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론네
이 홍사
말론네!
하지마라는 미얀마 말이다. 말론네! 내가 미얀마에 와서 이 말을 가장 빨리 익힌 현지어다. 인사말보다 먼저 배운 말이다.
나우삐야옹디 말론네!
미얀마 말로 농담하지 말라는 소리다.
말론네는 하지마라는 지시어이고 나우삐야옹디가 농담이라는 명사이다. 미얀마 말은 어순이 우리하고 같다. 하긴, 세계 어느 나라를 다녀도 언어에는 상통하는 점이 있게 마련이다. 처음 접하는 언어이지만 말을 듣다가 보면 부정인지 긍정인지 어렴풋이 알 수가 있다.
미얀마에서 말론네를 먼저 익혔다는 말은 미얀마 사람들이 시키지 않은 짓을 너무한다는 말에 다름이 아니다. 잠시 돌아서면 딴 짓거리를 해놓는 통에 환장을 할 지경이라 그 말을 먼저 익힌 것이다. 지금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는 주택 현장도 마찬가지다. 눈만 돌리면 도면과 달라지는 것이다. 기술자들이라고 모셔왔지만 도면은 제 머릿속에 있는 모양이다. 자로 어떤 대상을 측정을 하는 데는 항상 붙어서 간섭을 해야 한다. 그래야 일본용어로 데라우시, 하던 일은 뜯어내고 재공사를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오늘 새벽에도 그 말을 퓨퓨에게 했었다.
말론네!
나는 초저녁에 자고 새벽에 일찍 일어난다. 새벽 세 시 반쯤이면 기상을 한다. 그래도 일찍 일어났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한국시간을 속으로 계산하기 때문이다. 한국시간이면 여섯 시가 넘었군. 항상 그렇게 계산하는 버릇이 있다. 그 시간에 일어나면 한국의 장비들이 이제 일을 나갈 시간이군, 짐작을 한다. 미얀마에 있어도 한국의 돌아가는 배차상황을 다 알고 있다. 시대가 좋아져서 거리가 멀다고 단절은 없는 세상이다. 사무실에서 배차를 담당하는 여동생과 매일 카톡을 주고받는다. 헌데 오늘 새벽에는 퓨퓨가 나보다 먼저 일어난 모양이다. 혼자 쓰는 이층에서 새벽시간을 즐기는데 퓨퓨가 아래층에서 들락거리니 정신이 혼미하고 분답다. 이 처녀가 일어날 시간이 아닌데?
-퓨퓨야 라바.(이리와)
아래층을 향해 소리쳤다. 퓨퓨가 푸석한 얼굴로 올라왔다. 퓨퓨의 푸석한 얼굴을 확인 했을 때 전기가 나갔다. 정확히 네 시였다.
-또 시작이군. 쌩리대(짜증난다)
두 시간 정전이 되었다가 여섯 시가 되면 불이 들어온다는 말이다. 이 나라는 전력이 부족하여 전기가 자주 나간다. 하여 손전등이 장족의 진화를 거듭한 나라이다. 충전을 시킨 LED등 하나를 사면 벽에도 걸 수가 있고 들고 다니게 손잡이가 달려있고, 그땐 스위치를 반대방향으로 돌리면 플래쉬가 되고 책상 앞에 세워두면 스탠드가 되는 물건이다. 그게 하도 좋아보여서 한국에도 몇 개를 사 갔지만 전기가 나가지 않아 쓸 일이 없어서 어디에 박혀있는지도 모르겠다.
예전에는, 아니 작년까지만 해도 시도 때도 없이 전기가 정전이 되었는데 이젠 시간을 정해서 전기를 보내준다. 한번 정전이 되면 정확하게 두 시간 후에 전기가 들어온다. 전기가 없어도 노트북은 배터리가 있어서 전기가 들어올 때까지 스탠드를 켜고 도면작업을 한다. 항상 충전기를 꽂아두니 배터리가 모자라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렇게 하면 노트북의 배터리 수명이 짧아진다고 들었지만 개의치 않는다.
노트북의 모니터화면이 밝히고 있어 전기는 나갔지만 암흑은 아니다. 퓨퓨가 방에 있는 스탠드를 냉큼 가져왔다. 잘 적에는 스탠드를 머리맡에 놓고 자야한다. 언제 전기가 나갈지 모르기 때문이다. 불을 켜고 퓨퓨에게 왜 자지 않고 들락거리느냐고 물었다.
삼층에 갔다가 오는 길이란다.
-발레? (왜?)
삼층의 미스터 김 와이퍼가 울면서 전화가 와서 갔다가 내려오는 길이라고 했다. 눈치를 보니 달래주고 오는 모양새다. 어쩌면 마주앉아 같이 울어주었는지도 모르겠다. 눈을 보니 눈시울이 벌겋다. 아기가 열이 나서 잠을 못자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전화를 한 모양이군.
-말론네! (하지마라!)
알았다고 하는 퓨퓨에게 내려가서 더 자라고 했다. 퓨퓨가 내려가는 걸 보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건 한국어였다.
-죽을 짓을 했지. 엄한 처녀를 중고품으로 만들어 결국은 과부로 만들었구먼.
그 말을 하고나니 모니터의 도면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 말을 하고 도면에 억지로 집중하다가 아침을 먹고 한 숨을 잤고 여느 날과 다름없이 오토바이를 타고 현장을 나가서 정신없이 공사감독을 하다가 들어왔다. 오늘은 짓고 있는 단독주택의 이층에 변기를 설치하고 수도를 끌어들이는 작업을 했다. 그 작업을 마쳐야 타일을 붙이는 것이다. 내일은 욕실에 타일작업이 잡혀있다.
김수철.
퓨퓨가 말하는 미스타 킴, 김수철씨에게 처음 전화를 받은 건 이 년 전쯤이었다. 한국에서 보이스톡으로 전화를 받은 것이다. 그날은 새내기공무원이 된 딸이 발령을 멀리 받아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없고 차가 필요하다고 해서 중고차를 사주러 가는 길이었지 싶다. 차에는 딸과 아내가 타고 있었고 인터넷으로 보아둔 중고차가 있다고 해서 그 상사를 찾아서 롯데마트 앞을 지나갈 즈음이었다.
-사장님, 안녕하세요. 여기 미얀마, 전번에 집을 보러 왔던 김수철입니다.
그렇게 말해서는 누군지 모른다. 내가 미얀마에 지은 집은 서른 채가 넘는다. 집을 보러 온 한국 교포들도 모아놓으면 한 마당이 되는지라 누군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누군지 모르겠다고 하면 비즈니스 예법에 상당히 어긋나는 거다.
-아, 그러세요. 안녕하세요?
그렇게 전화를 받았지만 누군지 알 길이 없었다. 요지는 지금 집을 사고 싶다는 거였다. 분양이 안 되어 미칠 지경인데 그렇게 반가운 전화가 있나? 내 목소리가 금세 고분고분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맨 꼭대기인 오층을 사고 싶어 왔는데 팔리고 삼층이 하나 남았는데 그걸 사고 싶다는 거였다. 운전대는 잡고 있었지만 그 말을 들으면서 그 돈을 받아서 다른 현장의 마무리 공사를 하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섬광처럼 지나갔다.
운전 중이라 휴대폰을 스피커폰으로 해놓아 그의 말을 아내와 딸이 들을 수가 있었다. 단 조건이 있단다. 무슨 조건? 계약금 얼마를 주고 나머지는 할부로 좀 해주면 좋겠다고 했다. 지금은 다른 사업을 하느라 목돈이 없다는 것이었다. 등기는 할부금을 다 내고 난 뒤에 해주어도 좋다고 했다. 우리 매니저가 옆에 있느냐고 묻고는 바꾸어 달라고 했다. 때쑤가 전화를 받았다. 원하는 대로 그렇게 해주라고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보름정도 있다가 들어오니 벌써 이사를 들어와 있었다. 그 집에는 임신을 해서 배가 부른 아가씨, 아니 임신을 했으니 젊은 새댁이라고 하자. 젊은 새댁이 살고 있었다. 미얀마 여자치고는 이목구비가 선명한 게 수려한 외모였고 가끔 골목에서 나를 보면 웃어주는데 미소가 아주 수수한 게 인상적이었다.
-이거 어떻게 된 일이야?
때쑤에게 물어보니 미스터 김은 지금 방콕에 있고 그 와이프라고 했다. 일주일 있다가 들어오는데 들어오면 계약서를 쓰자고 했단다. 판매금액을 물으니 내 노트북에 저장되어 있는 판매예상금액에 훨씬 못 미치는 금액을 이 작자가 제시했던 것이다. 때쑤가 한국어를 모르니 나에게 그 가격에 하기로 했다고, 결재를 받았다고 말하고 그 가격을 내정하고 이사를 먼저 들어온 것이다. 할부로 사면서 그렇게 왕창 깎아버리다니? 그렇잖아도 달러가격이 올라 환차손이 생겨 밑지는 장사를 하고 있는데 기분이 좀 상했다. 근데 이 작자가 젊은 사람일까? 저런 아가씨를 임신시키다니? 목소리는 그렇지가 않았는데? 누군지 도무지 모르겠다.
일주일쯤 있다가 그 작자가 나를 찾아왔다. 언젠가 한 번 본 작자인데 놀랍게도 나이가 내 또래쯤으로 되어 보였다. 이 늙은 작자가 그런 아가씨를 임신시키다니? 하마터면 내 입에서 그 말이 비집고 나올 뻔했다. 그런 작태는, 내가 외국 생활을 하면서 제일 싫어하는 항목이다. 미국이나 프랑스, 영국 같은 선진국에 가서 이 나이에 그런 나이를 지닌 아가씨를 임신시킬 수가 있겠는가? 갑자기 경멸을 넘어 혐오감이 일었다. 하여, 계약서를 타이핑하는데 나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타이핑을 했다. 석 달간 할부금을 주지 않으면 계약을 임의로 파기한다. 그때까지 불입한 할부금은 임대료로 간주하고 돌려주지 않는다. 이삿짐을 빼가지 않으면 쓰레기로 폐기처분 한다. 할부가 밀리면 이자를 고리대금업자의 이자 수준으로 10%를 더한다. 대충 그런 식으로 나에게 유리한 쪽으로 계약서를 타이핑하면서 주민등록번호를 물으니 놀랍게도 나 보다 한 살이 적은 나이였다.
내색하지 않고 한글로 된 그 계약서에 서명을 하고 한부씩 나눠가졌다. 방콕에 오래 있었는데 방콕에서는 보석장사를 했다고 했으면서 미얀마에서는 다른 사업을 구상하고 왔노라고 했다. 말을 하는데 느낌이 일었다. 국제사회를 무대로 돌아다니며 엄청 약아빠진 인간이구나. 계약서를 내 마음대로 적었는데 그렇게 적은 계약서를 보고 이설을 달지는 않았다. 굉장히 싸게 팔아서 손해를 왕창 보는 금액이라고 하니 그렇게 해주심 죽어서 복 받을 거라고 하며 염장을 질렀다. 죽어서 복 받으면 뭣해? 그를 돌려보내고 퓨퓨를 불렀다.
무슨 일인가 싶어 올라온 퓨퓨에게 삼층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미스타 킴 와이프 어땟 벨라웃래? (미스터 김 와이프가 몇 살이냐?)
스물일곱이라고 했다. 기가 막혔다. 서른 살 넘게 차이가 난다. 그럼 그 와이프의 가족이 알고 있느냐고 물으니 놀랍게도 지금 삼층에 같이 산다고 했다. 그럼 그 와이프의 어머니, 즉 장모가 되는 사람의 나이가 몇이냐고 물으니 자세히는 모르지만 미스타 킴보다 적을 거라고 했다. 장모가 나이가 더 적다? 퓨퓨는 그 말을 무덤덤하게 했다. 이 무딘 처녀는 그게 뭐가 이상한지 모르겠다는 투다.
나이를 알고 나니 혐오는 넘어 적개심이 들었다. 미얀마에는 김수철이가 아니더라도 그런 한국인간들이 많다. 하여, 나는 한인회에도 나가지 않고 혼자 틀어박혀 도면을 그리고 혼자 다니며 공사감독을 한다. 한국 사람들 만나는 게 싫었다. 그런 인간인줄 진즉에 알았더라면 무슨 핑계를 대던 집을 팔지 않았을 것이다. 김수철은 보름은 미얀마, 보름은 방콕에서 일을 했다. 눈치를 보니 방콕에도 여자가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저 나이에 애기를 낳아서 어쩌려나? 귀추가 주목되는군.
그게 김수철의 와이프라는 아가씨를 볼 때마다 느끼는 내 기우였다. 집장사야 집을 팔고 돈을 받으면 그걸로 끝이다. 다른 현장의 단독주택이 마무리가 되어간다. 마무리공사를 하고 그리로 이사를 가면, 꼴 보기 싫은 삼층을 볼 일이 없을 것이다. 별로 보고 싶지 않은 인간인데 집 앞이나 도로건너의 쇼핑센터에서 시도 때도 없이 마주치는 것이었다. 언제나 윗도리는 메리야스차림이었다. 더운 나라라 현지인들은 메리야스를 더러 입고 나다니지만 그것조차도 엄청 눈에 거슬렸고 만나면 멀쩡하던 내 정서가 고약하게 훼손이 된다. 그러니 더 자주 마주치는 것처럼 여겨졌다. 그러는 동안 아가씨는 애기를 낳았다. 나는 절대로 김의 와이프라고 호명하지 않고 아가씨라고 지칭했다. 낳은 아기는 딸이었다. 그게 벌써 일 년이 넘었다. 이제는 애기를 안고 마실을 나오는 그를 심심찮게 마주치곤 했다. 그러면 이 자식이 밉다는 말만 골라한다.
-오빠 오셨네. 빠이빠이 해야지?
오빠? 이니 자식이 미쳤나? 내 외손자가 몇 살인데?
물론 친근감의 표현이고 농담이겠지만 친근해지고 싶지도 않았고 농담이라도 받아들이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다. 그 작자를 만나면 항상 그랬다. 골목에서 이웃 집 아이들을 만나 예쁜 짓을 하면 가끔 천 원짜리 한 장을 내밀지만 하는 짓이 눈꼴 시려서 안고 있는 그 애기에게 단 한 번도 천 원짜리를 준 기억이 없었고 마주치면 빨리 자리를 파하고 싶은 욕구가 먼저 들었다. 아기가 예쁘다는 생각도 물론 들지 않았다.
그는 만날 때마다 얘기한다.
언제 저녁 한 그릇 같이하자고.
그때마다 속으로 말론네를 외친다. 건성으로 한가해지면 그러자고 하고는 미루고 있었지만 내 마음은 아니다. 정말이지 이렇게 하다간 그의 면상에 대놓고 나도 모르게 말론네를 외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섬뜩했다. 정작 그와 마주 앉으면 밥이 넘어가질 않을 것이다. 이렇게 혐오하는 작자와 마주앉아 밥을 먹다니,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일주일 전이었다.
현장에 나갔다가 들어와 집 앞에서 오토바이를 세우는데 삼층 베란다에서 그 작자가 소리쳤다. 올려다보니 메리야스차림이었다.
-오토바이 멋있습니다. 어디 갔다 오세요?
-아, 예! 현장 갔다가 오는 길입니다.
내 오토바이가 좋은 것은 동네사람들이 다 안다. 일제 야마하 400cc인데 이방인이 빅바이크를 타고 다니니 이웃 사람들의 관심거리를 만들기에 충분하다. 한국에서는 찾기 힘든 기종인데 가격이 웬만한 승용차와 맞먹는 고급오토바이라 미얀마 서민들은 언감생심인 물건이다. 그걸 타고 다니면 뭇사람들의 눈길을 많이 받는다. 그 눈길도 분명 스릴이나 쾌감의 한 종목이다.
-사장님! 참치 잡수실 줄 아세요?
오토바이 시동을 끄고 조용해지자 위에서 그가 소리쳤다.
-참치? 좋아하죠.
-그럼 한 접시 내려 보낼게요. 저녁에 드세요.
생각하니 그게 그 작자와의 마지막 대화였다. 그날 저녁 나는 참치, 연어를 먹었다. 참치를 내려 보내겠다고 했는데 온 것을 보니 연어였다. 살짐이 푸짐하고 때깔이 싱싱한 연어가 한 접시 푸짐하게 식탁에 올라왔다. 누가 가져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녁상에 연어가 올라왔다. 미얀마에서 연어라....... 어디서 난 것인지 이미 알고 있는데 퓨퓨는 밥상머리에 앉아 내가 궁금하지 싶었는지 묻지도 않았는데 삼층에서 보냈다고 했다.
이 작자가 참치와 연어가 헷갈렸던 모양이군.
이 작자와 마주앉아 있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연어를 맛있게 먹었다. 그걸 보니 안 먹던 소주가 생각이 나서 안주로 소주도 두어 잔 마셨다. 간수치가 높다는, 높은 정도가 아니라 간경화가 되기 직전이라는 의사의 말에 겁을 먹고 끊고 있던 소주였다.
간수치가 극도로 높다는 걸 안 건 그러니까 병원에 간 때이니 서너 달 전이었다. 나는 한국에도 오토바이가 있다. 여기에 있는 것보다 더 고급인 할리데이비슨이다. 미얀마에서도 오토바이를 탄다고 하니 남들은 나를 보고 오토바이 마니아라고 하지만 그 정도는 아니고 편리성을 핑계로 두 대를 가지고 있다. 한국에서 오토바이 사고가 난 건 서너 달 전이었다. 이발소에 가다가 불법으로 유턴을 하는 차와 추돌사고가 있었다. 첫날은 멀쩡했는데 다음날 골반이 아파서 사흘간 입원을 했었다.
그때 혈액검사를 한다고 피를 뽑고 링거를 달고 있었는데 간호사가 와서 링거를 빼버리는 것이었다. 왜 그러냐고 했더니 의사가 말을 해줄 거라고 했다. 다음날 의사의 소견을 들었는데 간수치가 너무 높다고 하면서 술을 마시느냐고 물었다. 매일저녁 소주 한 병씩 마시고 잔다고 하니 술을 끊으라고 했다. 이 정도의 수치면 간경화가 되기 직전이라며 지금 끊어도 간이 회복될지 아니 될지 모르는 상황이라고 했다.
내가 알기로는 간은 침묵의 장기다. 술을 마셔 간이 다 녹을 때가 되어도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게 간이다. 주는 약을 먹고 술을 끊고 한 달 후에 피검사를 해서 간수치를 비교하자고 했다. 간이 회복되는지 어쩌는지 알고 싶다는 것이었다. 하여 그렇게 좋아하던 술을 끊었다. 한 달을 약을 먹고 다시 병원에 가서 혈액 검사를 하고 지난 번 것과 비교를 하니 수치가 조금 내려갔다. 의사가 회복되고 있으니 다행이라고 했다. 또 약을 처방해주고는 술은 절대로 마시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늘 같이 술을 마시던 술친구인 G선배는 작은 사고로 병원에 갔다가 큰 병을 찾아냈으니 전화위복이거나 새옹지마라고 하며 아직은 죽을 운이 아닌 모양이라고 했다.
그러나 일주일 전 그날 저녁은 연어안주가 너무 좋아 보여 안주의 유혹에 못 이기고 냉장고의 소주병을 꺼냈다. 항상 나올 때마다 내가 한국에서 공수하는 소주다. 여기 한국식당에 가서 소주를 마시려면 한 병을 마시는데 가격이 한국의 곱절이 넘는다. 이번에도 술은 마시지 않자만 소주를 들고 나왔다. 미얀마친구들이 가장 선호하는 게 한국소주의 선물이라 들고 나온 것이었다.
연어를 초장에 찍어 서너 잔을 마시니 얼큰했다.
연어는 한 접시 깨끗하게 비우고 밥은 좀 남긴 것으로 기억 된다.
여기서는 한국과는 달리 저녁을 먹으면 씻고 바로 자러 들어가야 한다. 그래야만 퓨퓨의 일이 마무리 된다. 내가 자러 들어가야지 새벽에 마실 커피와 충전이 된 스탠드를 준비하고 사무실로 쓰는 거실 청소를 마치고 설거지를 하며 일을 마무리하는 것이고 나는 다음날 새벽에 일어나는 데 지장이 없다. 그날은 소주를 먹고 매일 방에 들어가서 보던 유튜브도 보지 않고 술기운 때문인지 일찍 잠이 들었다.
다음날 새벽, 그러니까 딱 일주일전이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새벽 세 시 반쯤 일어나서 씻고 나오니 네 시가 좀 넘었지 싶다. 거실 겸 사무실에 나와 노트북을 켜고 있는데 아래층에서 자고 있어야할 퓨퓨가 불을 밝히고 들락날락하는 낌새가 느껴졌다.
-퓨퓨야! 발래? (왜 그래?)
아래층을 향해 그렇게 소리쳤는데 퓨퓨가 올라왔다. 푸석한 얼굴이었다. 컴퓨터에 눈길을 주고 물었다.
-발래?
삼층의 미스터 김이 죽었다는 것이다.
-뭐라구?
급하면 한국말이 나온다. 순간적으로 어안이 벙벙했다. 멀쩡하던 인간이.
-나우삐야옹디 말론네! (농담 하지마!)
순간적으로 농담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 말을 했다.
-쓔어! 다게! (정말! 정말이라니깐요!)
퓨퓨는 정색을 하고 말하고는 나에게 물었다.
-쎄야 야레라? (세야는 괜찮아요?)
쎄야는 정확하게 해석을 하면 선생님이라는 미얀마 말인데 주인이나 높은 사람을 지칭하는 용어로 쓰이고 있다. 운전사도 쎄야고 사장도 쎄야고, 대통령도 쎄야다. 헌데, 뭐가 괜찮다는 말인가?
퓨퓨의 말에 의하면 삼층의 미스타 킴이 어제 저녁에 연어, 퓨퓨 말로는 셰몬이라고 했다. 영어로 셰먼Salmon, 연어를 뜻하는 말일 게다. 연어를 와사비, 퓨퓨는 일본말을 그대로 따와 와시비라고 했지만 겨자에 찍어서 엄청 많이 먹고 탈이 나서 죽었다면서 나를 보고 괜찮으냐고 재차 물었다.
-쩌노 야뱌래! (나는 괜찮아!)
한손으로 나는 배를 쓰다듬으면서 괜찮다고 했다. 퓨퓨의 말에 의하면 삼층의 미스타 킴 와이프로부터 전화를 받은 건 두 시쯤이었다고 했다. 택시 전화번호를 아느냐고, 급하게 한 대 불러달라고 하는 전화였다고 했다. 퓨퓨는 주위에 사는 개인택시 전화번호를 많이 알고 있다. 가까이 다니는 건 내가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지만 멀리 가거나 여러 군데를 다녀야하는 경우에는 택시를 대절해서 다닌다. 하여 몇 시에 어디를 간다고 하면 퓨퓨가 전화를 해서 가까이 있는 택시를 부른다. 그러면 택시가 집 앞에 와서 대기를 한다. 택시를 대기시키고 느긋하게 준비를 하고 나선다. 어디서 미팅이 있으면 택시가 기다린다. 아무리 미팅시간이 길어도 불평이 없다. 한국과는 달리 달리지만 않으면 요금이 추가되는 것도 아니다. 그렇게 집 앞에서 대기하는 택시를 삼층의 애기엄마가 본 모양이다.
택시를 불러달라고 전화를 해서 잠에 깨었다고 했다. 퓨퓨의 말로는 팬티바람으로 택시에 실려 병원으로 가다가 가슴을 두드리며 죽었다는 것이다.
-미스타 킴 아쿠 베말래? (미스터 김 지금 어디 있어?)
그 말에 병원에 있다고 했다.
그 작자는 나와 시간과 공간의 차이가 조금 있었다. 만약 집에 있다면 올라가보지 않을 수가 없는 일인데 내가 무엇을 해야 되지? 그냥 이대로 있어야 하나? 난감한 새벽이었다. 퓨퓨를 보고 내려가서 더 자라고 하고는 모니터에 눈길을 주었다. 퓨퓨는 내려가서 아래층 거실의 불을 끄고 제 방으로 들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노트북만 있으면 나는 혼자서도 새벽에 잘 논다. 도면을 이렇게 그려보고 또 궁리를 하고 뜯어고치고 시간이 가는 줄을 모른다. 헌데 그날 새벽은 아니었다. 건성으로 모니터에 눈길을 주고 문밖에서 우는 까마귀 소리를 듣고 있었다. 까악, 까악
미얀마에 웬 까마귀가?
어디선가 까마귀가 날아와 문 밖에서 날이 밝을 때까지 울었다.
퓨퓨는 연어를 많이 먹고 탈이 나서 죽었다고 했지만 내 짐작으로는 그게 아니다. 복상사주지가 되어 거룩하게 열반한 게 분명하다. 저 순진한 처녀가 복상사가 무엇인지를 알기나 하겠는가? 겨우 팬티만 입고 있었고 가슴을 두드렸다고 했으니 식중독이나 심장마비는 절대 아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복상사다. 새벽 두 시라고 했으니 얼추 짐작이 간다. 그 나이에 스물일곱 살짜리, 성적쾌감을 알아버린 여자라는 대상의 욕구를 채워주기에는 불감당이었으리라. 그걸 직감적으로 느꼈지만 퓨퓨에게 설명을 할 수가 없었다. 미얀마에서 속칭 인도 비아그라라는 약이 유명하다. 캬버타라는 약인데 한국에서 그걸 어떻게 알고 미얀마에 나가거든 그걸 사다 달라고 부탁하는 지인들이 가끔 있다. 언젠가 김수철이 마트에 갔다가 온다면서 만났을 때 손에 들고 있는 투명한 비닐봉지에 그 약이 들어있는 걸 얼핏 보았다. 그 때 나는 속으로 외쳤다. 말론네!
좋아하는 작자는 아니지만 기분은 고약했다. 평소와 다름없이 퓨퓨가 제시간에 일어났고 아침을 차렸고 아침을 먹고 다시 한숨을 잤다. 보통 한 시간쯤 자고 일어나 현장을 나가면 인부들이 오는 시간과 맞아 떨어지는데 그날은 좀 늦게까지 자서 매니저인 때쑤가 출근을 하고서야 깼다.
때쑤는 퓨퓨에게 들은 모양이다.
내가 일어나 사무실로 나가니 때쑤가 프린트가 된 A4용지를 하나 내밀었다.
이게 뭐야?
때쑤가 프린트를 한 것은 삼층에 받을 집값이 적힌 명세서였다. 날짜별로 받은 금액과 남은 금액이 적힌 것인데 대충 보니 칠 할 정도는 받았다. 때쑤는 이걸 미스타 킴 와이프에게 전해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쿠 말론네! (지금 하지마라!)
시간이 좀 지나야 한다. 퓨퓨를 불러 미스터 김의 와이프가 병원에 있느냐고 물으니 아니란다. 집에 있다고 했다. 잠깐 기다리라고 하고는 서류철을 뒤져 옛날에 적은 계약서를 꺼내 주민등록번호 적었다. 한국에 가족들이 있는지 모르겠다. 적은 용지를 퓨퓨에게 주면서 미스타 킴 와이프에게 주고 한국대사관에 가서 신고를 하고 한국의 가족들을 찾아달라고 하면 될 것이라고 했다. 내가 도울 수 있는 방법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 작자를 너무 모르고 있었다. 고향이 어딘지 미얀마에 친하게 지내는 한국인이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는 게 고작 주민번호뿐이었다. 퓨퓨가 그걸 들고 삼층으로 올라갔고 때쑤는 시청에 건축시공 중간검사 때문에 나갔고 나는 현장으로 나갔다. 그걸로 끝이었다.
그게 일주일 전이다.
일주일동안 나는 그 작자에게 아무 것도 도와준 것이 없다. 한인회에 연락을 하니 이미 알고 있었고 대사관에도 연락을 했다는 것이다. 퓨퓨를 통해서 그 집이 돌아가는 상황만 전해 들었고 미얀마에 친하게 지내는 고향 후배가 있다는 말도 퓨퓨를 통해서 들은 것이다. 그건 다행이다.
복상사!
세상에서 가장 장렬한 죽음이 상대의 고지에 깃발을 꽂고 당한 전사와 여성의 배꼽 밑에 물건을 꽂고 죽은 복상사라는 말도 있다. 그 속된 말에 동의할 수가 없었다. 복상사라고는 하지만 외국에서 그렇게 죽는 건 개죽음이다. 아직 화장도 하지 못하고, 서류절차가 끝이 나야하는데 적게는 삼 주가 걸린다고 했다. 이 늦어터진 나라에서 그게 제 시간에 이루어질지 의문이다.
-장렬한 죽음이긴 하지만 죽을 짓을 했지, 그 나이에.
퓨퓨는 아직까지 그 연어를 먹고 죽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게 아닌데 그걸 설명할 수가 없었다. 오늘 저녁을 먹는데 퓨퓨가 냉동실에서 비닐봉지에 든 연어를 꺼냈다. 얼린 연어인데 버려야겠다고 했다. 그게 웬 거냐고 물으니 그날 받은 것인데 그날 저녁에 반을 잘라 한 접시를 만들고 남은 것이라고 했다. 나는 연어가 남아있는 줄을 몰랐다. 한참 밥을 먹고 있는데, 냉동실을 정리하다가 그랬겠지만 퓨퓨가 그걸 꺼내는 바람에 밥맛이 떨어졌다. 연어가 고약하다는 말이 아니고 내가 그 작자와의 마지막 날을 다시 기억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휴대폰은 이층 책상위에 두었지만 어느 폰인지 알고 있다. 능수버들~ 태질하는 ~ 창살에~ 기대어~~ 누구의 노래인지 모르지만 저 노랫가락이 나오는 걸 보니 미얀마의 폰이다. 한국의 폰은 홍도야~ 울지~ 마~라~가 벨소리로 저장되어 있다.
-퓨퓨야! 폰 유게바! (퓨퓨야! 폰 가져와!)
퓨퓨가 곧바로 이층으로 올라가 폰을 가져오는 사이에 신호음은 중단이 되었다. 울리다가 저 혼자 끊겨버린 것이다. 퓨퓨가 가져온 폰을 보니 발신인이 박충수다. 밥을 먹다가 말고 발신인 번호로 다시 통화버튼을 눌렀다. 신호가 두 번가고 바로 박충수가 전화를 받았다.
-박사장 웬일이냐?
-어? 너 안 죽었네?
-내가 왜 죽어?
박충수의 말로는 오늘 한인식당에 갔는데 매오클라에서 연립주택에 사는 한국 사람이 복상사를 당했다고 들어서 모두들 나라고 입을 모았다고 했단다.
-이 친구야 미얀마에서 나를 복상사 시킬 대상이 없어. 삼층에 사는 사람이야.
-너희 연립 삼층에도 한국 사람이 살고 있냐?
-내가 전번에 얘기 안했냐? 한국 사람에게 할부로 한 채를 팔았다고.
-그랬나? 하여튼, 소문은 너라고 났어. 매오클라에서 연립주택을 짓는 사람이 너 밖에 더 있냐? 깜짝 놀랐다. 말을 들어보고 긴가민가했어.
-연립주택을 짓는 사람이 아니고 연립주택에 사는 사람이라고 했겠지.
-그 친구가 장모에게 엄청 미움을 샀다면서?
-나도 잘은 몰라. 아무튼, 그 친구가 장모가 되는 여자보다 나이가 많은 건 사실이야.
-죽을 짓을 했구만. 복상사주지가 되었으니 좋겠다.
-하여튼, 한국 사람들 그게 문제야. 너도 조심해라.
-나도 복상사시킬 대상이 미얀마에는 없다.
-나 지금 저녁 먹고 있는 중이야. 다음에 만나서 얘기하자.
박충수와의 전화는 그렇게 끊었다. 한인사회에서도 소문이 난 모양이다. 미얀마의 한인사회는 좁다. 양곤에 체류하는 한인은 겨우 삼천 명 정도가 되니 여기서 방귀를 뀌면 저 쪽에서 단박에 안다. 매오클라에서 연립주택을 짓는 사람이라고 소문이 났다면 모두들 나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이 동네 사람들도 오해를 한 모양이다.
엊그제 천 원짜리, 앞 골목 싸구려이발소에 가니 이발소 주인이 깜짝 놀라는 것이었다. 어느 한국인이 죽었느냐고 나에게 묻는 것이었다. 눈치를 보니 내가 죽었다고 소문을 들은 모양이다. 웃으면서 나 말고 한국 사람이 하나 더 있다고 했다. 나에게 우리 집에 온 손님인가 물었다. 아니라고 했다. 이곳에 겨우 일 년 정도 그것도 반은 방콕에 나가있으니 김수철이라는 작자가 살고 있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태반인 모양이다.
어제는 오토바이 시장에 오랜만에 커피를 마시러 갔다. 그곳에 있으면 재미가 있다. 거간꾼들을 모두가 알고 있는데 오늘은 이 놈에게 커피를 얻어먹고 다음날은 저 놈에게 커피를 얻어 마신다. 그곳에서 나는 나이와 상관없이 ‘마이프렌드’로 통한다. 귀때기가 새파란 거간꾼도 마이프렌드고 늙은 작자도 마이프렌드다. 오토바이 시장이라고 해서 가게나 장이 형성되어 있는 게 아니고 현지 커피집 앞이다. 가게 앞에 팔아야 될 오토바이가 죽 서있다. 어떻게 알고 오는지 멀리서도 오토바이를 팔러 그곳에 오는 작자들이 있다. 매오클라 지역에서는 소문이 난 오토바이 시장인 모양이다. 거간꾼은 모두가 다섯 명인데 하루에 많게는 스무 대정도가 거래되는 곳이다. 거간꾼들을 오토바이 거래가 성사되면 구전을 먹는데 하루 종일 커피집 앞에 앉아 노닥거리는 게 일이다. 어제 오후에 오랜만에 그곳에 갔더니 모두들 놀라는 눈치였다. 돌아가면서 모두 악수를 청했다. 경찰에게 들었다는 것이었다. 내가 사는 연립에 한국 사람이 죽었다고 해서 모두들 나라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하면서 친구가 죽었느냐고 물었다. 말을 하기가 귀찮아서 그냥 삼층에 사는 친구라고 했다. 어떤 놈은 살아있어서 고맙다고 하는 놈까지 있었다.
아무튼, 박충수의 전화를 끊고 저녁상을 물리는데 삼층의 미망인이 현관문을 노크하고 들어오는 것이었다. 그녀는 나를 보고는 수줍게 미소를 지었다.
저런 순수한 아가씨의 인생을 망쳐놓다니,
아픈 아기가 좀 어떠냐고 물었다. 지금은 괜찮다고 했고 퓨퓨에게 현지어로 뭐라고 했다. 둘이 얘기를 하는데 눈길 주기가 민망해서 이층으로 올라와 버렸다. 담배를 물고 있는데 퓨퓨가 금세 따라 올라왔다. 애기 엄마는 돈을 달라고 내려왔다고 했다.
-발레 빠이산? (무슨 돈?)
내일 병원에 가는데 시신의 입에 물릴 한국 동전이 필요해서 내려온 것이라고 했다. 퓨퓨는 그걸 설명하는 손짓 발짓을 하며 동전을 아이언 빠이산이라고 해서 웃음이 쿡 터졌다. 나는 방으로 들어가 한국에서 들고 온 손가방을 뒤지니 동전 육백 원이 나왔다.
-고작 이게 부조구만
퓨퓨는 그 정도면 충분하다며 동전을 받아서 아래층으로 내려갔고 애기엄마가 위층을 보고 소리쳤다.
-째주띤 바레! (고맙습니다!)
나는 내려가는 계단 앞에 서서 아래층의 애기엄마를 보고 말했다.
-크라이 말론네! (울지 마라!)
아가씨, 아니 애기엄마가 나를 올려다보고 수줍게 미소를 지었다. 정말이지 안타까운 미소였다. 어디선가 뜸부기가 울고 있었다. 뜸북뜸북 뜸북뜸북, 나는 손가락으로 귀를 후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