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유안진
그릇아
세상을 담아낼 만치 커질 수도 있고
자살밖에 도리없어 작을 수도 있는 마음아
눈꼴시어 못 보겠던 남의 인생도 내 것처럼
우는 이와 같이 울고 웃는 이와 같이 웃자
대문에 이마에 앞가슴에
'헌 나는 없어졌음'
이런 문패 하나 내걸고 싶어
빈 그릇처럼
나머지가 없는 찌꺼기도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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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하늘은 잔뜩 찌푸려있습니다. 곧 장마가 시작된다지요? 작년에 54일의 장마를 경험하며 ‘이 비의 이름은 장마가 아니라 기후위기입니다’라는 구호가 각인된 터라 올해는 또 어떻게 지나갈지 벌써부터 걱정입니다. 특히나 농부들의 시름이 깊어질까 염려스럽습니다. 우리의 삶의 패턴을 바꾸지 않는 한 이 시름은 더욱 깊어지겠지요. 매순간이 삶을 단출하게 하라는 싸인(sign)으로 느껴집니다.
작년까지 목요일 저녁이면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지금 문화원장으로 계시는 김홍배 원장님께서 향토사연구회 회장을 역임하시면서 ‘공부하는 향토사연구회’라는 기치를 내걸고 수년간 이어온 공부모임이 있습니다. 제가 처음 참여하며 시작한 공부가 조선 중종 때 박세무 선생이 지은 <동몽선습(童蒙先習)>과 선조 때 율곡 이이 선생이 지은 <격몽요결(擊蒙要訣)>입니다. 동몽선습은 한자문을 마친 아이들이 배우기 전 배웠던 교과서이고, 격몽요결은 청소년의 학습을 위해 만든 책으로 모두 기본적인 사람됨에 대한 가르침이 담겨 있지요. 이후 공자의 <논어(論語)>를 배우고, 올해부터 향토사연구회 회장이신 김기문 선생님(국사 전공)에게서 <한국사>를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첫 시간 참석 이후 오카리나와 기타 강의가 잡혀 줄곧 나가지 못했지요. 개인적으로는 공부모임을 지속하지 못해 아쉬운 마음이 컸습니다. 그러다가 모임시간이 목요일에서 화요일로 바뀌면서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바뀐 시점이 1학기 종강 겸 야외수업이 있었던 지난 화요일 저녁이었습니다. 남대천 음악분수 광장에 모인다 하여 의성장애인부모회 아이들 몸놀이 프로그램을 돕다가 한국사반에 바로 합류하였습니다. 늘 함께 공부했던 분들 뿐만 아니라 새로운 얼굴들도 있었습니다. 모임에 가니 모임을 마무리하며 자기를 소개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자기소개시간 중간 즈음 누군가의 지명을 받고 앞에 나가 저를 간단히 소개하고는 이 공부모임에 대해 짧게 한 말씀 드렸습니다. “의성에 내려와 저의 삶을 풍요롭게 해준 시간이 바로 이 시간이었습니다. 앞으로 자주 뵙겠습니다” 이제 익숙한 인연들과 새로운 인연들과 어우러져 재미있게 공부해보려구요.
인생은 끝없는 공부의 장입니다. 저마다 마음 속에 그릇 하나 있어 그 안에 무언가를 채우게 되지요. 그런데 마음의 그릇이라는 것이 묘하여 ‘세상을 담아낼 만치 커질 수도 있고, 무한히 작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그릇이 커지거나 작아지는 것은 지기 비움과 관계있습니다. 남보다 낫다고 으스대던 마음 버리고 흉보던 남의 생이 곧 나의 생일 수 있음을 겸허히 인정하며, 고만고만한 인생들이 서로 함께 울고 웃고 사는 것이 인생임을 알아 욕심 많은 나는 없고 너와 내가 함께 더불어 사는 그런 삶을 사는 이의 그릇은 얼마나 클까요? 인생이 풍요로워지는 것은 고집스러운 옛 자아를 얼마만큼 버렸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공부는 결국 자기를 버리는 훈련이지 싶습니다. 공부합시다! <2021.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