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글쓰기 세 번째 시간은 ‘맛있는 문장 만들기’ 수업입니다. 맛있는 문장은 어떤 걸까요. 또렷하고 찰진 문장에 더해, 우리의 감각을 일깨우는 ‘맛’의 미각과 촉각과 후각을 가진 그런 문장은 어떻게 쓸 수 있을까요.
먼저 무엇이 더 중요한가를 따져봤습니다. 수량 관련 표현을 다룰 때를 살펴봤습니다. 영어에서는 수량을 앞세우는 것이 먼저지만, 우리말에서는 사물을 먼저 내세웁니다. ‘한 잔의 커피’라고 하지 않고, ‘커피 한 잔’이라고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한국어에서는 수나 양보다는 사물이 무엇인지가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수량을 강조하려고 할 때는 수량이 앞서서 나옵니다.
꾸밈말의 경우는 어떨까요. 우리말에서 크기는 모양과 특성보다 앞섭니다. 인간의 다섯 가지 감각 중에서 시각은 외부의 사물을 인지하는 가장 기본적이고 일반적인 능력입니다. 눈으로 통해서 받아들이는 사물의 속성에는 크기, 모양, 색 따위가 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한국어사용자들은 어떤 사물이 지닌 여러 가지 속성을 한꺼번에 묘사할 때 크기를 가장 먼저 내세우는 경향이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크기'는 사실 '규모'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산의 경우에는 높이가, 바다의 경우에는 넓이가, 젓가락이나 우산같이 길쭉한 물건의 경우에는 길이가 바로 '규모'에 해당합니다. 그래서 '몸집이 통통하고 키가 큰 사내'보다는 '키가 크고 몸집이 통통한 사내'가 더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추가하면, 색은 가장 나중에 나옵니다. 왜냐하면 전통적으로 우리말은 어떤 사물의 색을 단순히 그 사물의 특성 가운데 하나로 보기보다는 그 사물이 지닌 근본적이고 항구적인 속성으로 보았고, 따라서 그 사물과 떼어서 생각하기보다는 그 사물의 본질적 일부로서 어떤 사물을 그것답게 해 주는 핵심적 요소로 여긴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파랑새' '노랑나비' '노랑머리' '빨강구두' '분홍치마' '검둥개' '검정콩' '검정고무신' '흰옷' '흰머리' 같은 낱말에서 보듯이 색 표현을 아예 사물 자체와 붙여서 복합어를 만드는 경우가 많은 것도 이런 이유에일 겁니다.
문장을 예민하게 느껴야 맛있는 문장을 쓸 수 있습니다. 과도하게 ‘~적’이 들어가는 표현을 제거하고, 그냥 써도 무방한 문장에 어색한 진행형 문장을 두는 것을 조심하는 것을 공부했습니다. ‘것’을 과도하게 쓰기 보다는 ‘데’를 사용하기를 권했습니다. 장소나 신체부위나 명사절에 ‘데’가 들어가면 우리말은 더 자연스러워집니다. 문장을 소리 내어 읽어야 문장에 대한 예민함을 기를 수 있습니다.
문장을 무리하게 생략할 때 뜻이 잘 안 통하거나 문장이 호응이 안 되는 부분도 걸러냈습니다. 형용사로 쓰기보다는 동사로 쓰는 것이 문장을 더욱 자연스럽게 하는 것도 직접 써 보면서 가늠해 보았습니다. ‘~ 있어서’, ‘다름 아니다’ 같은 일본어 번역체 문장도 분별해 보았습니다.
맛있는 문장을 쓰려면 문장성분의 호응에 유의해야 합니다. 주술 관계가 어그러지지 않도록 챙겨야 하고, 토박이말과 한자아가 뒤섞이기보다는 토박이말은 토박이말끼리 한자어는 한자어끼리 연결시켜 주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습니다. 아라비아 숫자는 한자와 똑같이 대접해서, 숫자로 쓸 때는 2를 ‘이’로 읽어야지 ‘두’로 읽지 않도록 유의하는 것도 공부했습니다. 2명의 독음은 정확하고 엄밀하게 말하자면 ‘두 명’이 아니라 ‘이 명’입니다. 한 가지 문자는 한 가지 소리에 대응한다는 우리말의 대전제를 지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2명이라고 쓰기보다는, 두 명이라고 우리말로 써 주는 것이 문법상으로는 옳은 것입니다.
맛있는 문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예민해야 합니다. 문장에 대한 감수성이 높아야 문장이 주는 감각이 어떤지를 구분해 낼 수 있습니다. 하루아침에 되는 일은 아니지요. 열심히 공부하고 부단히 수련해야 합니다. 그래야 예민함을 기를 수 있습니다. 문장에 대한 예민하려면 쉬이 넘길 수 있는 사안을 그냥 넘겨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모든 것에 대해서 예민하게 분별해 보고, 진정 옳은 것이 무엇일까를 고심해 보는 자세도 필요합니다.
그런 고심과 고민이 담긴 김훈 선생님의 글을 같이 읽으며 세 번째 시간을 마무리했습니다. 2002년 한창 월드컵의 열기에 달아올라 있을 그때, 김훈 선생님은 축구공에 묻힌 세계의 진실을 추구하며 글을 썼습니다. 아래 글을 보며, 우리가 문장을 분별하고 고심하는 것이 이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려는 노력과 분리되지 않는 것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김훈 선생님의 글을 읽으며, 세 번째 시간을 마무리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첨부한 파일을 참고해 주셔도 좋습니다.
'어린이 노동과 월드컵’
월드컵 열기 속에서, 축구공은 문명의 아이콘으로 추앙받고 있다. 축구공 속에는 평화와 인류애 같은, 문명의 온갖 아름다운 가치와 적성이 내장되어 있다는 믿음이 경기장을 흔드는 감격의 도덕적 바탕이다. 축구는 단순한 공차기가 아니라 문명의 위상을 누린다.
이 '거룩한' 축구공은 아시아 저개발국가 어린이들의 수탈노동에 의해 생산되고 있다. 축구공은 오각형의 가죽조각을 손으로 꿰매서 만든다. 아디다스 등 스포츠용품업계의 초국적기업들은 파키스탄, 인도, 스리랑카 같은 아시아 저임금지대를 옮겨가며 생산 공장을 차리고 값싼 어린이노동을 고용했다.
'월드컵 후원 초국적기업 반대 공동행동'은 축구공을 꿰매는 어린이들의 참상을 알리기 위해 방한한 국제시민단체의 연대조직이다. 축구공을 꿰매다가 눈이 먼 인도 소녀 소니아(15)도 따라왔다. '공동행동'은 세계 최대의 축구공 생산지인 파키스탄에서 1만 5천여 명의 어린이들이 한 개에 120~200원을 받고 축구공을 꿰매고 있다고 밝히고, 이에 대한 세계축구연맹(피파)의 답변을 요구했다. 초국적기업들의 후원금은 텔레비전 중계료와 함께 피파의 가장 중요한 수입원이다. 월드컵의 함성에 묻혀서, 축구공 속에 들어있는 세계의 온전한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월드컵이 가야할 길은 아직도 멀고 멀다.
김훈, '거리의 칼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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