게 인생을 멋대로 살지 않고 심판을 준비하며 사는
복된 인생이 된다는 것이다.
그 창조주 여호와를 기억하라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빛 위에 그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그리하라
전도서 12장은 대환란을 말하는 것이다.
대환란 때가 오면 모든 게 다 6절 말씀에 보면
6 은 줄이 풀리고 금 그릇이 깨지고 항아리가 샘 곁에서
깨지고 바퀴가 우물 위에서 깨지고
7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이것이 심판대를 말하는 것이다.
길거리 문들이 닫혀 지고 맷돌 소리가 적어지고
요한계시록에 나온다.
맷돌 소리가 없는 그런 환란의 날이 온다고
이것이 지금 대환란을 말하는데 그때가 되기 전에
7절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하나님을 기억하라
이렇게 말씀하신다.
인생은 잠시 사는데 죽으면 깨어난 다음에 바로 누구든지
환란의 심판대 가니까 12장에 있는 이 전도서에
이 말씀을 만나는 때가 온다는 것이다.
그러기 전에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며 살아가라
그렇게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저와 여러분은 잠깐 늙어지는 인생이고
들과 같이 들의 풀과 같이 꽃과 같이 시든 인생인데
내가 혈기방장하고 젊어서 살았을 때
열심히 영원한 것을 사모하며 신령한 것을 사모하는
이런 사모하는 마음을 내가 가지고 살아야 되는데
이것이 없으면 두려워할 줄 알아야 되는 것이다.
2) 우리가 사모해야 될 것은
베드로전서 2장 1~3절 말씀에 보면
1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2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3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어린아이가 생명으로 태어나면 그 본능적으로 젖을 먹고
점점 커진다.
그 젖을 사모하는 것처럼 영적으로 어린아이로 태어나게
되면 신령한 젖인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그 말씀이 우리를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신령한 젖인 하나님 말씀을 사모하라
그 말씀을 사모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많은 인생들이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이 창세기에서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 하면서 온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는데
그 지으신 천지 만물을 현재도 보존하시고
그 만물을 역사하신다.
그 말씀이 모든 지으신 만물을 보존하고 역사하는 것도
여전히 말씀으로 하고 있다 하는 사실을 인생들이
알지 못하는 것이다.
말씀으로 다 모든 만물을 보존하시고 역사하신다.
우리 성경 한번 같이 찾아보자.
시편 147편 15~18절 말씀
15 그의 명령을 땅에 보내시니 그의 말씀이 속히 달리는도다
16 눈을 양털 같이 내리시며 서리를 재 같이 흩으시며
17 우박을 떡 부스러기 같이 뿌리시나니 누가 능히 그의
추위를 감당하리요
18 그의 말씀을 보내사 그것들을 녹이시고 바람을 불게
하신즉 물이 흐르는도다
비가 오고 눈이 오고 안개가 생기고 태풍이 나고
바람이 불고 이 모든 게 자연 현상이겠지만
그 배후에서 말씀을 보내서 그런 일들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시편 148편 7~8절 말씀입니다.
7 너희 용들과 바다여 땅에서 여호와를 찬양하라
8 불과 우박과 눈과 안개와 그의 말씀을 따르는 광풍이며
광풍이 허리케인이다.
미친바람이자 태풍이다.
집을 다 날아가게 하는 그런 무시무시한 바람도 말씀을
쫒아 나오는 것이지 저 남태평양에서 고기압의 현상으로
이렇게 저절로 자연 현상이 아닌 것이다.
그 배후의 하나님이 말씀을 보내고 말씀을 따라 모든 게
움직이는 것이다.
그럼 지으신 우주 만물에만 그렇게 하는가?
107편을 우리가 보고 있는데 107편 20절 말씀 한번 보자.
그가 그의 말씀을 보내어 그들을 고치시고
위험한 지경에서 건지시는도다
인생이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위험한 경우가 많고
위험한 환경이 많이 있는데 그 모든 위경에서 말씀을
보내서 고쳐주신다고 그랬다.
그러니까 만물만 말씀으로 다스리는 게 아니고
지으신 인생들도 전부 말씀으로 환경 가운데 다스리고
있는 것이다.
거기 25절에 또 말씀하신다.
여호와께서 명령하신즉 광풍이 일어나 바다 물결을
일으키는도다
지금 물결도 말씀을 보내니까 광풍도 말씀을 보내니까
일어나는 것이다.
105편 16~19절 말씀 보자.
16 그가 또 그 땅에 기근이 들게 하사 그들이 의지하고 있는
양식을 다 끊으셨도다
17 그가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
18 그의 발은 차꼬를 차고 그의 몸은 쇠사슬에 매였으니
19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의 말씀이 그를
단련하였도다
지으신 우주 만물뿐 아니라 모든 환경 배후에서
하나님이 말씀으로 다 환경을 일으키시고 요셉을
애굽으로 파견해야 70인이 애굽에 가서 그때부터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에 이르는 인류 역사의 구원의
도리를 알게 하시고
그 당시 야곱을 살릴 거 아니겠는가?
한 사람 요셉을 보내는데 죄인 아닌 죄인의 모습으로 갔다.
근데 그 모든 요셉의 일정이 뭔가?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 꺼지고 말씀이 저를 달련하였도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창세로부터 빛이 있으라는
그 모든 생명의 말씀이 모든 만물을 지으시고
그걸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니고 그 만물을 지금도
말씀으로 보존하시고 말씀으로 섭리하시고
지으신 인생 모두를 말씀으로 다시는 것이다.
예수님의 12 제자가 이제 배를 타고 바다 건너갈 때
통풍이 오니까 비바람이 오니까 어떻게 되는가?
주무시는 예수님을 흔들어 깨웠다.
우리를 죽게 내버려 둡니까
예수님이 믿음이 없는 자들아, 믿음이 적는 자다
그러면서 예수님이 명하셨다.
예수님이 한마디 말씀하시니까 바다도 잠잠하게
태풍도 잠잠하게
그분의 말씀 한마디만 보내주시면 그게 모든 환경에
태풍이 필요 없는 거고 모든 걸 잔잔하고 고요하게 하는
이게 하나님의 말씀인 것이다.
그러한 말씀인 신령한 젖을 사모하는 생활을 하는 것이다.
내가 젊어서 육신이 건강하니까 내 멋대로 벌어서
일생을 그렇게 살아가는 것 같지만
비행기의 수많은 부품 중에서 부품 하나만 망가져도
비행기는 날지 못하는 것이다.
내 몸에 어디 한 군데만 부품을 건드려도
우리는 살 수가 없는 인생인 것이다.
그분의 말씀으로 모든 환경을 주관하셔야 우리가 사는
것이고 뭘 하는 것이지 주님의 말씀으로 역사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행할 수가 없다.
그래서 우리가 신령한 젖인 말씀을 사모하고 그 말씀하고만
사는 것처럼 그렇게 살아야 한다.
그러니까 나에게 내 문제를 해결해서
오늘 무슨 말씀을 줄까?
하나님이 무슨 말씀으로 음성을 들리게 하실까?
무슨 말씀으로 역사해 주실까?
그 모든 성경의 해답이 자그마치 3만 6500가지가 성경에
다 약속돼 있으니까 나의 인생의 경우의 수가 다 성경 안에
있다는 것이다.
그 말씀을 찾아내면 그 말씀대로 역사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매일 성경을 읽고 젖을 먹듯이 신령한 젖을
사모하는 것이다.
우리가 영혼을 사모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고
그리고
3) 큰 은혜를 사모해야 된다.
은혜를 사모해야 된다.
마지막 때가 되어질수록 우리가 점점 어둠의 세상을
살아가는데 오리무중이라는 말이 있다.
오리는 5키로다.
5키로가 전부 안개가 쌓여서 그 짙은 안개 속에서
한 발자국도 앞길을 나갈 수가 없다는 말이 오리무중이다.
5키로가 다 안개에 쌓여가고 갈 길을 알 수가 없다.
안개가 너무너무 많이 끼어갖고 운전할 수도 없고
한 발자국도 걸어갈 수가 없는 그런 오리무중이라고
하는 것이다.
점점 세상은 오리무중처럼 어디로 가야 할지
이런 어둠의 세상을 살아가는데 그 환란 할 때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는가?
은혜가 아니면 살 수가 없는 것이다.
은사가 아니면 살아갈 수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큰 능력이 아니면 살아갈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큰 은혜를 사모하며 살아야 한다.
여러분 금년 한 해 이렇게 신령한 젖을 사모하고
큰 은혜를 사모하고 영원한 것을 사모하는 놀라운
그런 사모하는 마음이 불같이 일어나기를 간절히 축원한다.
마지막 세 번째는
그러면 우리가 이 사모하는 마음은 본문에 있는 것처럼
사모하는 영혼에게 하나님이 만족하게 하시고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을 채워주시는데
이거는 결국은 큰 은혜를 받겠다는 것이다.
그럼 우리가 이 큰 은혜를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내 영혼이 정말로 만족하면 내가 지금 먹고 배부른 것처럼
내 영혼이 정말 만족을 얻으려면 큰 은혜를 받아야 되는데
어떻게 해야 되느냐?
사모하는 마음이 일어나도록 자꾸만 뜨거운 소원이 마음속에
일어나도록 해야 한다.
마치 바디메오라는 장님이 예수님이 지나간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 멀리서 풍문에 소문이 들리는 것이다.
장님이니까 어디 갈 수도 없고 누군가가 데려다주지 않으면
움직일 수도 없는데 소문이 들렸다.
예수님이라고 하는 메시아가 나타나서 많은 병자를 고쳤다더라
이 귀에는 들렸다.
근데 어느 날 자기 앞에 지금 예수님이 지나간다는 거 아닌가?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여 나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이 사도들이 잠잠하라 조용히 하라 지금 메시야가 지나가는데
근데 바디메오의 입장을 생각해 보자.
그 소문에 들어서 병자를 고치고 내 눈을 뜨게 할
그 메시아가 지나가는데 그분이 지나가고 나면
평생 언제 주님을 또 만나겠는가.
지금 나의 이 환경에 주님을 만나는 것이
이게 마지막 시간인 것처럼
간절한 마음으로 소원을 가지고 바디메오처럼
예수님을 찾아야 된단 말이다.
내가 지금 주님을 만나지 않으면 내 눈을 열 수가 없고
지금 내가 주님을 만나지 않으면 내 인생을 살 수가 없다.
이런 큰 소원을 가지고 주님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여러분 이런 갈급한 심령으로 주님을 찾아야 된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는지 아는가?
자동차를 혼자 타고 가도 거기서도 기도가 나오는 것이다.
나를 불쌍하게 여겨달라고 지금 내 형편을 아시지 않냐고
혼자 부흥회를 하는 것이다.
자동차 타고 가면서도 혼자 찬양을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렇게 뜨거운 소원을 가지고
바디메오처럼 주님께 나가야 된다.
그것이 내 영혼의 빈 그릇 준비하는 것이다.
엘리사 때에 남편 죽고 자녀들과 남아 있는 그 부인이
있는 것을 다 준비해서 오니까 기름 한 병밖에 없는데
그 그릇에 다 찼다.
준비한 그릇만큼 채워지고 나니까 기름이 떨어졌다.
그러니까 주님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해하고
주린 영혼에게 좋은 걸 채워주시는데 각자 빈 그릇,
마음의 빈 그릇이 채워져 있는 만큼
사마리아 여인처럼 나의 빈 잔을 높이 들어야 되는 것이다.
그래야 주님이 채워주시는 것이다.
시편에는 내 입을 크게 벌려라 그랬다.
구약 당시에 임금님이 신하가 전쟁에 나갔다가
승리하고 돌아오면 상을 주는데 그 입에다가 보석을
넣어준다는 것이다.
아마 우리 가운데도 지금 다이아몬드를 입을 벌리는 만큼
넘어준다면 입이 얼마나 크게 벌리겠는가?
아마 있는 대로 다 벌릴 것이다.
그래야 다이아몬드를 최대한 입에다 물고 갈 거 아니겠는가.
그 장면인 것이다.
임금님이 지금 보석을 시상하는데 입을 여는 것만큼
담아주는 것이다.
그것처럼 입을 크게 열어라
우리가 마음에 빈 것을 준비하고 뜨거운 마음으로
바디오메처럼 입을 넓게 열어라.
제가 상주에 가서 목회하는데 어느 자매가 간증을 했다.
중학교 때 부흥사가 와서 부흥회를 하는데 중학교 때부터
예수님을 잘 믿었다.
그 부흥사님이 그 부흥회를 하면서 계속 그런 얘기를 했다.
“여기 젊은 청년들 여기 여자 청년들 신랑을 만나려면
중학교 때부터 기도해야 된다고”
이 자매가 그 말씀에 은혜를 받아서 그때부터
중학교 때부터 신랑에 대해서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머리는 스포츠형으로 깎은 사람이 좋겠고 이렇게 생기고
오랜 세월을 기도하고 나중에 결혼해서 만나보니까
자기가 기도한 대로 그런 사람을 딱 만났다.
진짜 머리가 뻗치니까 스포츠로 깎을 수밖에 없는 그런 머리
그러니까 어린 시절부터 그 마음의 소원을 가지고
그런 기도를 해 나가니까 그걸 하나님이 채워주신 것이다.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가는 것처럼 앙망하라고 하는데
그 주님이 모든 내 인생에 좋은 것을 주시는 것을 고대하며
바라보는 게 앙망하는 것이다.
그분만이 나의 인생에 좋은 걸 줄 수가 있다고
그걸 바라보면서 앙망하며 그분을 쳐다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앙망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그냥 바라보는 것이 아니고
온갖 좋은 것을 그분이 주신다는 것을 기대하고
그러면서 그분을 바라보면서 뜨거운 마음의 소원을 가지고
마음의 빈 그릇을 준비하면서 주님께 나가면
반드시 은혜를 주시는 것이다.
그리고 반드시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다 계획대로 하시지만은
반드시 기도를 받으시고 역사를 하신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해야 된다.
베드로가 깊은 데 가서 그물을 던지라 할 때 그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릴 때 두 배 가득 채우고 잠긴 것처럼
우리는 기도도 깊이 내려가서 해야 된다.
제일 안타까운 것이 그것이다.
음료수 가운데 2%가 모자란 게 있다.
이 기도가 항상 2%가 모자라
이걸 채워야 되는데 2%가 모자라 응답받지 못 할 때가 있다.
그러니까 우리가 그걸 채워야 된다.
2%를 채워야 된다.
대부분의 성도들이 속히 응답을 못 받은 것은
2%가 모자라서 그러는 것이다.
그 2%를 어떻게든지 뚫고 나가서 채워야 된단 말이다.
그리고 우리가 큰 은혜를 받으려면 반드시 겸손해야 된다.
왜?
야고보서에 겸손한 자에게는 은혜를 주신다고 약속해 놓았다.
겸손해야 된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이 물이 모여지면
그 물은 점점점 낮은 데로만 흘러내려간다.
그 물과 같은 심령으로 낮아지는 대로만 계속 나가야한다.
그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는 것이다.
우리가 교만할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우리 인생이 교만할 구석이 뭐가 있겠는가?
다 은혜로 사는 거고 다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지금
이 시간까지 예수 믿었고 다 은혜로 지금 살고
그 은혜로 사는 사람이 뭐가 하나 앞에 교만 할 게
있겠는가.
그러나 겸손한 중에도 더 겸손히 내려가고
물과 같이 자꾸만 내려가면 낮은 대로, 낮은 대로,
그럼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것이다.
천로역정에 기독도가 아블론과 싸우면서 마저 연단을
마치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그런 싸움이 있는데
그 아블론과 싸워서 이기고 나서도 그게 끝나는 게 아니다.
겸손의 골짜기를 다 내려가야 가나안 땅을 정복하면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
그러니까 마지막 코스는 사실 아블론과 싸우는 그 영적
싸움이 아니고 겸손의 골짜기를 내려갈 줄 알아야 한다.
자꾸 낮은 대로 내려가야한다.
그럼 하나님이 약속한 대로 은혜를 주시는 것이다.
오늘 이 아침에 우리 각자에게 이 말씀에 의지하여
내 마음 속에 사모하는 영혼, 내 마음속에 주린 영혼,
이런 마음이 내 속에 있는가?
나의 사모하는 마음은 어느 정도이고
내가 얼마나 주려 있는가?
그 준비한 만큼 그만큼 만족을 주시는 것이다.
그게 없다면 오늘 아침에 자신을 점검하면서
여러분 두려운 마음을 가지시기 바란다.
나는 사모하는 마음이 없어.
뭐 예수님 없어도 돼.
나는 말씀 몰라도 되고 말씀 역사 안해도 돼.
그게 얼마나 두려운 것인가.
그러니까 내 마음속에 지금 사모하는 마음이 있는지,
내 마음속에 정말 주님을 의지하고 그 주님이 주셔야만 하는
이 갈급한 심령으로 주린 심령이 되어 있는지,
그 자체를 우리가 한 번씩 점검을 해보자는 것이다.
시편 107편 4절 말씀에 보면
4 그들이 광야 사막 길에서 방황하며 거주할 성읍을 찾지 못하고
5 주리고 목이 말라 그들의 영혼이 그들 안에서 피곤하였도다
근심 중에 부르짖으니까 하나님이 거할 성에 이르게 하시면서
그 결론으로 광야 사막에서 방황하고 거할 성을 찾지 못하고
주리고 목마른 그 영혼에게 만족하게 하시고 채워주신다는
게 거할 성에 이르게 하신다는 건데 사실은 하나님이
거할 성을 준비하시고 그 거할 성에 이르게 하시려고
광야 사막 길로 보내는 것이다.
여러분 그걸 알아야 된다.
그래서 사모하고 주린 영혼의 그 마음에 그게 없으면
두려워한다는 게 그 말인 것이다.
하나님이 지금 거할 성을 준비해 놓으시고 거할 성을
찾게 하는 광야 사막 길로 보냈단 말이다.
그러니까 어떻게 되는가?
거기서 부르짖으면서 그 거할 성을 찾지 못하니까
힘들어하니까 부르짖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거할 성을 받았다.
거할 성을 준비하지 않은 사람은 풀어질 만한 조건을
안 주는 것이다.
우리가 항상 이 점을 생각해야 된다.
하나님은 만족하게 하고 좋은 것을 준비해놨기 때문에
그걸 찾게 만드시는 것이다.
그걸 준비해놨기 때문에 그런 심령을 만드시는 것이다.
그분의 감춰진 섭리이다.
그러니까 영혼에게 자꾸 상처를 내서 거기에 인도하고
그걸 주려고 하는데 거기에 대한 반응이 없으니까
자꾸만 상처를 내셔서 그걸 찾게 만드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거할 성을 준비해 놨기 때문에 광야 사막 길로
보내시는 것이다.
오늘 아침에 자신의 영혼이 정말 주리고 목마른지 자신들을
한번 돌아보면서 그러한 영혼의 갈급함을 좀 사모하시고
사마리아 우물가 여인처럼 빈 잔을 높이 드셔서
주님 내 잔을 좀 채워주시고
내 영혼을 만족해주시고 저를 좀 만나주십시오
그러면서 최대한 마음의 빈 그릇을 준비하고 입을 넓게 열어서
신령한 것과 하나님의 놀라운 영원한 것과 말씀과
이 좋은 모든 것들이 우리에게 다가와서 만족하고
정말로 채워주는 역사를 다 같이 맛볼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첫댓글 감사~~ 충만한 은혜 받으세요~~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