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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돈균) 스냅백-스타일이 정신이다
오늘날 '스타일(style)'이란 말은 '옷 입는 방식'이란 뜻으로 많이 사용된다. 하지만 본래 스타일은 '펜(stylos)'이라는 뜻이었다. '문체'라는 뜻도 여기에서 비롯됐으며, '양식'이란 뜻까지 포괄한다. 요즘은 스타일 숭배 시대지만, 예전에는 스타일에 신경을 쓰는 사람을 '폼 잡는다'는 말로 비아냥대기도 했다. 올해 핫한 패션 아이템인 '스냅백(snapback)'은 어쩌면 '폼 잡는다'는 말에 부합하는 사물일지도 모르겠다. 챙이 살짝 밑으로 구부려지는 일반 모자와 달리 이 모자는 챙이 짧으며, 챙이 시선과 평평하거나 오히려 위로 꺾인다. 뒤에 똑딱이 단추가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지만, 이 사물의 핵심은 챙에 있다.
이 '폼'의 특징은 다른 모자들과 비교할 때 두드러진다. 야구모자는 챙을 밑으로 구부려 써야 제 맛이다. 이때 눈은 챙의 그늘로 약간 가려지며, 타인과 나 사이에는 다소 불공평한 시선의 메커니즘이 생긴다. 길고 '각 나오는' 챙을 가진 경찰관 모자도 있다. 이 챙은 제도의 완강함과 규율에 대한 복속을 상징한다. 반면 스냅백 챙은 '빳빳'하다. 이 빳빳함은 완강함이라기보다는 젊음의 고유한 에너지의 표현이다. 짧은 챙은 '까칠한' 비타협성을 웅변하는 듯하다.
스냅백은 앞뒤를 거꾸로 돌려 쓰거나, 챙을 위로 꺾어 올려 썼을 때 스타일의 진가가 드러난다. 거꾸로 쓸 때, 이 사람에게 가장 어울리는 폼은 달리는 자세다. 그는 앞만 보고 달리지만, 시선을 멀리 던지지는 않는다. 너무 멀리 삶을 전망하며 '계산'하는 것은 스냅백 주인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폼이란 말이다. 챙이 거꾸로 꺾여 올려진 스냅백 주인은 야구모자 주인처럼 자기 시선을 숨기지 않는다. 가진 건 없지만 '떳떳함'이야말로 스냅백 스타일이다. 위로 올라간 챙만큼이나 시선은 더 개방되어 있다. 어떤 이들은 이 스타일에서 '삐딱이'를 볼 수도 있겠지만, 개방된 시선이 더 많은 것을 향해 열려 있을 것이라는 것만은 틀림이 없다.
스타일은 '폼'이고, 폼은 정신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물의 본질은 '폼'이라는 형식의 옷을 입고서만 나타난다고 보았다. 어떤 상황에서도 폼을 잃지 말자.
[함돈균 문학평론가]